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밤-시즌2. 발췌] 우연과 필연 : 8장. 지식의 최전선
모임 정리
책밤
작성자
neomay33
작성일
2023-01-27 18:03
조회
1205
책밤-시즌 2 : 『우연과 필연』 8장. 지식의 최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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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필연』. 자크 모노 지음. 조현수 옮김. 궁리. 2022(제2판). 2010(제1판). 제8장. pp.195-225.(쪽수는 1판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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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에서는 매주 화요일 밤 9-10시에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밤'을 합니다. 현재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을 읽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읽은 내용 중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챕터별로 발췌해서 옮기고 있습니다. 질문이나 토론거리, 함께 보면 좋을 자료들이 있으시면 부담없이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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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필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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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이상한 존재들
2. 생기론과 물활론
3. 맥스웰의 도깨비
4. 미시적 사이버네틱스
5. 분자 개체 발생
6. 불변성과 요란
7. 진화
8. 지식의 최전선
9. 왕국과 어둠의 나락
부록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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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지식의 최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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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지식에서 현재 미개척인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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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6. 물리학의 경우, 그것이 미시 물리학이건 우주 물리학이건, 이러한 직관적인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 자명하다. 문제되는 현상들의 스케일이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의 범주들을 크게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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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에서의 어려움은 이와 다르다. ... 하지만 생명체 시스템이 가진 경이적인 복잡성은 그것에 대한 직관적인 전체상을 갖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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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7. 내가 보기에 지금 지식의 최전선은 진화의 양 극단에서 펼쳐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최초 생명체의 기원 문제가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나타난 것들 중 가장 강력하게 합목적적인 시스템(나는 인간의 중추신경계를 말하고 있다)의 기능에 관련된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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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에서 나는 아직 미지의 영역인 이 두 최전선의 윤곽을 대강 가늠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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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의 기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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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8. 생명체의 기원 문제는 오히려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해결하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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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유기체가 출현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틀림없이 거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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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뉴클레오티드와 아미노산이 지구상에서 형성되는 단계.
2. 복제 능력을 가진 최초의 고분자들이 형성되는 단계.
3. 어떤 합목적적 장치가 구축되는 진화가 일어나고, 그리하여 원시 세포에 이르게 되는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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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0. 우리가 정말로 벽에 부딪치게 되는 것은 여기(세 번째 단계)에서다. 왜냐하면 원시 세포의 구조가 어떠했을지에 대해 우리는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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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0-201.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세포들조차도 '원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 화석이 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진화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재구성해내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 그 출발점에 대해서는 그럴듯한 가설이나마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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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커다란 문제는 유전암호와 그 번역 메커니즘의 기원 문제다. 실로 이것에 대해서는 그냥 '문제'라고 말하기보다는 '진짜 수수께끼'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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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암호의 기원에 관한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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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1. 유전암호란 번역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오늘날의 세포 번역 기계는 대략 150개의 고분자 성분을 포함하는데, 이들 성분들 자체가 DNA 속에 암호화되어 있다. 즉 암호의 번역에 의해 만들어지는 산물에 의해서만 암호가 번역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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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1-202. 어떻게 이 고리가 이처럼 자기 순환적(자기 완결적)으로 채워지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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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2. (문제를 정확한 방식으로 제기해보면 단순화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 하나다.)
a) 유전암호의 구조는 ... 입체화학적 이유에 의해 설명된다. ... 입체화학적 친연성 ...
b) 유전암호의 구조는 화학적으로 보자면 자의적 ... 우연적 선택들이 유전암호의 구조를 조금씩 점진적으로 풍부하게 만들어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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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2-203. 이 중 첫 번째 가정이 월등히 더 매력적 ... 이 가정은 유전암호의 보편성을 설명할 수 있다. ... 이 문제에 대해서 .. 어떤 확증을 기대한다는 것이 무망한 노릇으로 보이는 가운데, 사람들은 ... 두 번째 가정으로 기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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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3. 이 가정은 유전암호의 보편성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 ... 유전암호의 보편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 수없이 많은 시도들 가운데 오직 하나만이 살아남은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지만, 원시적인 번역 기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모델도 제시해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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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추상적인 사변만으로 이 틈을 메워야 한다. ... 지구상에 생명이 출연하...기 전에, 같은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얼마나 됐을까? 그렇지만 ... 생명의 출현을 가능케 한 결정적 사건은 오직 단 한 번만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즉 그 선험적 확률은 거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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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4. 우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사건들 중 한 특정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게 될 선험적 확률은 0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는 존재한다. ... 현 시점에서 우리는 생명이 지구상에 오직 단 한 번 출현했다는 것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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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5. 인류의 출현은 또 하나의 유일무이한 사건으로서, 그 자체로 모든 인간중심주의로부터 우리를 떼어놓는다. 생명의 출현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 인류의 출현가능성이 거의 0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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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최전선 : 중추신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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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6-207. 인간의 뇌에 대한 탐구는, 설령 원활한 실험적 접근을 가로막는 장벽들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동물들의 뇌에 대한 탐구로는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의의를 갖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에 대한 탐구는 어떤 체험과 관련된 객관적 소여와 주관적, 의식적 소여를 서로 비교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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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7-208. 가장 어렵고 중요한 문제들 중에는 중추신경계와 같은 복잡한 구조의 후성적 발생이 제기하는 문제가 있다. ...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기억이란 신경에 유입되는 것을 시냅스 전체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분자들의 상호작용에 생긴 비가역적인 변화로 기록되는 것이라는 이론을 제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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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신경계의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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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0-211. 뇌의 원래적인 기능을 규정하여 열거하자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1. 감각 입력에 맞추어 신경 지배 활동을 조절하고 통합.
2. 행동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여러 회로들의 형태로 포함.
3. 외부 세계를 재현.
4. 의미 있는 사건들을 기록, 저장. 유사한 것들끼리 묶어 분류. 이 집합들을 관계에 따라 서로 연관 지운다.
5. 상을 만들어낸다. 즉 표상하고 본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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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2. 1, 2, 3의 기능이 단지 조정적이고 외부 세계를 재현해내는 데 그치는 기능. 4와 5의 기능은 인지적 기능. 오직 5의 기능만이 주관적 경험을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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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인상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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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2-213. 3항의 규정에 따르면, 중추신경계에 의한 감각인상의 분석은 ... 외부 세계에 대한 일종의 축도를 제공해주는 것. ... 이 축도 속에는 그 종에 특유한 행동과 관련해서 각별한 중요성을 갖는 것들만이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 개구리의 신경계는 오직 움직이는 물체에 의해서만 자극을 받으므로, 이 영상이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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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4. 어떤 주관적인 의미에서는 뉴턴보다는 괴테가 옳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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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속에 주어진 도형들을 분석하는 고양이의 신경회로에 대한 연구는 대상의 기하학적 속성을 알아보는 식별 능력이 신경회로의 구조 자체에서 연유한다 ... 그러므로 기초 기하학의 관념들은 대상 자체 속에서 표상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 대상을 지각하는 감각분석기에 의해서 표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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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괴테의 색상환(Goethe's colour wheel). (출처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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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유주의와 경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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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5-216. 오늘날의 이러한 발견은 어떤 새로운 의미에서 데카르트와 칸트가 옳고 철저한 경험론자들이 틀리다는 것을 보여준다. ... 동물의 행동에는 경험에 의해 얻어진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으나, 경험적인 것들의 이러한 포함은 동물들에게 이미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는, 즉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 이뤄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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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7. 본유성(선천적으로타고남)에 대한 오랜 논쟁 ... 표현형과 유전형 사이의 구분. 유전학자가 아닌 생물학자들이 보기에 이 구분은 단지 유전자의 불변성이라는 공리를 구하기 위해 고안된 인위적인 장치에 불과한, 대단히 의심스러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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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8. 대단히 중요한 어떤 의미에서 18세기의 위대한 경험론자들은 틀리지 않았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을 비롯한 생명체의 모든 것은 ... 모두 경험으로부터 온다라는 그들의 생각은 전적으로 옳다. ... 종의 조상 전체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축적한 경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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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경우 경험을 주관적으로 시뮬레이트 하여 그 결과를 예측하고 적절한 행동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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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레이션의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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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8-219. 내가 보기에 인간 뇌의 특징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 시뮬레이션 기능의 강력한 발달과 집중적인 사용인 듯 ... 언어는 이 기능에 근거해 있으나 단지 그것의 일부분만을 드러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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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9. 이 기능은 전적으로 인간만의 것은 아니다. ... 하지만 인간에게서는 주관적인 시뮬레이션은 전형적으로 고독한 기능, 즉 창조적 기능이 된다. 언어의 상징성에는 바로 이러한 주관적 시뮬레이션의 작용을 변환하고 요약하여 밖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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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0. 모든 과학자들은 그들의 반성적 사색이 그 가장 깊은 차원에 있어서는 결코 언어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의식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깊은 차원에서 이뤄지는 사색은 어떤 상상적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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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1. 수많은 객관적인 관찰들을 통해 인간의 인지적 기능은 ... 결코 말에 (혹은 다른 상징적 표현 수단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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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2. 우리의 선조들이 가졌던 중추신경계의 시뮬레이션 능력은, 그것의 적합한 표상 능력과 정확한 예측 능력이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확인됨으로써, 호모 사피엔스의 단계에서 도달한 상태에 이르도록 발전되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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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렇기 때문에 ... 선천적으로 타고난 논리적 도구는 우리로 하여금 틀리지 않고 우주의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즉 이 우주의 사건들을 상징적 언어로서 그릴 수 있게 해주며, ..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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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4. 언어란 미지의 변환을 통해서만 시뮬레이션 과정을 드러낼 뿐이고, 더욱이 이 과정의 모든 작용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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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론적 환상과 정신의 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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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4. 바로 여기에 또 하나의 최전선이 있다. ... 이 최전선을 뛰어넘을 수 없는 한, 이원론은 적어도 조작상의 유용한 진리로는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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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5. 17세기 사람들에게나 현재의 우리에게나, 실제 사람들의 경험에서는 뇌와 정신이 서로 다른 것으로 체험되고 결코 서로 같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분석해보면 존재에 대한 이러한 이원론은 한갓 환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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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현존한다는 것을 어느 누가 의심할 수 있겠는가? 영혼을 어떤 비물질적인 '실체'로 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결코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심할 수 없는 증언을 해주는 것은 바로 이런 존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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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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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나온 <세포 한 가운데의 우연>이란 책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Jean-Jacques Kupiec, Olivier Gandrillon, Michel Morange, Marc Silberstein (2011) Le hasard au cœur de la cellule: Probabilités, déterminisme, génétique
https://amzn.to/3Jslhj7
https://doi.org/10.3917/edmat.kupie.2011.01" target="_blank" rel="noopener">https://doi.org/10.3917/edmat.kupie.2011.01.
서론의 제목이 "생물학에서의 우연과 필연"임을 보면, 자크 모노의 책에서 서술된 이야기를 확장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각 장의 제목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유전자와 세포분화의 통계적 표현
2. 확률의 다양성
3. 단일 세포 수준에서 유전적 표현의 변이가능성의 분자적 메커니즘과 생물학적 기능
4. 유전적 결정론, 베르나르의 결정론, 라플라스의 결정론
5. 세포분화의 다윈주의 모형의 컴퓨터 시늉내기
6. 암의 발생에서 무작위 유전자 발현의 역할
7. 유전자 발현의 확률론적 모델에서 확률의 대상적 해석
8. 결정론을 넘어선 필연성과 무작위성: 계몽사조와 분자생물학
기회 되는 대로 더 살펴보면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자크 모노의 '우연' 개념에 대한 분석으로 아래 논문이 유익합니다.
Coffman, J.A. On the Meaning of Chance in Biology. Biosemiotics 7, 377–388 (2014).
https://doi.org/10.1007/s12304-014-9206-z" target="_blank" rel="noopener">https://doi.org/10.1007/s12304-014-9206-z
9장 발췌 아래 답글로 다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만, 오늘(1월 31일) 이야기 나누던 중에 제가 루이 알튀세르와의 논쟁에 대해 말씀드린 내용은 Carsten Strathausen (2017) Bioaesthetics: Making Sense of Life in Science and the Arts 2장 "마르크스주의와 생물학"에 상세하게 나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는 대로 정리해서 글을 올려보도록 애쓰겠습니다.
첨부파일 : Bioaesthetics_-Making-Sense-of-Life-in-Science-and-the-Arts-Carsten-Strathausen.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