[소감/질문] 장회익저작읽기 7회 : 『삶과 온생명』 11, 12장.
질문 및 토론
녹색문명공부모임
작성자
neomay33
작성일
2023-12-22 01:33
조회
567
녹색문명공부모임 2023-2024 “장회익과 장회익 저작(생명, 문명) 읽기” 7회 소감입니다. (황승미)
『삶과 온생명』. 장회익. 2014. 현암사.
3부 쟁점과 전망: 새로운 융합의 모색
– 11장 과학문화, 재앙인가 구원인가
– 12장 현대 과학과 정신세계
11장에서 질문과 소감
- 찰스 퍼시 스노가 지적한 ‘두 문화’ 문제에 대하여 : 과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이 서로의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문제라고 하는데, 서로에 대해 오해하거나 오용하거나 임의로 가져다 쓰는 것도 또 다른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인문학에서 오용, 오해하는 흔한 예로는 열역학제2법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일 것 같습니다. 과학에서 인문학을 오용, 오해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게 있을까요?
- 요즘(짧으면 몇 년, 길면 10년 이상 동안) 우리나라의 과학 유행 현상을 보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본주의가 과학도 상품화(책, 활동, 상품, 셀레브러티, 과학 덕후 등)해낸 것 같기도 하고요.
- 인간 스스로가 인간 존재 그 자체를 말살시킬 위험이 있는데, 이를 극복하려면 더 높은 수준의 과학문화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하셨는데요(p.348). 과학이 구축해온 과학의 역사적인 성격, 특성, 본성 같은 것이 극복될 수 있을까요?
- 인류의 문명의 소위 ‘번영’에 한계는 있을까요? 욕구든 생존이든 목적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챗GPT도 화성탐사도) 그저 해낼 수 있으니까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개발을 지시하는 사람들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목적이 있겠지요?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다행성 거주 가능 인간’을 만드는 것이라고도 하는데요. 어쩌면 그들의 목적이 인류가 꿈꿔온 영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12장에서 질문과 소감
12장의 질문은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회익선생님 저작을 읽다보면 선생님의 연구의 궁극 목적은 ‘인간의 자기 이해’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현대 과학을 통해 (1)세계를 이해하고, (2)더 나아가 세계를 이해하는 것(앎)을 이해하고, (3)세계를 이해하는 인간을 이해(자기 이해)하는 것, 이렇게 3단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수만 년 전(?)에 진화를 멈춘 인간의 몸이 아니라 우주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진화한 인간의 지성(머리)에 맞춘 과학과 인류 문명을 만들어가는 것이 또 하나의 목적이고요.
몇 가지 질문을 적어보았습니다.
- 공동 주체, 집합적 의식 주체로서의 인식 주체는 자연과학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가? 인문학만으로는 안 되는 것인가?
- “과학에서 전제하고 있는 집합적 의미의 인식 주체가 반드시 의식 주체로서의 '온생명'과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p.368)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둘의 공통점은? 차이점은?
- 인식의 주체에서 느낌의 주체로 의식 주체를 나누는데, 느낌의 주체도 공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 정말 우리가 온생명에 대한 느낌의 주체에까지 이를 수 있다면(정신적 차원을 고양시키면), 현재의 생태위기와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가 온생명에 대한 느낌의 주체가 되지 못해서 현재의 위기들이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이것이 원인에 적합한 처방이 될 수 있을까?
- 챗GPT는 집합적 주체, 공동 주체인가? '아직'은 아니라면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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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에 무척 흥미로운 질문과 소감을 올려주셨네요. 저도 이 대화에 한 자락 끼고 싶습니다.
저의 기본생각은 이미 알고 있을 것 같긴 하지만, 흔히 과학(science)이라 불리는 것은 실상 19세기에 기존의 자연철학적 사유로부터 연원한 테크노사이언스(technoscience)이며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및 시장경제와 동전의 양면처럼 결코 분리할 수 없는 탐구영역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1830년대에 '과학자 scientist'라 불리는 사회집단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1860년대에 동아시아에 물밀듯 들어온 것도 바로 이 과학이라는 이름의 부국(富國)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학 특히 자연과학 또는 테크노사이언스라 부르는 접근은 태생적으로 이윤을 위해 움직인다고 봅니다. 인류의 '번영'이나 '풍요'를 내세우지만, 무한한 이윤추구 속에서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결코 그 욕망과 개발을 절제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자본주의가 과학도 상품화를 했다기보다는 과학은 태생적으로 상품화를 위한 무한한 노력이라 생각합니다. 오픈에이아이(OpenAI) 같은 회사나 거대기업의 자본가들이 내세우는 명분이나 이념은 그런 상품화와 이윤추구를 가리는 과장된 주장이라고 봅니다.
아.. 자본은 뭐든지 잡아먹을 수 있구나 생각했는데, 과학의 태생이 그런 거였군요.
그러면 장회익선생님 말씀처럼 과학으로 과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여기서 앞의 과학과 뒤의 과학은 의미가 다르다고 하셨지만요. 그리고 현실에서 두 과학이 구분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삶과 온생명』 11장을 참조해주세요. ^^)
저는 최근에야 호르크하이머의 『도구적 이성 비판』을 알게 돼서 조금씩 읽고 있는데요.(철학, 사회학 모르는 저로서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선지 『삶과 온생명』에서도 '도구적' 과학 비판이 많이 되고 있는 게 이번에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분들(그 유명한 프랑크푸르트학파지요?)이 말하는 '도구적 이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과 장회익선생님의 방안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차차)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밤에 새로 쓴 건 아니고, 예습 하면서 메모한 걸 정리한 겁니다. 지나고 나면 순식간에 뇌에서 사라져버려서요. ㅠㅠ)
과학과 자본주의의 대단히 복잡한 얽힘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저의 댓글은 조금 과격한 저의 의견에 불과합니다.
마침 2018년 과학사를 전문으로 하는 Osiris라는 이름의 학술지에 이와 관련된 논문들이 실렸습니다.
Osiris, Volume 33
Science and Capitalism: Entangled Histories
Edited by Lukas Rieppel, William Deringer, and Eugenia Lean
https://www.journals.uchicago.edu/toc/osiris/2018/33/1
이 논문들은 2016년에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것으로서, 그 중 전체를 개관하는 도입글이 유용할 것입니다.
Lukas Rieppel, Eugenia Lean, and William Deringer (2018) Introduction: The Entangled Histories of Science and Capitalism. Osiris 2018.33:1-24.
https://doi.org/10.1086/699170
첨부파일 : The-Entangled-Histories-of-Science-and-Capitalism-Lukas-Rieppel-Eugenia-Lean-and-William-Deringer.pdf
장회익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통합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오늘 자료를 좀 찾아보면서 느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을 가지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것인데(이 말은 장회익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첫 페이지에도 나오는.), 과학이 바로 정확하고 올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지만 (쉽게 말해서) 엇나가 왔고 엇나갈 수 있는 과학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인문학과 통합되어야만 생존을 위한 길찾기를 잘 할 수 있게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고 보니 또 너무 당연한 얘기를 반복한 것 같은데요, 과학이 아니면 안 되나 하고 제가 위에 질문을 써놔서 적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