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눈의 진화와 "별다른 중요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기관들"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6장 "이론의 난점"에서 언급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되는 것을 적어봅니다.
지난 주에 눈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1802년 윌리엄 페일리의 저서 <자연신학>에서 눈은 최고의 정밀하고 오묘한 기구이며 이것이야말로 생명이 또는 생명체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신이 창조한 것임을 증명한다고 썼습니다. 다윈은 의대를 중퇴하고 다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이 자연신학을 접하고 매료되었습니다. 그러나 1859년에 출간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서는 적극적으로 눈이야말로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상세하게 논증하고 주장했습니다.
1994년에 나온 닐슨과 펠거의 논문은 가장 엄격하게 추정해도 수십만 세대가 지나면 척추동물에서 눈이 진화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척추동물의 눈이 진화할 때 박테리아의 DNA를 가져왔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논문은 지난 4월 10일에 간행되었습니다.
C.A. Kalluraya et al. (2023). Bacterial origin of a key innovation in the evolution of the vertebrate eye. PNAS 120 (16) e2214815120 https://doi.org/10.1073/pnas.2214815120
(그림출처: wikimedia)
오늘 읽은 부분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는데, 논의할 때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6장 "이론의 난점"에서 "Organs of little apparent Importance, as affected by Natural Selection (별다른 중요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기관들[장대익판];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중요한 기관들[신현철판])"이라는 제목으로 된 부분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The sutures in the skulls of young mammals have been advanced as a beautiful adaptation for aiding parturition, and no doubt they facilitate, or may be indispensable for this act; but as sutures occur in the skulls of young birds and reptiles, which have only to escape from a broken egg, we may infer that this structure has arisen from the laws of growth, and has been taken advantage of in the parturition of the higher animals." (Darwin 1859, p. 158/197)
"포유류 새끼의 머리뼈 구조는 분만을 돕기 위한 아름다운 적응이라는 이론이 제기되었다. 그것이 분만을 쉽게 해 주거나 분만에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머리뼈의 봉합선은 깨진 알을 뚫고 나오기만 하면 되는 조류나 파충류 새끼의 머리뼈에도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구조가 성장의 법칙을 통해 생겨나 고등 동물의 분만에 이용되기에 이르렀다고 추론할 수 있다. [장대익판]"
"어린 포유동물의 두개골에 있는 봉합선은 분만을 도와주고 의심할 여지 없이 촉진시키는, 또는 분만에 없어서는 안 되는 훌륭한 적응으로 개선된 것이다. 그러나 알을 깨고 나와야만 하는 조류와 파충류의 새끼 두개골에도 봉합선이 나타나는데, 이 구조는 성장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졌고, 특히 고등동물의 분만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우리는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신현철판]"
“어린 포유류의 두개골에 있는 봉합선이 분만을 돕는 것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분만을 위해서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봉합선은 어린 새나 파충류의 두개골에서도 나타나며, 조류나 파충류는 단지 알을 깨고 나오기만 한다. 그렇다면 봉합선은 생장의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고등동물들은 분만 시에 이 봉합선을 이용해 왔을 뿐이다.” [조지선 외 2016]
자연선택이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임을 주장하는 것이 다윈의 진화이론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이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 비슷한 것으로는 조류나 파충류의 두개골 봉합선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생물학적 스팬드럴이라는 용어와 굴절적응(exaptation)이란 개념이 중요할 것입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이 1979년 발표한 논문에서 난데없이 건축물의 '스팬드럴(공복 拱腹)'을 들고 나왔습니다.
Stephen Jay Gould; Richard Lewontin (1979), "The Spandrels of San Marco and the Panglossian Paradigm: A Critique of the Adaptationist Programme", Proc. R. Soc. Lond. B, 205 (1161): 581–598 doi: https://doi.org/10.1098/rspb.1979.0086
https://en.wikipedia.org/wiki/Spandrel_(biology)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산마르코 성당의 아치 모양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세모 모양의 공간을 '스팬드럴'이라고 합니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성당의 스팬드럴. 출처: http://friendsofdarwin.com )
스팬드럴이 아치 모양을 만들려다 보니 불필요하게 부산물로 생긴 것처럼, 진화에서도 애초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및 적응(adaptation)의 필요와 '목적'과 부합하지 않은 엉뚱한 방향의 진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후 산마르코성당의 그 세모 모양 공간은 불필요한 부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움을 위해 일부러 만든 것이기 때문에, '스팬드럴'이라는 용어가 부적절하고 차라리 '펜덴티브(pendentive 궁륭 穹窿)'라 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세세한 것을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여하간 생물학적 스팬드럴 개념의 필요성 자체에 대한 비판도 심각했습니다.
1982년 굴드와 일리저베쓰 브르바는 굴절적응(exaptation)이라는 더 확장된 용어를 제안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Exaptation
Gould, Stephen Jay; Vrba, Elisabeth S. (1982). "Exaptation — a missing term in the science of form". Paleobiology. 8 (1): 4–15. doi: https://doi.org/10.1017/S0094837300004310
굴드와 브르바는 조류나 파충류 새끼의 두개골에서 보이는 봉합선은 포유류의 경우와는 구별되는 것이어서 이를 '적응(adaptation)'이라고 부르는 것이 문제를 일으킴을 지적하면서, 그 대신 '굴절적응(exaptation)'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쓰자고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적응(adaptation)과 굴절적응(exaptation)의 차이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지만, 여하간 굴드는 1997년에 오래 전 제안한 생물학적 스팬드럴이 굴절적응와 연관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Stephen Jay Gould (1997), "The exaptive excellence of spandrels as a term and prototyp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USA, 94 (20): 10750–10755, doi: https://www.doi.org/10.1073/pnas.94.20.10750 .
관련된 아래 영상이 도움이 되겠습니다.
Explaining Evolutionary Adaptations and Side Effects: The Spandrels of San Marco (" target="_blank" rel="noop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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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크로닌의 책 <개미와 공작: 이타성과 성선택>은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정확히 개미와 공작 이야기에 집중한 놀라운 저서입니다. 2016년에 한국어 번역판이 나왔는데, 800쪽에 가까운 뚱뚱한 책이 되었습니다. http://aladin.kr/p/mJfys" target="_blank" rel="noopener">개미와 공작
굴절적응의 예가 새의 깃털이군요. 처음에 보온의 용도로 생겨난 것이 나중에 날 수 있는 기관으로 변해 갔다는 의미인가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