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공룡(dinosaur)의 출현
공룡(dinosaur)의 출현이라고 제목을 달아 놓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dinosaur라는 말과 개념이 언제 등장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메모해 두고자 합니다.
1842년 영국의 박물학자 리처드 오언(Richard Owen 1804-1892)은 화석으로만 남은 멸종동물 군의 이름을 dinosaur 또는 Dinosauria(디노사우리아)로 제안했습니다. 1841년 7월 플리머스에서 열린 영국과학진흥협회(BAAS) 모임에서 당시 주목을 받던 영국의 특이한 화석들에 대해 발표했는데, 이듬해에 출판된 논문집에서 이 용어가 처음 나왔습니다. 여러 증거로 보어 1941년 모임의 발표에서는 이 용어가 등장하지 않았고, 이듬해에야 처음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Dinosauria는 "무서울 만큼 거대한"이란 의미의 그리스어 '데이노스(δεινός)'와 '도마뱀 또는 파충류"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사우로스(σαῦρος)'를 합한 말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당시에 알려져 있던 세 개의 속이 포함됩니다. 그것은 곧 메갈로사우루스(Megalosaurus), 힐리오사우루스(Hylaeosaurus), 이구아노돈(Iguanodon)입니다.
[출처: R. Owen (1841). "Report on British fossil reptiles. Part II.". Report of the Eleventh Meeting of the British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Held at Plymouth in July 1841: 60–204. p. 103.]
영어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유럽어에서는 이 라틴어 Dinosauria와 거의 같은 단어가 사용됩니다. 한국어의 공룡(恐龍)은 일본어에서 dinosaur가 恐竜(きょうりゅう, 쿄오류우) 즉 "무서운 용"으로 번역된 것을 그대로 음차한 용어입니다. 중국어로도 恐龙 또는 恐龍이라고 씁니다.
중국학계에서는 모든 것이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안 좋은 분위기가 있긴 한데, 4세기 무렵에 간행된 華陽國志(Huayang Guo Zhi)에 사람들이 龍骨(즉 용의 뼈)이라는 것을 약재로 썼다는 기록이 있고, 이것이 곧 공룡화석이었으리라고 주장합니다.
오언의 발표보다 훨씬 앞서 이미 1676년 아이작 뉴턴 당시에도 거대한 뼈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를 고대신화에 나오는 티탄 족 거인의 뼈 정도로 해석했습니다. 나중에 이 화석은 메갈로사우루스(Megalosaurus)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덜 알려진 것은 메리 아닝(Mary Anning 1799-1847)의 발견입니다. 아닝이 살던 영국 남서부 도싯(Dorset)의 라임 레지스(Lyme Regis)에는 쥐라기 화석이 많이 발견되었고, 아닝의 가족은 이런 화석을 수집하여 수집상에게 파는 일을 했습니다. 1811년 12살의 메리 아닝은 어룡(Ichthyosaurus)의 화석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1824년에는 수장룡(首長龍) 또는 장경룡(長頸龍)으로 번역되는 플레시오사우루스(Plesiosaurus)의 온전한 화석을 처음 발견해 학계에 보고했습니다.
[메리 아닝이 그린 플레시오사우루스의 화석 스케치와 편지. 1863년 12월 26일. 출처: wikimedia]
1822년 메리 앤 만텔(Mary Ann Mantell 1795-1869)은 나중에 이구아노돈(Iguanodon)이라는 이름이 붙은 화석을 발견했습니다. 의사이자 화석수집가였던 남편 기드온 만텔(Gideon Mantell 1790-1852)을 따라 서식스 지역을 방문했는데, 거기에서 거대한 이빨 화석을 발견했습니다.
Mantell, Gideon (1825), Notice on the Iguanodon, a newly discovered fossil, from the sandstone of Tilgate, in Sussex. By Gideon Mantell, F. L. S. and M. G. S. Fellow of the College of Surgeons, In a Letter to Davies Gilbert, Esq. M. P. V. P. R. S. &c. &c. &c. Communicated by D. Gilbert, Esq., Royal Society of London, doi: https://doi.org/10.1098/rstl.1825.0010

[출처: Mantell (1825)]
만텔의 논문이 발표되기 한 해 전인 1824년 윌리엄 버클런드(William Buckland 1784-1856)는 10여년 동안의 화석수집을 정리하여 공룡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Buckland, William (1824). "Notice on the Megalosaurus or great Fossil Lizard of Stonesfield". Transactions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London. London: Geological Society of London. 1 (2): 390–396. doi: https://doi.org/10.1144/transgslb.1.2.390
버클런드는 프랑스의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 1769-1832)처럼 격변설을 믿었습니다. 기독교 성서 창세기에 나와 있는 노아의 홍수 신화에 바탕을 두어 여러 차례 대홍수 또는 대격변이 있었고, 이런 화석들은 바로 그 대홍수 또는 대격변의 흔적이라는 것입니다.
리처드 오언이 1842년 '공룡(dinosaur)'이라는 말을 만들어 제안하기까지는 이렇게 고생물학 상의 여러 발견들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표준용어로서 '공룡류(Dinosauria)'에는 수장룡류(Plesiosauria)나 어룡류(Ichthyosauria)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또 날개가 있어서 날아다닌 것으로 여겨지는 익룡류(Pterosauria)도 공룡류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영국을 비롯하여 공룡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중요한 첫 계기는 1854년에 개관한 수정궁 공룡(Crystal Palace Dinosaurs) 전시였습니다. 1851년에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수정궁 박람회가 엄청나게 흥행하면서 막대한 돈이 모였고, 여기에 맛을 들인 영국 정부는 그 자리에 공룡들의 화석을 모아 성대한 전시장을 만들고 심지어 공룡 공원(Dinosaurs Park)도만듭니다. 황당하게도 여기 전시된 것 중 진짜 공룡은 일부에 불과하고 신생대의 화석도 있고 과학적으로는 매우 부정확했습니다. 요즘도 부정확한 과학전시의 대명사로 통할 정도입니다. 1993년 개봉한 영화 <쥬라기 공원>의 장면들도 이 1854년 수정궁 공룡 전시회와 공룡 공원을 패러디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공룡의 화석이 진화 특히 자연선택의 중요한 증거인 것처럼 이야기되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공룡의 화석들만으로 자연선택설이나 진화이론의 근거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찰스 다윈은 1859년에 출간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서 공룡 화석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1861년 소위 시조새(Archeopteryx)의 화석이 발견된 뒤에도 이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866년에 출간된 4판에서야 비로소 처음 시조새의 화석이 자신의 이론에 대한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언급을 합니다.
"Had it not been for the rare accident of the preservation of footsteps in the new red sandstone of the United States, who would have ventured to suppose that, besides reptiles, no less than at least thirty kinds of birds, some of gigantic size, existed during that period? Not a fragment of bone has been discovered in these beds. Notwithstanding that the number of joints shown in the fossil impressions corresponds with the number in the several toes of living birds' feet, some authors doubt whether the animals which left these impressions were really birds. Until quite recently these authors might have maintained, and some have maintained, that the whole class of birds came suddenly into existence during the eocene period; but now we know, on the authority of Professor Owen, that a bird certainly lived during the deposition of the upper greensand; and still more recently, that strange bird, the Archeopteryx, with a long lizard-like tail, bearing a pair of feathers on each joint, and with its wings furnished with two free claws, has been discovered in the oolitic slates of Solenhofen. Hardly any recent discovery shows more forcibly than this how little we as yet know of the former inhabitants of the world."
다윈이 공룡에 대해 전혀 또는 거의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당대에 영향력이 대단히 컸던 리처드 오언 때문일 것이라 보기도 합니다. 1860년 새뮤얼 윌버포스를 두고두고 어리석음의 대명사로 만들어 버린 옥스퍼드 자연사박물관 논쟁에 발표를 맡은 사람은 원래 네 명이었습니다. 새뮤얼 윌버포스에 통쾌한 논박을 했다는 토머스 헉슬리보다 더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리처드 오언이었습니다. 찰스 다윈도 초청되었지만 건강을 핑계로 모임에 불참했습니다. 오언은 매리 아닝의 발견에 대해서도 조작이라고 공격을 하고 고생물학 또는 박물학과 관련하여 매우 신랄하고 잔인하고 성급한 사람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알버트 공의 총애를 받아 런던에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을 설립한 것도 오언이었습니다. 제 개인적 경험을 언급하자면, 처음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 갔을 때 한 가운데 있는 동상이 찰스 다윈이 아니라 리처드 오언이어서 놀랐습니다. 그 박물관의 창립자를 기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의외였습니다.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발간 150주년이 되던 2009년에 리처드 오언의 동상은 찰스 다윈의 동상으로 대치되었습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공룡 화석은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지만, 다윈은 <종의 기원> 9장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함"에서 당시까지 수집된 고생물학적 자료가 얼마나 빈약하고 심하게 불완전한지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집한 고생물학적 자료의 빈약함에 대하여: 우리가 수집한 고생물학적 자료가 불완전하다는 점은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인다. 존경받는 고생물학자 고 에드워드 포브스의 언급을 잊으면 안 된다. 그는 다수의 화석 종들이 유일한 표본, 때로는 파손되었거나 어느 한 지역에서 수집된 몇 개 되지 않는 표본들을 바탕으로 알려져 이름이 붙었음을 지적했다. 지구 표면에서 지질학적으로 조사가 이루어진 부분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또 충분한 주의가 기울여진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는 유럽에서 해마다 추가되는 중요한 발견에서 증명된다. 몸이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생물은 그 어떤 것도 보존될 수 없다. 조개껍질과 뼈는 퇴적물이 축적되지 않는 바다 밑에 있다면 분해되어 사라질 것이다. ... 이런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성은 더 중요한 다른 원인, 즉 몇몇 누층들이 서로 상당한 시간 간격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 전반적으로 지질학적 기록은 극히 불완전하다는 점을 의심할 수 없다."
다윈은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한 사람이었고, 당시 공룡의 화석이 극히 적었음을 감안하면 <종의 기원>에서 굳이 공룡에 대한 언급을 피한 것은 상당히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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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글을 올린 것은 지난 번 모임에 제 컴퓨터가 계속 말썽을 피우는 바람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루종일 '죽음의 블루 스크린' 때문에 컴퓨터가 켜졌다 꺼졌다는 반복했는데, 결국 모임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 아쉽고 죄송합니다. 제 컴퓨터가 꺼지기 직전에 9장이든 어디든 왜 공룡 이야기가 안 나오는가 하는 이야기가 잠시 나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이 내용을 올려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암모나이트](https://en.wikipedia.org/wiki/Ammonite_(film)" target="_blank" rel="noopener">Ammonite)라는 영화는 제목만 들어봤었는데, 이번 기회에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히 https://serieson.naver.com/v2/movie/431847" target="_blank" rel="noopener">네이버 시리즈온에 올라와 있길래 얼른 구매해 놓았습니다. 상영시간이 2시간이나 되어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꼭 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Among these eminent gentlemen was one leading lady: Mary Anning (1799—1847), though her lowly birth and humble station would not have earned her the appellation of lady in that rigidly stratified society. But in spite of, or perhaps because of, her lowly status, this remarkable woman became one of the most successful fossil collectors of all time. After discovering the world's first ichthyosaur when she was only twelve, she went on to discover the first plesiosaur and the first British pterosaur.As the supplier of many of the fossils the learned gentlemen studied and communicated to their geological circle, she played a central role in the story. However, she was often forced to share center stage with one of the gentlemen of science." (McGowan, Christopher (2001). The Dragon Seekers: How an Extraordinary Circle of Fossilists Discovered the Dinosaurs and Paved the Way for Darwin. Persus Publishing. pp. 9-10)
우연히 90년대 영화 쥬라기 공원 을 보게 되었는데
요즘 화려한 CG를 많이 보다보니
유리창 뒤로 빨간 물감을 바케스로 붓는 장면이 귀엽게 보였어요.
사람이 공룡에 잡아 먹히는 장면을 표현하느라고 꽤나 애쓴거 같더라구요.
감사합니다. 『종의 기원』 9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농담을 하자면 대중에게 공룡이 출현한 것은 영화 『쥬라기 공원』 이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
맞는 말씀입니다. <주라기 공원>이 가져온 센세이션은 정말 놀랍다 하겠습니다. 저는 1990년에 나온 마이클 크라이턴의 소설로 <주라기 공원>을 접했습니다. 그냥그런 소설인 줄 알고 첫 장을 펼치니까 당시 첨단 생명공학/생명과학, 인간유전체계획, 유전공학 등등 매우 심각한 쟁점들을 아주 신랄하게 공격하고 해부하고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심지어 <주라기 공원과 철학>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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