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생명은 대사, 복제, 진화를 하는가?
neomay3님이 매우 중요한 질문을 올려주셨는데, 아직 더 글이 올라오지 않아서, 부족하지만 제 의견을 덧붙일까 합니다. 제 의견을 덧붙이다 보니 답글이 너무 길어져서 그냥 새로운 글로 독립하여 올립니다.
"기존에 생명을 정의하던 생리적, 대사적, 유전적, 생화학적, 열역학적 정의 혹은 대사, 복제, 진화 등의 기준은 (온)생명 정의에서 불필요해지는 것인가?"라는 질문은 제가 이해하기로는 온생명론 초기부터 자주 거론된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생물학 교과서 맨 첫 장에 나오는 생명의 정의가 있는데 기존 정의에 비해 새로 온생명을 정의하는 것이 잘 맞아떨어지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질문하는 데 중요한 함정이 있습니다. 생명을 생리활동을 한다거나 물질대사가 있다거나 생화학적인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다거나 정보와 음의 엔트로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어느 정도라도 별 문제가 없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정의들이 불완전하더라도 어느 정도 별 문제가 없다면 애초에 온생명론이 나올 이유가 없는 셈입니다.
기존에 알려져 있는 생명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가 모두 불만족스러울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의라기보다는 생명현상이 보이는 특징들을 내세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생명론 내지 생명철학의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그렇게 여러 특징들을 말하더라도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을 구별하기 어렵고 살아있다는 것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생명론 문제의 심각성이라 하겠습니다.
생명에 대한 이론적 접근에서는 생명을 여하간 잠정적으로라도 정의해야 합니다. 글렌 로위(Glenn W. Rowe)의 책 Theoretical Models in Biology (1994)에서는 여하간 생물학에서 이론적인 모형을 만들기 위해 세 가지 특징적 현상을 내세웠습니다. 그것이 대사(metabolism), 생식(reproduction), 진화(evolution)입니다.
만일 로위의 접근처럼 이 세 가지 특징적 현상들로 생명을 어느 정도라도 규정할 수 있다면 사실 온생명론과 같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장회익 선생님께서 로위의 책을 인용하신 이유는 그 책에서 생명을 대사와 생식과 진화로 정의하는 대신 전체와 개체 사이의 관계가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직접 경험의 대상이 되는 개체 생명체들은 총체적 단일체와 관련 아래서만 존재성이 인정되는 생명의 부분적 국면"이라는 것입니다.
여하간 생명을 그 특징적 요소들을 통해 대충이라도 정의하고 다루는 작업은 상당이 전통이 깊고 내용도 풍부합니다. 이는 수리생물학(mathematical biology)라는 분야로 잘 정립되어 있고, 시스템 생물학(systes biology)과도 연결됩니다.
Manfred D. Laubichler, Gerd B. Müller (eds.) Modeling Biology: Structures, Behaviors, Evolution. MIT Press (2007). https://a.co/d/2ggbOX7
생물학 교과서에서 생명에 대한 정의가 명쾌하지 않고 흩어져 있는 것처럼, 수리생물학에서 접근하는 것도 한계가 뚜렷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온생명이 복제를 하지 않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또는 생명의 특징적 요소 중에서 복제가 가지는 의미입니다.
생명 또는 온생명의 정의를 "우주 내에 형성되는 지속적 자유에너지의 흐름을 바탕으로, 기존 질서의 일부 국소질서가 이와 흡사한 새로운 국소질서 형성의 계기를 이루어, 그 복제 생성률이 1을 넘어서면서 일련의 연계적 국소질서가 형성 및 지속되어 나가게 되는 하나의 유기적 체계"라고 받아들이면 기존 국소질서로부터 새로운 국소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즉 복제라는 것은 생명을 이해하는 데 결코 빠뜨리면 안 될 핵심요소입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이 정의는 곧 생명에 대한 정의이자 온생명의 정의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따로 있고 온생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정의는 생명의 본질을 드러내는 정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명을 정의하고 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또는 알고 있다고 믿는) 생명체의 정의와 일종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익숙한 생명들은 그 자체로 지속적 자유에너지의 흐름을 구성하지 않으며 단순히 생식과 세포복제만으로는 국소질서가 새로운 국소질서를 형성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근원적으로 보생명을 필요료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속적 자유에너지의 원천을 그 안에 포함하지 않으면, 그런 것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라가다 보면 태양을 포함해야 합니다. 제임스 러브록이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가이아 가설을 제시하고 이것이 가이아 이론으로 발전해 오고 있지만, 가이아 이론에서는 자유에너지의 원천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생명 개념의 자족성이 문제가 됩니다.
결국 사례로 보자면 지구와 태양으로 이루어져 있는 태양-지구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온생명의 유일한 예이지만, 이는 그 자체로 대사, 복제, 진화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 구성요소인 개체생명(낱생명)이 대사, 복제, 진화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사와 복제와 진화의 네트워크가 자조적인 단위로 스스로 안정된 것이 바로 생명의 진짜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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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감사합니다! 책 소개도 감사합니다!!
기존의 생명 정의가 여러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가지는 특성들(에서 공통적인 특성들?)을 나열한 것일 뿐인 일종의 가정이고, 정의라고 할 수 없다는 거지요?! 그리고 복제라는 것은, '온생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 안에서는 '국소질서'들이 복제 생성률 1 이상으로 형성되고 이것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온생명' 자체에 대해서는 기존의 생명 정의에 쓰던 '복제'라는 개념을 쓸 필요가 없는 거네요. 제대로 이해를 한 건지... 더 섞어버린 건지 판단이 안 되네요. ^^;
설명이라기보다는 의견입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것과 장회익 선생님이 주장하시는 것이 또 다를 것입니다. 제 생각을 조금 더 정리해서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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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김남두 선생님의 논평과 그에 대한 장회익 선생님의 답글을 보면, 온생명의 구체적 모습이 태양-지구계라 할 때 하나의 유기적 단위로서 복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시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에서 생명의 핵심은 복제와 생식일 것 같은데 온생명은 복제도 하지 않고 생식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의 직관적 생명 개념과 충돌합니다. 이와 달리 대사와 진화는 온생명에서도 볼 수 있을 듯 한데, 이와 관련된 서술은 다소 은유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온생명의 '대사'가 생명체의 '대사'와 어느 정도나 같은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즉 생명체에 대한 탐구로서 생리학(生理學 physiology)과 가령 지구생태계에 대한 탐구로서 생태학(生態學 ecology)는 방법이나 가설이나 연구결과 등에서 개념적 은유는 인정하더라도 직접적인 연결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입니다.
'진화'도 생명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연선택이나 적응이나 여러 관련된 진화이론적 측면들이 구체적 수준에서는 태양-지구계의 시간적 변화(이것도 '진화'라 부를 수는 있겠지만)의 구체적 내용과 다르지 않겠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