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불용설과 자연도태
영어권에서는 찰스 다윈과 <종의 기원>이 지나치게 우상화되어 있는 면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지만, 19세기 중반 빅토리아 영국에서도 <종의 기원>보다 로버트 체임버스의 <창조의 자연사의 흔적>이나 윌리엄 페일리의 <자연신학>이 더 많이 읽혔고 더 많이 토론되었다.
프랑스어권에서는 라마르크의 변형론transformisme과 동물철학 philosophie zoologique이 더 많이 논의되고 읽혔으며 계승되었다. 라마르크는 찰스 다윈의 조부 이래즈머스 다윈과 깊은 친분이 있었고, 이래즈머즈 다윈의 Zoonomia는 자연스럽게 라마르크의 이론의 영향을 잘 보여준다. 다윈은 자신의 저서에서 끊임없이 소위 '용불용설 use-disuse theory'을 통해 논의를 전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면에서는 라마르크의 이론에 대해 찰스 다윈은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나는 다윈의 기여를 '자연선택이론' 또는 '자연선택 가설'로 보기 때문에 마치 다윈의 이론이 진화이론의 전부인 양 과장하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18세기 계몽사조에 속하는 사상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생물종들을 물리적 조건의 차이와 연관하여 설명하려 애썼다. 조르주 르클레르, 즉 뷔퐁 백작도 그 중 하나이고, 물리학에서 더 유명한 모페르튀는 <물리적 금성>에서 생명을 물질에서 생겨난 현상으로 설명하면서 종의 분화를 다루고 있다.
종종 "다윈 이전의 생물학자들은 대부분 창조론자"라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데, 과학의 역사를 상세하게 보면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무엇보다 다윈은 생물학자가 아니라 박물학자 naturalist 다시 말해 박물학 natural history (흔히 자연사라 부르는)에 종사한 현장연구자다. 생물학은 라마르크나 트레비라누스가 정의한 대로 살아 있는 자연을 다루는 자연철학의 일종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법칙과 연역적 또는 공리적 체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다윈은 바로 그러한 연역적 접근에 대해 근본적인 저항심을 갖고 있었다.
생물학자라는 말을 자연철학자뿐 아니라 박물학자(자연사학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넓히더라도 18세기 프랑스어권에서 폭넓게 논의되어 온 다양한 생명론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창조론자라 믿는 것은 부적절하다. 조르주 퀴비에는 창조의 개념을 중시 여겼고 에티엔 조프르와 생틸레르도 이신론 Deism이긴 해도 분명히 유신론자였다. 그러나 그들을 '창조론'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나름의 정교한 이론과 가설들을 제시하면서 논쟁해 온 박물학자들의 기여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윈은 의도적으로 '생명의 기원'이 아니라 '종의 기원'으로 연구주제의 촛점을 맞추었다. 전자의 문제는 무생물발생론 abiogenesis 내지 자연발생설 autogenesis의 문제였다.
이것은 물리적 조건이 어떻게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지는가를 밝히는 엄청난 프로젝트였지만 그만큼 공격받기 쉬운 주장이었다. 다윈은 종 분화의 문제에만 집중하면서 매우 많은 사례를 제시하고 여러 상이한 상황을 각각 설명함으로써 이러한 주제를 피하려 했다.
다윈의 가장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1) 종의 통계적 다양성과 (2) 환경에 대한 적응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선택 (3) 오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평균적으로 종의 형질과 특성이 변하는 양상이라는 시나리오이고, <종의 기원>은 이에 대한 매우 풍부한 사례를 제시하는 시론적인 저서다.
자연선택을 종종 일본식으로 '도태(淘汰)'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淘는 "쌀을 일다"라는 의미이다. 즉 쌀을 씻을 때 돌이나 껍질 같은 것을 걸러내는 쌀조리의 역할이다. 汰도 마찬가지의 의미이다. 키나 체 같은 것을 써서 쭉정이나 불순물을 걸러내는 것을 가리킨다. 여러 면에서 '도태'라는 용어는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을 스펜서의 사회다윈주의의 맥락에서 우승열패의 개념으로 수용한 20세기 초
일본의 왜곡된 학계의 잘못이다. 동시에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심각하게 오해하게 만드는 아주 안 좋은 용어이기도 하다.
다윈은 명확히 choice와 같은 의미로 selection을사용했으며 육종법과 같은 인위선택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이 용어를 썼다. 실상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하자고 제안한 것은 다윈이 아니라 월리스였으며, 월리스는 유신론적 전제를 가지고 '신의 선택' 대신 '자연 선택'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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