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꼽문] 책새벽-화/금 : 『세계철학사 1』 11장 (p.687-751)
모임 정리
책새벽-금
작성자
neomay33
작성일
2024-01-14 12:55
조회
760
녹색아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화/금' 시즌2에서는 현재 『세계철학사 1』(이정우. 2011. 길) 2부를 읽고 있습니다.
매주 읽는 내용 중 참여하시는 분들이 꼽아주신 책꼽문을 모아 이곳에 정리해두려고 합니다. 책 읽으시는 데 참고해주시고요, 모임 공지는 웹사이트 맨 위 '일정' 메뉴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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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1장 스콜라철학의 흥륭
§1. 스콜라철학의 도래: 존재론과 정치철학
-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
- 검과 십자가
§2. 아리스토텔레스 혁명과 스콜라철학의 흥륭
- "그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 보편자 논쟁
§3.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
- 토마스 아퀴나스의 종합
- 둔스 스코투스와 '존재의 일의성'
§4. 중세의 황혼
- 오컴의 면도날
- 구원으로서의 신비주의
- 속의 승리
p.687-688.
이슬람세계에서 새로운 문명이 흥기할 때, 서방세계一유대-기독교적 세계一는 어지러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비잔티움 • 이슬람의 동남방과 로마 등의 서북방 지역 사이의 격차는 무척이나 컸다. 북방 게르만족의 남하가 시작된 이래 서방세계는 혼란의 지대로 변했고 그 후유증은 매우 오래갔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혼란은 계속되었고 6세기의 랑고바르드족의 파괴 행위는 반달족의 그것에 못지않았다. 이런 흐름은 8세기까지도 지속되었으며, 사실 9, 10세기까지도 노르만족이라든가 흉노(=훈족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 헝가리족 등이 쳐내려왔다. 그야말로 ‘암흑시대’였다.
800년에 샤를마뉴가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등극함으로써 서방세계 에는 약간이나마 어떤 통일성과 질서가 도래하기 시작한다. 이 통일성과 질서란 곧 황제와 교황이라는 두 구심점을 통한 서구 사회의 구조화를 뜻한다. 그러나 황제도 또 교황도 비잔티움의 황제가 그랬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서방세계를 지배하지는 못했다. 서방세계는 근본적으로 다 원적인 세계였고 이런 다원성은 EU의 성립으로 상황이 다소 달라지기는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유럽의 특징으로 남아 있다.
우선 각기 다른 이민족들이 상이한 지역들에 안착함으로써 이런 다원 구조가 정착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6세기 정도가 되면 앵글로-색슨족은 잉글랜드에, 프랑크족은 갈리아(프랑스)와 독일에, 부르군트족은 사부아에, 서고트족은 에스파냐에, 동고트족은 이탈리아에, 랑고바르드족은 북이탈리아에, 반달족은 아프리카에, 노르만족은 북유럽과 남이탈리아에 각각 자리를 잡기에 이른다. 새롭게 토지가 재산의 기초가 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부터이다. 그리고 이들이 오늘날 유럽(과 북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의 원형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각 지역들 내부라고 해서 어떤 통일성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암흑 시대 이래 서방세계에 도래한 삶의 질서를 사람들은 흔히 ‘봉건 제도’라는 말로 가리킨다. 봉(封)은 글자 자체가 가리키고 있듯이 땅을 구획해 나누어줌을 뜻한다. 큰 기사가 작은 기사들에게 땅을 나눠 주어 통치하게 하고 그 대신 그 영주들의 충성 맹세(‘오마주’)를 받는 형식이었다. 영주들은 영지에 대한 ‘소유권(proprietas)’이 아니라 단지 ‘지배권(dominium)’을 가질 뿐이었다. 이런 토지 분절에 따라 각 지역이 고착되었고, 결과적으로 중세 사회는 공간적으로 정체된 사회가 되었다.
p.689-690.
서방세계가 본격적으로 문화적 도약을 이룬 것은 12-13세기를 거치면서였다. 여기에는 몇 가지 내적 추동력과 두 가지의 중요한 외적 추동력이 복합적으로 작용 ... 우선 이 시대에 이르러 새로운 농법(3포제 등), 다양한 건축물들의 구축, 인구의 증가, 여러 도시들의 성장과 대학들의 건설, 화폐 사용과 은행 설립, 수공업의 발달과 유통 증가 같은 여러 현상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두 가지 외적 추동력이란 물론 비잔티움 및 이슬람과의 관계이다. 지중해세계의 12~13세기는 '십자군 전쟁'의 시대였다. ... 이 전쟁은 여러모로 착잡한 전쟁이었다. ...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전쟁을 기회로 한몫 잡겠다고 나선 이들이었다. 예컨대 십자군에 출정한 귀족들의 상당수는 서자들이었다. "경제적 동물"이라 불렸던 베네치아인들은 이 전쟁을 통해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비잔티움의 황제들은 이들의 출정을 고마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이 "떨거지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로 골머리를 앓았다.
...
또 하나의 영향은 이슬람세계로부터 왔다. ... 그 핵심적인 결과들 중 하나가 에스파냐의 '재정복'이다. 이 재정복은 1492년 그라나다 탈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지만, 1100년 정도가 되면 이미 톨레도나 리스본 같은 무슬림들의 지역('안달루시아')이, 그 후에는 세고비아, 코르도바 등이 기독교도들에게 넘어간다. 이 도시들은 기독교도들이 보기에 그야말로 보물섬이었다. 기독교도들은 이슬람의 위대한 문명 앞에서 압도당했다.
특히 거기에서 그들은 그저 이름만 알고 있었던 그리스 철학의 원전들, 이슬람 철학자들의 뛰어난 저서들, 의학을 비롯한 여러 과학 분야에서의 빛나는 성과들을 발견했다. 이슬람세계와의 이런 만남을 통해 서방은 그리스-로마-이슬람으로 이어져온 학문의 성과들을 접하고, 이런 흐름을 흡수하면서 스콜라철학을 크게 일으키기에 이른다.
p.694.
중세 철학자들을 사로잡은 문제들 중 하나는 '신 존재 증명'이었으나, 에리우게나는 아직 이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 오히려 그의 주요 문제는 신에 대한 인식의 문제였다. 신플라톤주의자인 그리고 위-디오뉘시오스의 영향을 받은 그는 역시 부정신학적 주장들을 펼친다. 신은 모든 술어들을 초월하는 존재인 것이다. 에리우게나는 일자로부터의 유출 과정은 곧 술어들이 증가되는 과정임을 분명히 했다. 그 역의 과정 즉 구원의 과정은 술어들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이다.
p.695.
8~9세기에 형성된 이와 같은 철학적 사유는 어떤 거대한 흐름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앨퀸이나 에리우게나 같은 몇몇 뛰어난 소수의 업적이었다. 더더구나 이 소수의 성과들마저도 이른바 '제2의 암흑 시대'라 불리는 10세기 전후에는 방치되어 있었다. ... 11세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서야 서구는 새롭게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에리우게나에게서 다시 두 세기의 세월을 격한 성 안셀무스(1033-110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스콜라철학이 시작되었다.
p.697.
스콜라철학이란 바로 이렇게 문법과 논리학의 위력에 대한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런 발단이 스콜라철학의 기본 성격과 그 역사 전체를 특징짓게 된다. 안셀무스는 바로 이 '신앙의 합리적 근거'와 '이성으로 이해되는 '신앙'이라는 시대의 요청에 체계적으로 답한 최초의 인물이다. 『모놀로기온』의 원래 제목은 '신앙의 합리적 근거에 대한 성찰의 예증'이었고 『프로슬로기온』의 원래 제목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었다.
p.699.
라이프니츠에게까지도 이어지는 중세적 사유를 특징짓는 하나의 논리/존재론은 '존재의 정도', '실재의 정도'라는 개념이다. 현대인들에게 무엇인가가 '있다'/'없다'는 것은 가부의 문제이지 정도의 문제가 아니지만, 중세적 사유에서는 있다/없다 자체가 정도의 문제로서 사유되었다. 결국 이것은 가치의 정도를 함축한다고 볼 수 있으며, 가치론과 존재론이 겹쳐 있는 구도라고 볼 수 있다. 이를 '가치론 - 존재론'이라 부를 수 있다.
p.703-704.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 및 그것으로부터 따라 나온 여러 논증들은 서구 사회를 존재론적으로 새롭게 정초한 중요한 담론사적 사건이었다. 이러한 정초의 근저에는 ... 그리스에서 연원하는 중세 철학의 핵심적인 에피스테메(...)를 볼 수 있으며, 12세기에 본격화된 이 에피스테메는 적어도 17세기의 라이프니츠에 이르기까지 서구적 사유를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이 에피스테메가 무너지면서 근대성-모더니티가 도래한다.
p.704-705.
중세의 존재론적 정초가 '신 존재 증명'을 둘러싼 논의였다면, 그 정치 철학적 정초는 '성직자 서임'을 둘러싼 논의였다. 서구는 기독교 사회였고, 때문에 성직자 서임이란 이 사회의 권력 분포를 둘러싼 핵심 사안이었다.
서구 중세를 정초한 기본적인 권력론은 이른바 "검과 십자가"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서구 중세는 근본적으로 이원론적 세계였으며, 정치 권력과 종교권력 증 현실적 권력과 정신적 권력의 양대 축이 지배한 세계였다.
두 권력의 정면 충돌은 1073년 그레고리우스 7세가 교황에 취임해 황제에 의한 주교 서임이라는 전통에 반기를 들었을 때 발생했다. 이로써 이 교황과 당대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하인리히 4세 사이에 실력 대결 ... 이 대립은 1122년 '보름스 협약'을 통해 어느 정도 타협의 국면 ... 그러나 이런 식의 크고 작은 대결은 중세 내내 계속 ...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근대성=모더니티란 종교적 권력의 추락과 세속적 권력이 군림으로 특징지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p.707.
12세기 ... 서방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관심이 비약적으로 증대 ... 서방에서 일어난 아리스토텔레스 혁명은 지중해세계의 지적 풍경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이런 변화와 더불어 등장한 핵심적인 인식론적 문제는 곧 신학과 철학의 관계, 전통 학문과 새로운 학문의 관계, 인식에 도달하는 방법 등에 대한 것이다.
p.707. 각주15)
이 시대(13세기 전후)는 새로운 부와 문화가 개발된 시대 ... 도시는 자본주의 시대의 맹아를 싹튀우고 있었고,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음유시인들의 노래는 르네상스의 화려하고 인본주의적인 문화를 예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서구 사회의 새로운 문제들도 생겨나기 시작 ... 도시는 부와 동시에 새로운 형태- '사유재산'이라는 형태 -의 가난을 낳기 시작했고, 교회의 권력은 ... 그 최악의 얼굴을 드러냈다. 종교재판소가 설치된 것은 1231년 ... 바로 이때 아리스토텔레스와 이븐 루쉬드가 등장했으며 여기저기서 유대-기독교의 기존의 토대가 무너지기 시작 ... 도미니크회와 프란테스코회가 탄생한 것은 이런 배경 하에서였다.
p.709-710.
도미니크회는 이슬람 철학자들의 성과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알베르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방대한 재번역과 주석을 시도 ... 아퀴나스의 체계가 탄생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
그러나 아퀴나스에게 신학과 철학의 통합은 이 둘을 융해시켜 하나로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 아퀴나스에게 철학은 자연적 존재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탐구에서 출발해 근본 원리들 - 그 궁극이 '계시신학'과 대조되는 '자연신학'이다 - 로 나아가는 학문이다. ... 그의 이런 인식론은 근대 경험주의 철학자들이 주창한 탐구 방법을 한참 전에 선취한 것이다. 아퀴나스는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적 철학과 기독교 신학을 붙여놓음으로써 중세 최대의 사유 체계를 구축했다.
p.710-711.
프란체스코회는 알베르투스와 아퀴나스 식의 경험적이고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사유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내려오는 전통에 좀더 충실하고자 했다. ... 프란체스코회의 성격을 드러내는 대목은 초지성에 대한 요구였다. ... 이 초지성은 반드시 믿음, 소망, 사랑 같은 아우구스티누스적 가치들을 포함해야 했다.
도미니크회의 주지주의와 프란체스코회의 주정주의/주의주의의 대비는 중세적 교양의 두 축을 이루었다. 프란체스코회의 입장에서 아퀴나스의 조합에 버금가는 종합을 이룬 인물은 둔스 스코투스이다.
p.712-713.
... 1270년과 1277년에 있었던 사건, 즉 파리의 주교 에티엔 탕피에가 파리 대학 인문학부 교수들을 겨냥해 내린 단죄 사건 ...
...
기독교 바깥 세계의 숱한 저작들이 번역되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12세기에 인문학부는 매우 활기찬 곳으로 변해 ... 13세기가 되면 당대의 지성계를 좌우하는 핵심 축들 중 하나로 부상 ... 인문학부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필수 과목이 되었고 이븐 루쉬드의 저작들 또한 활발히 연구되었다.
...
파리 대학 인문학부의 젊은 교수들은 아리스토텔레스, 특히 이븐 루쉬드에 의해 해석된 아리스토텔레스를 추종했으며, 사람들은 이들을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이라 부른다.(Averroes는 이븐 루쉬드의 라틴식 이름) 아베로에스주의는 보수적인 신학자들에게는 현대 식으로 말해 '유물론', '무신론'으로 비쳤다.
...
시제 드 브라방이나 보에티우스 다키아 등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과 그들의 비판자들이 맞부딪힌 대목들은 알-가잘리와 철학자들 특히 이븐 루쉬드가 맞부딪친 대목들과 거의 일치 ... 문제의 핵심은 아리스토텔레스 vs. 일신교의 구도라 하겠다. 곧 세계는 영원한가 아니면 창조되었는가의 문제와 지성은 단일한가 복수적인가의 두 문제가 핵심이었다.
p.717-718.
더 중요한 문제는 이 개별적 이성과 보편적 이성(예컨대 수학적 이성) 사이의 관계이다. 만일 이성이 개별적이라면 보편적인 동의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러나 중세적 맥락에서는 이 문제를 존재론적 방식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가 개별자들을 넘어 어떤 일반성/보편성을 발견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개념적인 구성일 뿐인가 아니면 실제 어떤 일반적/보편적인 것의 발견을 뜻하는가? 이는 곧 중세 철학을 뜨겁게 달구었던 '보편자 논쟁'이다.
보편자 논쟁 역시 아리스토텔레스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발생 ... 그 문제의 뿌리는 중세 문명 자체에 함축되어 있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 문제의 중심에는 개체(the individual)라는 존재의 존재론적 위상에 대한 예민한 문제의식이 깔려 있었다.
...
보편자 논쟁은 한편으로는 존재론적 논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철학적 논쟁이기도 했다.
p.719-720.
이 시대에 발생한 좀더 의미심장한 흐름은 곧 유명론의 등장 ... (이는) 곧 암암리에 실재론을 전재했던 중세 문명에 어떤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의미 ... 이 유명론적 입장은 특히 아벨라르두스와 함께 등장했다.
아벨라르두스는 안셀무스에 반하는 유명론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개진함으로써 중세 철학사에 중요한 분절을 가져왔다. 아벨라르두스는 개체들이야말로 그 말의 일차적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들이며, 보편자란 존재론적으로가 아니라 논리학적/문법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개념들임을 분명히 했다.
...
그러나 아벨라르두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형상들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말과 사물 사이의 이질동형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전제를 벗어나버렸다. ... 이런 입장은 훗날 흄, 칸트 이후에 본격적으로 퍼져나가게 되거니와 아벨라르두스는 시대를 한참 앞서 '존재와 사유의 일치'라는 근원적 전제를 파기해버린 것이다.
p.722-723.
아퀴나스는 '중세적인 것'들을 장대하게 종합 ...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가 될 수 있었다.
...
아퀴나스는 다섯 가지의 '신 존재 증명'을 시도 ... 첫 번째 증명과 두 번째, 세 번째 증명은 '운동의 원인'에 대한 분석에 기초한다. 모든 운동은 잠재태로부터 현실태로의 운동이다. 그리고 능동자는 피동자에 대해 현실태의 성격을 띤다. ... 우주에는 다른 것들을 움직이지만 그 자신은 움직여지지 않는 순수 현실태 즉 궁극의 원동자가 존재해야 한다. 이 궁극의 원동자가 곧 신이다.
그런데 피동자들은 모두 우발성을 띤다. ... 그것들은 모두 질서 있게 움직이면서 '우주'를 구성 ... 이 우발성들을 지배하는 궁극의 필연성=근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필연적 존재가 곧 신이다. ... 이 세 논증은 함께 묶여서 흔히 '우주론적 논증'이라 불린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논증은 세계에 대한 가치-존재론적 구도, 즉 가치와 목적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위계에 입각한 논증들이다. 세계의 모든 존재들은 각각의 선('아가톤')의 정도/등급을 가진다. ... '실재도', '존재도', '완전도' ...
p.725.
아퀴나스는 인간의 영혼은 자유를 가진다고 보았다. 이때의 자유란 세계가 완전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 우연성을 내포하는 것,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맞닥뜨린 우연/우발성에 대해 숙고함으로써 선택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다는 것을 함축한다. 아퀴나스에게 자유란 우연을 뜻하기보다 오히려 우연에 대처할 수 있는 인간적 이성의 성격을 뜻한다.
p.727-728.
둔스 스코투스는 프란체스코회 입장에서 중세 철학을 종합했지만, 아퀴나스의 뒤에서 활동했기에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고 또 그를 비판하면서 사유를 전개해야 했다.
...
스코투스는 아퀴나스의 주지주의에 반해 주의주의를 주장함으로써 스콜라철학의 특징인 개념들의 위계적 구축에 균열을 냈다.
...
그는 신 존재 증명은 세계에 대한 경험적 탐구에 근거해야 한다고 보았다. 스코투스는 우연적 인과와 본질적 인과를 구분하고서,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1. 모든 존재는 타자를 원인으로 가지거나 가지지 않는다.
2. 본질적 인과의 경우 반드시 제1 원인이 존재해야 한다.
3. 어떤 무한한 우연적 인과도 본질적 인과 계열을 필요로 한다(즉, 제1 원인을 필요로 한다.)
4. 따라서 타자로서의 원인을 가지지 않는 제1 능동인이 존재한다. 이 존재가 곧 신이다.
(여기서부터 2024. 1. 22 업데이트입니다. p.747-751)
p.729-730.
중세 철학 전반에서 존재의 일의성, 다의성, 유비가 문제가 된 것은 신과 세계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 관련해서였다. 존재가 일의적이라면, 예컨대 "그레고리우스는 선하다"와 "하느님은 선하다"에서 "선하다"의 의미가 전적으로 같은 것이라면, 신과 세계/인간 사이의 간극은 사라져버리고 범신론으로 기울어진다. 존재가 다의적이라면 세계(넓은 의미)는 파편화되어 그 통일성을 잃어버린다.
유비의 개념은 이런 양극을 피하고 그 중간의 입장을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퀴나스의 '존재의 유비'로부터 스코투스의 '존재의 일의성'으로의 이행은 ... 중세의 해체를 암암리에 함축 ... 신이 유(有)의 일종이 되어버린다는 것,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거리가 메워진다는 것 ...
p.736.
파르메니데스 이래 '존재와 사유의 일치'는 서구 철학을 이끌어오던 대전제였다. 말과 사물의 일치라는 대전제 위에 아퀴나스, 나아가 스코투스에 이르기까지의 서구 철학사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오컴에 이르러 말과 사물 사이에는 어떤 근본적인 균열이 생기기 사작한다.
p.738.
오컴에 의한 중세 철학의 해체는 중세 사회 자체의해체와 나란히 진행된 것이었다. 14세기를 적절히 형용할 말을 찾는다면 그중 하나는 아마 '뒤숭숭한'이라는 형용사일 것이다. 14세기는 여러모로 뒤숭숭한 세기였다.
p.747.
(교황파와 왕권옹호주의자들의) 두 번째 중요한 격돌은 14세기 중엽 요한 22세・클레멘스 4세와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사이에서 벌어졌다. 이 격돌에서도 역시 신학자가 아니라 정치철학자인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1280~1343)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
마리실리우스는 ...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로서, 이성과 신앙을 확고하게 구분하는 아베로에스주의자로서 이론을 전개했으며, 그의 『평화의 옹호자』야말로 중세라는 또 기독교라는 너울을 상당 부분 벗어버린 최초의 정치철학서일 것이다.
p.749.
오컴의 유명론,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마르실리우스의 정치철학 등은 모두 중세의 해체를 드러내는 뚜렷한 징후들이었다. 단테, 프란체츠코 페트라르카, 조반니 보카치오, 제프리 초서 등은 문학 작품들을 통해 중세 교회의 부패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 등은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켰으며, 그 파급력은 1382년의 농민 반란, 보헤미아 민족운동으로까지 번져갔다. 이렇게 중세가 일정하게 해체된 이후에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시대를 되돌아보면서 그것을 타자화할 수 있었다.
(1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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