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의 신학적 고려
데카르트로부터 도킨스에 이르는 생물학과 이데올로기의 지난한 대화와 대립은 한 권의 단행본으로 묶이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심각하다.
Denis R. Alexander and Ronald L. Numbers, eds. (2010). Biology and Ideology from Descartes to Dawkin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이 논문집에서 가령 리즈 대학의 조나썬 토팜(Jonathan R. Topham)의 "자연신학을 위한 생물학: 페일리, 다윈, 브리지워터 논고"는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쓸 무렵의 신학적 고려에 대해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17세기 말 이래 주로 영어권에서 자연신학이 과학과 연결되어 왔다. 자연신학은 여러 기독교 전통에서 온 과학 연구자들을 매개하는 수단이 되었으며, 시민사회와 지식인 논쟁의 통합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초 영국에서 자연신학은 기독교 내에서 후퇴하는 양상이었다. 존 웨슬리와 감리교(Methodist) 및 윌리엄 윌버포스 같은 영국국교도(Anglican)와 연관된 복음주의(Evangelicalism)가 부흥하면서, 성서에서만 나타나는 복음(Gospel)의 변형능력이 강조되었다. 복음주의에서는 인간이 그 자체로는 신을 이해할 수 없고 성서의 메시지를 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음주의는 1730년대 감리교의 출현과 함께 나타난 기독교 운동으로서 경건주의(Pietism), 장로교(Presbyterianism), 청교도 등의 영향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구원(salvation)과 무관한 자연신학은 무시되었고, 단지 과학을 비롯한 세속적 가르침에도 ‘기독교의 색깔’이 녹아들어가야 한다는 정도였다. 또한 프랑스 혁명 이후 페인(Thomas Paine, 1737-1809)과 같은 급진적 정치 활동가는 성서 속의 불합리를 강조하면서 이신론(deism)을 주장했다. 복음주의자들과 영국국교회당(Anglican High Church party)은 유니테리언(Unitarian)이나 페인의 이신론과 같은 종교적 반대자들에게 자연신학이 대답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회의론자들이 성서나 교회의 전승에서 멀어진 종교에 만족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을 깨달았다.
윌리엄 페일리의 <자연신학>(Natural Theology, or Evidences of the Existence and Attributes of the Deity, 1802)이 등장한 것은 이런 시대 배경 속에서였다. 페일리의 <자연신학>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증거를 도입하기에 앞서 전체 신학적 체계의 논리적 기초를 구성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페일리의 책은 1830년대에 4만 부 이상 인쇄되었고 널리 읽혔다. <종의 기원>이 출판될 무렵에는 9만 부 이상 발간되었고 이미 고전의 지위를 누리면서 영국 문화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토팜의 논의는 브리지워터 논고들을 상세하게 검토함으로써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페일리의 자연신학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다윈 자신이 페일리의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 평가하긴 했지만, 실상 넓은 의미에서 자연신학의 문제의식, 즉 동식물의 기능적 적응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는 창조론이나 지적 설계론의 주장과 비교하여 더 상세하게 다루어야 할 주제이다. 넘버스가 이 논문집의 13장 "창조론, 지적설계론, 현대 생물학"(Creationism, intelligent design, and modern biology)에서 인용한 <종의 기원>의 끝부분을 다시 생각해볼만하다.
“I believe that animals have descended from at most only four or five progenitors, and plants from an equal or lesser number and that probably all the organic beings which have ever lived on this earth have descended from some one primordial form, into which life was first breathed.”
다윈 자신은 이 “최초의 숨결”을 “the Creator”로 부르고 있다. (종의 기원 1판 p. 484) 단순화시켜 말하면, 다윈이 자신의 책 제목을 Origin of Life가 아닌 Origin of Species로 정한 이유는 이 맨 처음에 대해 자연신학적 맥락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하여, 자연발생설에 대한 루프케의 논의(7장)를 되새겨 보는 것이 유의미하다.
루프케에 따르면, 다윈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생명의 자체발생설(autogenesis, autogeny)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를 일부러 무시했다. 루프케는 그것이 다윈의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본다. 신의 섭리에 따른 창조가 아니라 자연선택이라는 과학적 과정에 의해 종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기원이라는 훨씬 더 복잡하고 논쟁적인 주제를 일부러 피할 필요가 있었고, 자체발생설을 무시함으로써 논제를 자연선택과 적응으로 집중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전략적 의미는 자체발생설이 신의 창조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자체발생설을 지지하던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는 점에 있다. 헉슬리나 포크트가 그런 예이다. 종의 기원에 대한 대답을 창조 아니면 진화로 이분법적으로 다룸으로써 자체발생설을 지지하던 사람들을 포섭한 것은 다윈의 영리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어떻게 생명이 생겨났는가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자연선택은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만한 힘이 없다. 지금도 여전히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창조론이나 지적 설계론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그 최초의 숨결을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브리지워터 논고의 저자들로서는 더 쉬운 길을 택한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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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이후 올린 몇 편의 글들은 지금 함께 읽는 <종의 기원>에 혹시 참고자료가 될까 싶어서 제가 이전에 다른 곳에 썼던 글들을 가져와 약간 손을 본 것입니다.
브리지워터 논고(https://en.wikipedia.org/wiki/Bridgewater_Treatises" target="_blank" rel="noopener">Bridgewater Treatises)는 19세기에 꽤 유명했습니다. 3대 브리지워터 백작이었던 프랜시스 에거튼(Francis Egerton)은 유언으로 박물학(자연학)을 비롯하여 과학적 탐구를 통해 신의 존재를 밝혀달라고 했고, 이러한 성과를 낳은 사람에게 상금을 주게 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8천 파운드의 기금을 영국 런던 왕립협회에 기탁하면서, 8명의 저자를 선정해서 자연신학의 논고를 집필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유명한 템플턴 재단의 사업과도 통하는 셈입니다.
차분기계와 해석기계로 유명한 찰스 배비지도 바로 이 브리지워터 논고 프로젝트의 혜택을 입은 사람입니다. 정확하게는 9번째 브리지워터 논고(https://en.wikipedia.org/wiki/Ninth_Bridgewater_Treatise" target="_blank" rel="noopener">Ninth Bridgewater Treatise)를 집필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배비지는 신의 존재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으며, 그의 차분기계와 해석기계도 실상 신의 존재를 밝히고자 했던 그의 신념 내지 의도와 연결됩니다.
찰스 다윈은 1859년 출간되어 숱한 논쟁을 불러 일으킨 그 <종의 기원> 맨 앞의 에피그램에 바로 윌리엄 휴얼의 브리지워터 논고(전체 시리즈 중 제3권)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But with regard to the material world, we can at least go so far as this - we can perceive that events brought about not by insulated interpretation of Divine power, exerted in each particular case, but by the establishment of general laws." - W. Whewell : Bridgewater Treat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