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피라미드를 노예가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 환경문제에서 역사, 문명사의 중요성
작성자
neomay33
작성일
2021-11-14 08:54
조회
1687
우리는 왜 피라미드를 노예가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요?
어제 모임에서 나온 얘기때문에 좀 찾아봤습니다. 현재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식민주의 등을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이나 진시황 시기, 로마제국까지 올라가서 같은 것으로 보는 얘기가 나왔었거든요.
현재의 화석연료에 기반한 전지구적인 수탈적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팽창으로 인한 환경문제, 정치와 인권문제 같은 것을, 인간은 원래 나쁘고 늘 그래왔다고 봐버리면 현재의 문제와 원인 파악을 제대로 할 수 없고 범인을 도망치게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하여튼, 팩트 확인을 위해 잠시 찾아봤는데 자료가 아주 많네요. 가디언지의 글 "Great Pyramid tombs unearth 'proof' workers were not slaves"을 참조해서 짧게 정리해봤습니다.
위에 링크한 가디언지의 2010년 기사에 따르면 피라미드를 지은 사람들의 무덤이 1990년 쯤 관광객에 의해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가 2010년에 나온 걸 보면 이런 사실을 밝히는 데 20년은 걸렸나봅니다. 피라미드를 지은 사람들은 가난하고 매우 힘겨운 노동을 해서 병에 걸렸고 일찍 죽기는 했지만 노예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집트 피라미드를 노예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믿음은 두 가지에서 왔다고 하네요. 하나는 헐리우드의 영화이고 또 하나는 이스라엘 총리의 발언. 헐리우드 자본을 유대계가 쥐락펴락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신화의 뿌리는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루살렘 히브루 대학의 고고학자 아미하이 마자르에 따르면, 1977년 당시 이집트를 방문한 이스라엘 총리 Menachem Begin가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마자르 교수는, 피라미드가 지어질 당시에 유대인이 없었기 때문에 유대인이 피라미드를 지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주장을 하는 데에는 구약성서의 구절때문인 것으로 의심됩니다. 구약성서의 Exodus(출애굽기)에 "So the Egyptians enslaved the children of Israel with backbreaking labour"라는 구절이 있고 파라오가 그들을 건축물을 짓는 데 투입했다고 나온다고 하는데요. 마자르 교수는 "유대인들이 뭔가 지었다면 그것은 아마 출애굽기에 언급된 람세스의 도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치든 환경문제든 사태 파악을 하는 데는 역사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를 보지 않으면 현재가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탈성장을 얘기하려면 왜 우리가 성장을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성장주의가 도대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져왔는지 봐야 하는 거지요.
어제 녹색문명공부모임에서 본 책 <디그로쓰>에는 짧게만 나왔는데,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까지 식민지를 찾아 떠나게 된 배경에는 흑사병이 있습니다. 흑사병 이후 높아진 농민의 지위를 뺏고 축적을 하기 위해 지배층이 추진한 인클로저 운동은 1800년대까지 거의 300년 동안 이루어져 왔다고 합니다.
콜럼부스가 인도를 찾아 떠난 것도 인클로저가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국내 여건이 나빠진 지배층이 밖으로 자원을 찾아 떠난 것입니다.
이 시기 동안 공유지, 공유물(commons)를 뺏기만 한 게 아니라 지배층을 위해 일하게 만들기 위해 정치, 철학, 윤리 등 온갖 작업이 다 이루어진 것도 확인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중국과 인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도 엄청난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중국은 유럽 사람들과 무역하고 교류할 이유가 없었고 인도 사람들은 사는 데 별로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죽도록 일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역사책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 나라, 그런 사람들을 유럽 제국주의 경제체제에 포섭하기 위해 식민지에서 인클로저를 하고, 뺏고 노동으로 내몰았다는 것입니다. 제이슨 히켈은 <적을수록 풍요롭다>에서, 유럽의 인클로저는 자국에서 이루어진 식민지화이고 식민지에서 이루어진 것은 다른 나라에서 이루어진 인클로저라고 쓰고 있는데요. 매우 간결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디그로쓰>를 읽으면서, 새삼 역사와 문명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좀 느끼게 되었습니다. 현재를 당연하고,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변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현재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왜 그런가 들여다보려면 뒤를 돌아봐야한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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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억에 떠올린 건 칼 폴라니의 <대전환>이었습니다.
성장주의의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애초부터 모든 것이 성장과 발전을 위해 존재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 속에 화폐경제가 있었고 시장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자본주의 체제의 영속성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자본주의 체제가 근대 과학혁명과 함께 등장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실상은 좀 과격한 주장인데 1930년대에 러시아의 역사학자 보리스 헤센은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발흥과 맞물린다는 주장을 펼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7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근대과학과 자본주의의 연결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너무 뭉뚱그려져 있어서 그런 추상적인 주장은 그리 쓸모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신 18세기말 증기기관이 등장하고 철도와 전신이 사람들의 삶을 장악하면서 1830년대에 비로소 소위 ‘과학자(scientist)’라 부르는 집단이 생겨났다는 점이 중요하게 보입니다. 동아시아에서 과학기술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 엄청난 힘은 결국 세상을 바꾸는 문명의 힘으로 오해되었습니다. 그리고 과학기술로 무장한 서구열강을 따라가야 한다는 잘못된 신념이 동아시아 특유의 ‘성장 이데올로기’로 변모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자들이 노예가 아니라 임금노동자였다는 것은 이제는 꽤 알려진 일이지만, 여전히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보편적이었는가 하는 문제는 고민거리입니다.
(The Pyramid Builders of Ancient Egypt: A Modern Investigation of Pharaoh's Workforce [ https://amzn.to/3ciqnNi])
여하간 ‘성장’이란 관념은 끊임없는 이윤율의 하락 속에서 모든 것을 상품으로 바꾸어 잉여가치를 만들어내려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이상이란 생각을 버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되려면 자본이 있어야 할 텐데, 그 최초의(?) 자본이 인클로저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게 역사나 경제학에서 보편적이겠죠? 그걸 애덤 스미스는 '선행축적', 마르크스는 '본원적 축적'이라고 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요. <적을수록 풍요롭다>에 나오더라구요.
칼 폴라니의 책도 녹색문명공부모임에서 보면 좋을텐데, 너무 어려울 것 같네요. ^^;
칼 폴라니의 대전환을 함께 읽은 적이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비그포르스도 함께 보았던 것 같습니다. 폴라니의 혜안을 다시 돌아보는 것이 유익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