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꼽문] 책새벽-화/금. 『세계철학사 2』 여는 말 & 1장 동북아세계의 형성 (p7-60)
녹색아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화/금' 시즌3에서는 현재 『세계철학사 2 - 아시아세계의 철학』(이정우. 2017. 길)을 읽고 있습니다.
목차
1부 잃어버린 길을 찾아서
1장 동북아세계의 형성
§1. 점복에서 ‘역’으로
§2. 동북아 왕조국가의 구조
§3. ‘천하무도’의 시대와 ‘사’의 등장
여는 말
p.8.
동북아・인도・이슬람 모두를 “동양”으로 묶어 부르고, 이슬람 철학 전통도 “동양 철학”의 일부로서 다루는 것은 적어도 철학사적으로는 적절치 않다. 정치경제적 맥락이 아닌 철학사적 맥락에서 이슬람 사상은 어디까지나 유대-기독교 사상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
아프리카 북부의 역사도 오리엔트 지역과 뗄 수 없는 관련성을 맺으며 진행되어왔다. 서구, 동구, 오리엔트, 그리고 아프리카의 북부는 ‘지중해세계’로서 하나의 역사적 전통을 이루어온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서 서구의 동쪽 전부를 “동양” 또는 “아시아”라 부르는 것은 근대적 서구중심주의의 산물이다. ‘아시아세계’라는 말은, 적어도 철학사적으로는 그리고 근대 이전의 맥락에서는 이 지중해세계 동쪽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1장. 이성의 빛
p.24.
지중해를 고리처럼 둘러싸고서 전개된 지중해세계와는 달리, 동북아세계는 이렇게 중원을 한가운데에 놓고서 동, 서, 남, 북에 다른 문명들이 자리 잡은 십자가형의 문명이 전개되었다....
p.25.
지중해세계가 대체적으로 동방과 서방이라는 간단한 이원 구조를 띠었다면, 아시아세계는 줄잡아본다 해도 인도,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라는 사원 구조를 띠었다고 할 수 있다.
p.26.
지중해세계의 철학과 아시아세계의 철학을 비교해 볼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들 중 하나는 경험적 세계에 대한 상이한 태도에 있다. 대체적으로 말해, 지중해세계의 철학이 현상세계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데 비해 아시아세계의 철학 특히 동북아세계의 철학은 형상세계의 실재성을 긍정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출발했다. (각주 2는 인도 철학은 어떤면에서 서구 철학에 보다 가깝다고 설명)
서구 존재론에 드리워진 파르메니데스의 긴 그림자와 그에 대조적으로 공자 등이 형이상학적 문제들에 대해 취한 태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상기해보라. 출발점에서 양자의 이와 같은 차이는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어갔지만, 결국 양대 철학 전통에 깊은 흔적을 각인하게 된다. 특히 동북아의 철학은 다른 어떤 철학 전통에 비해서도 현실에 충실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우선 세계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들(현상)이 뜻하는 바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탐색으로 나타났다.
P.31-32.
이 주술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집단이 무 계층이다. 이집트를 비롯한 오리엔트 문명에서 발달한 것은 사제 계층이었다. 모든 담론적 권력을 사제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따라서 당연히 그런 문명 하에서는 철학이 발달할 수 있었다.
… 그리스 문화에서는 통치자 자신이 사제를 겸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가 종교를 흡수한 형태의 문명을 이룩하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로마를 뒤이은 서구 문명은 어느 문명 못지않게 사제들이 득세한 문명이었다.
이에 비해 동북아 문명은 사제라는 계층이 없는 문명이다. … 그 대신 지식인 계층이 역사를 이끌어갔다. 사제 계층의 부재는 동북아 문명을 여타의 문명과 구분 지어주는 결정적인 측면이다. … 하지만 … ‘사제’에 해당하는 역할을 했던 존재가 있었다. 바로 ‘무’이다.
p.32-33.
무 계층이 하는 일은 어떤 현상을 보고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읽어내는 것이다. 무지개가 떴다, 머리가 두 개인 뱀이 발견되었다 하는 식의 현상들/사건들을 두고서 그로부터 어떤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다. 자연 현상을 오늘날과 같이 자연과학적 메커니즘으로서가 아니라 특정한 의미의 현현으로 보였다는 점이 핵심이다.
동북아 문명은, 기학에 입각한 자연철학이 발달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문학에 기초한 문명이다. 정확히 말해 양자는 혼연일체를 이룬다. 지중해세계의 경우 자연철학이 기저를 이루었고 때문에 인문 현상들도 '퓌지스'로 환원해서 설명코자했다면(그 극한은 원자론이다), 동북아세계의 경우 인문학이 기저를 이루었기 때문에 자연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탐구했던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주는, 의미로서의 자연이다.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상 이면에서 어떤 본질을 읽어내려 했고, 이 본질은 '실재'였다 반면 동북아의 '무' 등은 자연 현상에서 인간적인,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읽어내려 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 자연 현상으로 저편으로 넘어가 실재를 찾았고, 후자의 경우 자연 현상 이편에서 그 의미를 읽어내려 했다. 이 차이는 두 사유 전통을 특징짓는 근본적인 차이들 중 하나이다.
p.33.
(주석 12) 여기에서도 사태를 이분법적으로 과장하면 곤란하다. 그리스 철학은 소피스트들 이후 인문주의로 돌아섰고, 동북아 철학의 경우 인문적 해석은 농사라든가 자연적 문제들과 얽혀 있었다. 또 애초에 그리스의 'physis'는 오늘날의 자연이 아니었고, 동북아의 '인도'는 항상 '천도'를 전제했다.
그럼에도 동과 서의 철학사 전반을 살펴볼 때, 지중해 세계의 사유들은 자연 현상 저편으로 가서 궁극의 실재를 찾고자 한 데 비해 동북아세계의 사유들은 자연 현상 이편으로 와서 문화적 의미를 찾고자 했다는 일반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지중해세계 철학의 핵은 형이상학이었고, 동북아세계 철학의 핵은 정치철학이었다.
p.35-36.
‘무’로부터 훗날의 ‘유’로 가는 중간에 ‘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공자는 ‘사’란 천수를 알지만 아직 덕의 차원으로까지는 가지 못한 존재라고 파악했다. 여기에서 “천수를 알았다”는 것은 이들이 일종의 자연철학자들이었음을 뜻하며, “덕의 차원으로까지는 가지 못했다”는 것은 공자 자신이 생각하는 윤리와 인문의 차원으로까지는 이르지 못했음을 뜻한다. … 이 시대의 “역사”란 사람의 삶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늘과 삶과 땅/사람의 삶 사이의 상응을 연구하는 행위였다. 말하자면 ‘사’란 … 자연철학자였던 셈이다.
p.37.
주공과 공자를 이은 철학자들은 ‘무’의 샤머니즘을 유교적 ‘예’로, ‘사’의 신비주의를 유교적 ‘덕’으로 변환해나감으로써 본격적인 철학의 장을 열어젖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와 ‘사’는 자연철학(그리스적 의미의 자연철학과는 다른 동북아 특유의 자연철학)의 관점에서는 ‘역’의 개념으로 승화된다.
p.42.
이와 같은 왕조국가의 구조는 전통 사회의 도처에서 발견되지만, 동북아의 경우는 그 구조가 유난히 견고하고 정치했다 … 서주 시대에 본격화된 이 구조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그 핵심은 ‘예’라는 말로 표현된다. ‘예’란 인간 삶의 선험적 구조, 코드, 노모스이다.
(여기서부터 2024. 2. 21 업데이트)
p.45.
… 서주의 ‘예’가 이후 동북아적 삶의 선험적 구조를 형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교체(상/은 왕조에서 주 왕조로의 교체)의 과정은 음미해볼 만하다. 이 과정 및 서주의 확립을 기록해놓은 사서가 『서경』이다.
아울러 이 시기를 전후해 다양한 지역들에서 전해진 시들을 모아놓은 『시경』 또한 핵심적인 자료이다. 고대 동북아의 상고 시대를 이해하는데 『서경』과 『시경』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헬라스 상고 시대를 이해하는 데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서사시 및 그 후의 서정시들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버금간다.
p.49-50.
『서경』이 사후적 구성의 성격이 강한 작품이라고 했거니와, 이 서물(書物)을 지배하는 핵심 역사철학은 무엇이었던가? 바로 ‘천명사상’이다. 이는 추상적으로는 하늘이 정의로운 국가로 하여금 불의한 국가를 치도록 명을 내린다는 것, 덕이 없는 국가를 덕이 있는 국가가 정복함은 ‘하늘의 뜻’이라는 것을 말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주 왕조가 상 왕조를 친 일은 ‘하늘의 뜻’이라는 주장이다. … 이 논리는 본격적인 역사철학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의 성격이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p.51.
주 왕조는 동북아 왕조체제의 전형적이고 견고한 모델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나 혈연관계의 구조화와 일치되도록 지역적 배분, 장소의 배치가 보완되어야 했다. 종법제라는 시간의 구조를 보완할 공간의 구조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봉건제’이다.
종법제가 한 인간이 항렬의 구조에서 차지하는 ‘이름’의 문제라면, 봉건제는 그의 신체가 실제 위치해야 할 ‘자리’의 문제이다. 전자가 ‘언표적 배치’의 문제라면, 후자는 ‘신체적 배치’의 문제이다. 이 배치가 결합됨으로써 비로소 한 인간의 동일성/정체성 즉 ‘이름-자리’=‘위(位)’가 확립될 수 있었다. 주왕조가 그토록 오래 존속하고 또 멸망한 이후에도 동북아 왕조체제의 기본 모델이 된 것은 이 이름-자리의 체제를 확고하게 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p.55-56.
명목상의 동주는 결국 후대에 ‘춘추전국시대’라 불리게 된다. 전반부는 춘추시대를, 후반부는 전국시대를 형성한다. 동주는 내내 혼란기였다.
…
동주에 이르러 이런 변화가 나타난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늘 그렇듯이 가장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는 경제적 변화에 있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땅=토지이다. … 동북아 사람들의 삶과 사상은 늘 하늘과 땅 사이에서, 형이상학과 사회경제사 사이에서 전개되었다.
서주 시대 말에 이르러 몇 가지 중요한 기술적 발전이 있었고, 이를 통해 농업혁명이 일어난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철기의 사용이다. … 여기에 우경이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해서, … 더불어 이모작의 방법도 발견 … 또, 분뇨를 비료로 이용하는 법도 알게 된다. 아울러 황무지들이 개간되기 시작하면서 농토 자체가 크게 넓어진다.
p.56-57.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달은 오히려 인간사회에 갈등과 분쟁을 가져온다. 새로운 기술이 발견되고 생산력이 크게 증가할 때면,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계급의 분화가 발생한다. 이는 세계사의 철칙과도 같다. 변화의 바람을 타고서 부자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낙오하는 사람도 있게 된다. 고대 동북아에서 부자가 된다는 것은 곧 부농이 된다는 뜻이며, 부농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넓은 땅과 많은 노동력을 독점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흐름의 대척점에는 자신의 땅을 빼앗기고 소작인으로 전락한 빈농들이 존재했다. 자영농이 몰락해 소작농이 되는 현상이 심화되는 것은 곧 그 사회가 멸망의 길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였다. 왕조의 붕괴를 암시하는 결정적 징후는 곧 소작민의 증가인 것이다. 소작농이 더욱 전락하면 유민이 되고, 그중 힘이 센 자들은 산적, 화적, 해적 등이 된다. 소작민들은 왕족의 대척점에 존재하지만, 왕족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은 곧 소작민들의 상황이다.
p.57-58.
기존 질서가 붕괴된 장소들에서 갖가지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했고, 시대는 이 문제들을 해결해줄 ‘전문가들’을 요청했다. … 예전에 단지 대부 이하의 하급 관리들을 뜻했던 ‘사(士)’라는 존재가 새로운 뉘앙스를 띠면서 시대를 담지하게 된 것이 이 시대였다. … ‘지식인 계층’이 등장하기 시작 … 과거에 지식인의 역할을 했던 ‘무’와 ‘사(史)’가 물러가고 이제 새로운 계층인 ‘사(士)’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 ‘사(士)’ 계층은 … 점점 힘을 키워갔고 후에는 마침내 ‘사대부’ 계층이 된다. … 동북아의 역사는 지식인 계층과 귀족 계층 사이 투쟁의 역사로 볼 수 있다.
(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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