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어 원자 모형의 탄생 1913 (3/3)

*보어의 원자 모형 탄생 이야기(총 3회) 중 마지막회! 양자역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더 많이 알려진 닐스 보어는 ‘보어 모형’이라 불리는 원자 모형을 만들었다. 보어 모형에서 전자는 원자핵을 중심으로 회전을 하는데 이 전자들의 궤도 반지름은 특정한 값만 가질 수 있다. 보어는 1913년 7월, 9월 그리고 11월 세 차례에 걸쳐 긴 논문을 발표(‘위대한 3부작’)했다. 여기에는 새로운 원자 모형 개념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쳐 탐구하게 될 보어의 “물질세계에 대한 자연철학”이 담겨있다.

보어 원자 모형의 탄생 1913

(1)  덴마크의 과학자 닐스 보어, 러더퍼드를 만나다 (7/23)
(2) 코펜하겐으로 돌아간 보어, 자신의 원자 모형을 만들다 (7/30)
(3) 1913 ‘위대한 3부작’ (8/6)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2019년 8월 6일

1913 ‘위대한 3부작


보어의 ‘위대한 3부작’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보어 자신이 요약하고 있는 대로, 플랑크의 복사 이론을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에 적용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표였으며,  4월 5일에 투고된 1부는 전자가 하나인 계와 거기에서 비롯된 빛띠(스펙트럼)를 다루고 있는데, 이후의 논의를 위한 이론의 기초를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 빛띠와 관련된 여러 법칙들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다. 수소원자의 빛띠, 뤼드베리의 법칙, 연속 흡수빛띠, 광전효과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등이 그것이다. 

2부는 본격적으로 원자이론과 주기적인 계의 이론을 다루고 있다. 3부는 분자 구성의 이론과 분산 이론이다. 여기에서는 빛의 복사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안하고 설명하는 동시에 원자와 분자를 고전역학에 따라 다루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1부는 러더퍼드 원자모형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원자핵 주위에 전자가 돌고 있다는 가정에 덧붙여 전자가 궤도를 바꿀 때 복사되는 빛은 플랑크의 복사공식을 따른다고 하면 다양한 빛띠의 관측결과를 다 설명할 수 있음을 보이고 있다. 

빛이 플랑크가 흑체복사를 설명하기 위해 제안한 것을 확장하여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대로 진동수에 비례하는 기본양자의 자연수배의 에너지만 갖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자의 궤도도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만 허용된다. 궤도도 띄엄띄엄 떨어진 것으로 양자화되는 것이다.

덜 알려진 2부와 3부가 중요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서 원자와 분자에 대한 보편적인 이론이 상세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1부가 일반적인 고찰로서 가장 간단한 수소원자의 모형을 제안하고 그 증거로 빛띠의 관측결과를 제시한 것이라면, 2부와 3부는 이를 일반적인 원자와 분자의 구성으로 확장하고, 구체적으로 새로운 기본이론을 구축한 것이다. 

따라서 빛띠와 같은 현상뿐 아니라 사실상 모든 물질현상에 대해 이 새로운 이론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새로운 이론은 영구적인 전자의 궤적과 운동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원자핵이 하나인 경우, 즉 분자가 아닌 경우에는 원자핵의 양의 전하와 같은 수의 전자가 일정한 궤적을 가장 안쪽부터 바깥쪽으로 마치 양파껍질처럼 싸고 있다. 모든 궤도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고, 1부에서의 논의를 바탕으로 하면, 회전하는 전자의 각운동량이 플랑크 상수의 정수배가 되는 궤도만 가능하다.(그림 1)

<그림 1> 수소 원자의 보어 모형 (사진 : 위키피디아)

전자가 돌고 있는 고리의 수 N에 따라 원자들의 성질이 결정된다. N=1이면 수소원자, N=2이면 헬륨원자, N=3이면 리튬 원자 등으로 원자들의 성질이 고리의 수에 따라 어떻게 정해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면 원소들의 화학적 성질에 따라 원소들을 배열한 주기율표도 왜 그렇게 배열되어야 하는지 더 근본적인 원자모형으로부터 유도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1913년에 헨리 모즐리(Henry Moseley. 그림 2)가 엑스선 회절을 이용하여 확립한 현대적인 주기율표는 보어의 원자모형을 실질적으로 확증해 주었다.

<그림 2> 헨리 모즐리(1887-1915. 사진 : Linda Hall Library)

그렇다면 보어의 ‘위대한 3부작’은 당시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1913년 9월 헤베시가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아인슈타인에게 보어의 3부작에 담긴 내용에 대해 말하자,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이론을 “엄청난 성과”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들 중 하나”라고 추켜세웠다.

독일의 조머펠트도 축하의 인사와 함께 이 새로운 원자모형을 제만 효과 등 당시에 설명하기 어려웠던 현상들에 적용해 볼 것을 제안했다. 영국과학진흥협회에서 진즈는 보어의 새로운 이론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이를 “가장 뛰어나고 통찰력 있는 이론”이라고 불렀다. 「더 타임즈」와 「네이처」는 보어의 이론이 수소 빛띠를 뛰어나게 설명했으며 그 이론이 설득력 있고 영민하다고 평가했다.

<그림 3> 보어 모델에 따른 수소, 헬륨, 리튬, 네온의 전자 에너지 준위 (출처: wikipedia)

그러나 1913년 12월 보어 자신은 아직 가설적인 준비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했다. 자신의 이론은 단순히 빛띠 법칙을 해명하려고 제안된 것이 아니라 “빛띠 법칙들을 현재 과학의 상태의 토대 위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원소들의 여러 성질들과 연관시킬 수 있음을 밝히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조머펠트(Arnold Sommerfeld, 1868–1951. 그림 4)는 보어의 이론을 확장하여 사실상 모든 원자에 적용될 수 있는 체계적인 이론을 발전시켰고, 이 보어-조머펠트 이론은 1920년대 중엽에 본격적인 양자역학이 등장하기까지 원자현상을 설명하는 기본적인 이론의 틀 역할을 충실히 했다.(그림 4)

<그림 4> 보어-조머펠트 모델. 보어모델의 원자론에 타원궤도와 조머펠트의 새로운 양자조건을 도입하였다. (사진 : wikiwand, 그림 설명 : 한국물리학회)

보어의 원자모형에서 가장 중요한 결론은 “속박된 전자들의 각운동량이 특정한 보편적 조건을 따른다는 가설을 도입하면 실험결과와 잘 일치한다.”는 것이다. 각운동량이 따르는 보편적 조건은 다음과 같은 가설을 가리킨다.
“양전하를 띤 원자핵들과 전자들로 이루어진 분자계에서 원자핵들은 상호간 정지해 있고 전자들이 원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고 하면, 궤적의 중심 주위를 회전하는 전자의 각운동량은 계의 영구적인 상태에서 ?/2?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는 플랑크 상수이다.”

이 가설이 등장하기 전에 막스 플랑크는 흑체복사에서 허용되는 에너지의 값이 특정한 값의 자연수 배가 된다는 가설을 도입했고, 아인슈타인은 형광이나 광전효과와 같은 현상들에서 빛의 양자 개념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세부적인 이론들을 모아서 하나의 완성된 원자와 분자의 모형으로 발전시킨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보어의 업적이었다. 

특히 에너지만이 아니라 각운동량의 양자화를 제안했고,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소위 정상상태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복사 현상까지 설명할 수 있는 포괄적 이론이란 점에서 보어의 이론은 더 우월하다.
그런데 왜 보어는 논문을 짧고 간명하게 써야 한다는 러더퍼드의 충고를 듣지 않고 직접 러더퍼드를 찾아가면서까지 자신의 원고를 고집했던 것일까? 결국 이 ‘3부작’이 보어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가장 중요한 업적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논문이 이후에 양자역학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만일 보어가 러더퍼드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실상 보어의 ‘3부작’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이후 50여 년 동안 진행된 양자역학의 물리학적 및 철학적 문제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보어는 몇몇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라 일종의 자연철학으로서 물질세계에 대한 올바른 그림을 그려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사유의 영역에서 최고의 음악성”이라고 평가한 이 논문은 물리학과 철학이 만나는 가장 멋진 장면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사진 5> 보어와 조머펠트. 1919년 (사진 : the spectrum of riemann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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