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다윈과 히틀러와 우생학
다윈이 약육강식와 우승열패에 대한 아이디어로 버무려진 자연선택이론을 월리스와 더불어 제안할 무렵 읽은 책이 다름 아니라 맬서스의 <인구론>이라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문제는 그 맬서스의 <인구론>이 태생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의 약육강식과 우승열패를 옹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윈 또는 다윈주의는 스펜서의 사회다윈주의나 골턴의 우생학주의와는 다르고 순수하게 생물학적인 주제에 국한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 다윈 자신은 남성우월주의자에 유럽인우월주의자였습니다.19세기 빅토리아 영국 시절에 그렇지 않은 상류층 '백인' 남성이 얼마나 되었겠냐고 말하는 것은 이 문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히틀러를 악의 축으로 보고 모든 나쁜 것을 갖다 붙이는 사람들이 실상 다윈도 한통속이었음을 쉽게 긍정하지는 않겠지만, 다윈과 스펜서와 골턴은 정말 미세한 차이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Bergman, Jerry (2012) Hitler and the Nazi Darwinian Worldview: How the Nazi Eugenic Crusade for a Superior Race Caused the Greatest Holocaust in World History. (https://amzn.to/2rIQu8u)
히틀러가 직접 다윈을 읽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뮌헨 대학의 우생학 교수였던 프리츠 렌츠(Fritz Lenz)나 우생학과 연관성이 있는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은 열심히 탐독했습니다.
더 슬픈 것은 을사늑약과 경술국치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된 대한제국 또는 조선에서 널리 퍼져 있던 바로 그 다윈주의가 이런 우생학적 접근과 직접 맞닿아 있다는 점입니다.
찰스 다윈이란 사람에 주목하자면, 그는 '과학자(scientist)'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윈이 그에 대해 명확히 기록을 남겨 놓지는 않았지만,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토머스 헉슬리는 미국의 기자가 "선생님은 과학자이신가요?"라고 묻자 불쾌해 하면서 과학자가 아니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과학자'라는 말 자체가 1833년 무렵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 뉘앙스가 그리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다윈 자신은 생물의 분류에 주로 관심을 갖긴 했지만, 사회적 맥락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습니다.
다윈이 당시의 도덕 문제, 종교 문제, 정치 문제 등에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다윈이 전개한 박물학적 연구가 이런 것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문제는 지금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Jonathan Hodge, Gregory Radick (eds.) (2003). The Cambridge Companion to Darwin. Cambridge University Press. (https://bit.ly/3S9fBNm)
저의 질문은 다윈이 전개한 생물학적 연구와 그 영향 아래 전개된 홀로코스트와 우생학과 다양한 인종차별이 별개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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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서스 <인구론> --> 다윈 <종의 기원> --> 우생학 --> 인종차별
영향력을 단순전개하면 이렇게도 펼칠 수 있겠죠? 근데, '우생학'은 정말 배운게 없어서.. 우수한 농작물 재배하려는 이유로 연구된 게 아닌가 싶네요. 근데.. 우생학 자체에 '차별 개념'이 숨어있어서 세상이 횡폭해지면 언제든지 악마가 되겠죠...
그리고 우생학이란 말이 생겨난 게 좀 잘 못 된거 아닌가요? 종의 진화나 생명현상에는 우등, 열등 같은 개념과 무관한, 종끼리의 우열이 아니라 유전자(dna) 선택에 있어서 유전자 간의 경쟁이나 협동... 뭐 그런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걸 생명의 진화의 시각으로 보면 자연선택이고요.
생각해보니 우생학을 인간사회의 법칙인양 옮겨온 이들은 정말 나쁜 의도로 그렇게 한 것 같네요. 우열과 차별을 당연시 받아들이게끔 사람들을 호도했으니까요.
우생학적 이데올로기 아니어도 요즘 시대 차별이 엄연하거든요. 남녀 공히 키크고 인물이 잘나고 머리도 좋고 부모도 잘 살고... 그러면 시선이 너그러워지는게 사람마음이죠. 안그래도 삶은 버거운데... 그 기준이 제 뇌속에도 잠재되어 있음을 그래서 삶이 더 버겁게 살게 한다는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느끼죠.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진화생물학자들이 다윈의 여러 글귀들을 인용하며 열심히 변호하는 것을 들었지만 애초에 멜서스의 인구론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선택 이론을 전개하게 된 출발점 자체에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게 우생학적 결론에 이를 수 있는 위험성이 이미 내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저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학문적 이론 자체에 결과론적 검열을 하는 것은 분명 hindsight bias인 측면은 있겠지만요. 자연계처럼 우리 인간사회의 사상이나 산물 역시 온전한 순수함이나 선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복잡성의 산물이라는 걸 매번 느끼게 됩니다. 반대로 친다면 좋은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귀결되는 것만도 아닌 것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