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꼽문] 책새벽-월. 『역사의 역사』 "제6장.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신채호・백남운" (p.171-213)
녹색 아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월' 시즌4에서는 현재 『역사의 역사』(유시민. 2018. 돌베개)를 읽고 있습니다.
매주 읽는 내용 중 참여하시는 분들이 꼽아주신 책꼽문과 질문을 모아 이곳에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책 읽으시는 데 참고해주세요.
참가문의 : 녹색아카데미 greenacademy.kr@gmail.com
『역사의 역사』. 유시민. 2018. 돌베개.
목차
서문
프롤로그
제1장 서구 역사의 창시자, 페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제2장 사마천이 그린 인간과 권력과 시대의 풍경화
제3장 히븐 할둔, 최초의 인류서를 쓰다
제4장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 랑케
제5장 역사를 비껴간 마르크스의 역사법칙
제6장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신채호・백남운
제7장 에드워드 H. 카의 역사가 된 역사 이론서
제8장 문명의 역사, 슈펭글러・토인비・헌팅턴
제9장 다이아몬드와 하라리, 역사와 과학을 통합하다
에필로그 - 서사의 힘
제6장.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신채호・백남운
p.188.
박은식은 당대사를 기록하는 데 모든 열정을 쏟았지만 고대사를 새로 써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나라의 형체가 무너진 것은 19세기 말이었지만 정신이 무너진 것은 훨씬 오래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11년에 발표한 소설 『몽배금태조』에 이런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p.190.
당대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박은식과 달리, 신채호는 집요하게 고대사를 파고들었다. … 신채호는 박은식이 금태조의 입을 빌려 말했던 바를 행동으로 옮겼다. 망한 지 오래인 조선의 정신을 살려 내기 위해 조선의 고대사를 새로 쓴 것이다.
p.192-193.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마음의 활동 상태의 기록이다. 세계사는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요, 조선사는 조선 민족이 그렇게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다.
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는가? 주관적 위치에 선 자를 아라 하고 그 밖의 것을 비아라 한다. …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이다. 비아를 정복하여 아를 드러내면 투쟁의 승리자가 되어 미래 역사의 생명을 잇고, 이를 없애어 비아에 바치는 자는 투쟁의 패망자가 되어 과거 역사의 묵은 흔적만 남긴다. 이는 고금의 역사에 불변하는 원칙이다.” (『조선상고사』 13~14쪽)
p.195.
다음은 그(신채호)가 어떤 사료를 주로 활용했는지 보여주는 제4장의 소제목을 순서대로 추린 것이다.
1 옛 비석 참조에 대하여
2 각 서적의 상호 증명에 대하여
3 각종 명사 해석에 대하여
4 위서 판별과 선택에 대하여
5 만주・몽골・터키 여러 종족의 언어와 풍속 연구
…
투키디데스와 할둔처럼 신채호도 상충하는 문헌 기록을 비교・검토해서 사실 개연성이 높은 것을 채택했다. 언어가 살아 있는 화석으로 고대사의 사실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언어 연구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p.196.
『조선상고사』는 미완성 역사서다. 단군왕검의 건국에서 시작해 하얼빈, 안시, 평양을 거점으로 분립했던 삼조선 시대를 거쳐 …. 백제의 패망을 서술한 데서 끝났다. 만약 신채호가 역사 연구에만 집중했다면 … 민족의 통사를 썼겠지만 무장 독립 투쟁을 벌이다 옥중에서 순국했기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p.199~200.
역사는 사람이 만들지만 모든 사람이 역사에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 남다른 성취를 이루거나 빛나는 선행을 한 사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기 어려운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역사는 모든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다. 신채호의 삶도 시대 상항도 크게 비틀렸다. 그러나 그는 시대가 비튼 인생을 받아들이고 시대의 요구를 실현하려고 분투함으로써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신채호는 고대사 연구자로 활동하기에 적합한 재능을 가졌고 그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오늘날 태어났다면 작가나 철학자로도 크게 성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평생 일제 경찰과 헌병의 추적을 받으면서 무장 투쟁을 벌이는 일에 골몰했으니 화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치안유지법 위반과 유가증권 위조 혐의로 붙잡혀 법정에 산 신채호는 "민족을 위해서라면 도둑질도 정당하며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1929년 뤼순 감옥 독방에 갇힌 후 영양실조와 고문 후유증, 동상으로 혹심한 고통을 겪다가 뇌일혈로 쓰러져 지켜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사운데 눈을 감았다. 1936년 2월 21일, 그의 나이 57세였다.
그런 인생이 좋아서 그렇게 살았던 게 아니다. 일제 강점이라는 시대 상황이 그런 삶을 요구했고, 그 요구를 피할 수 없어서 그렇게 살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가 <조선상고사>를 남겼기에 우리는 그 책을 읽으면서 인간 신채호와 역사가 신채호를 느낄 수 있다. 다행이다.
(여기서부터 2024년 6월 9일 업데이트 부분입니다.)
p.206-207.
백남운은 정통 유물사관을 견지했던 식민지 조선의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스탈린이 정리한 ‘역사 발전 5단계’ 도식은 유럽 역사에 그런대로 들어맞았다. … 그러나 유럽 밖의 지역은 이 도식에 들어맞지 않는다.
…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신분제도가 있었고 관노비와 사노비가 있었지만 고대 그리스나 로마제국처럼 노예가 생산 활동의 핵심적 지위를 차지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인구의 대부분이 좁은 토지를 경작하는 소농이었다.
p.207-208.
마르크스도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적 생산에 선행하는 여러 형태」에서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용어를 썼다. … 유럽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은 아시아적 생산양식이 노예제의 특수 형태인지 봉건제의 특수 형태인지를 두고 승패를 가리기 어려운 논쟁을 벌였다.
백남운은 왜 이처럼 큰 논란이 벌어진 역사 발전 단계론을 우리 민족의 역사에 그대로 적용했을까? … 민족해방 투쟁의 수단으로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였을 가능성 … 유물사관이 일제가 퍼뜨린 ‘조선특수사회론’에 맞서는 이론적 무기가 될 수 있어서다.
'조선특수사회론(은) ... 조선은 자기 힘으로는 봉건제를 극복하고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없는 사회이기에 외부에서 새로운 문명을 이식해 주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것 ... 조선특수사회론은 여러 각도에서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간단한 방법은 우리 민족의 역사도 보편적 역사법칙을 따라 발전해왔으며 외부에서 이식하지 않아도 자본주의 단계로 이행했을 것임을 논증하는 일이다.
p.212-213.
헤로도토스에게 역사 서술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 사마천에게는 실존적 인간의 존재 증명이었으며, 할둔에게는 학문 연구였다. 마르크스에게는 혁명의 무기를 제작하는 활동이었고, 박은식과 신채호에게는 민족의 광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사피엔스의 뇌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뇌에 자리 잡는 철학적 자아는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
(6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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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책새벽-월) 책꼽문 6장 업데이트 했습니다. p.204~213. (6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