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새벽-월-시즌2. 발췌] 뉴맵 : 4장.중동의 지도. pp.282-456.
모임 정리
책새벽
작성자
neomay33
작성일
2023-03-31 19:16
조회
2284
[책새벽-월. 발췌] 뉴맵 4장 : 중동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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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맵 : 에너지, 기후, 지정학이 바꾸는 새로운 패권 지도』. 대니얼 예긴 지음. 우진하 옮김. 2021. 리더스북. 발췌 부분 : 4장. 중동의 지도. 26~34절. pp.28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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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에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 6-7시에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월'을 합니다. 현재 대니얼 예긴의 『뉴맵』을 읽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읽은 내용 중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챕터별로 발췌해서 옮기고 있습니다. 질문이나 토론거리, 함께 보면 좋을 자료들이 있으시면 부담없이 공유해주세요. 현재 4장을 읽어나가고 있으며, 진도에 맞춰서 이 글에 발췌글을 덧붙이겠습니다. 읽으시는 데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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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맵』 목차
들어가는 글
한국의 독자들에게
1장. 미국의 새로운 지도
2장. 러시아의 지도
3장. 중국의 지도
4장. 중동의 지도
26 모래밭 위에 그려진 선
27 중동의 지정학 질서를 뒤흔든 이란 혁명
28 ‘석유의 왕’을 꿈꿨던 사담 후세인
29 핵무기와 맞바꾼 석유 수출
30 이라크의 사투
31 겨울이 되어버린 ‘아랍의 봄’
32 동지중해는 살아 있다
33 무슬림 형제단, 알 카에다, ISIS
34 요동치는 석유 시장
35 사우디아라비아의 새로운 행보
36 코로나19, 세계 석유 경제를 뒤흔들다
5장. 또 다른 지도들
6장. 기후 지도
결론: 불안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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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사우디아리비아의 '비전 2030' 목표와 계획. '35절. 사우디아라비아의 새로운 행보' 관련 그림입니다. 대문 그림용으로 앞에 배치했습니다. (출처 : Vision 2030. Saudi Ara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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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중동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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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모래밭 위에 그려진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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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3. 2014년 여름, 이라크와 시리아의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국가'(Ismamic State of Iraq and Syria; ISIS)는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 사이에 있는 초소를 폭파시키는 장면을 인터넷으로 내보내면서,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이제 사라졌으며 앞으로 다시는 이런 국경선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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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크스-피코 협정 (Sykes-Picot Agreement) : 소아시아 협정(Asia Minor Agreement)로도 알려져 있다. 러시아 제국의 동의와 함께 영국, 프랑스 간에 맺어진 비밀합의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협상국이 오스만 제국을 격파한 이후 중동의 세력권을 나누기 위해 체결한 협정. 협상 기간 : 1915년 11월~1916년 3월. 조약 체결 : 1916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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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따른 국경선이 표시된 지도. 1916년 사이크스와 피코가 서명한 지도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 해체 이후 중동지역을 상정해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이 지도를 제작했다. 파란색지역 : 프랑스 관리 지역, A : 프랑스 영향 하의 아랍 국가. 붉은색 지역 : 영국 관리 지역. B : 영국 영향 하의 아랍 국가. 책 p.287. (그림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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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8-289. 사이크스와 피코의 작업에 도움이 된 것은 오스만 제국의 지도였다. 오스만 제국의 행정구역인 빌라예트(wilayet)를 상세히 표시한 지도는 1864년에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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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이라크 지방이 포함된 바그다드와 모술, 바스라를 중심으로 하는 동쪽에는 세 곳의 빌라예트가 있었으며, 지금의 시리아를 구성하는 알레포, 다마스쿠스, 데이르 알-자와 빌라예트와 베이루트도 있었다. 레바논 산맥은 일종의 자치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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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과주변 지역도 독립된 구역이었지만 이곳의 모든 상황들은 수도 이스탄불에 직접 보고되었다. 메카와 메디나를 포함하는 아라비아 반도 서쪽의 헤자즈와 예멘도 빌라예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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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크스와 피코는 다양한 언어와 민족으로 구성된 오스만 제국의 지도 위에 자신들만의 선을 그어 구역을 만들었다. 언어나 민족에 대한 고려는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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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0. 벨푸어 선언 (Balfour Declaration. 1917.)
1917년 11월, 당시 영국 외무부 장관이었던 아서 벨푸어가 유럽의 대은행가 라이어널 드 로스차일드에게 보낸 서한에 포함된 내용 :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의 국가를 세우는 일을 적극 지지할 것이며 이 목표의 달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최선의 노력이 함께하길 바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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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1-292. (중동의 지도를) 복잡하게 만든 또 다른 요인 : 1908년, 7년의 절망과 고난 끝에 중동 지역 최초의 석유가 오늘날 이란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은 석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증명. 석유와 내연기관은 전쟁의 양상과 이동 수단의 개념을 빠르게 바꾸어나갔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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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막바지 무렵 「대영 제국의 석유 제품 현황」이라는 비밀 보고서의 내용 : 영국이 필요로 하는 석유 제품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고, 압도적인 해군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석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계속 미국에 의지할 수는 없다. 가능한 한 많은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지배권과 주요 유전들을 확보해 '다음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독자적인 석유 공급처를 마련해야 하며 이것이 '제1순위의 전쟁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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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3-294. 1차 세계대전 후 파리 강화 회담으로 베르사유 조약 체결, 국제연합 결성.
'위임 통치안'도 제시 : 제국주의와 식민지 정책, 민족자결주의(by 우드로 윌슨)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조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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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크스와 피코가 시작했던 새로운 시대의 지도 제작은 1920년 세브르 조약*으로 이어졌고, 1923년 로잔 조약**으로 마무리. 일부 조정은 있었지만 사이크스와 피코가 그린 선들을 바탕으로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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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eaty of Sèvres. 제1차 세계대전 후 1920년 파리 근교 세브르에서 연합국과 오스만 제국이 체결한 조약. 오스만 제국은 이 조약으로 인해 광범위한 영토 상실.(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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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eaty of Rausanne. 1923년 터키 공화국 수립 후, 스위스 로잔에서 터키와 연합국이 세브르 조약에 대한 제약을 없애기 위해 다시 체결한 조약. 터키는 이로서 1894년 당시 소유했던 영토 스미르나, 콘스탄티노플, 동트라키아 등을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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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5. 영국은 과거 오스만 제국 동쪽 행정 지역(빌라예트) 세 곳을 하나의 국가로 묶어 자신들의 통치하에 두기로 결정. 이곳은 영국이 원래 '메소포타미아'로 불렀던 지역으로 지금의 이라크이다. 이라크 북쪽 지역과 모술에는 쿠르드족이, 서쪽과 이라크 중심부 및 바그다드에는 수니파가, 남쪽 지역과 바스라에는 시아파가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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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5-296. 영국은 이라크로 통일된 이 나라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이살 왕자를 왕으로 내세웠고, 그는 국민투표를 통해 국왕이 되었다.(96퍼센트 찬성. 1921년 8월 23일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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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6년 후 1927년, 이라크 북부에서 석유가 발견된다. 1932년 이라크 지역에 대한 영국의 위임 통치가 끝나고 이라크 독립. 이듬해 파이살 왕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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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7. 1948년 5월 국제연합의 결의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어났던 민족 학살을 근거로 들어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부를 차지하고 독립 국가를 선포.
주변 다섯 개 아랍 국가들은 그 즉시 선전포고를 했지만 결과는 이스라엘의 승리. 중동 지역에 유대인의 국가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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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7. 가말 압델 나세르 : 이집트 민족주의자. 1952년 군사반란으로 이집트 마지막 국왕 파루크 1세를 몰아내고 지도자가 된다. 1956년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의 반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냄으로써 중동 지역의 새로운 '영웅'으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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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세르는 '범아랍권'에 힘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원천" 중 하나를 석유로 보고, 석유를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주변 왕국을 무너트리고 힘을 얻으려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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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8-299. 1958년 이집트와 시리아는 사실상 단일 국가인 아랍 연합 공화국(United Arab Republic)으로 합병. 그러나 1961년 또 다른 장교들이 시리아 정권을 탈취하고 이집트로부터 분리해 국가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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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나세르는 예멘으로 무장 세력을 보내 내전에 개입. 전쟁은 길어졌고 예맨 내전은 결국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리전이 되어갔고 여기에 이란까지 사우디 편을 들며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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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중동 전쟁. 1967년 나세르는 "이스라엘의 완전한 멸절"을 선언. 그러나 이집트는 패배하고 시나이 반도까지 이스라엘에 빼앗김. 1970년 나세르, 52세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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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9절 추가. 2023.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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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중동의 지정학 질서를 뒤흔든 이란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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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0-301.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갈등의 뿌리.
OPEC 회원국 중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다른 주요 산유국인 이란 사이의 갈등의 원인과 목적은 중동 지역에서의 주도권, 종교와 이념의 충돌, 국가 이익과 이슬람 세계의 맹주 자리, 그리고 석유 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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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갈등의 종교적 뿌리는 7세기 무렵 예언자 무함마드의 죽음 이후 무함마드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시작된 갈등. 그의 장인인 아부 바크르(Abu Bakr)가 되어야 한다는 쪽이 수니파,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Ali)가 되어야 한다는 쪽이 시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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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를 후계자가 되어 제1대 칼리프로 등극한 사람은 아부 바크르. '알리파'인 시아파는 계속 그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 지금까지 서로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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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는 신정 국가를 표방하는 이란, 이라크, 바레인에서 다수파.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시리아, 레바논, 아제르바이잔, 파키스탄, 인도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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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시리아 관련 소식 : "본격 '독자 외교' 나선 사우디 ... '감산' 이어 이란, 시리아 관계도 강화하나". 김미향. 2023. 4. 4.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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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까지만 해도 시아파 이란(무함마드 팔레비 국왕)은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서로 협력 관계. 이들의 공동의 적은 중동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소비에트 연합, 바트당(Ba'athists. 단일 아랍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 목표. 아랍어로 '바트'는 부흥, 재건을 의미), 아랍 사회주의, 이집트의 나세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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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70년대 들어 영국이 페르시아만에서 군사활동을 접자, 시아파 이란의 팔레비 국왕(미국이 지원)이 영국을 대신해 페르시아만의 경찰을 자처하며 이 지역의 새로운 맹주로 나섰고, 사우디아라비아는 팔레비를 '과대망상장 환자'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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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6일 ~ 10월 25일. 욤키푸르 전쟁 발발.
: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공. 국제 유가 4배 상승. 그 수익으로 이란 팔레비 국왕은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고 무기도 구입. 그러나 이란은 곧 '자원의 저주'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사회 전반에 걸쳐 혼란. 물가 폭등, 부패 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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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2-304. 이란 혁명
1979년 1월, 이란 왕정이 무너지고 팔레비 국왕은 이란 탈출. 2주 후 망명생활 중이던 77세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귀국해 권력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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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발생. 1979년 11월 4일 ~ 1981년 1월 20일(444일) 동안 52명 인질, 학대. 당시 팔레비 신병 인도를 요구하던 과격파 학생 시위대가 시위 도중 미대사관에 난입, 점거하면서 시작. 1980년 9월 22일 이란-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고, 이란과 미국의 협상과 알제리 중재로 종결. 미국은 당시 미국 소재 팔레비 왕정의 자산을 이란에 반환, 이란은 인질 전원을 석방하면서 인질 사태 종식.(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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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혁명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질서를 흔들었으며 ... 호메이니의 새로운 헌법은 이란 혁명이 이란뿐 아닌 '전 세계 단일 공동체' 구성을 목표로 ... 자신의 진짜 목표는 "모든 폭압적인 범죄 정권"을 깨부수는 것 ... "다른 국가들에게도 혁명 정신을 전파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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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석유의 왕’을 꿈꿨던 사담 후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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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6-307.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1979. 12 ~ 1989. 2.)
1979년 크리스마스 전날 밤, 소비에트 연방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 팔레비 국왕 망명 후 ... 이란은 더 이상 소비에트 연방의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이 침공은 소비에트가 페르시아만으로 전진해 중동 지역 석유를 장악하려는 계획의 첫 단계가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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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은 페르시아만과 석유에 직접 관여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입장에서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처음 예상보다 훨씬 더 비용이 많이 들었고 결국 훗날 연방 붕괴 과정의 단초가 된다. 이 침공으로 이슬람 원리주의에 바탕을 둔 새로운 성전 사상이 시작되었으며 그 영향력을 세계로 퍼졌고 급기야 아랍 세계의 중심부까지 이어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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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7-310. 이란-이라크 전쟁 (1980. 9. 22. ~ 1988. 8. 20.)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 자신의 정권을 떠받치는 바트당의 이념을 상기시키며 아랍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의 민족'이라고 ... 사담 후세인을 최고의 위치에 끌어올려준 건 바로 석유. 1973년 전쟁으로 석유 가격이 치솟자 이라크는 큰 이득. 정부 주도의 계획 경제, 대규모 산업화를 위한 자금 조달, 군사력 증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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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으로 등장한 시아파 이슬람 국가는 당시 바트당이 장악하고 있는 이라크에 큰 위협. 사담 후세인과 그 측근들은 소수 수니파로서 이라크를 강압적으로 통치, 그러나 다수 시아파들이 다시 세력을 회복하는 중이었고 저항군들도 은밀히 모이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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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이 차지하려 했던 곳은 후제스탄(Khuzestan) 지역. 역사적으로는 아라비스탄(Arabistan)이라 알려진 지역으로, 이란 영토지만 페르시아어가 아닌 아랍어 사용. 이란 유전 지대의 90퍼센트가 몰려 있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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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9월 22일 이라크는 대규모 공습으로 전쟁 시작. 후세인은 단기간에 전투를 끝내고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볼 계획이었으나 ... (전쟁은 8년을 끌었으며 백만 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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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0-311. 전쟁 중이었던 1986년 유가 하락, 이란과 이라크 모두 큰 타격. 그러나 이라크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가 수백억 달러의 돈을 빌려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후세인과 바트당이 지배하는 이라크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가졌지만, 이란이 더 큰 위협이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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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새로운 테러리스트 조직인 헤즈볼라 알 히자즈(Hezbollah Al Hijaz)에 자금 지원. 이 조직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정 전복이나 동부 지역을 분리 독립시켜 사우디아라비아를 불안정하게 하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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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1-312. 이라크-쿠웨이트 전쟁 (걸프 전쟁. 1990. 8. 2 ~ 1991. 2. 28.)
1990년 여름 8월 2일 후세인이 석유 부국 쿠웨이트를 침공, 이틀만에 점령. 쿠웨이트 점령으로 이라크는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거의 20퍼센트를 손에 넣었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없어도 후세인은 전 세계 석유의 3분의 2가 몰려 있는 페르시아만을 지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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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응해 미국(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국무부 장관은 34개국 연합을 이끌어내 냉전시대 이후 처음으로 다국적군을 결성. 1991년 1월, 다국적군은 이라크를 대규모로 폭격. 100시간 정도 후 이라크 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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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4-315. 2001. 9. 11.
조지 W. 부시 재임 당시. 알 카에다(Al Qaeda)가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미국 국방부 건물 공격.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선포,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대한 반격 시도. 탈레반은 알 카에다의 근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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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의 일부 인사들은 ... 사담 후세인 축출을 주장. 한편 정교 분리를 주장하는 후세인, 바트당과 이슬람 원리주의를 따르는 알 카에다 사이의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주장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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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5-318. 2003년 이라크 전쟁. (2003. 3. 20. ~ 2011. 12. 15)
초점은 WMD(대량 살상 무기) 쪽으로 ... 미국은 9.11 테러 충격으로 ... '선제공격' 정책을 채택. 미국은 2003년 3월 20일, '충격과 공포'라 명명된 맹렬한 공습과 함께 전쟁 시작. 4월 9일 바그다드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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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후 처리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바트당은 학교 교사와 공무원들에게 깊이 뿌리내려 있었고, 이라크 군을 어떠한 보상도 없이 해산시킴으로써 유능한 적을 대량 생산해냈다. 이라크 침공의 빌미가 되었던 대량 살상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 후세인은 WMD에 대해 늘 모호한 태도를 취해왔었는데 ... (그 이유는) 후세인은 자신이 가장 경계했던 존재가 이란이었다고 담당 FBI 조사관에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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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핵무기와 맞바꾼 석유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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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9-322. 1997년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무함마드 하타미 당선. 개혁 성향의 중도파.
1998~2001년까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화해 분위기. 그러나 2003년 사담 후세인이 몰락하자 두 나라 공동의 적이 사라졌고, 이라크 내에서 수니파와 시아파가 내전 상태에 돌입하면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도 서로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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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미국과 다른 나라들은 이란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 중이라 사실을 알게 되고 ... 미국과의 대화와 관계 정상화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하타미는 핵무기 개발 계획을 중단. 아흐마디네자드를 포함한 이란 강경파는 하타미를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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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2-325. 2005년 이란 대선에서 아흐마디네자드 승리. 강경파.
그는 테헤란 시장 역임 했고, 혁명 수비대 출신. 이란을 다시 혁명의 길로 되돌리고 "중동 지역의 맹주"로 만들 것을 다짐한 바 있었다. 이란은 다시 국제연합의 제재를 피해가며 핵무기와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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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2년까지 'P 5+1', 즉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5개국(five permanent members; 중국, 프랑스, 러시아, 영국, 미국)에 독일이 더해진 협의체 측은 두 가지 종류의 제재와 규제 조치. 한 가지는 전 세계 금융 제도에서 이란을 퇴출시키는 것. 또 다른 제재 조치는 이란 경제의 핵심인 석유를 겨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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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란은 하루 총 생산량 400만 배럴 중 250만 배럴을 수출. 정부 예산의 65퍼센트를 석유 수출에 의존. 제재로 다른 서방 국가들은 이란 석유 수입 금지, 이란의 유조선은 보험 가입도 불가능, 다국적 기업이 이란 석유 산업에 투자하는 것도 금지. 그러나 이를 위해 미국은 이란산 석유의 주요 수입국인 중국, 인도를 설득하는 것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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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이란 석유 수출 규모는 하루 250만 배럴에서 가장 적을 때는 110만 배럴까지 감소. 조건부로 은행에 그대로 묶여버린 수출 대금도 1,000억 달러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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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부족, 가격 상승을 피하기 위해 이러한 제재 조치가 실패할 것이라고 이란은 생각했지만, 미국 셰일오일 생산량 증가,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페르시아만 국가들이 수출 물량을 늘리면서 전 세계 석유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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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 아라비아 반도 끝에 위치한 오만에서 미국과 이란 관료들의 비밀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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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5-327. 2013년 6월, 하산 로하니 당선. 개혁파 혹은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란 정권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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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의 비밀 핵협상 결과 2014년 1월 '공동 행동 계획안(Joint Plan of Action)' 발표. 이후 1년 6개월에 걸친 협상을 지속한 후 2015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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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최종 합의. 다음 내용이 2016년 1월부터 발효. 이란 핵무기 개발 중단. 이란의 핵무기 개발 능력은 이 합의에 따라 10년간 봉인. 미국은 이란에 대한 석유 및 금융 관련 제재 해제. 이란은 은행에 묶여 있던 1,000억 달러 이상의 석유 수출 대금을 돌려받았고, 1979년 인질 사태로 서방측에 의해 실시된 500억 달러 규모의 해외 자산 동결도 해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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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7-328.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이란에 대한 제재 다시 시작.
2018년 11월, 이란 석유 구매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제재 조치. 협상에 참여했던 다른 5개국 정보는 미국의 이탈을 강력하게 비난했지만, ... 제재 조치에 동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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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1절 : 2023년 4월 16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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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라크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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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1. 이란(시아파) 혁명 수출의 다음 목표는 이라크(국민 대다수가 시아파. 정부는 수니파).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후세인 정권 몰락 후 권력과 자원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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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2. 이란의 도구는 종교, 교역, 정치세력이나 부족장들에 대한 뇌물과 지원, 협박과 위협, 폭력과 암살 그리고 이슬람 혁명 수비대의 쿠드스 부대(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를 조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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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미군이 철수하자 시아파의 다와(Dawa)당 소속인 이라크 총리 누리 알-말리키가 권력을 쥐고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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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3. 석유는 이라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 정부 수익의 90퍼센트 이상이 석유에서 나왔고, 수출의 99퍼센트가 석유, GDP의 거의 60퍼센트를 석유에 의존. 걸프전쟁 후 2009년이 되어서야 국가로서의 제 기능을 되찾았고, … 기업들의 입찰도 진행. 15개 기업이 현존하는 10개 유전지대 개발을 위한 컨소시엄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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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5-336. 과거에 사담 후세인은 쿠르드족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의 석유 개발을 가로막은 바 있다. 2016년 해외의 약 27개 업체 참여로 개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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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디스탄, 즉 쿠르드족 거주 지역의 수도 이르빌과 바그다드 사이의 분쟁은 계속. 2005년 새 헌법이 모호해 석유 및 그 수익 관리 문제와 송유관 문제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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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터키 국경과 이어지는 새로운 쿠르드족 전용 송유관 시설 완성, 쿠르디스탄은 터키를 통해 세계 시장으로 석유 수출이 가능해졌다. 바그다드의 간섭은 받지 않을 수 있게 됐지만 터키가 간섭할 수 있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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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가 석유 수출로 거둔 수익은 2004년에 180억 달러, 2014년 초가 되면 890달러로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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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6. 2014년 여름, 하이다르 알-압바디 총리 취임. (알-말리키 전 총리는 상징적인 지위인 부통령으로 임명) 알-압바디는 영국 망명 생활을 하며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전기 시설 관련 회사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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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취임 후 알-압바디는 반수니 정책을 고치고, 수니파 인사들을 정부 각료로 영입, 민병대들에 국가 개입 일부 시도, 경제 부흥과 반부패 척결을 위한 정책 실시. 이란의 영향력은 여전했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다른 수니파 국가들과도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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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6-338. 그러나 2014년 11월부터 유가가 폭락하면서 이라크에 극심한 타격. 2013-2016년 사이 이라크 정부의 연간 수익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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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이라크의 경제 수도 바스라에서 대규모 시위 발생. 투자와 일자리 부족, 폭염, 식수와 전력 부족(이란이 남부 이라크로 제공되는 전력 차단) 등이 이유. 상황이 악화되면서 이라크 남부의 다른 도시들로 시위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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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압바디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새로운 정부 구성까지 거의 반 년 이상 소요. 사담 후세인 이후 정권이 교체된 것이 이로써 네 번째. 2019년에도 실업, 부패, 사회복지 제도에 반발하는 시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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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무스타파 알-카디미가 새로운 총리로 취임. 정보부 수장 출신. 언론인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의 여러 범죄들을 파헤쳐 기록으로 남기는 재단을 만든 바 있다.
*2023년 4월 현재 이라크 현 대통령 압둘 라티프 라시드, 현 총리 모하메드 시아 알 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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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겨울이 되어버린 '아랍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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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아랍의 봄'으로 혁명, 봉기, 정권교체, 내전 등을 겪은 나라. 보라색 : 한 번 이상 정권 전복, 교체. 검정색 : 정부 전복, 교체. 빨강색 : 내전 상태. 초록색 : 봉기 후 정권 교체. 진홍색 : 대규모 봉기, 혁명. 살구색 : 소규모 봉기, 혁명. 회색 : 기타.(출처 : wikipedia 31절에 해당하는 그림인데, 커버 이미지를 위해 앞에 한 번 더 배치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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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0-343. 아랍의 봄. 2010-2011년 튀니지 혁명으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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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혁명(재스민 혁명). 2010년 과일 행상을 하던 청년(모하마드 부아지지)의 분신 시도 직후 대규모 시위 시작. 튀니지의 부패한 독재자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축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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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몇 개월 동안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소셜 미디어와 위성 TV에 자극받은 엄청난 군중들이 시위에 참여, 훗날 '아랍의 봄'으로 불리게 되지만 … (봄은 겨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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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혁명. 2011년 1월 25일~2월 11일 반독재 정부 시위.
30년 장기 집권 중이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2월 11일 퇴진(당시 82세), 군부에 권력 이양. 후임은 군 참모총장 출신인 압둘 파타흐 엘-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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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3-344. 리비아 내전. 2011년 2월 15일~.
리비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역시 중요 석유 수출국 중 하나. 이집트 혁명 이후 리비아에서도 42년 독재 중이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반대 시위 시작, 내전으로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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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내전 사태는 즉시 석유 시장에 영향. 리비아의 모든 석유 생산이 중단되고, 석유 가격은 배럴당 130달러까지 치솟았다. 2011년 10월 공습을 피해 도주 중이던 카다피 피살. 이후 내전은 민병대와 범죄조직들의 전쟁이 되어갔고 그 사이 ISIS가 리비아의 지중해 연안 지역에 거점을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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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5-347. 바레인 봉기. 2011년 2월 14일~
'아랍의 봄'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경쟁 관계가 직접적인 대결로 바뀌어버렸는데, 이러한 양상은 사우디아라비아 동쪽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나라 바레인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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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 인구 60~70퍼센트가 시아파. 정치경제적 차별을 받아온 시아파 시위대들이 수니파 기득권과 수니파 왕족 통치에 저항하며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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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의 석유 생산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아부다비와 두바이, 카타르가 부상하기 전까지는 바레인이 페르시아만의 상업, 금융 중심지였다. 걸프 전쟁 이후 1995년 미국 제5함대가 바레인을 기항지로 주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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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란은 바레인이 자신들의 '잃어버린 영토'라며 팔레비 국왕 시절부터 주장. 호메이니가 정권을 잡고 2년 후 1991년과 1996년에 이란은 바레인의 군사정변을 지원했으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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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에게 바레인은 극히 중요. 바레인은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유진 지대인 '가와르'로부터 불과 40마일(약 63킬로미터), 최대 석유 수출 시설인 '라스 타누라'로부터는 50마일(약 80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국영 석유 기업 사우디 아람코 본사와의 거리도 겨우 30마일(약 48킬로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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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7-350. 시리아 내전. 2011년 3월 15일
당시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의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는 1970년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았다. 이들은 시리아 인구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하는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에 속한다. 알-아사드의 적은 이스라엘, 바트당이 정권을 잡은 이라크. 가장 큰 적은 국민 대다수인 수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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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연장을 위해 소비에트 연방, 이란의 호메이니와도 손을 잡았다. …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몰락 후 시아파의 연결망은 이란에서 시작해 이라크와 시리아를 거쳐 레바논의 시아파 헤즈볼라까지 이어지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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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석유 탐사 : 1947년 이라크 석유 공사가 유전 탐사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철수. 1948년 국제연합 소속 시리아 대표단이 수십 년 전 시리아의 미국 이민자 제임스 멘홀을 찾아 의뢰. 1956년 봄이 되어서야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유전 지대를 찾아냈으나 시리아가 나세르의 지휘 아래 이집트와 아랍 연합 공화국 형태로 합병되면서 묻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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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후반 무렵 시리아의 석유 수출 수익은 국가 전체 예산의 약 25퍼센트. 대규모 산유국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알-아사드 정권 유지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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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0-352. 봉기 후 시리아 군대가 개입하자 반정부 성향의 장교들이 군을 떠나 자유 시리아 군을 조직해 반정부 조직들과 협력 체계 구축, 내전으로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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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알-아사드 대통령이 퇴진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퇴진하지 않았다. 동시에 시리아에서는 급진주의 성향의 이슬람교도들이 새로 부상, 중동의 다른 세력들도 모여들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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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알라위파, 시리아의 기독교인들, 이란의 공화국 수비대와 민병대, 레바논의 시아파 헤즈볼라 등이 바샤르의 편.
vs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 등 수니파 국가들은 바샤르 퇴진을 원하면서 반정부 세력에 자금과 무기 지원. 페르시아만 국가들의 사람들도 반정부 성향의 강경파 이슬람교도들에게 기부금. 시리아의 쿠르드족도 터키 국경 근처에서 자치 구역을 만들어 알-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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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3-356.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어마어마한 수의 난민은 대부분 터키와 레바논, 요르단 쪽으로 피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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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 되자 알-아사드 정권은 수세에 몰리지만 이란(쿠드스 부대)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다시 반격 시작. 시리아가 화학 무기를 사용하면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공습으로 대응. 2018년에는 영국, 프랑스 공군과 함께 화학 무기 공장을 겨냥해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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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국민 2,200만 명 중 내전으로 사망한 사람은 50만 명 이상. 600만 명이 국내로, 500만 명 이상이 해외로 탈출해 난민이 되었다. 이들 중 100만 명 이상이 독일로 가면서 유럽은 정치적으로 큰 격변. 극우 민족주의 시작, 반유럽 정서로 인해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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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6-362. 예멘 혁명. 2011. 1. 27~2012. 2. 27.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도 '아랍의 봄' 시위로 33년 동안 독재를 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 퇴진. 1년 이상 소요. 초기에는 경제 불황, 부패 항거, 시위가 확대되면서 대통령 퇴진 요구. 그러나 독재가 끝나면서 여러 부족과 교파간 내전 발생, 대리전 양상으로 번져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예멘 땅에서 이란과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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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축출된 알리 압둘라 살레는 정권을 되찾기 위해 그동안 싸움을 벌여 왔던 반정부단체인 후티(이란과 헤즈볼라에게서 지원을 받음)와 협력. 2014년 9월, 살레의 병력과 헤즈볼라 고문들의 지원을 받은 후티파가 수도 사나를 점령, 사나와 테헤란을 잇는 항로를 개설. 아라비아해로 나가는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 아덴을 향해 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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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파의 승리는 석유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의미. 예멘이 위치한 해협은 인도양에서 수에즈 운하 및 지중해를 연결하는 요충지. 이 해협을 통해 중동 지역의 석유가 매일 거의 500만 배럴 이상 지나가며, 전 세계 교역 물품의 규모도 그에 못지 않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이집트에게 큰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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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아덴을 공격하려는 후티파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육군과 공군을 동원해 '단호한 폭풍' 작전과 함께 해상 봉쇄. 몇 주면 끝날 줄 알았던 이 작전은 … (현재까지 진행 중). 수백만 명의 난민 발생, 기근, 질병 확산.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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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동지중해는 살아 있다
[그림 4] 동지중해 레반트 분지. (출처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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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4-366. 이스라엘, 가스전 발견.
1999년 이스라엘 남부 연안에서 소규모 가스전 발견.
.2009년, 타마르 천연가스전 (Tamar gas field) 발견. 이스라엘의 업체들과 미국의 작은 석유업체 노블 에너지가 동지중해에서 발견. 곧이어 이스라엘 해안 80마일(약 12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세계최대 규모의 가스전 발견(Leviathan gas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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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그동안 대부분의 천연가스를 이집트로부터 수입해오고 있었는데, '아랍의 봄'으로 인한 일련의 정세 변화,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축출 등으로 수입이 중단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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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년 동안 국내외, 정치경제적 갈등을 겪으면서 가스전 개발은 중단. 2015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엘리 그로너 정책 담당 국장이 지원하면서 개발 재개. 현재(2020년) 이스라엘 전력 생산량의 60퍼센트는 자체 천연가스로 해결.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와 요르단에 천연가스 수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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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7. 노블 에너지, 키프로스 공화국 연안에서 대규모 천연가스전 아프로디테(Aphroeite gas field) 발견. (레비아탄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29킬로미터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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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석유 회사 ENI, 이집트 앞바다에서 조하르 대규모 천연가스전(Zohr Field) 발견. 이집트 사상 처음으로 천연가스 자급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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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7-369. 동지중해 가스전 개발과 관련한 영해 침범 문제.
이스라엘, 레바논, 이란 등 바다 위 경계선에 대한 의견 불일치로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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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무슬림 형제단, 알 카에다, 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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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0. 무슬림 형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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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6. 1979년 12월, 소비에트 연방 아프가니스탄 침공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1979. 12. 27-1989. 2. 15.)
무자헤딘, 소련에 저항.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들에게 무기와 자금 지원. 이들 중에는 오사마 빈 라덴도 포함. 빈 라덴은 예멘 출신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정착한 유명 건축업자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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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7. 알 카에다. 1998년 초, 이슬람 원리주의를 따르는 몇몇 무장단체들이 만든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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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기사 : "아크가니스탄: 탈레반, IS, 알카에다는 어떻게 다를까." 호세 카를로스 쿠에토. 2021. 9. 3. BBC News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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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9. ISIS. 이라크에서 만들어진 알 카에다 조직. '이라크 이슬람 국가'.
시리아 내전 이후 조직명에 '시리아'를 덧붙여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라고 칭하게 되었으며, 때로는 '이라크와 레반트 이슬람 국가'라는 뜻으로 ISIL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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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6일. 발췌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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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요동치는 석유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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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지난 50년 동안 석유 가격 변화. 석유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지정학적 사건, 기후 재난, 전쟁, 혁명, 경제 성장이나 경기 후퇴등 다양하다. (출처 : The Conversation.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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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8-389. 2014년 유가 급락하면서 석유 파동
* 관련 기사
- "국제유가 하락의 원인과 전망." 이성로(한국가스공사 선임연구원). 2015. 1. 1. 에너지신문.
- 2014-2016 world oil market chronology.(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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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3년까지 3년간 석유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 선에서 안정세 유지. 그러나 2014년 여름 이후 아시아에서 석유 판매량이 예상치 이하를 기록, 석유 가격 하락 지속.(브렌트유, 2014년 한 해동안 46.5% 가격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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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3-394. 이유는 미국 셰일오일을 비롯해 새로운 산유국들이 너무 많이 늘어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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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6일 OPEC 회원국 장관급 회담. 이들은 석유 시장 안정화를 위해 나서는 대신 모든 것을 그저 시장의 흐름에 맡기기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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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석유 가격은 5개월 전과 비교해 절반 이하로 폭락.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자 100 곳 이상이 부도. 셰일오일은 생산비용이 높아 배럴당 70달러 이상이 안 되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 한편 셰일오일 생산 비용은 점점 떨어지고 있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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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5-396. '단기 개발' vs '장기 개발' : 셰일오일 출현으로 석유 산업에 새로 생긴 용어. 셰일오일은 탐사와 개발, 생산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락 반년 정도, 실제로 땅을 파들어가는 데는 5~6일이면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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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셰일 유정 하나 개발에 1~2년 정도도 걸리고 비용은 1,500만 달러가 들어갔는데, 지금은 모든 비용을 합쳐도 유정 하나에 700만 달러면 충분. 그러나 셰일오일 유정은 금방 바낙나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유정을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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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개발은 주로 바다에서 발견되는 석유나 LNG 사업에 적용. 발견까지 걸리는 시간은 5~10년, 제대로 생산하는 데까지도 많은 세월이 필요. 바다에서 개발하는 경우 7억~70억 달러 이상 비용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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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가격은 계속 하락해 30달러 이하로 떨어져, 25~20달러까지 떨어질 가능성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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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7-398.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안정적 생산을 위한 협상 작업에 들어간다. 2016년 4월, (이란을 제외한) 전 세계 석유 생산량에서 절반을 차지하는 국가들의 석유 장관들이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모이지만, 갑자기 사우디아라비아가 모든 합의를 취소하고 석유장관을 교체(알-나이미 장관에서 칼리드 알-팔리로 교체. 그는 미국 텍사스 A&M을 졸업하고 사우디 아람코 최고경영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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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9. 그 사이 석유 가격은 계속 하락, 수요는 증가. 2015년 세계 석유 소비량은 2014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증가. 2015년 미국 시장에서는 SUV와 픽업트럭 시장점유율이 60퍼센트 이상으로 증가. 2012년에는 50퍼센트 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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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9-400. 2016년 국제 에너지 포럼.
2016년 9월 말 알제리에서 72개국이 모여 국제 에너지 포럼(International Energy Foum; IEF) 개최. 이들 국가는 세계 석유 수요와 공급을 90퍼센트 이상 책임. 이 회의에서, 전체 하루 생산량 100만 배럴 감축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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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1. 그로부터 2주 뒤 'OPEC-플러스' 합의(혹은 '빈 합의'; Vienna Alliance)
OPEC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10개국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 OPEC 회원국들이 하루 120만 배럴을 감산하면 다른 주요 산유국들도 55만 8,000배럴을 감산하겠다는 내용. 이 과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관계 변화에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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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역시 주요 산유국인 미국, 캐나다, 영국, 브라질, 노르웨이, 중국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는 빠짐.
이후 2016년 12월이 되면서 석유 가격이 올라가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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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3. 2014년 이후 베네수엘라 석유가격 폭락, 물가 폭등 사태. 난민 500만 명 이상.
*관련 기사 : "석유부국 베네수엘라 파탄이 ‘무상복지’ 탓이라고요?" 옥기원. 2018.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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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4-405. 2018년 이후 석유 시장에 새로운 요소 등장. 도널드 트럼프 미대통령. 트럼프 전대통령은 트윗으로 응대하며 OPEC 회원국들에 영향력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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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6-407. 2019년 봄,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석유 수입에 대한 제재를 다시 시작. 이에 이란은 우라늄 연료 농축 작업을 늘려간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이 증가하는 와중에,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까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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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7-408. 2019년 9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지역에 위치한 아브카이크(Abquiq)-쿠라이스 공격.
*관련 기사 : "사우디: 드론 공격으로 대폭 줄어든 원유 생산량." BBC 뉴스 코리아. 2019.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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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후티파가 자신들이 가한 공격이라고 주장. 한편에서는 이란 배후설 제시. 이란의 석유 수출을 전면 금지시킨 미국 조치에 대항한 것이라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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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10-412. 중동지역에서의 갈등 계속. 이라크에서는 일자리 부족, 부패, 사회기능 붕괴, 이란의 영향력 증가 등을 이유로 계속 시위, 석유 수출도 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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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말, 이란의 지시를 받는 카타이브 헤즈볼라 민병대가 이라크 군 기지로 로켓 발사. 미국 업체 직원 한명 사망, 군 관계자 여러 명 부상. --> 미국은 즉시 공습, 민병대원 20여 명 사망. --> 민병대와 지원 세력이 바그다드의 미군 보호지역에 잠입해 들어가 미국 대사관에 보복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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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3일, 쿠드스 부대 사령관인 가셈 솔레이마니가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내린 후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미군의 무인기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맞고 사망. 이란은 격렬할 반응을 보였고, 솔레이마니는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 한편 수세였던 ISIS에게 그의 죽음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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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후 테헤란에서 출발한 민간 여객기가 혁명수비대의 미사일을 맞고 추락. 176명 사망. 승객들은 대부분 이란과 캐나다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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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 세계 석유 소비량의 40퍼센트를 담당해온 중국의 문이 닫히자 석유 수요 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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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6일. 35절, 36절 발췌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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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사우디아라비아의 새로운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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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13-416. 2017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미래 투자 회의 개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무하마드 빈 살만(Muhammed bin Salman; MBS. 왕위 계승 서열 1순위. 1985년생) 부총리가 주최. 왕세자는 "1979년에 시작된 시대*는 이제 끝났다"라고 선언. "온건한 이슬람교", 미래형 신도시 개발 계획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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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1주일 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정계, 재계를 이끌고 있는 전현직 장관들과 왕족 등 200명 이상을 부패 혐의로 체포, 리츠-칼튼 호텔에 구금. 이후 몇 개월에 걸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이들로부터 1,000억 달러 이상의 불법 자금을 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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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의 의미(p.420-421)
이때 사우디아라비아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일부 광신도들이 메카의 그랜드 모스크를 점거, 몇 주 동안 전투. 동부 지역에서 시아파의 시위 지속. 이란의 아야톨라 호메이니 또한 아랍의 왕국들을 모두 몰아내겠다고 호언. /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러한 위협을 경건하고 엄격한 원리주의적 신앙으로 돌아가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것으로 대응.(사우디아라비아 바깥에서는 이를 두고 와하비즘(Wahhabism, 즉 알-와하브의 뜻을 따른다는 뜻)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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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17.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전 2030'(Vision 2030) : 2016년 1월 MBS가 발표.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는 석유 의존도가 높아 시장의 석유 가격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를 다각화, 경쟁력 있는 & 첨단 기술 중심의 기업 활동을 지원하려는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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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전체 국민의 70퍼센트는 35세 이하. 빈 살만 왕세자는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 중.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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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사우디아리비아의 '비전 2030' 목표와 계획. (출처 : Vision 2030. Saudi Ara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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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18-420.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개발 역사.
1933년 캘리포니아 스탠더드 오일(지금은 셰브론)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전 지대를 찾을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1938년, 석유 첫 발견(1,584배럴). 몇 개월 후 상업적으로 개발 가능한 정도의 석유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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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접어들면서 석유 생산량이 점차 늘어났고, 1973년 석유 파동으로 유가가 네 배 폭등하면서 진정한 오일 머니 시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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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2-424. 오일 머니를 기반으로 운영되던 사우디아라비아는 2014년 유가 폭락으로 수익이 1,360억 달러로 감소(전년도 수익 3,210억 달러). 국가 예산은 배럴당 35~45달러가 아니라 100달러에 맞춰져 있었고, 당시 예멘 전쟁에도 상당한 예산을 투입해온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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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개혁, 경제 개혁 필요. 2016년 '비전 2030' 발표. 국내에 복합 휴양지, 관광지 개발 계획 발표. 두바이 같은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며 돈을 쓸 수 있게 하기 위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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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5. 2018년 4월, 수도 리야드에 처음으로 극장이 문을 열고 <블팩 팬서> 개봉. 사우디아라비아 연예 산업 위원회를 만들어 향후 10년간 640억 달러 투자 계획. 여성 운전 금지령 폐지.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성의 운전 금지 조치 해제를 요구하는) 1990년 항의 운동에 참여했던 여성들을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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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6-428. '비전 2030'은 원래 UAE 아부다비에서 시작.
아부다비는 UAE를 이루는 일곱 개 토후국 중 하나, 사실상 대표. 아부다비는 비교적 뒤늦은 1958년에 석유 개발 산업에 참여. 아부다비는 OPEC 회원국들 중 두 번째로 생산 규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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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왕세자로 책봉된 알 나흐얀 국왕의 아들 무함마드 빈 자이드는 석유가 바닥 날 때를 대비해 경제 분야를 확대하려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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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 계획 중 하나는 국부 펀드 무바달라(Mubadala), 2,300억 달러 규모. 주로 아부다비 국내와 해외 건설과 투자 전문 업체들에게 투자.
- 두 번째 투자 계획의 중심에는 마스다르(Masdar)라는 에너지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화석연료 이외의 에너지 자원에 중점적으로 투자. 태양광, 풍력 전분 개발 사업으로 유명.
- 세 번째 투자 계획 : 비전 2030. 2007년에 시작. 수익 기반 다각화, 기술 향상, 일자리 창출, 여성의 경제 분야 참여 독려.
- 현재 GDP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40퍼센트 정도로 낮아졌다. 20년 전에는 대부분이 석유에 의존. 이러한 변화는 투자 환경과 정책 실행, 사업 문화 변화, , 값싼 전력 제공, 교역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지리적 여건 등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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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8-430.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전 2030'은 경제적 다각화를 넘어 국가 자체 개조가 목표. 열 세가지 세부 실현 목표에는 삶의 질 향상, '민족정신 함양'같은 항도 있다. 국가 개조 계획 하에 178개 목표, 목표 달성을 위한 371개 기준, 543개 실천 사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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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국방비 지출 규모는 세계 3-4위. 2011년 이후 미국 무기 최대 고객. 현재 목표는 무기 및 장비의 국산화 50퍼센터 달성을 위한 방위 산업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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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이외 수출품을 증가시키는 것이 목적. 예를 들어 관광 상품. 특히 메카 순례 행사인 하즈(Hajj). 또한 '종교와 무관한 관광객들' 유치를 위해 새로운 휴양지들을 홍해를 따라 건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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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0-432. 일자리 창출과 이주 노동자 문제.
사우디아라비아의 일자리 대부분은 정부와 관련. 민간 부문 일자리는 임금이 낮고 매력도도 떨어져, 대부분 단기 체류 '이주 노동자'들이 채운다.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이집트, 필리핀 등. 이들은 절대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적을 취득할 수 없으며 현지에서 출생한 자녀들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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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 나뉜 노동계급. 사우디아라비아 전체 인구는 3,000만 명 중 국적자는 2,000만 명, 1,000만 명은 모두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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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시장에서 직장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자 450만 명 중 70퍼센트는 정부에 고용된 상태. 외국인 800만 명 이상이 민간 부문의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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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는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 다각화를 추진하고 비전 2030 관련 비용을 충당하려면 지금 당장 막대한 액수의 석유 수출 수익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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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2-433.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 암살 사건. 2018년 10월. 이스탄불의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카슈끄지는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으로, 2017년부터 미국에서 「워싱턴 포스트」 객원기자를 하며 아랍 세계의 통치 방식과 반대파 억압을 비난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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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관을 도청하고 있던 터키 정부는 사건 관련 세부사항들을 흘렸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측된다. 터키 주권 무시? 이 지역의 맹주 자리? 오스만 제국의 정통 후예? 이슬람 세계를 이끌어갈 나라는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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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3-435. 카타르 외교 위기. 2017년 6월.
*관련 기사 : "3년 반 지속된 카타르 봉쇄 해제 ... 카타르-UAE 불화 등 첩첩산중"(2021. 1. 6. 정의길.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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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주도로 UAE, 예멘, 바레인, 이집트, 리비아 등 아랍권 6개국이 카타르와 단교 선언. 이유는 카타르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보호, 후원하고 이란과 친교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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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터키는 수천 병력을 카타르에 파견하여 기지 건설. 이란으로부터 식료품 수입 규모도 증가. 다른 아랍 국가들의 영공을 지날 수 없는 카타르에게 이란은 자국 영공을 개방. 카타르는 석유보다 천연가스 수출량이 더 많아,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나친 영향력을 문제 삼으며 OPEC에서 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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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가 가진 무기 : LNG 수출량, 미국과의 특별한 전력 제휴 관계. 국부 펀드(약 3,500억 달러). 대규모 미군 공군 기지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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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5-439. 사우디 아람코, 100억 달러 규모의 채권 발행. 대규모 국영 석유화학 기업 SABIC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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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발행이 큰 반향을 일으키자 사우디 아람코는 기업공개 및 신규 상장 실시. 2019년 12월 11일, 리야드 주식 시장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상장 기록.
*관련 기사 : "석유시대 황혼의 불꽃? ... 아람코 기업공개 '절반의 미소'" (2019. 12. 8.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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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코로나19, 세계 석유 경제를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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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0-445. 2019년 12월, 중국 우한을 시작으로 새로운 호흡기 질환 발견. SARS-CoV-2로 명명.(코비드19 혹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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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당시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6퍼센트에 육박.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국이 도시를 봉쇄하고 차량, 비행기 여행이 감소하면서 세계 석유 소비량은 급격히 감소. 2020년 1/4분기에만 하루 800만 배럴 이상씩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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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빈에 모인 OPEC-플러스 23개국. 석유 소비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지난 몇 년간 공동의 이해관계를 구축해왔으나, 이번에는 사우디아라비아측은 감산을 러시아는 더 지켜보자고 주장. 합의 불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오히려 생산량을 더 늘이면서 서로 석유전쟁. 이 전쟁에는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자들을 물리치기 위한 목적도 있다.(p.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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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6-450. 2020년 3월 말이 되자 소비 시장은 붕괴 시작. 석유 가격은 지난 3개월에 걸쳐 배럴당 63달러까지 떨어졌으나 이제 배럴당 14달러를 기록. 한편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2020년 2월에 정점에 달해 매일 1,300만 배럴. 3월이 되어서야 예산 삭감, 미국의 석유 생산량 감소가 예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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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석유 수요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OPEC, 러시아, 미국 등은 시장점유율을 두고 다투고 있었고, 생산된 석유는 저장해두는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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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1-456. 2020년 G20 의장국은 사우디아라비아. 4월 10일 G20 회원국들의 에너지부 장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세계 에너지 시장 안정화를 위해 회의. 석유 생산량을 하루 970만 배럴 감산에 합의. 그중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각각 250만 배럴씩 줄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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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합의는 OPEC이나 다른 주요 산유국이 아닌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가 만든 질서로, 석유 제품에 대한 새로운 국제 질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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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0년에 출판되었고, 번역본은 2021년에 나왔습니다. 이 책이 나온 이후 일어난 본격적인 코로나19 팬데믹은 책에서 서술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심각했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다른 책이나 기사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 이라 판단해, 35절 발췌에서 코로나 얘기는 많이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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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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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맵』 제4장 중동의 지도, 34절 발췌 업데이트 했습니다.
『뉴맵』 제4장 중동의 지도 36절까지 발췌 업데이트 했습니다. 너무나 어려웠던 4장 발췌 완료! ^^v
『뉴맵』 제4장 중동의 지도, 27~29절 발췌 업데이트 했습니다.
『뉴맵』 제4장 중동의 지도, 30~31절 발췌 업데이트 했습니다.
『뉴맵』 제4장 중동의 지도, 32~33절 발췌 업데이트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