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꼽문] 책새벽-화/금. 『세계철학사 2』 3장. 기의 세계: 신체, 생명, 문화 (p.129-188)
녹색아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화/금' 시즌3에서는 현재 『세계철학사 2 - 아시아세계의 철학』(이정우. 2017. 길)을 읽고 있습니다.
목차
1부 잃어버린 길을 찾아서
3장. 기의 세계: 신체, 생명, 문화
§1. ‘기’란 무엇인가 (p.131)
물질로서의 기 (p.138)
생명으로서의 기 (p.143)
정신으로서의 기 (p.151)
§2. 음양과 오행의 존재론 (p.156)
음양이란 무엇인가 (p.156)
오행이란 무엇인가 (p.163)
§3. 기학과 동북아 사유의 전개 (p.172)
기학과 동북아 철학사
기학과 동북아 문화
§1. ‘기’란 무엇인가 (p.131)
p.129-130.
‘역’이 변천하는 세계의 구조와 의미를 가리킨다면, '기'는 이 흐르는 세계의 실쳬를 가리킨다. 역이 사건과 의미, 행위라는 문화적 삶의 차원이라면, 기는 생명과 신체라는 자연적 실체의 차원이다. 역학이 동북아 고대인들이 현상세계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방식을 말해준다면, 기학은 그 아래에서 생성하고 있는 궁극의 실재를 말해준다. 역학이 우리 행위의 선험적 조건들인 사건과 의미의 구조를 밝혀주는 선험철학이라면, 기학은 바로 사건이 그 터 위에서 발생하게 되는 근본 실재를 탐구하는 존재론이다.
역은 '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기에 다시 '나타남'을 강조하면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현상이란 우리가 경험하는 한에서의 세계이다.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세계의 변화, 예컨대 비가 내리는 것, 무지개가 뜨는 것, 사람이 태어나 죽는 것, 문화가 바뀌는 것, 이 모두가 현상이다. 이에 반해 '기'는 현상의 실체이다. 달리 말해, 현상들은 바로 이 기가 변해 그 결과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 세계에 현상들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한 겹으로만 보이리라. 그러나 세계는 현실성(actuality)으로서만이 아니라 잠재성(virtuality)으로서도 다가온다. 기는 이 잠재성의 차원을 가리킨다.
p.130.
기가 머금고 있는 법칙성, 기가 흐르는 길은 '도'라고 불린다. 기와 도를 따로 생각할 수는 없다.
p.131.
기는 반드시 기’화(化)’로서만 존재한다. … 서구 사유에서는 ‘존재에서 생성으로’의 이행이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등장하지만, 동북아 사유는 그 출발에서부터 철저하게 생성의 사유이다. 멈추어 있는 기란 개념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p.135-136.
지중해세계의 철학에서 자연철학으로부터 플라톤으로의 이행은 매우 심대한 의미를 띤다. 자연철학은 현실을 밑으로부터 설명한다. 즉, 물질적 운동으로부터 현실의 변화를 설명한다. … 반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을 위로부터 설명한다. 탈-물질적 형상, 중세의 경우 본질, 보편자를 통해 설명한다. … 근대적 맥락에 이르면, 형상과 물질의 대립이 정신과 물질의 대립으로 이행하게 된다. 형상으로부터 물질로 나아가기보다는 정신/주체로부터 물질/대상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근대적 주체철학의 구도이다. 서양 철학사에서는 이와 같은 이항 대립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에 비해서 기 개념에서는 이러한 이항 대립적 사유와 대비되는 일원성이 내재한다. 주희 등처럼 리를 기로부터 분리해 초월적 원리로 삼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기를 초월하는 형상적 원리는 인정되지 않는다. 아울러 인식 주체를 독립시켜 그것으로부터 논의를 전개해나가는 경우도 드물다. 따라서 고중세는 객관/형상 중심, 근대는 주관/정신 중심이라는 구도도 성립하지 않는다.
p.137.
전국시대가 되면 ‘기’ 개념에 점차 무거운 형이상학적 의미가 접혀 들어가게 되며, … 그러나 성리학적 사유가 펼쳐지기 전에 유가적 기 개념은 대체적으로 신체적이고 실천적인/생활적인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이에 비해서 도가적 기 개념은 한편으로 양생술 등의 신체적 맥락도 포함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주론적 맥락을 띤다. 위의 인용문(p.136. 『도덕경』, 42장)에 “천하만물 생어유 유생어무”(天下萬物 生於有 有生於無))의 존재론을 투영해 ‘하나’를 기로 해석할 경우, 결과적으로 “도에서 기가 나오고, 기에서 양기와 음기가 나오고, 충기가 음기, 양기와 더불어 세 기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 셋을 통해서 만물이 생성한다.
물질로서의 기
p.139-140.
『회남자』에서 그 전형을 볼 수 있는 한대 우주론은 ‘무규정에서 규정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 이 우주론은 무규정이 차츰 규정을 낳아 마침내 만물의 세계가 성립함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지중해세계의 사유와 통한다.
그러나 플라톤 이래의 지중해세계의 사유는 ‘구현’의 사유이다. 어떤 종류의 페라스가 아레이론에 구현되어/부여되어 질서가 생겨난다. 반면 동북아세계의 사유는 ‘생’의 사유, ‘표현’의 사유이다. 늘 무언가가 무언가를 ‘낳는’ 사유이다.
그리고 이 ‘낳음’은 기본적으로 외재적 인과가 아니라 내재적 인과를 따른다.
…
앞의 인용문에(p.138-139) 어떤 초월자나 인격신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동북아의 세계관은 이 점에서 지중해세계의 일신교적 우주론과 판이하다. … 철저하게 내재적인 세계관, 더 정확히는 내내적 발생의 세계관이다.
(여기서부터 2024년 3월 21일 업데이트한 부분입니다.)
생명으로서의 기
p.144-145.
기가 우주적 차원과 생명적 차원에서 동시에 쓰인다면, 두 차원은 불연속적으로가 아니라 연속적으로 이해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차원을 이어주는 개념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기의 '취산'이라는 개념이다.
<장자>에서는 "인간의 생명이란 기의 모임이다. 모임으로써 살아 있게 되고, 흩어지으로써 죽게 된다"고 했다. 현대 식으로 말해, 기가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흩어지면 죽음이고 음의 엔트로피-정보-에 따라 모이면 삶이다. 그리고 모인 기의 '후박'이 그 수명을 결정한다.
후에 성리학자들은 기의 '청탁'으로써 생명체의 가치를 평가한다. 생명체의 차원과 무생명체의 차원은 모두 기로 되어 있으며, 따라서 연속적이다. 두 차원은 실체적으로 구분되기보다는 기의 존재양식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 이렇게 동북아의 기 개념은 우주와 생명을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명쾌하다면 명쾌한 방식으로 통일적으로 이해한다.
두 차원의 기가 보다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것은 호흡을 통해서이다. 호흡이 끊기면 죽는다. 하지만 생명체는 죽어도 그 기는 '혼백' 또는 '귀신'으로서 존속한다. 현대 식으로 말해, 생명체는 실존하지만 죽음 후에도 기 자체는 잠존하는(subsist)/내존하는(insist) 것이다. 이와 같이 기 개념은 그 근본에서 연속성을 통해 이해되었고, 생명과 자연 일반은 통일적으로 이해되었다.
p.146.
철학이 정상적인 기를 다룬다면, 의학은 비정상적인 기를 다룬다. 철학이 생명과 도덕을 다룬다면, 의학은 병과 죽음을 다룬다. 그러나 양자는 물론 동전의 양면이다. 기의 차원에서 삶과 죽음은 연속적이다. 동북아 사상사에서 철학과 의학은 결국 기학의 양면인 것이며, 특히 도가사상은 이런 양면을 포괄하고 있다. 동북아사상사에서 의학이란 넓은 의미에서 도가사상의 한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p.148-149.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기가 있거니와, 신체란 이 무수한 기가 흐르는 역동적인 장이다. … 지중해세계의 사유가 어떤 점을 찾아가면서 선을 그 과정으로서만 사유한다면 동북아 사유는 항상 어떤 선=길을 사유하고자 하며 점들은 선이 진행해가는 과정에서의 정거장의 역할을 할 뿐이다.
이 때문에 동북아 의학에서 신체는 고체가 아니라 유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북아 의학에서도 해부는 했지만 그 의미가 지중해세계의 그것과는 판이했다. 죽은 시체의 해부는 유체로서의 신체가 이미 고체로 화한 이후의 행위에 불과 …
…
물론 이것이 기의 흐름은 결코 분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음을 뜻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몸에서 기가 흐르는 길들과 그 정거장들-특이점들-을 파악함으로써 기의 흐름을 이해 … 이 길이 곧 ‘경락이다. 경맥은 중심적인 맥이고, 여기에서 가지 쳐서 나오는 것이 낙맥이다.
정신으로서의 기
p.151.
동북아 철학에서도, … ‘정신’이란 생명의 차원에서 인문의 차원에까지 두루 걸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
p.153-154.
『순자』에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살아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혈기가 있는 종류라면 반드시 지각이 있을 것”이라 했다. … 후한의 왕충 역시 “정신이란 혈기를 근본으로 한다”고 했다. … 동북아에서는 “정신이란 가슴에 있는 것인가, 머리에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 동북아에서도 한편에서는 정신을 특정한 장기에 위치시키려는 시도들이 이어져왔다. 정신도 흐름이지만 다른 한편 그것의 구조적인 분포가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정신을 특정 기관이 아니라 오장에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본 점이다. 이때의 정신을 ‘오장신’/‘오신’이라 한다.
…
다만 전체적으로 중심을 이룬 것은 핵심 장부인 심장이었다. 반면 뇌는 정신의 장소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 머리에서 정신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은 오히려 얼굴이었다. … 심장은 혀, 페장은 피부, 신장은 귀, 비장은 입, 간장은 눈에 연결되어 이해되었다.
p.155-156.
… 기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 기의 근본 성격이 ‘흐름’에 있다면, 그 흐름에 매듭을 주고 일정한 구조를 띨 수 있게 해주는 원리는 무엇인가? … 차이생성과 동일성의 교합이 ‘생성하는 질서’ 또는 ‘질서가 있는 생성’을 가능케 한다. 이는 우리가 역의 사유에서 이미 보았던 바이다. 그렇다면 기에 질서를 부여해주는 구조적 요인은 어떤 것인가?
§2. 음양과 오행의 존재론
p.156.
음양과 오행은 기를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해주는 기초적인 논리학/존재론이다. 그러나 이 둘이 합해져 ‘음양오행론’이라 일컬어지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각각은 서로 다른 사유 갈래에서 유래했다고 할 수 있다.
음양이란 무엇인가
p.157.
음과 양은 단순히 양태적 차이 위에 존재하는 상위 범주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양태에서 그때그때 작동하는 대대항이기도 하다.
…
… 음과 양은 ‘대대항’이라는 말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동적 상관성을, 더 나아가 상호 침투적인 동적 상관성을 형성한다. 이 동적 상관성은 유명한 「태극도」에 잘 나타나 있다.(p.158 그림. 대대의 종류)
p.160.
우리는 음과 양을 ‘경향적 구분(tendential distinction)’이라는 개념을 써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경향적 구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자: 두 존재가 시간에 따라 일정한 과정을 겪으면서 드러내는 방향성에 따른 구분.
음과 양은 변화의 와중에서 서로 대비되는 방향성을 드러내는, 변화의 상이한 경향을 통해 구분된다. 그러나 핵심적인 구분이 필요하다. 경향적 구분은 예컨대 베르그송에게서처럼 ‘발산’과 ‘분리’의 존재론에서 중요하게 활용되지만, 음과 양의 경향적 구분은 반드시 위에서 말한 ‘상호 침투적인 동적 상관성’ 구도의 전제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우리는 이와 같은 구도를 상관적 경향들 (correlative tendencies)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음양의 이런 역동적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일상과 역학 그리고 의학에서 그 예들을 찾아보자.
오행이란 무엇인가
p.163.
음양의 개념에 비해 오행의 개념은 비교적 늦게 등장 … 오행의 개념은 『서경』의 『홍범」에 나타난다. … (“홍범구주” 중의 하나가 오행 : 물, 불, 나무, 쇠, 흙)
p.165-166.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도 역시 지중해세계의 점의 사유와 동북아세계의 선의 사유가 변별된다는 점이다. 4원소는 '소(素)'라는 말이 함축하듯이 점-실체들이지만, 5행은 '행(行)'이라는 말이 함축하듯 선-과정들이다.
p.167.
5라는 수는 어디에서 연유했을까? 물론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비교적 개연성이 높은 것은 방위라고 생각된다. 동・서・남・북과 중앙이라는 공간적 구분…이야말로 5라는 수의 출처가 아니었을까.
또 하나 개연성이 높은 것은 춘・하・추・동이라는 계절이었을 것이다. 계절은 특히 농사에 중요했기에. 하지만 이 경우 4와 5를 어떻게 짜 맞출 것인가가 문제 … 그 결과 1년을 다섯 계절로 분절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p.169-170.
오행설이 상대적으로 유효한 영역은 신체 및 신체와 상관적인 영역이고, 허세가 가장 심한 영역은 그것을 역사에 적용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오행설은 인간이 신체적으로 살아가는 일상을 관찰해 얻은 결론이고, 그런 한에서 일상의 영역에서 일정한 유효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바슐라르가 과학철학적 맥락에서는 철저하게 수학적 합리주의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현상학적/미학적 맥락에서는 오히려 4원소설을 부활시킨 것을 생각해보자.
그라나 오행설이 이런 소박한 수준을 넘어 동시에 비교적 높은 수준의 설명력을 가지게 된 인상 깊은 영역이 존재한다. 바로 의학 분야이다. … 오장이 단순히 현상적 차원이 아님에도 오행설이 비교적 잘 적용되는 영역이라는 사실에는 다소간의 신기한 점이 있다.
…
현상적으로 관찰해서 얻은 오행설이 우리 몸의 오장에 비교적 잘 들어맞는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이해서, 아마도 오행설의형성 그 자체가 우리 몸의 오장을 참조해서 이루어졌으리라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p.171.
기학은 역학과 더불어 또 역학과 혼효하면서 동북아세계의 사상과 문화를 수놓았다. 그리고 그것의 논리는 음양오행의 논리였다.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기는 꼭 음양오행의 논리에 의해 이해되어야 하는가?
음양・오행은 기라는궁극 실체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었을 뿐인가?
만일 그렇다면, 기를 이해하는 다른 논리학, 다른 존재론은 어떤 것일 수 있을까?
근대 기학은 이런 물음을 물었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성과는 적극적으로 현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여기서부터 2024년 3월 28일 업데이트한 부분입니다.)
§3. 기학과 동북아 사유의 전개
기학과 동북아 철학사
p.173.
역 개념의 경우 그 유래를 찾는 작업은 … 일정 정도의 틀을 갖추고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기 개념은 상대적으로 그 창시자는 논의되지 않는다. 이는 역 개념이 어떤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서 ‘창제’된 것으로 이해된 반면 기 개념은 …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이해되었음을 시사한다.
…
… 기’학’이라고 부를만한 체계적 사유가 형성된 것은 역시 그것이 음양 개념 및 오행 개념과 결합되어 기・음양・오행의 사유로 확립된 때 … 그 시기는 대체적으로 전국시대였고, 한대에 이르러 거대한 우주론으로 체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국시대의 음양가가 그 출발점이고 『회남자』와 『황제내경』이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p.174.
… 제자백가 중 전국 말의 종합 사상에서 주축이 된 것은 도가철학과 기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 기학이 도가철학과 일체를 이루어 ‘존재론’으로서 기능했다는 것은 곧 그것이 역사와 문화의 영역에도 적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곧 도가-기학-유가/법가적인 종합적 틀이 천하통일 시대의 통치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는 점을 말한다. 한초 동중서의 『춘추번로』 같은 저작이 이 점을 전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p.179.
성리학은 …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기 개념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현학과 불교의 리 개념을 받아들여, 유・불・도를 통합하는 장대한 사유체계를 구축했다. … 그 근간을 이루는 주춧돌은 역시 리 개념과 기 개념이었다. 따라서 핵심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두 개념의 관계 설정 …
p.180-182.
세계의 자연적 기초로서의 기는 세계의 이법성, 정신성, 도덕성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성리학의 단초를 놓은 주돈이(/주렴계)는 유교형이상학의 입장에서 도가사상/도교의 전통을 흡수함으로써 예전부터 내려오던 기 개념에 보다 확고한 존재론적 뉘앙스를 부여했으며, 기 —> 음양—> 오행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구도를 가다듬었다. … 주돈이의 존재론은 후대에 정리된 용어로 기 일원론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서는 아직 ‘리’ 개념은 적극적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다.
…
기 일원론의 흐름은 세계관과 인간관에 거대한 변화를 도래시켰다. 예전에는 자연철학의 범위에서 이해되던 기 개념이 존재론의 개념으로 승격됨으로써 세계 전체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게 되었다.
…
동북아세계에서 기에 대한 관심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힘을 잃지 않고 있으며 … 다양한 형태의 시도들이 존재함에도, 최한기 이래 기에 관한 사유가 어떤 결정적인 도약을 이루었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철학의 경우만 놓고 본다면 이러한 도약은 기학적 사유가 베르그송-들뢰즈의 존재론과 융합되어 새로운 수준으로 개념화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 21세기 존재론의 핵심 과제들 중 하나가 있다 하겠다.
기학과 동북아 문화
p.183.
기학은 동북아 천문학의 기반이 되었다. 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혼천설과 선야설에서다. … 특히 선야설에서는 우주가 무한한 공간으로 이해되었고, 이 공간은 곧 기로 충만한 공간이었다. 모든 것이 이 기로부터 비롯된다. … 『회남자』의 우주론이나 훗날 장재의 ‘태허’론은 이 선야설과 통한다.
p.186-187.
기의 세계와 플라톤의 세계는 그대로 동북아세계와 지중해세계의 차이를 대변해준다. 플라톤의 세계는 제작자, 설계도, 재료의 세계이다. 조물주, 이데아들, 코라의 세계인 것이다. 동북아의 세계는 ‘작’의 세계가 아니라 ‘생’의 세계이다.
따라서 조물주 개념은 탈각된다. 역학에도 기학에도 조물주의 개념은 없다. 동북아에도 ‘신’들은 있지만, 이들은 세계에 내재적이다. 또, 이 ‘생’의 사유에서 설계도 같은 것은 없으며 다만 기 자체에 내재해 있는 질서만이 인정된다.
(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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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철학사 2] 책새벽-회/금, 책꼽문 "3장 기의 세계" 업데이트했습니다. (p.143-171)
[세계철학사 2] 책새벽-회/금, 책꼽문 "3장 기의 세계" 업데이트했습니다. (p.172~188. 3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