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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더 나은 앎으로 푸른 미래를 가꾸는 사람들의 공부모임

녹색문명공부모임

[책꼽문] 책새벽-화/금. 『세계철학사 3』 5장. 표현주의의 두 길.

모임 정리
책새벽-금
작성자
neomay33
작성일
2024-11-28 14:13
조회
308

녹색아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화/금' 시즌4에서 『세계철학사 3 - 근대성의 카르토그라피』(이정우. 2021. 길)을 읽습니다.

매주 읽는 내용 중 참여하시는 분들이 꼽아주신 책꼽문을 모아 이곳에 정리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책 읽으시는 데 참고해주시고요, 모임 공지는 웹사이트 맨 위 '일정' 메뉴로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참가 문의 : 녹색아카데미 greenacademy.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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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여는 말

1부. 자연의 새로운 상
1장. ‘과학기술’의 탄생
2장. 근대적 합리성의 탄생
1절. 합리주의 인식론
2절. 기계론적 자연철학
3장. 과학혁명의 전개
1절. 힘의 과학과 질의 과학
2절. 새로운 과학혁명

2부. 표현의 형이상학
4장. 환원에서 표현으로
5장. 표현주의의 두 길
1절. 모나드의 존재론
2절. 모나드들의 상호 표현
3절. 신(神)에 대한 변론
6장 기학적 표현주의

3부. 경험적인 것과 선험적인 것
7장. 실학의 시대
8장. 계몽의 시대
9장. 선험적 주체의 철학

4부. 시민적 주체와 근대 정치철학
10장. 시민적 주체의 탄생
11장. 자유냐 평등이냐
12장. 왕조에서 국민국가로

맺는 말



5장. 표현주의의 두 길


p.239-240.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결국 스피노자를 극복하고 그가 해체하고자 했던 전통을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재구축하려 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론적으로는 제작적 세계관의 부활을, 실천적으로는 기독교 왕국의 재구축을 꿈꾼 것이었다. …

1676년 가을에 있었던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만남은 철학사상 가장 극적이고 의미심장한 만남들 중 하나이다. … 라이프니츠는 이 며칠간의 만남에서 자신의 시대에 창조되고 있던 이 철학이 명시적으로 또 함축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사유가 얼마나 반-시대적인가를 알아채고 경악과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

우리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반-스피노자주의로 파악함으로써 그 사유의 전체 정향을 분명하게 포착할 수 있다.

1절. 모나드의 존재론


§1. 제작적 세계관의 부활


p.241.
모든 것을 신에게 ‘귀일’시킨다는 초월적 측면에서는 일원론일 수 있지만, 세계 전체에 대한 설명을 놓고 본다면 다원론이다. 아낙사고라스의 세계에서 그랬듯이, 라이프니츠의 세계에는 질적으로 다른 무수한 실체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 모두가 ‘모나드’로 불린다는 점에 초점을 맞출 경우 사실상 ‘신과 모나드들’이라는 이원 구도라고 할 수 있지만, 모나드들의 구체적 내용에 초점을 맞출 경우 그의 사유는 무한한 질적 차이를 인정하는 다원론이다.


§2. 모나드란 무엇인가


p.243.
모나드 개념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것이 질적 연속체라는 점에 있다. … 모나드-연속체는 무한한 질들로 되어 있는 연속체이다. … 하나의 모나드는 질적으로 다른 무수한 빈위(賓位; attribut)들로 구성된다. 이 ‘질적 복수성’은 곧 내적 복수성이다. … 

모나드는 논리적으로 분석 가능할지언정 물리적으로 분할 가능하지는 않다. 라이프니츠에게는 분할 불가능한 개체(in-dividuum)-임이 실체-임의 핵심적인 규준이다. … 훗날 리만, 베르그송, 들뢰즈 등에 의해 다듬어지는 ‘다양체’ 개념의 전신을 이룬다.


§3. 가능세계론


p.248.
신의 ‘의지’를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 이 세계는 우연적인 것 또는 가능적인 것이, 요컨대 선택된 것이 되어야 했다. 세계가 우연적이 됨으로써 솎아내어진 필연성, 세계가 우연적임에도 역설적으로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 이유—말하자면 ‘우연성의 필연성’—는 모두 신으로 귀속되어야 했다. …

결국 이 논리에서는 세계를 우연적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오히려 신의 권능은 더욱더 위대해진다. 이렇게 천문학적 법칙성도, 생멸학적 이치도, 또 역사적 흐름도 모두 세계로부터 솎아내어져 신의 의지로 귀속되어야 했던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를 극복하기 위해 이 사유 노선을 잇고자 했다.


2절. 모나드들의 상호 표현


§1. 상호 표현


p.251-253.
라이프니츠가 중세적인 제작적 세계관을 재공식화하고자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사유에는 생성존재론적인 측면 또한 내재한다. 바로 어떤 모나드이든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곧 그것의 빈위들이 펼쳐진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 모나드의 펼쳐짐은 상호 표현을 함축한다. … 이 함께—펼쳐짐을 라이프니츠는 ‘표현’ 또는 ‘상호 표현(s’entr’expression)’이라 부른다. …

모나드들의 상호 표현이란 결국 서로가 서로를 번역함으로써 상관적으로 표현된다는 것, 함께—맞물려—펼쳐진다는 것을 뜻한다.


§2. 지각의 이론


p.255.
스피노자가 의식의 유무를 둘러싸고서 ‘욕동’과 ‘욕망’을 구분했듯이, 라이프니츠는 의식 유무를 기준으로 ‘지각’과 ‘통각’을 구분한다. … 한 모나드는 결국 우주 전체를 지각한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모나드의 빈위들은 다른 무한한 빈위들과 맞물려 우주 전체를 표현하고 결과적으로 우주 전체를 지각한다.

하지만 경험상 각 개체들은 우주의 일부분만을 지각할 뿐이다. 라이프니츠는 일상적 맥락에서의 이 지각을 ‘통각’이라고 불러 구분한다. 


§3. 영혼과 신체


p.256.
정신 수준의 모나드인 인간에게 신체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라이프니츠에게 신체와 정신은 데카르트에게서와 같은 두 실체를 구성하지 않는다. 또, “정신은 신체 변양들의 관념”이라고 했던 스피노자의 구도와도 다르다. 그에게 신체는 무수한 모나드들의 집합체이며, 정신은 신체를 ‘표현’한다. 즉, 정신과 신체는 인과관계를 맺지 않으며 단지 표현의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모나드들의 표현이 이미 신에 의해 조율된 것이라면, 정신과 신체의 관계 역시 당연히 이런 조율에 입각해 이해된다. 이로부터 유명한 ‘예정조화’의 이론이 등장한다. 라이프니츠에게서 예정조화란 단순한 사변의 결과가 아니라 모든 모나드들이 우주 전체를 표현한다는 그의 표현주의 존재론으로부터 필연적으로/논리적으로 따라 나오는 귀결일 뿐이다.


§4. 인식론


p.258.
라이프니츠의 인식론 역시 관념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idée’를 ‘이데아’로서가 아니라 능동적인 방식으로 즉 인식 주체가 사물들을 사유하기 위해 구사하는 관념으로 이해한다.


p.259.
라이프니츠의 용어법은 데카르트의 그것과 또 스피노자의 그것과 달라 혼동을 준다. 라이프니츠에게서 ‘명석한 관념과 애매한 관념’은 데카르트의 판명한 관념과 모호한/혼란스러운 관념의 쌍에 더 가깝다.
…
데카르트에게 판명한 관념이란 분석 가능한 관념을 뜻하며, 모호한/혼란스러운 관념은 분석 불가능한 관념을 뜻한다. … 이에 비해서 라이프니츠의 존재론에서 모든 존재자들은 분석 가능하다.
…
라이프니츠는 한 관념이 끝까지 분석되었을 경우를 ‘적합한’ 인식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런 인식은 신에게서만 가능하다.


3절. 신(神)에 대한 변론


p.263.
라이프니츠 실천철학의 핵심은 신의 정의와 인간의 자유・도덕을 어떻게 동시에 긍정하고 조화시킬 것인가에 있었다.


§1. 결정론과 자유・도덕


p.263.
라이프니츠 사유의 핵은 “모든 것/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 그이 사유는 “초-합리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 하지만 하나의 문제가 솟아오른다. 세계(들)의 모든 것이 어차피 신에 의해 다 결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도덕적인 책임이란 성립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도덕적 책임이란 자유의지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p.264-265.
라이프니츠는 그의 사유가 잉태한 이 난제를 둘러싸고 새로운 형태의 변신론을 펼친다. …

라이프니츠의 문제는 이것이다: 충족이유율을 근간으로 하는 결정론적 세계 위에서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도덕을 정초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결국 이 세계가 가능한 세계들 중 최선의 세계라는 생각에 연결된다. 인간의 자유와 도덕의 근거는 바로 최선의 세계에서 가장 잘 확보된다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2. 자유의 조건들


p.269-270.
라이프니츠는 신이 창조한 이 세계가 결정론적이긴 하지만 우연성을 배제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우선 절대적 필연과 가설적/우연적 필연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절대적 필연은 모든 가능세계들에서 참이지만, 가설적 필연은 한 가능세계 내에 포함되는 필연이다. 전자는 우연성을 배제하지만, 후자는 우연성 내에서 성립하는 필연성이다.
…
라이프니츠는 가설적 필연(이 세계가 내포하는 결정성)이 우연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이 사실로부터 우리가 자유롭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3.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p.273-274.
라이프니츠가 제시한 제작적 세계관은 어떤 면에서는 신과 피조물들이라는 중세적 맥락보다는 오히려 인간과 기계라는 현대적 맥락에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 그것이 제작적 형이상학인 한에서 인간과 기계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해명하는 데 많은 통찰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스피노자가 중세적인 부품들을 가지고서 근대적인 집을 지었다면, 라이프니츠는 근대적인(차라리 현대적인) 부품들을 가지고서 중세적인 집을 짓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는 전체적인 철학체계로는 스피노자의 길을 따르면서, 라이프니츠가 만들어낸 천재적인 부품들을 어떻게 선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5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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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댓글 내가 쓴 댓글
우와! 자세한 자료, 설명들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2025.06.09
1. 변별체의 존재 양상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공부할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바로 위의 답글에 쓴 물의 온도를 재는 상황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장회익 선생님의 '변별체' 개념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측정장치 개념에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요약하여 추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관적으로는 모종의 측정장치를 염두에 두면 이해가 더 쉬웠던 것 같습니다. 입자물리학에서는 매우 다양한 측정장치 또는 검출장치를 사용합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 세미나에서 인용하신 안개상자(cloud chamber)나 거품상자(bubble chamber)가 전형적인 예입니다. 겹실틈 실험에서 사용하는 사진건판도 변별체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loud_chamber https://en.wikipedia.org/wiki/Bubble_chamber 하지만 변별체가 측정장치/검출장치와 동의어는 아닙니다. 변별체는 물리적 작용을 통해 뭔가 흔적을 남길 수 있어야 하지만, 또 동시에 그것을 읽어내서 인식주체의 경험표상영역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변별체는 대상과 인식주체 사이에 놓인 가교 내지 창문의 역할을 합니다. (제가 장회익 선생님의 제안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진은 거품상자에서 기본입자가 만들어내는 궤적을 사진으로 찍은 것입니다. [사진 출처: pinterest]
2025.06.03
2.의 질문이 흥미롭습니다. '이해'라는 문제를 직접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대상과 변별체의 만남(조우)은 원래 인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그것을 알아채거나 기록하거나 기억하거나 그로부터 지식을 얻는 것과 전혀 무관하게 대상과 변별체가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하기에 이 세계 속의 수많은 물질적 존재자들은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부딪치고 멀어져갈 것입니다. 아주 먼 우주에서 행성과 혜성이 충돌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여하간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흔적이 남습니다. 그런데 그 물질적 존재자에 생긴 흔적을 인식 주체인 '나' 또는 서술세계가 받아들이면 이제 그 흔적이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집니다. 인식주체가 없었더라면 그냥 물질적 충돌에 불과했을 것이 이제 '사건'이 되어 버립니다. 미묘하지만, 변별체와 경험표상영역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변별체에 남은 흔적과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진 정보는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50쪽의 그림 1-1에서 물질세계와 서술세계를 구별하는 점선을 넘나듭니다. 두 개의 네모 사이의 위아래 양쪽방향 화살표의 양면성입니다. 물질적 측면에서 보면 대상과 변별체가 만나서 흔적을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건'과 '빈-사건'이 일어납니다. 특정 변별체에 흔적이 남지 않는 것도 흔적이 남는 것 못지 않은 정보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해'라는 말이 직접 연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세미나에서 인용한 폰노이만의 온도 측정의 예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재려면 온도계를 넣어 수은/알콜의 높이를 보아야 합니다. 이 때 비커의 물이 대상이고 온도계는 변별체가 됩니다. (2) 온도계 높이를 알기 위해서는 전등의 빛이 수은/알콜의 경계면에 닿았다가 눈의 망막으로 와야 합니다. 이 때 온도계의 높이는 대상이 되고 빛(빛알)이 변별체가 됩니다. (3) 빛이 망막에 입사되면 망막에 있는 시신경에 나트륨 원소가 모이거나 흩어져서 전류가 만들어집니다. 이 때 빛이 대상이라면 시신경의 전위차는 변별체가 됩니다. (4) 시신경의 전위차는 뇌의 피질에서 뉴런을 발화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대목에서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읽어냅니다. (5) 그 다음 단계가 어렵습니다. 온도계의 높이든, 망막에 생기는 흔적이든, 시신경의 전위차든, 뉴런의 발화든 여하간 어느 단계에서 흔적의 기록이 정보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과정은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32-33쪽에 서술된 것처럼 역학 모드와 서술 모드를 구별합니다. 하지만 서술 모드만으로는 '이해'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여하간 세 번째 모드로서 '의식 모드'가 작동을 해야 비로소 '이해'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해'라는 문제는 매우 어렵고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인츠 폰푀르스터의 <이해를 이해하기> 같은 저작이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Heinz Foerster (2003) Understanding Understanding: Essays on Cybernetics and Cognition. Springer. https://doi.org/10.1007/b97451
2025.06.03
3. 3차원 vs. 2+1차원에 대해서는 아래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고대그리스-이슬람-중세유럽으로 이어지는 자연철학의 전통에서 세상의 중심은 지구였습니다. 지구 주위에는 일곱 행성(七曜) 즉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의 천구가 있고, 그 바깥에는 항성 천구가 있습니다. 지구는 네 개의 권역(구 껍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달의 천구 바로 아래에는 불의 권역이 있고, 그 아래로 차례로 숨/바람의 권역, 물의 권역, 흙의 권역이 있습니다. 뒤의 세 권역은 현대의 기권(氣圈, Atmosphere), 수권(水圈 Hydrosphere), 지권(地圈,Geosphere)에 대략 연결됩니다. 불의 권역은 현대의 열권(熱圈, Thermosphere)이나 전리층과 비슷합니다. 여하간, 세상(우주)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이며, 이 중심을 향하는 방향이나 이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이 곧 수직 방향입니다. 이와 달리 지표면의 동서남북은 어느 쪽으로도 대등합니다. 이것이 바로 (2+1)차원의 세계입니다. 세계(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생겨나면서 수직 방향도 동서남북과 대등하지 않을까 하는 관념이 펼쳐졌습니다. 그런 생각을 펼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르네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공간의 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세 개의 숫자 $(x, y, z)$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비단 눈 앞에 펼쳐지는 육면체 모양의 방 안에서의 위치만이 아니라 온 우주 전체에서의 위치에도 해당합니다. 그러면 수직 방향이나 동서 방향이나 남북 방향이 모두 대등합니다. 데카르트에게 우주는 (2+1)차원이 아니라 3차원이었습니다. [그림출처: Peter Apian (1529) Cosmographiae introductio]
2025.06.03
중요한 지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또 몇 가지 글에 대한 링크도 있었구요. 따로 답글도 있었는데 사라졌더라구요. 저의 부족한 글도 여하간 토론과 대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리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몇 자 적어주시면 어떨까요?
202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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