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대의 찰스 다윈
실상 찰스 다윈은 1809년에 태어나 비글호 항해 외에는 영국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영국인으로서 명실 공히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을 가장 잘 대변하는 표현이 '빅토리아 영국'일 것입니다. 다윈보다 10년 뒤에 태어난 빅토리아 여왕이 18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것이 1837년이고 1901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는 불과 70여년인 셈이지만,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전 세계에 제국주의의 폭압성을 떨친 시기였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Queen_Victoria
https://en.wikipedia.org/wiki/Victorian_era
18세기 후반에 급격하게 진전된 산업혁명을 통해 영국은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가 되어 있었고, 그 무렵에 태어난 찰스 다윈이 그가 속한 사회의 가치와 도덕과 이념에 녹아든 것은 자연스런 일일 것입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다윈이 '자연선택 가설'을 생각하게 된 주된 계기 중 하나가 바로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1798)입니다. 1836년에 비글호 항해를 끝내고 돌아온 다윈은 1838년에 <인구론> 6판(1826)을 읽으면서 모든 생명체들이 환경에 적절한 수보다 더 개체수가 많으며, 엄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선호되는 형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In October 1838, that is, fifteen months after I had begun my systematic enquiry, I happened to read for amusement Malthus on Population, and being well prepared to appreciate the struggle for existence which everywhere goes on from long-continued observation of the habits of animals and plants, it at once struck me that under these circumstances
favourable variations would tend to be preserved, and unfavourable ones to be destroyed. The result of this would be the formation of new species. Here, then, I had at last got a theory by which to work." [Darwin, Charles (1958). Barlow, Nora, ed. The Autobiography of Charles Darwin 1809–1882. With the original omissions restored. Edited and with appendix and notes by his granddaughter Nora Barlow. p. 120]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1798년에 출판된 맬서스의 책과 맬서스의 경제사상이 가지는 폭력성입니다. 1834년에 휘그당(Whig)이 발의하여 통과된 신 구빈법은 보수당의 전신인 토리당(Tory)의 왕권주의적인 관점보다는 분명히 나은 점이 있었지만, 빈민구제를 위한 여러 경로를 통제하고 제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Poor_Law_Amendment_Act_1834
[휘그당의 역사서술은 특히 모든 과거의 사건들을 현재의 휘그당의 영광을 위해 발생한 것처럼 오도하는 서술로 유명하기 때문에, 역사학 서술에서 과거의 사건들을 현재의 관점으로 왜곡하여 서술하는 것을 '휘그적 whiggish'이라 비판합니다. 특히 과학사에서 많이 나오는 개념이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역사서술도 자주 휘그적이라 비판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Whig_history ]
1859년에 공식적으로 해체된 휘그당이 후에 자유당으로 발전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Whigs_(British_political_party)
1834년 발효된 새로운 구빈법의 핵심은 노동능력이 있는 빈민에게 재정적 보조를 하는 것을 크게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화시켜 말하면, 이 신구빈법의 정신은 켄 로치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2016)에서 볼 수 있는 답답한 영국의 복지정책과 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I,_Daniel_Blake
흔히 맬서스의 법칙이라 부르는 것, 즉 식량은 산술급수적(2배, 3배, 4배, 5배, ...)으로 증가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2배, 4배, 8배, 16배, ...)으로 증가한다는 것은 엄밀하게 보면 사실 옳은 법칙이 아닙니다. 인구증가와 관련된 더 세련된 법칙에 따르면 어느 정도 인구에 도달하면 자연스럽게 포화상태가 되어 더 이상의 증가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굶어 죽거나 서로 싸워 죽는 개체가 있기 때문이므로, 맬서스의 법칙이 옳은 것처럼 말할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카오스 이론 내지 비선형 동역학으로 불리는 현대적인 접근에서는 그러한 포화상태를 이론적 논의의 맨 처음부터 도입합니다. 테크니컬하게는 $x_{n+1} = a x_n (1 - x_n )$이라는 식으로 인구변화를 다룹니다. 그렇게 하면 인구의 증가가 기하급수가 되는 게 아니라 S자 모양의 시그모이드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찰스 다윈은 1838년에 맬서스의 책을 탐독하기 전부터 그와 관련된 사상적 흐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837년, 런던에 살고 있던 형 이래즈머즈 앨비 다윈(Erasmus Alvey Darwin 1804-1881)과 함께 살게 되면서 영국 최초의 여성 사회학자로 불리기도 하는 작가 해리엇 마티노(Harriet Martineau 1802-1876)와 친해졌고, 찰스 라이엘을 만나면서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 1791-1871) 같은 휘그당 지지자들과 어울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연과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이론 같은 것이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과 얼마나 분리될 수 있을까요? 찰스 다윈이 과로와 심장질환으로 고생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여하간 책을 쓰고 따개비를 연구하고 박물학자로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부유한 아버지를 둔 덕분에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적이 없는 팔자 좋은 최상류층이라는 점이 그의 이론적 논의에 스며들 여지가 없었을까요?
과학자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의 이론에 그 사람의 인생사가 얼마나 녹아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위험한 주제입니다. 다만 진화이론이나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처럼 현실과 직접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생각하면, 연구자의 삶과 세계관과 가치관이 연구 내용에 포함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다윈의 저작 중 몇 곳에서는 바로 그렇게 빅토리아 시기 영국 최상류층 부르조아 계급에 속한 남성의 시선을 강하게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인간의 유래와 성에 관련된 선택>의 5장 "지적 능력과 도덕적 능력의 발달 (V. On the Development of the Intellectual and Moral Faculties during Primeval and Civilised Times)"에서 그런 대목이 많습니다. 소위 자연선택 메커니즘에 근거를 두고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휘그주의자(일종의 자유방임주의자)가 낼법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펜서가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살벌한 자유주의 자본주의를 주장하면서 이를 '스펜서주의'가 아니라 '사회 다윈주의'라 이름붙일 수 있었던 것이겠습니다.
다행히 5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습니다.
"We civilised men, on the other hand, do our utmost to check the process of elimination; we build asylums for the imbecile, the maimed, and the sick; we institute poor-laws; and our medical men exert their utmost skill to save the life of every one to the last moment. There is reason to believe that vaccination has preserved thousands, who from a weak constitution would formerly have succumbed to small-pox. Thus the weak members of civilised societies propagate their kind. No one who has attended to the breeding of domestic animals will doubt that this must be highly injurious to the race of man. It is surprising how soon a want of care, or care wrongly directed, leads to the degeneration of a domestic race; but excepting in the case of man himself, hardly any one is so ignorant as to allow his worst animals to breed. The aid which we feel impelled to give to the helpless is mainly an incidental result of the instinct of sympathy, which was originally acquired as part of the social instincts, but subsequently rendered, in the manner previously indicated, more tender and more widely diffused. Nor could we check our sympathy, if so urged by hard reason, without deterioration in the noblest part of our nature."
(Charles Darwin,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 Vol. I, p. 168.)
다행히 문명사회에서는 다윈이 폄하하는 미개사회 내지 원시사회와 달리 약한 사람 아픈 사람을 보호하고 돌보는 체제가 잘 되어 있고 그것이 도덕적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다윈 자신은 인간 사회에 독특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도덕 능력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지만,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구절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 링크들을 참조하는 것이 유익하겠습니다.
Social Darwinism: a reactionary ideology of capitalism
(http://tinyurl.com/guvez9y )
Marxism and Darwinism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공지사항 |
[알림] 6월 녹색문명공부모임 - 생태위기 시대의 사유방식 : 장회익의 온생명론과 라투르의 가이아 2.0
눈사람
|
2025.06.03
|
추천 0
|
조회 182
|
눈사람 | 2025.06.03 | 0 | 182 |
공지사항 |
[자료] 자연철학이야기 대담 녹취록, 세미나 녹취록, 카툰 등 링크 모음입니다.
neomay33
|
2023.10.24
|
추천 0
|
조회 3361
|
neomay33 | 2023.10.24 | 0 | 3361 |
388 |
[알림] '책새벽-화-과학' : 온도계의 철학 시작합니다.(6/24~)
눈사람
|
2025.06.03
|
추천 0
|
조회 80
|
눈사람 | 2025.06.03 | 0 | 80 |
387 |
브루노 라투르 "Facing Gaia" - 기포드 강연 보기 (1)
neomay33
|
2025.05.10
|
추천 0
|
조회 126
|
neomay33 | 2025.05.10 | 0 | 126 |
386 |
6월 모임 준비 - 라투르의 책 세 권을 다룬 논문 소개 (6)
neomay33
|
2025.05.10
|
추천 0
|
조회 109
|
neomay33 | 2025.05.10 | 0 | 109 |
385 |
온생명 이론의 의의에 대한 한 생각 (말미 미완) (1)
시인처럼
|
2025.05.09
|
추천 0
|
조회 68
|
시인처럼 | 2025.05.09 | 0 | 68 |
![]()
자연사랑
|
2025.05.09
|
추천 0
|
조회 78
|
자연사랑 | 2025.05.09 | 0 | 78 | |
384 |
어제 모임의 토론에 이어 (1)
박 용국
|
2025.04.11
|
추천 2
|
조회 96
|
박 용국 | 2025.04.11 | 2 | 96 |
383 |
녹색문명공부모임- 숙제 (4)
kyeongaelim
|
2025.04.10
|
추천 1
|
조회 83
|
kyeongaelim | 2025.04.10 | 1 | 83 |
382 |
민주주의와 온생명 (2)
박 용국
|
2025.04.06
|
추천 1
|
조회 158
|
박 용국 | 2025.04.06 | 1 | 158 |
381 |
한강의 생명과 장회익의 생명 (2)
박 용국
|
2025.02.01
|
추천 3
|
조회 293
|
박 용국 | 2025.02.01 | 3 | 293 |
380 |
[자료] 책새벽-목-문예사1 : 선사시대 관련 책
neomay33
|
2025.01.16
|
추천 0
|
조회 251
|
neomay33 | 2025.01.16 | 0 | 251 |
379 |
[자료] 『Cosmos』 읽으면서 초반에 알아두면 도움되는 내용
neomay33
|
2025.01.09
|
추천 0
|
조회 381
|
neomay33 | 2025.01.09 | 0 | 381 |
다윈하고 링컨하고 같은날 태어났다고 하는데
다윈은 더 옛날사람처럼 느껴져요. ^^
(비회원도 댓글을 달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라고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코난 도일이고 홈즈인데(^^;) 다윈은 그보다 조금 앞선 빅토리아 시대 사람이군요. 『종의 기원』이 나왔을 때 영국이 어떤 사회였는지 감이 잡히네요.
아, 아서 코난 도일이 빅토리아 시대이겠네요. 그래도 코난 도일이 1859년 즉 <종의 기원>이 출간되던 해에 태어났으니 찰스 다윈보다 딱 50년 뒤라 하겠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Arthur_Conan_Doyle" target="_blank" rel="noopener">https://en.wikipedia.org/wiki/Arthur_Conan_Do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