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꼽문] 책새벽-월-시즌4-2. 『역사란 무엇인가』 서문, 1장. (p.9-46)
녹색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월' 시즌4의 두 번째 책은 『역사란 무엇인가』(E. H. 카. 2015. 까치)입니다. 매주 읽는 내용 중 참여하시는 분들이 꼽아주신 책꼽문과 질문을 모아 챕터별로 이곳에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책 읽으시는 데 참고해주세요.
참가문의 : 녹색아카데미 greenacademy.kr@gmail.com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2015. 까치.
목차
편집자 노트
제2판 서문
1.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2.사회와 개인
3.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4.역사에서의 인과관계
5.진보로서의 역사
6.지평선의 확대
부록 E. H. 카의 자료철에서 : 『역사란 무엇인가』 제2판을 위한 노트
제2판 서문
p.9.
내가 1960년에 여섯 차례의 강연으로 구성될 『역사란 무엇인가』의 첫 번째 초고를 완성했을 때, 서구 세계는 아직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충격과 러시아와 중국에서 일어난 두 차례의 중대한 혁명의 충격 때문에 비틀거리고 있었다.
p.14.
나의 결론은, … 오늘날의 회의주의와 절망의 조류가 엘리트주의의 한 형태—위기로 인해서 자신들의 안전과 특권을 가장 현저하게 침식당해온 엘리트 사회집단의 산물, 그리고 한동안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확실한 지배권을 박탈당한 엘리트 국가들의 산물—라는 것이다.
…
문제가 되고 있는 지식인들 중 일부가 그 출신 성분에서 다른 사회집단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은 상관없다 ; 왜냐하면 그들은 지식인이 되면서 자동적으로 지식인 엘리트들에게 동화되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은 정의상 하나의 엘리트 집단이다.
1장.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p.17.
우리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할 때, 우리의 대답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 자신의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며,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해서 우리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더욱 폭넓은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일부가 된다.
p18.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열렬히 주장한 실증주의자들(positivists)은 이러한 사실 숭배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우선 사실들을 확인하고, 그러고 나서 그것들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내라고 실증주의자들은 말했다. 영국의 이런 역사관은 로크(1632-1704. 영국의 철학자)로부터 버트란드 러셀(1872-1970, 영국의 수학자,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영국 철학의 지배적인 경향이었던 경험주의적 전통과 완전히 일치했다.
경험주의적 인식론은 주체와 객체의 완전한 분리를 전제한다. 사실들은 감각적인 인상과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 관찰자에게 들어오는 것이고 또한 그의 의식과는 독립해 있다. 그 수용 과정은 수동적이다: 관찰자는 자료를 수용하고, 그러고 나서 그것을 처리하는 것이다. 쓸모 있기는 하지만 경험주의 학파의 경향을 보여주는 업적인 옥스퍼드 영어 중사전은 사실을 '결론과는 다른 경험 자료(datum of experience as distinct from conclusion)'라고 정의함으로써 그 두 과정을 명백히 분리하고 있다. 이런 것을 상식적 역사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확인된 사실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역사가는 생선장수의 좌판 위에 있는 생선처럼 문서나 비문등에 있는 사실들을 집어들 수 있다. 역사가는 그것을 모은 다음 집에 가지고 가서 자기 마음에 드는 방법으로 그것들을 요리하여 내놓는다.
p.21.
흔히 사실은 스스로 이야기한다고들 말한다. 이것은 물론 진실이 아니다. 사실은 역사가가 허락할 때에만 이야기한다 : 어떤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이며 그 순서나 전후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역사가이다. 사실이란 마대와 같아서 그 안에 무엇인가를 넣을 때까지는 서 있지 못한다고 말한 것은 피란델로(1867-1936. 이탈리아의 글작가)의 주인공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p.24.
우리는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 그러나 그 그리스가— 페르시아인이나 노예 혹은 아테네에 거주하지만 시민이 아닌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스파르타인이나 코린트인이나 테베인에게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p.27-28.
19세기의 사실 숭배는 문서들에 대한 숭배로 완성되었고 정당화되었다. 문서들은 사실의 신전 안에 있는 약속의 상자였다. … 그러나 우리가 그 무엇인가에 본격적으로 접근할 때, 이런 문서들—법령들, 조약들, 지대대장, 보고서, 공적인 통신문, 사신과 일기—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주는가?
그 어떤 문서도 고작 우리에게 그 문서의 작성자가 생각한 것을 … 말해줄 수 있을 뿐이다. … 역사가는 문서 안에 있건 없건 사실들을 처리해야만 하며, 그런 후에야 비로소 그것들을 어떻게든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역사가가 사실들을 이용하는 것은 곧 그것들의 처리과정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2024년 7월 21일 업데이트한 부분입니다.)
p.32.-33.
역사철학이라는 용어는 볼테르(Voltaire, 본명 François-Marie Arouet. 1694-1778)가 만든 것인데, 그 이후 이 용어는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나는 기왕 그 용어를 사용할 바에는 그것을 가지고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을 생각해보고 싶다. …
영국의 역사가들이 역사철학에 끌려들어가기를 거부한 이유는 역사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 의미란 절대적이고 자명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9세기의 자유주의적 역사관은 자유방임의 경제학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p.33-34.
지난 50년 동안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수많은 진지한 연구들이 있었다. 1880년대와 1890년대에 역사에서의 사실의 우월성과 자율성을 주장하는 학설에 대한 최초의 도전은 독일에서 나왔다. … 그들 중에서 딜타이(Wilhelm Dilthey)(1833-1911)는 최근 영국에서 비교적 뒤늦게 인정받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
그러나 20세기 초, 이단의 횃불은 이탈리아로 건네졌고, 그곳에서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는 독일의 거장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한 역사철학을 제창하기 시작했다.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당대사)라고 선언했는데, 그것은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p.34-35.
크로체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철학자이며 역사가인 콜링우드(1889-1943)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는 20세기에 들어와 진정으로 역사철학에 기여한 유일한 영국인 사상가였다. … 그의 원고들은 그의 사후에 수집되어 『역사의 개념(The Idea of History)』이라는 제목으로 1945년에 출간되었다.
콜링우드의 견해 : 역사철학은 ‘과거 그 자체에 관한 것이라거나 ‘과거 그 자체에 대한 역사가의 사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상호 관련되는 그 두 가지’에 관한 것이다. …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과거이다.’ 그러나 과거의 행동은, 만일 역사가가 그것의 배후에 있었던 사유를 이해할 수 없다면, 그 역사가에게는 죽은 것, 즉 의미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사유의 역사’이며, ‘역사란 사유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가 그 사유를 자신의 정신 속에 재현하는 것’이다. 역사가의 정신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거의 재구성은 경험적인 증거에 의존한다. … 그 재구성의 과정이 사실들의 선택과 해석을 지배한다.
p.42.
콜링우드는 ‘가위와 풀의 역사’에, 그리고 역사를 사실들의 단순한 편찬으로 간주하는 견해에 반대한 나머지, 위험스럽게도 역사를 인간의 두뇌에서 직조된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에 다가서게 되었고, … 조지 클라크 경이 말한 결론, 즉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역사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는 이론 대신에 역사의 의미는 무한하다는 이론, 즉 어떤 의미도 그것과 다른 의미보다 더 올바르지 않다—는 이론을 얻게 된다. …
… 어떤 산이 보는 각도를 달리 할 때마다 다른 형상으로 보인다고 해서, … 이 해석이나 저 해석이나 매한가지이며 역사의 사실들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객관적인 해석을 내릴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나중에 역사에서 객관성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 반드시 고찰하겠다.
p.44.
비전문가들은 … 이따금 나에게 역사가는 역사를 쓸 때 어떻게 작업하느냐고 묻는다. 역사가는 뚜렷이 구별되는 두 가지 단계나 기간으로 나누어 작업한다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 생각인 것 같다. 우선 역사가는 자신의 사료들을 읽고 그의 노트를 사실들로 채우는 데에 오랜 시간을 보낸다 : 그리고 나서 이 일이 끝난 다음에는 사료들을 치워놓고 노트를 꺼내 든 채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나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으며 그럴듯해 보이지도 않는다. 내 경우에는, 주요한 사료라고 생각되는 것들 중에서 몇 가지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너무나 좀이 쑤셔 … 쓰기 시작한다. 그런 후에는 읽기와 쓰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읽기를 계속하는 동안 쓰기는 추가되고 삭제되며 재구성되고 취소된다. 읽기는 쓰기에 의해서 인도되고 지시되며 풍부해진다 : 쓰면 쓸수록 나는 내가 차고 있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되고, 내가 찾고 있는 것의 의미와 연관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p.46.
… 역사가는 자신의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만들고 또한 자신의 사실에 맞추어 해석을 만드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둘 중 어느 한쪽을 우위에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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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째로 다 외워도 모자랄 책을 발췌하려니 갈등이... ^^; 그래도 어디를 고를까 찾으려다보면 책을 더 꼼꼼히 보게 되고, 여러 좋은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