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꼽문] 책새벽-화/금. 세계철학사 1 : 1부 - 4장.현상과 실재
모임 정리
책새벽-금
작성자
neomay33
작성일
2023-09-10 13:35
조회
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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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철학사 1』. 이정우. 길. 2018.
* '책새벽-화'와 '책새벽-금'을 통합했습니다. 지난 주부터 『세계철학사1』는 일주일에 두 번 읽습니다.
3장 현상과 실재
§1. 질과 양의 조합
p.149.
엠페도클레스는 세계가 근원적 차원에서는 영원부동의 동일성이라는 파르메니데스의 전제를 받아들이되 다자와 운동을 긍정한다. 세계 안에서의 다자와 운동은 인정하지만 세계 그 자체, 궁극의 차원에서의 세계는 영원한 동일성인 것이다. 다음 구절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전혀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무엇인가가] 생겨난다는 것은 가당찮으며,
또 있는 것(eon)이 완전히 파멸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누군가가 끊임없이 어디에 놓든 그것은 늘 거기에 있으리라."
(DK, B/12. 단편 15)
p.152.
엠페도클레스의 사유는 이 모든 운동/변화를 어떤 근본적인 존재들의 혼합과 분리로 설명한다. 근본적인 존재들 하나하나는 마치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처럼 영원부동의 존재이지만(여기에서 '부동'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실체적 변화를 겪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존재들의 혼합과 분리를 통해서 온갖 현상들이 발생한다는 이 생각은 분석적 사유의 전형이다. 엠페도클레스 이래 2,500년가량이 지났지만 사실 우리가 '분석적 사유', 합리적 사유', 과학적 사유'라 부르는 사고 유형은 이때 이미 완성된 것이라고 하겠다. 이 사유는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진다.
1. 한 사물 - 복합체 - 에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요소들을 찾아낸다.
2. 그 요소들이 어떻게 조합되었기에 그 사물이 바로 그렇게 존재하는지를 밝혀낸다.
p.154.
미시세계의 탐구가 아무리 계속된다 해도 우리가 일상을 살고 있는 세계는 현상세계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앞으로 물리학과 화학이 어떻게 발달해가든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는 물, 불, 공기, 흙의 세계, 몇 가지 덧붙인다면 나무, 쇠, 돌, 유리 등의 세계이다.(쇠, 돌, 유리 등은 흙에 포함시키고 나무만 독자덕인 것으로 볼 경우, 동북아의 '오행'이 나온다.)
현대의 합리주의 과학철학을 대변하는 가스통 바슐라르가 한편으로는 현상 차원을 넘어서는('인식론적 단절') 과학의 세계를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물, 불, 공기, 흙에 대한 현상학적, 시학적 이야기를 펼친 것도 이런 맥락이다.
p.160.
(아낙사고라스는) 그의 신변을 염려한 페리클레스의 권고로 람사코스로 은퇴해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 람사코스 사람들은 그를 매우 존경했던 것 같다. 그들은 아낙사고라스의 임종시에 소원을 물었는데, 그는 자기가 죽은 날을 기념해서 그 달만큼은 아이들이 공부를 쉬고 놀게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 유언이 '방학'이라는 것의 기원이 되었을 것이다.
§2. 질들의 상대적 비율
아낙사고라스(BC500~428)
p.163~164.
...아낙사고라스가 주로 아테네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아마도 페르시아 전쟁이었을 것이다. 이오니아 지방이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인해 무너지면서 당대의 지식인들이 아테네, 이탈리아 등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그중 특히 아낙사고라스가 아테네로 건너가면서 아테네의 철학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당대는 또한 소피스트들의 시대, 페리클래스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 시대의 아테네에서 철학이 활짝 꽃피지만 그 중심을 이루는 사람들 대부분은 타지 출신이었다.
아낙사고라스는 그리스 전성기에 페리클레스와 친분을 맺고 아테네 황금기의 한 축을 이루었다. 아낙사고라스는 페리클레스와의 친교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가의 친구라는 것 때문에 곤혹도 치르게 된다. 태양이 붉게 달아오른 돌덩어리라고 말했다는 이유에서 클레온이라는 사람에게 불경죄로 고발당해 벌금을 물고 추방 당했다고도 하고 또 페리클레스의 정적이었더ㆍ 튀키디데스가 고발해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도 한다. 아낙사고라스를 시발로 해서 소피스트들 특히 그리고 특히 소크라테스까지 당대의 지식인들은 정치적 음모 또는 대중의 무지 때문에 수난을 당하곤 했다.
아낙사고라스는 떠나가면서 "내가 아테네인들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아테네인들이 나를 잃은 것"이라 했는데, 이는 이 폴리스의 미래에 대한 의미심장한 예언과도 같았다.
p.165.
천문학이 발달하지 않았을 시절 운석이란 큰 호기심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밀레토스의 합리주의를 이어받은 아낙사고라스 역시 자연 현상에는 아무런 신비한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탈 신비화의 사유이다.
p.166~168.
아낙사고라스도 파르메니데스의 길을 따라 자기 동일적 존재를 상정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르다.
...세계는 근본적으로 생성과 소멸이 없는 어떤 동일성이지만 그 안에서는 무수한 것들이 혼합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한다는 것. 우리가 탄생과 소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상 혼합과 분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첫 번째 명제 ("결합되는 모든 것 속에는 온갖 종류의 많은 것이 들어 있는데, 그것들은 만물의 종자들로서 온갖 종류의 형태뿐 아니라, 색깔도 맛도 가지고 있다.")가 기초적인 명제이다. "결합되는 모든 것" 이란 만물을 이야기한다. 만물은 복합체들이다. 아낙사고라스는 만물에는 만물의 종자들이 다 들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컨대 강아지 안에는 고양이 종자, 새 종자, 인간 종자... 등 세계의 모든 종자들이 다 들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각 종자들은 질적 존재들로서의 아르케 들이다. 이 생각은 상당히 독특하다.
사물을 분석해서 바라보는 사유들은 분석되는 것을 분석의 결과들로 환원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분석의 결과들은 분석되는 것보다 질적으로 빈약한 것들이다. 하나의 건물을 벽돌, 유리, 나무 등으로 분석했을 때 이 각각은 집이라는 복합체에 비해 질적으로 빈약하다.
아낙사고라스의 생각은 이런 생각과 정확히 대조된다.
하나의 종자는 질적으로 매우 복합적인 무엇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하나라는 것이다. 아낙사고라스는 질적으로 복합한 종자 바로 그것이 온전한 의미에서의 '하나 (모나스/ 모나드)', 더 이상 분석할 수도 환원할 수도 없는 궁극의 하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학문의 역사 전체를 놓고 볼 때도 특이한 생각이다. 훗날 우리는 라이프니쯔에게서 이 생각ㅡ '내적 복수성 (internel multiplicity)'의 사유ㅡ을 다시 만나게 된다.
p.170.
엠페도클레스가 화학자 유형의 철학자라면 아낙사고라스는 다분히 생물학자 유형의 철학자이다. 물리학이나 화학은 개체를 존중하지 않는다. 또 질적 차이들을 가능한 한 양적 차이들로, 복합체들을 질적으로 단순한 존재들로 환원하려 한다. 오늘날 '생화학' 등은 이런 존재론을 기반으로 한다. ...
각 종자들이 거의 무한히 작다는 것이 중요하다. 한 생명체의 다른 종자들이 얼마간 섞여 있어도 큰 의미가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 종자가 거의 무한히 많이 포함되어 있기에 다른 종자들을 압도해 버린다. 특히 이 대목에서는 오히려 양적 사유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 주목하자.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떠오른다.
p.171.
그러나 고양이를 고양이 종자들의 질적 체로 생각할 때도 어려움은 있다. 고양이의 종자들을 무수히 모아 놓았다고 해서 그것이 고양이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아낙사고라스의 생각은 불투명하다. 그러나 가능한 해석은 있다. 고양이는 무수한 종자들 중 결국 어느 하나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무수한 고양이 종자들이 필요한 이유는 그래야 이 집적체에서 다른 종자들이 개체로 자라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의 틀로 볼 때 문제의 핵심은 확률이다. 차라리 종자를 개별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완성된 형태의 생명체가 아닌 것으로서, '종자'로서는 다 같지만 나중에 합성되어 생명체를 이룰 때에는 그 생명체의 다른 부분들을 형성하게 될 것으로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이해할 경우 아낙사고라스의 종자는 오늘날의 세포 개념에 상당히 접근한다.
p.171~175.
엠페도클래스의 사랑과 미움에 해당되는 개념이 아낙사고라스에게도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이성(nous)이다. 이때의 이성은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인간 바깥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이성이다 '이성'이라는 성리학적 번역어의 원래 의미에 가깝다 할 것이다.
...아페이론 상태에서 회전이 시작되어 갖가지 종자들이 떨어져 나오며, 그 궁극의 원인이 이성이라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이성이 추동한 이후로 그것과 운동체들이 분리되었고, 운동체들 각각도 분리되었다"라는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그리고 뒤에서는 "이성이 질서 지었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성은 우주 개벽의 원리이자 우주 질서의 원리이기도 하다. 엠페도클레스의 '사랑'과 '미움', '이성'으로 대체되고 있다.
...아낙사고라스의 생각은 정신이라는 것이 따로 설정되고, 그것이 이 우주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이 정신을 신으로 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기 십상이고, 실제 후대에 아낙사고라스의 생각을 그런 식으로 이어간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가 누스라는 말로 신을 가리켰다고 보기는 힘들다. 훗날 해겔의 '정신(Gerst)' 개념에서 아낙사고라스의 영향을 보게 된다.
... 아낙사고라스가 말한 '누스'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이렇게 분명하지가 않지만, 소크라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이 생각을 반겼다. 이들은 누스를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원리로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세계가 물질의 우발적인 운동이 아니라 누스= 정신의 지배를 받는다고 해석하고, 이런 해석을 자신들의 목적론적 사유 체계 안에서 이해했던 것이다.
...아무리 잘라도 그 속에는 비록 비율은 작아도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나 화엄사상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종자는 순수한 상태로는 결국 결코 추출될 수 없으며, 다른 존재가 섞이지 않은 종자는 없다. 종자는 수, 질에서 무한하고 크기에서 무한히 작다. 그리고 사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각 사물들이 내장하고 있는 무한의 종자들 사이에서의 비율 변화로 설명된다.
p.173.
아낙사고라스의 생각은 정신이라는 것이 따로 설정되고 그것이 이 우주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이 정신을 신으로 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기 십상이고, 실제 후대에 아낙사고라스의 생각을 그런 식으로 이어간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가 '누스(nous)'라는 말로 신을 가리켰다고 보기는 힘들다. 훗날 헤겔의 '정신(Geist)' 개념에서 아낙사고라스의 영향을 보게 된다.
§3. 양으로의 환원
p.177.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들은 ... 일자와 마찬가지로 이 원자들도 우리의 감각을 벗어나는 존재들이다. ... 파르메니데스의 불가능성은 논리적/존재론적 불가능성이지만, 데모크리토스의 그것은 물리적/기술적 불가능성이다.
p.180.
현대 화학에서도 분자의 입체적 구조, 분자와 분자 사이의 공간적 관계는 중요하다. 이런 것들이 물리적 이유, 법칙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아낭케에 따라서"라는 말은 이런 모든 운동에 어떤 형이상학적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각주 16. 따라서 이런 유형의 사유는 물리적 필연성과 형이상학적 우연이 결합한 형태를 띠고 있다.)
p. 182
"풍부한 것에서 어떤 부분들을 덜어내서 빈약한 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쉬워도, 빈약한 것들을 모아서 풍부한 것을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중세의 대다수 사유는 풍부한 것을 가지고서 빈약한 것을 설명했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스를 선구로 해서 근대적 과학들은 대개 빈약한 것을 가지고서 풍부한 것을 설명한다. 이 경우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간극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p.183.
원자론의 또 하나아의 아포리아는 원자는 분명 공간적 외연/연장을 가지는데 왜 분할될 수 없는가 하는 점이다. 공간적 연장을 가진 것은 그것이 아무리 작아도 자를 수 있다. 기술적 한계 때문에 계속 자를 수는 없어도 논리적으로는 자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 또한 큰 논쟁거리이다. 양자역학의 경우, 원자 이하로는 내려가지만 종국에는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크기('플랑크 상수', 양자)를 상정한다. 이것은 하나의 물리학적 가정이지만 논리적으로는 여전히 문제가 된다고 해야 한다. 이 또한 원자론이 함축하는 중요한 아포리아이다.
p.184.
“…시각 중심의 사유가 객관적/표면적이고 사회적이라면 청각 중심의 사유는 주관적/내면적이고 개인적이다. 헬라스 철학에서의 기하학적 사유가 전자의 두드러진 예라면, 히브리 사상에서의 '계시'는 후자의 두드러진 예이다.”
p. 185
"요컨대 인식 대상과 인식 주체의 동일성 확보는 인식에 있어 필수적이며, 대상과 주체가 물리적으로 변해가는 차원에서는 인식이란 성립하지 않는다. 대상의 어떤 '본질'(어떤 형태의 본질이든)과 인식 주체의 동일성 -영혼이든, 선험적 주체든, 다른 무엇이든 어쨌든 물질성을 초월하는 차원의 존재- 이 전제되지 않으면, 인식이라는 행위는 설명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2023. 9. 18. 업데이트.)
p.189-190.
파르메니데스의 사유는 여러모로 그리스 철학사의 거대한 분절을 만들어냈다. 절대적 일자, 타자성을 완벽히 배제하는 일자의 출현은 말하자면 그리스세계에서의 거대한 철학적 스캔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파르메니데스는 이 형식상의 일원성(탈레스, 밀레토스 학파의)을 절대적인 경지로 밀어붙였고, 이제 여기에서는 급기야 주재라는 개념도 주재되는 세계라는 개념도 증발해버리기에 이른다. 이 지경에서는 그 어떤 자연철학도 멈추어버린다.
p.190-191.
질적으로 엠페도클레스는 4개의 원소들을, 아낙사고라스는 무한한 종자들을, 데모크리토스는 단 하나의 원자들을 제시했고, 양적으로는 세 사람 모두 무한한 원소/종자/원자를 제시했다. ...
그러나 만일 이 존재들이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처럼 영원부동하다면, 세계는 다원화되기는 했지만 아직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세계로 머물 것이다. 그래서 '일자'는 다원화되기만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거기에 운동이 부여되어야 했다. 이 때문에 엠페도클레스는 네 원소들의 상이한 양적 결합을, 아낙사고라스 역시 무한한 종자들의 차별적인 양적 결합을, 그리고 데모크리토스 역시 원자들의 양적인 결합과 분리를 사유했다.
그러나 이 원리들을 통해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을 때, 이들은 어떤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각 시체들(원소, 종자, 원자)이 파르메니데스적 일자라면, 이들 사이의 어떤 관계도 실체들에서의 변화를 유발하지 못한다. 실체들은 절대 타자화하지 않는다. ... 그렇기 때문에 이 실체들에게 운동이란 결국 외부적인 방식으로만 부여될 수 있다. ... 이런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두 가지 길을 갈 수 있다.
p.192. 실재와 현상의 관계를 연결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식.
① 실체들은 보다 가변적인 것들이 되어야 한다. 자체에 있어 분열된다든가, 특히 실체들이 융합된다든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실재와 현실 사이가 가까워지고, 현실의 변화가 실재의 변화를 보다 밀접하게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② 실체들의 불연속성을 보존하면서, 별도로 연속성의 원리를 상정할 수 있다. 즉, 현상을 지탱하는 연속적인 차원을 설정하고 거기에 불연속적인 실체들이 각인되어 현상이 성립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걸어간 길은 바로 후자이다.
그리고 이들은 바로 이 연속성 - 생성하는 연속성, 연속적 생성의 차원을 아페이론('코라', '질료')으로 설정한다. 세계는 아페이론이라는 물질적이고 연속적이며 생성하는 차원과 이데아=형상이라는 비물질적이고 불연속적이며 항구적인 차원의 결합으로서 이해되기에 이른다. 이 국면이 서구 존재론을 오랫동안 지배하게 될 질료형상설(hylemorphism)이 탄생하는 국면이다.
p.193.
하지만 생성이란 무엇일까? '생성'은 의외로 정의하기 까다로운 개념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차이생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차이들 - 어떤 형태의 차이들이든 - 의 명멸이 생성이다.(각주25)
<각주 25> 하지만 명멸이라는 개념도 동일자(들)를 전제하는 것이 아닐까? 극히 미세한 것이라 해도 어떤 동일자(들)가 있고 그것들이 명-멸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할 때, 그 어떤 동일자도 전제하지 않는 명멸을 개념화해야 할 필요에 부딪친다. 이 과정에서 무한소(dx)개념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며, 이 점에서 무한소미분의 수학과 존재론을 정립한 라이프니츠야말로 (그의 사유는 생성존재론이라고 하기 힘들지만) 핵심적인 토대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dx는 ... 아울러 19세기에 등장한 '파동' 개념은 생성존재론의 또 하나의 결정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
(4장 끝.)
『세계철학사 1』 목차
여는 말
1부 이성(理性)의 빛
1장 철학의 탄생
§1 ‘헬라스’세계
§2 정의를 찾아서
§3 철학의 탄생
2장 퓌지스의 탐구
§1 ‘탄생’의 문제
§2 ‘아르케’를 찾아서
§3 합리와 신비 사이
3장 존재와 생성
§1 생성의 로고스
§2 영원부동의 일자(一者)
4장 현상과 실재
§1 질과 양의 조합
§2 질들의 상대적 비율
§3 양으로의 환원
5장 “너 자신을 알라”
§1 소피스트들의 사유
§2 “네 영혼을 돌보라”
6장 이상과 현실
§1 ‘이데아’론
§2 이상국가를 향하여
7장 현실과 이상
§1 논리학: 사유의 문법
§2 자연철학: 퓌지스의 탐구
§3 형이상학 1: 탁월한 존재들로서의 우주, 신, 영혼
§4 형이상학 2: 일반 존재론
§5 실천철학: 인간적인 행복의 추구
2부 신과 인간 그리고 세계
8장 ‘삶의 기예’로서의 철학
§1 회의주의의 발흥
§2 진정한 쾌락을 찾아서: 에피쿠로스학파
§3 스토아철학 1: 헬레니즘 시대
§4 스토아철학 2: 로마 제국 시대
9장 구원의 갈구
§1 그리스.로마의 종교와 신플라톤주의
§2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3 이슬람세계의 도래
10장 이슬람세계의 철학
§1 이슬람 학문의 형성
§2 이븐 루쉬드의 철학
§3 유대 철학, 페르시아 철학
11장 스콜라철학의 흥륭
§1 스콜라철학의 도래: 존재론과 정치철학
§2 아리스토텔레스 혁명과 스콜라철학의 흥륭
§3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
§4 중세의 황혼
12장 ‘인간적인 것’의 발견
§1 국민국가의 탄생
§2 자본주의의 탄생
§3 인본주의의 발흥
§4 자아 탐구의 새로운 방향들
§5 자연의 새로운 상(像)
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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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철학사 1』 책꼽문 "4장 현상과 실재" 책꼽문 추가했습니다. p.189~195. (4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