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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더 나은 앎으로 푸른 미래를 가꾸는 사람들의 공부모임

녹색문명공부모임

[책꼽문] 책새벽-화/금. 『세계철학사 3』 1장 - 2절. ‘외물’에의 지향 (p.44-74)

모임 정리
책새벽-금
작성자
neomay33
작성일
2024-10-17 12:59
조회
312

녹색아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화/금' 시즌4에서 『세계철학사 3 - 근대성의 카르토그라피』(이정우. 2021. 길)을 읽습니다.

매주 읽는 내용 중 참여하시는 분들이 꼽아주신 책꼽문을 모아 이곳에 정리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책 읽으시는 데 참고해주시고요, 모임 공지는 웹사이트 맨 위 '일정' 메뉴로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참가 문의 : 녹색아카데미 greenacademy.kr@gmail.com 






목차

여는 말

1부. 자연의 새로운 상
1장. ‘과학기술’의 탄생
1절. ‘외물’에의 지향
2절. ‘자연과학적 사유’의 탄생: 근대 역학의 존재론
2장. 근대적 합리성의 탄생
3장. 과학혁명의 전개

2부. 표현의 형이상학
4장. 환원에서 표현으로
5장. 표현주의의 두 길
6장 기학적 표현주의

3부. 경험적인 것과 선험적인 것
7장. 실학의 시대
8장. 계몽의 시대
9장. 선험적 주체의 철학

4부. 시민적 주체와 근대 정치철학
10장. 시민적 주체의 탄생
11장. 자유냐 평등이냐
12장. 왕조에서 국민국가로

맺는 말



1장. '과학기술'의 탄생

2절. '자연과학적 사유'의 탄생: 근대 역학의 존재론


§1.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


p.45-46.
아리스토텔레스 운동 개념의 가장 일반적인 구도는 잠재태가 현실태의 인도를 받아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그것의 완성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개체의 질료는 그러한 완성태로 나아갈 수 있는 잠재성(‘뒤나미스’)을 안고 있고, 그것을 형상=현실태(‘에네르게이아’)는 이 잠재성을 이끌어 완성태로 완결시킨다.
…
…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운동은 바로 생명체들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운동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생성의 세계는 곧 생명의 세계이다. 그는 이런 관점에 입각해서 세계를 보았고, 그 세계를 총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이러한 총체성은 위대함인 동시에 약점)


p.46-47.
근대 역학이 극복하자고 한 운동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 운동 개념 전체가 아니라 세 번째의 운동인 장소 이동이다. 이제 근대 역학에서 문제가 된 것은 더 이상 ‘장소 이동’이 아니라 ‘공간 이동’ 또는 ‘위치 이동’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 극복의 길


p.48.
아리스토텔레스와 대조적으로 근대 역학은 사물의 본성에 대한 사유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갈릴레오는 물체의 운동은 그것의 본성과 무관함을 강조했다. … 그것은 단지 ‘외부적 힘’과 ‘관성’에 따라 움직일 뿐이며 또 그것에 물리학적으로 고유한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질량’일 뿐이다. … (물리학적 맥락에서 ‘운동’이란 본성이 아니라 단지 ‘상태’일 뿐)
…
문제의 초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명의 차원과 물리의 차원 사이에 존재하는 존재론적 분절을 예민하게 고려하기보다는 연속적인 방식으로 파악했다는 점 ... 근대 역학은 이 체계에서 물리적 측면을 따로 떼어내어 그 부분을 탐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3. 근대적 역학의 탄생


p.52-53.
갈릴레오가 운동에 대한 어떤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사유의 핵심은 운동의 문제와 힘의 문제를 자신의 탐구 영역에서 배제해버린 데에 있다.

이 점에서 케플러와 대조적이다. 케플러는 헤르메스주의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우주(태양계)에 포괄적인 동역학적 모델을 적용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헤르메스주의를 비롯한 기존의 형이상학들을 자신의 탐구에서 일소하고자 했기 때문에, ... 운동을 수학적으로 파악하는 것에 탐구를 국한했다. … 갈릴레오는 인식의 대상을 현상계에 국한했다.


§4. 철학자에서 과학자로


p.58~59.
갈릴레오에게 극적인 픽션들을 덧붙이고, 나아가 마치 과학의 순교자나 되는 듯이 날조한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만들어진 이유...? 그것은 세계가 점차 자본주의적—과학기술적 세계로 화해 가면서 자본주의—과학 기술연합체가 자신들의 '시원'이라고 생각한 인물에게 바치는 오마주에서 유래했다. ...

이와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갈릴레오야말로 오늘날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폐해의 '원흉'이라고 지목하기도 한다. 핵무기, 살인가스, 산업재해를 비롯한 숱한 직접적 고통들은 물론이고, 세계를 양화하고 조작해서 일종의 기계로 만들어 삶의 의미와 가치를 황폐하게 만들어 버린 근대 문명의 출발점이 바로 갈릴레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후대의 경험을 갈릴레오에게 사후적으로 투사한 것일 뿐이다. 앞의 과정이 자본주의—과학 기술이 만들어낸 문명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날조라면, 이 지탄은 바로 이 문명의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갈릴레오에게 투사한 잘못된 비난이라고 할 수 있다.


보론 1: 과학에서의 실험의 중요성


p.60-62.
데카르트가 빛을 다룬 방식은 그의 사유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코기토’와 ‘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res extensa’(물질-공간 쪼가리들)로 본 그의 형이상학에 충실하게도, 그는 우선 ‘빛’이라는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신화적, 종교적, 형이상학적, 문학적 요소들을 모두 제거한다. 그러고서 빛을 철저하게 그의 기계론에 입각해 설명한다.
…
그는 우선 인위적으로 무지개를 만들어서 그것을 관찰하고, 그것의 심층적 메커니즘을 모델화했으며, 그 메커니즘에 입각해 이론을 구성했다. 그리고 다시 여러 실험들을 조작해 그 데이터를 모으고, 그 데이터를 해석함으로써 무지개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확정하고자 한 것이다.


보론 2: 과학기술과 ‘진보’

p.66-69.
… “왜 동양, 특히 동북아에서는 과학기술적 사유가 발달하지 못했는가?”라는 물음 …
그러나 엄밀하게 말한다면, 이런 식의 물음은 잘못 제기된 것이다. … 단지 사후적으로 제기된 물음일 뿐 … “A가 왜 발생했는가?”라는 물음과 “A가 왜 발생하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은 대칭적인 물음이 아니다. 전자의 물음은 실제 존재하게 된 것에 대한 물음 … 후자의 물음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물음이다. 후자의 물음은 존재하는 것들 바깥의 그 어떤 것에 대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경우 우리는 차라리 “왜 하필이면 ‘왜 A가 생겨나지 않았는가?’라고 묻는가?”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물음에는 또한 일정한 내포가 깃들어 있기도 하다. ...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 역사에서 긍정적인, 때로는 거의 당위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판단을 은연중에 깔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 특히 기술문명이 가져온 세계가 과연 긍정적이고 심지어 당위적인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

그래서 … 오히려 물음을 반대로 던져야 할 것이다. “왜 서양에서는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비전이 몰락하고, 외물에 집착함으로써 마음을 잃어버리는 과학기술이 기형적으로 발달했는가?”라고. 그래서 자연 파괴, 인간성 소외를 비롯한 숱한 고통들을 가져왔느냐고. 그러나 오늘날 이런 식으로 물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일까? 그것은 우리가 자본주의적 가치에 이미 강하게 세뇌되어 있기 때문이다.

(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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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자세한 자료, 설명들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2025.06.09
1. 변별체의 존재 양상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공부할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바로 위의 답글에 쓴 물의 온도를 재는 상황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장회익 선생님의 '변별체' 개념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측정장치 개념에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요약하여 추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관적으로는 모종의 측정장치를 염두에 두면 이해가 더 쉬웠던 것 같습니다. 입자물리학에서는 매우 다양한 측정장치 또는 검출장치를 사용합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 세미나에서 인용하신 안개상자(cloud chamber)나 거품상자(bubble chamber)가 전형적인 예입니다. 겹실틈 실험에서 사용하는 사진건판도 변별체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loud_chamber https://en.wikipedia.org/wiki/Bubble_chamber 하지만 변별체가 측정장치/검출장치와 동의어는 아닙니다. 변별체는 물리적 작용을 통해 뭔가 흔적을 남길 수 있어야 하지만, 또 동시에 그것을 읽어내서 인식주체의 경험표상영역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변별체는 대상과 인식주체 사이에 놓인 가교 내지 창문의 역할을 합니다. (제가 장회익 선생님의 제안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진은 거품상자에서 기본입자가 만들어내는 궤적을 사진으로 찍은 것입니다. [사진 출처: pinterest]
2025.06.03
2.의 질문이 흥미롭습니다. '이해'라는 문제를 직접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대상과 변별체의 만남(조우)은 원래 인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그것을 알아채거나 기록하거나 기억하거나 그로부터 지식을 얻는 것과 전혀 무관하게 대상과 변별체가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하기에 이 세계 속의 수많은 물질적 존재자들은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부딪치고 멀어져갈 것입니다. 아주 먼 우주에서 행성과 혜성이 충돌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여하간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흔적이 남습니다. 그런데 그 물질적 존재자에 생긴 흔적을 인식 주체인 '나' 또는 서술세계가 받아들이면 이제 그 흔적이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집니다. 인식주체가 없었더라면 그냥 물질적 충돌에 불과했을 것이 이제 '사건'이 되어 버립니다. 미묘하지만, 변별체와 경험표상영역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변별체에 남은 흔적과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진 정보는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50쪽의 그림 1-1에서 물질세계와 서술세계를 구별하는 점선을 넘나듭니다. 두 개의 네모 사이의 위아래 양쪽방향 화살표의 양면성입니다. 물질적 측면에서 보면 대상과 변별체가 만나서 흔적을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건'과 '빈-사건'이 일어납니다. 특정 변별체에 흔적이 남지 않는 것도 흔적이 남는 것 못지 않은 정보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해'라는 말이 직접 연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세미나에서 인용한 폰노이만의 온도 측정의 예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재려면 온도계를 넣어 수은/알콜의 높이를 보아야 합니다. 이 때 비커의 물이 대상이고 온도계는 변별체가 됩니다. (2) 온도계 높이를 알기 위해서는 전등의 빛이 수은/알콜의 경계면에 닿았다가 눈의 망막으로 와야 합니다. 이 때 온도계의 높이는 대상이 되고 빛(빛알)이 변별체가 됩니다. (3) 빛이 망막에 입사되면 망막에 있는 시신경에 나트륨 원소가 모이거나 흩어져서 전류가 만들어집니다. 이 때 빛이 대상이라면 시신경의 전위차는 변별체가 됩니다. (4) 시신경의 전위차는 뇌의 피질에서 뉴런을 발화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대목에서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읽어냅니다. (5) 그 다음 단계가 어렵습니다. 온도계의 높이든, 망막에 생기는 흔적이든, 시신경의 전위차든, 뉴런의 발화든 여하간 어느 단계에서 흔적의 기록이 정보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과정은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32-33쪽에 서술된 것처럼 역학 모드와 서술 모드를 구별합니다. 하지만 서술 모드만으로는 '이해'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여하간 세 번째 모드로서 '의식 모드'가 작동을 해야 비로소 '이해'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해'라는 문제는 매우 어렵고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인츠 폰푀르스터의 <이해를 이해하기> 같은 저작이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Heinz Foerster (2003) Understanding Understanding: Essays on Cybernetics and Cognition. Springer. https://doi.org/10.1007/b97451
2025.06.03
3. 3차원 vs. 2+1차원에 대해서는 아래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고대그리스-이슬람-중세유럽으로 이어지는 자연철학의 전통에서 세상의 중심은 지구였습니다. 지구 주위에는 일곱 행성(七曜) 즉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의 천구가 있고, 그 바깥에는 항성 천구가 있습니다. 지구는 네 개의 권역(구 껍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달의 천구 바로 아래에는 불의 권역이 있고, 그 아래로 차례로 숨/바람의 권역, 물의 권역, 흙의 권역이 있습니다. 뒤의 세 권역은 현대의 기권(氣圈, Atmosphere), 수권(水圈 Hydrosphere), 지권(地圈,Geosphere)에 대략 연결됩니다. 불의 권역은 현대의 열권(熱圈, Thermosphere)이나 전리층과 비슷합니다. 여하간, 세상(우주)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이며, 이 중심을 향하는 방향이나 이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이 곧 수직 방향입니다. 이와 달리 지표면의 동서남북은 어느 쪽으로도 대등합니다. 이것이 바로 (2+1)차원의 세계입니다. 세계(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생겨나면서 수직 방향도 동서남북과 대등하지 않을까 하는 관념이 펼쳐졌습니다. 그런 생각을 펼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르네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공간의 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세 개의 숫자 $(x, y, z)$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비단 눈 앞에 펼쳐지는 육면체 모양의 방 안에서의 위치만이 아니라 온 우주 전체에서의 위치에도 해당합니다. 그러면 수직 방향이나 동서 방향이나 남북 방향이 모두 대등합니다. 데카르트에게 우주는 (2+1)차원이 아니라 3차원이었습니다. [그림출처: Peter Apian (1529) Cosmographiae introductio]
2025.06.03
중요한 지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또 몇 가지 글에 대한 링크도 있었구요. 따로 답글도 있었는데 사라졌더라구요. 저의 부족한 글도 여하간 토론과 대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리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몇 자 적어주시면 어떨까요?
202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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