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질문] '국소질서' 개념에 관한 질문들(Q4 & Q5)
Q4. (일정한 조건에서는) 물이 얼음이 되는 것이 엔트로피가 더 높은 상태이라 한다면, 얼음은 국소질서가 아닌가?
Q5. 영하에서는 얼음이 되고, 상온에서는 물이 되었다가, 100 ℃ 이상에서는 수증기가 되는 것이 해당 온도에서 가장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 즉 가장 그럼직한 상태라고 한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대부부의 물질 구조들은 국소질서라고 할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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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에서 "스스로 짜인 고비성(자기조직 임계성) [SOC]" 이론을 간단하게 언급했습니다만, 국소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떻게 유지되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다만 이 문제는 단순히 엔트로피, 나아가 자유에너지 개념을 가지고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엔트로피와 에너지가 서로 경쟁하면서 물이 수증기로, 또는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현상을 설명할 기본 틀을 마련해 줍니다. 이런 현상을 임계현상(critical phenomena)이라 부르고, 물의 어는 점이나 끓는 점 같은 온도를 임계온도라 부릅니다. 통칭하여 임계점이라 부릅니다. 이를 순우리말로 나타낸 것이 '고비'입니다. 고비는 사전에 "일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나 대목. 또는 막다른 절정"이라고 주석되어 있습니다.
상전이와 같은 임계현상에서 임계점(고비)의 공통특징이 있습니다. 특성스케일이 없고 모든 크기에서 요동이 있으며 아주 작은 섭동에도 비정상적인 반응을 합니다. 고비성(임계성)은 외부에서 조정되는 조절 맺음변수의 특정 값에서 일어납니다. 이차상전이의 임계온도나 동역학계의 갈라침 문턱이 그런 예입니다. 연속적으로 물질이나 에너지가 공급되는 비평형상태로 유지되는 계가 외부의 조절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임계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1980년대 말에 덴마크의 물리학자 페르 박(Per Bak 1948-2002)은 이 점에 주목하여, 우리가 볼 수 있는 자연계의 질서나 구조가 그런 고비성(임계성)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과 연결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스스로 생겨난 또는 스스로 짜이는 고비성이라고 불렀습니다.
페르 박은 이것을 확장하여 1996년에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대담한 제목의 책을 냈습니다. 영어 제목은 How Nature Works: The Science of Self-Organized Criticality입니다.
페르 박의 기획이 어느 정도나 성공적일지 사람들은 여전히 진지한 탐구를 멈추지 않습니다. "스스로 짜인 고비성 50년" 같은 제목의 논문에서 이런 시도의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고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앞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을 더 비판적으로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1998년에 나온 H. J. Jensen (1998). Self-Organized Criticality: Emergent Complex Behavior in Physical and Biological Systems. Cambridge University Press.에서는 스스로 짜인 고비성을 물리계와 생물학적 계에서 나타나는 떠오름(창발) 복잡성 거동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옌센은 2023년에 새로 낸 책 Complexity Science: The Study of Emergence에서 이를 다시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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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로 다 설명이 되는가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은가 보네요. 페르 박부터 읽어 보겠습니다.
읽어나가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공부할 가치는 있으리라 믿습니다. <자연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 복잡계로 설명하는 자연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이 꽤 전에 나왔었는데, 지금은 절판되었습니다. http://aladin.kr/p/jfC7 운 좋으면 지역 도서관에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당혹스럽게도 헌 책을 최대 17만 5천원에 팔고 있군요.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106263304
12년 전에 나왔을 때 정가가 1만 6천원이었는데 열 배가 넘는 가격으로 파는 것은 너무했다 싶습니다.
우와, 그렇군요. 다행히 제겐 잘 모셔둔 페르 박 한국어판이 하나 있답니다. 어쩐지 돈 번 기분이네요. ^^
예스24에서 검색해 보니까 25만원 짜리도 있네요.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4259370
시인처럼님이 페르 박의 <자연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읽어 보겠다고 하셔서 혹시 싶어 영어책 전자도서를 올려놓습니다.
첨부파일 : How-Nature-Works_-The-Science-of-Self-Organized-Criticality-Per-Bak.pdf
저는 한국어 번역판 들고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