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1935년 논문 – (2)얽힘

슈뢰딩거의 1935년 논문은 양자역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인 얽힘과 측정을 다룬다. 특히 처음으로 ‘양자 얽힘’의 개념을 정립하면서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이 논문에 대해 세 번에 걸쳐 소개한다.

“슈뢰딩거의 1935년 논문”
(1) 슈뢰딩거의 묘비명
(2) 얽힘
(3) 측정

2019년 11월 5일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엉뚱하게도 지금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용어가 양자역학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되어 버렸지만, 슈뢰딩거가 이 사고실험을 제안한 것은 당시 퍼져 있던 잘못된 관념을 귀류법적인 논변을 통해 비판하기 위함이었다.

고양이에게 ‘반생반사’의 상태를 부여하는 것이 우스꽝스럽고 납득할 수 없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원자나 전자의 경우에도 상태의 서술은 존재론적인 서술이 아니다. 즉 양자역학에서의 확률예측을 실재의 상(Abbild der Wirklichkeit)에 대한 ‘흐려진 모형’(verwaschenes Modelle)으로 보면 안 된다.

확률예측은 대상에 대한 지식의 부족을 의미하며 인식론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함수는 측정결과의 확률분포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주는 수단이다. 기대값의 목록으로서 함수의 변화는 인과적이며 연속적이지만, 이것은 측정이 일어나기 전까지에만 해당한다.

측정을 할 때마다 일종의 갑자기 변화하는 ψ함수를 할당해야 하며, 이는 측정 결과에 따라 달라지므로 예측할 수 없다.

[그림 1]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 안에 고양이, 독약이 들어있는 병, 방사성물질과 검출기가 들어있다. 방사성물질이 붕괴할 확률은 50%, 방사선을 검출기가 감지하게 되면 병은 깨지고 고양이는 죽는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고양이는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있다. 그러나 상자를 열어보는 순간 고양이는 살아있거나 죽은 상태 둘 중 하나의 결과만 나타내기 때문에 양자 중첩 상태는 종결되고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실재로 붕괴된다.(그림과 설명 : wikipedia)

이렇게 실재론을 거부하게 되면, 변수가 일반적으로 측정하기 전에는 어떤 특정한 값을 갖지 않으며, 따라서 측정은 변수가 가지고 있던 값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적 귀결을 얻게 된다.

슈뢰딩거는 측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두 개의 계(측정대상과 측정장치)의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상호작용을 통해 뒤의 계(측정장치)에 대한 직접 감지할 수 있는 속성(눈금위치)이 바로 반복되는 과정에 대해 특정한 오차범위 내에서 재생될 수 있을 때, [이 상호작용을] 앞의 계(측정대상)에 대한 측정이라 부른다.”

어떤 변수에 대해 측정을 하고, 바로 뒤이어 그 변수를 다시 측정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첫 번째 측정이 일어나기 전에 임의의 양자이론 예측이 가능하다면, 그 첫 번째 측정에서는 그 예측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측정의 정의로부터 두 번째 측정에서는 앞에서의 예측과는 달리, 이미 나온 측정 결과가 반복되리라는 예측을 하게 된다. 따라서 ψ함수를 기대값의 목록으로 본다면, 측정의 과정에서 함수가 불연속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따라서 슈뢰딩거가“측정은 함수의 연속적인 시간적 변화를 지배하는 법칙을 따르지 않고, 아무 법칙의 지배도 받지 않으며 측정결과에 따라 서술되는 전혀 다른 변화를 겪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변화는 물리적 변화일까? 슈뢰딩거는 측정의 이론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한다.

  • 측정에 따른 기대값 목록의 불연속 변화는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측정이 의미를 가지려면 여하튼 측정값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 이 불연속 변화는 인과적 법칙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측정된 값에 따라 달라지며, 측정된 값은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이 변화에는 일종의 지식의 손실이 생기지만, 지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상이 변화해야 하며, 이는 예측할 수 없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슈뢰딩거로서는 측정이 비록 인과적이고 연속적인 법칙으로 서술될 수는 없더라도 측정대상과 측정장치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측정 이전의 ψ함수가 말해 주는 기대값 목록과 측정 이후의 기대값 목록이 다르기 때문에, 서술자의 지식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이 때 대상은 그대로인 채 서술자의 지식만 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대상 자체가 달라지는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슈뢰딩거가 후자의 선택을 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1935년*과 1936년**에 <케임브리지 철학 학회 수학 학술지>에 출판된 논문에 따르면, “어떤 전체 계의 최대 지식이 반드시 그 부분들의 최대 지식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며, 부분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서로 전혀 영향을 줄 수 없을 때에도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가 계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부분계들 사이의 관계이다. 슈뢰딩거가 측정에서 일종의 지식의 손실이 일어나지만, 실제로 지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상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배우는 양자역학” – Josh Samani(UCLA Physics & Astronomy). From Teded.

측정과정은 단순히 측정대상과 측정장치 사이의 상호작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측정과정은 그러한 물리적 상호작용일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를 서술할 수 있는 물리적 법칙이 없기 때문이다. 슈뢰딩거에게 측정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얽힘(Verschränking, entanglement)이다. 

“상태(representative)를 알고 있는 두 계가 일시적으로 물리적 상호작용을 할 때, 상호 영향의 시간이 지난 뒤 두 계가 떨어져 있게 되면, 이전과 같이 각각 기술되지 않고 그 계들 자체의 상태를 부여받게 된다.

나는 이것을 양자역학의 여러 특징들 중 하나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본다. 바로 이것이 양자역학을 고전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상호작용을 통해 두 상태(또는 함수)는 얽히게 된다(entangled).” 

– 슈뢰딩거

1935년 8월부터 1936년 4월까지 슈뢰딩거의 언급에서 무엇이 얽히는지가 계속 달라진다. 위의 인용문에서는 “상태(대변자, representatives)의 얽힘”을 말하고 있지만, 뒤에는 “예측치의 얽힘”(Verschränkung der Voraussagen)이나 “지식의 얽힘”(Verschränkung unseres Wissens)을 말하기도 한다.

두 계가 얽힌 상태에 있다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첫 번째 계의 측정 결과에 따라 두 번째 계의 확률분포가 정해진다. 슈뢰딩거의 표현을 빌면, “이런 식으로 두 번째 계에 대한 임의의 측정과정이나 그에 상응하는 임의의 변수는 첫 번째 계의 임의의 변수에 따라 달라지며, 당연히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우에 전체 목록에서 조건부 명제가 성립한다면, 전체 목록은 단일계에 대하여 최대가 될 수 없다.”

슈뢰딩거는 여기에서 매우 흥미로운 측정의 이론을 전개한다. (3편에 계속)

*Erwin Schrödinger. (1935) “Discussion of Probability Relations Between Separated Systems.”Mathematical Proceedings of the Cambridge Philosophical Society 31: 555-662.
**Erwin Schrödinger. (1936) “Probability Relations Between Separated Systems.”Mathematical Proceedings of the Cambridge Philosophical Society 32: 446-452.

출처 : AZ QUOTES

2019년 11월 5일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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