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녹취 2020.9.24] 생명이란 무엇인가? (1)-1

이 자료는 녹색아카데미에서 격주로 진행하는 ‘자연철학 세미나’(온라인) 녹취록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선생님의 책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와 자연철학 게시판을 참고해주세요.


자연철학세미나

세미나 일시 : 2020년 9월 24일 
장소 : 온라인 (Zoom)
발표 : 최우석

다룬 내용 :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제7장. 집에 도착해 소를 잊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1. ‘이해한다’는 것 
  2. 생명을 ‘이해’하는 두 가지 접근 방식 
  3. 자연의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생명을 이해한다 
  4. 질서, 정연성, 정교성, 부-엔트로피
  5. 부-엔트로피와 자유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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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4일 세미나 녹음파일 중에서 12:50 ~ 56:20까지 녹취)

▷ 녹취 시작 
• 구분점 부분 : 장회익선생님.
구분점 없는 부분 : 발표자
< > 괄호 안 : 질문

1. ‘이해한다’는 것

오늘은 자체촉매적 국소질서에 관한 이야기 정도까지 하는 것를 목표로 삼고 있다. 뒤에 일차질서와 이차질서, 복합질서로서의 이차질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하는 걸 염두에 두고 발표 준비를 했다. 간단한 발제 내용은, 7장 내용과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로 준비했다.

이 책은 장회익선생님께서 2014년에 내신 책인데, 예전에 열심히 못 봐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보겠다고 함께 봤다. 공부에는 도움이 많이 됐는데, 막상 하고 나니까 발제할 때 헷갈려서, 좀 혼동을 겪을 수도 있을 거 같다. 두 책의 얘기들을 조금 섞어가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고자 한다.

[그림 1]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장회익. 2014. 한울.

일단 제가 장회익선생님 책을 따라가면서 느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선생님의 책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와 선생님께서 세우신 이론에서는 ‘이해한다’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자연철학 이야기’ 대담에서도 선생님께서 ‘이해한다’라는 걸 특별히 강조하셨고, 2014년에 나온 책의 제목도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이다.

여기서도 생명을 안다, 설명한다를 넘어서 ‘이해한다’라고 말씀을 하셔서,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저도 이해를 해보려고 하고 있다. [슬라이드 1]에 제 식대로 표현해서 정리해보았다.

[ 슬라이드 1. 존재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 ]

자연계의 기본원리를 얻어내고,
우주, 물질, 생명, 앎, 나 등중요한 설명과제들을
기본원리를 가지고 규정하고 설명하는 것

자연계의 기본 원리를 얻어내고, 이걸 가지고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게 우주가 뭐냐, 물질이 뭐냐, 생명이 뭔지, 나아가서 앎은 뭐고 나는 또 뭔지, 이러한 인간 세계에서의 중요한 설명 과제들을 기본 원리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 기본 원리를 가지고 이해하는 것. 이것이 장회익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이해한다’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우리가 고전역학,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통계역학 이런 것들을 공부한 것은 지금까지의 석학들이 자연의 기본 원리로 밝혀낸 것들이고, 그것을 가지고 설명을 하나하나 설명해나가는 단계가 책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는 6장부터이다. 바로 앞 장에서 ‘우주와 물질’을 공부했다. 저는 5장까지 했던 기본 원리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기는 했는데, 이 장도 기본 원리를 적용해서 설명하는 단계였다.

지금은 그 기본 원리를 가지고 생명을 설명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저는 피부로 느낀 적은 없는데, 물리학자의 입장에서는 우주와 물질을 이해하고 난 뒤에는 갑자기 생명이라는 게 딱 나와서 이건 뭔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우리한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자연세계의 기본 원리를 쭉 따라갔을 때 우주와 물질을 이해하는 것을 그냥 연장선 상에서 간단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인상을 받았다.

2. 생명을 ‘이해’하는 두 가지 접근 방식

그랬을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인 것 같다. 말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흔하게 접근하는 방식은 “대체 지구에 어떻게 생명이 나타났을까?”하는 접근이다. 그런데 기본 원리를 가지고 접근한다는 것은, 이것도 표현이 적확한지 잘 모르겠지만, “대체 존재 세계에 어떻게 생명이 나왔을까?” 이렇게 하는 게 좀 더 기본 원리에 가까운 표현인 것 같다.

[ 슬라이드 2. 우주와 물질을 이해한 뒤의 과제 : 생명 ]

두 가지 접근 방식

“대체 지구에 어떻게 생명이 나타났을까?”
– ‘살아있음’에 해당하는 공통된 성격 찾기
생명의 ‘정수(精隋)’ 찾기
– “대체 존재 세계에 어떻게 생명이 나타났을까?”
자연의 기본 원리에 바탕하여 확연히 구분되는 본질적 특질 찾기

제가 좀 다르다고 느끼는 이유가 있다. 접근 방식이 지구에 생명이 나타났다, 어떻게 나타났나 이렇게 되면, 설명의 과제가 지구에 암석도 있고 비바람도 치는 와중에 어떻게 생명이 바다 속에서 기어올라왔는가 내지는 외계에서 왔나 갔나, 이런 식으로 익숙한 것들을 조합해서 설명하는 방식이 되기 쉽다.

그래서 선생님의 책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에서는, 살아있다라는 것에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것들을 주워모으는 방식으로 설명한다든가 내지는 생명의 정수라는 것을 찾아헤맨다든가 이런 식의 접근을 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익숙한 풍경 안에서 이해해보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한계를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본 원리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것은, 마치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 어디에 뚝 떨어져서 태초부터 우주가 변해가는 역사를 본다는 입장에서 생명을 이해하려고 할 때, 이때는 생명이 놀라운 것이구나하고 볼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6장 우주와 물질에서도 봤듯이, 원리는 어렵지만 알고 나면 빅뱅이 일어난 다음에 기본 입자들이 원자를 이루고 항성과 행성을 이루게 되고 무거운 물질들이 나오게 되고 은하를 이루게 되는 과정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쭉 가다가 갑자기 생명이 나오는 것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뭔가 더 정교한 이론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입장이다.

  • 거기서 내가 조금 한 가지 보충 설명을 할 것이 있다. 중요한 것을 짖거했고 굉장히 문제에 접근을 잘 했다. 우선 ‘이해’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지금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보충하자면, 책에 명시하지는 않았는데, 최근에 내가 다른 글을 쓰면서 정리하기는 했다.
  • 우리가 앎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앎의 틀 혹은 관념의 바탕틀이 있어서 그 틀의 각 위치에 적절한 걸 안치시키는 것이다. 틀에 연결을 하는 것이다. 그 틀에 연결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기본 원리를 통해서 배치를 할 수 있다. 기본 원리가 없다면 뭘 어디에 놓아야할지 모른다. 바탕틀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제10장에서 ‘온전한 앎’이라고 하는 뫼비우스의 띠로 설명되는 틀이다.
  • 말하자면 우리가 지구에서 지도를 놓고 파악하려면 지구의가 필요하다. 지구의에 지도를 앉혀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탕틀의 제자리에 갖다놔야 한다. 그 방법은 기본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기본 원리가 있으니까 그에 따르면 이건 여기에 있어야 하고 저건 저기에 있어야 하고, 논리적으로 안착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해’라는 것이다.
  • 그런데 보통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이미 자기자신의 바탕틀, 관념의 틀은 다 있다. 그 틀이 없으면 이해는 커녕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게 뭐냐, 자기가 알고 있는 바탕틀에 새로운 정보를 갖다 연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상식적인 바탕틀, 일상적인 바탕틀은 독자적인 섬이다. 사람, 지구, 생명, 이런 것들은 우리가 이미 다 아는 것들이다. 나한테 그 섬들이 있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 그런데 내가 여기 책에서 한 것은 그런 섬들이 없다. 전체가 빈 공간이고, 자리만 있다. 그 자리에다가, 기본 원리가 있으면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느냐 찾고, 그 섬이 설명이 되면서 전체를 연결하는 것이다. 그 기본적인 바탕틀이 다르다는 것이다.
  • 내 책은 최근에 학술원에서 인정을 받기는 했지만(『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2020년 우수학술도서로 선정. 인문학 분야) 극소수의 독자들만 읽는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이 있다. 본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 책이 나온지가 1년도 안 됐을텐데 몇 쇄를 찍었냐면 7개월만에 80쇄를 찍었다. 내 책은 이제 2쇄 찍으려고 하는데. 이 책은 어떤 책이냐. 일상적인 관념 틀에다가 과학이나 철학 이야기를 갖다 붙인 거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다. 그 사람들의 관념 틀이 있으니까.
  • 그런데 과학적인 내용을 사람들이 익숙하게 아는 개념 틀에 맞게 꺽어서 갖다 붙인 것이다. 우주에서 몇 년 전에 뭐가 생겼다, 생명이 몇 년 전에 생겼다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생명이 무엇이냐, 지구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없다. 지구가 언제 생겼다 이런 건 시간 위에 나열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다. 그런 정도로 하면 읽어서 이해는 되지만, 결국은 조각난 그림밖에 안 나온다.
  • 그런데 지금 여기서는 그런 익숙한 바탕 틀은 일단 없는 것으로 친다. 생명이란 게 뭔지 모른다. 아직 머리 속에 ‘생명’이라는 말이 나온 일이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현상이 있을 수 있느냐, 있을 수 있는 현상을 얘기를 하고, 아하! 이런 현상이 생긴다면 이걸 바로 우리가 ‘생명’이라고 얘기했던 것에 해당하는구나 하고, 비로소 생명을 거기서 찾는 것이다. 생명을 미리 알고, 생명이 어떻게 생겼느냐 찾는 건, 내가 얘기하는 이 틀에 맞지 않는다. 이 틀에서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미리 전제하지 않는다.
  • 가장 기본적인 원리, 빈 공간 안에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무엇에 해당한다,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이번 7장에서 생명을 이해하는 바탕이다. 그래서 지금 두 가지 접근이라고 정리한 것이 맞기는 맞는데, 그 둘이 어떻게 다르냐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 둘의 바탕틀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 바탕틀은 모든 것들을 다 집어넣는 공간이지만, 그러나 그 지오메트리(geometry)는 제대로 맞아야한다.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것을 한 평면 상에 갖다가 놓으면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잡을 수가 없다. 지구본이라고 하는 구면 위에 놓아야 맞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앎이라고 하는 것도 앎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틀을 만들고, 그 틀 위에 제자리를 맞춰야 한다. 이것이 ‘이해’의 기본이다.
  • ‘이해한다’고 하면 그 전체가 연결이 되어야 제대로 된 이해로 갈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이 책에서는 ‘온전한 앎’이라는 말로 표현을 했다. ‘온전한 앎’을 추구하는 것이 ‘이해’의 방식이다. 근본적으로 이해의 입장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결과적으로는 연결 짓지만, 그러나 그것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조차도 없는 것으로 치고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어떤 것에 맞는지 사후적으로 확인하는 이런 과정이다. 장황해지기는 했는데, 중요한 점이라서 설명했다.

비유하자면 옛날 영화 중에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에 누군가 들어가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모습처럼, 우리도 나 자신까지 지워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우주의 시작부터 기본 원리를 가지고 쭉 얽어갈 때 어떤 일이 생기게 되는가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간다고 볼 수 있겠다.

3. 자연의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생명을 이해한다

[슬라이드 3] 생명에 대한 볼츠만의 견해

그래서 자연의 기본 원리에 바탕해서 구분되는 식으로 접근할 때 가장 앞에 있는 선구자가 볼츠만이고, 슈뢰딩거도 지적을 했고, 장회익선생님도 지적을 했다. 볼츠만같은 경우는 선생님 책에 보면 이 내용이(슬라이드 3) 볼츠만이 생명에 대해서 언급한 전부라고 나온다.

생명에 있어서는 원소나 에너지를 얻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이너스 엔트로피(음의 엔트로피)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뜨거운 태양에서 차가운 지구로의 에너지 흐름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슈뢰딩거도 볼츠만의 견해를 그대로 이어받아서, 유명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는 두 가지를 얘기했다. 하나는 엔트로피와 관련된 얘기, 또 하나는 유전자의 기본 원리에 있어서의 성격.

[슬라이드 4]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선생님 책에서는 슈뢰딩거의 이 책의 역할을 이렇게 보고 있다. 20세기 전반의 대대적인 앎의 혁신을 통해서 기존의 바탕 관념들을 다 깨부수고 혁신을 이룬 물리학의 새로운 열매가 다른 학문 분야, 여기서는 생물학 분야로 넘어가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다.

정리해보면 : 그래서 20세기 전반기에 물리학이 꽃피고 20세기 후반기에 생물학의 시대가 열린 것은 그냥 우연이 아니다. 물리학에서의 기본 원리가 기존의 생물학적인 언어와는 다르지만 자연계의 기본 원리에 입각한 것으로서 생명을 이해하고자 하는 그런 노력이 물리학적인 기본 원리들을 받아들이게 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새로운 접근(결과적으로는 분자생물학으로 이어졌다)을 가능하게 한 가교 역할을 물리학이 했다. 이렇게 선생님 책의 내용을 정리할 수 있겠다.

주로는 유전자의 성격이 비주기적 결정체라고 하는 언급으로부터 이어졌고, 엔트로피와 관련된 내용은 그렇게 많이 이야기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 슬라이드 5. 정교성의 출현과 유지 ]

“ ‘살아 있는 존재’라 불리는
지극히 높은 정교성을 지닌 존재들이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으며 또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

선생님처럼 기본 원리로부터 생명의 출현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질문은 슬라이드 5와 같이 정리해볼 수 있겠다. 굳이 ‘살이 있는 존재’라는 언급을 넣지 않더라도, “지극히 높은 정교성을 지닌 존재들이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으며 또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 이것 자체가 탐구 과제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지극히 높은 정교성’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 우리는 원자도 놀랍고 분자도 놀랍고 항성, 행성, 은하 다 놀라운데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높은 정교성을 지닌 것으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을 상정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이다. 생명은 우주와 물질을 설명하는 것에서 연장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 슬라이드 6. 물리학으로 어떻게 생명을 규정할 것인가 ]

“더 깊은 바탕의 앎 곧 물리학의 언어를 통해
생명이라는 것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물리학을 기본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 영역이라고 설명하는데, 물리학의 언어를 통한다라는 것은 기본 원리로 풀어간다는 얘기이다. “물리학으로 생명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우리가 생물학에서 보는 세포, 유기체와 같이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언어가 아닌, 기본 원리에 입각한 것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런 것이 ‘이해’라는 것이다.

[ 슬라이드 7. ‘정교한 질서’ ]

우주와 물질을 이해한 뒤의 과제

동역학과 통계역학 법칙에 따라 우주와 물질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생겨났다.
그런데 우주의 일각에서는 이러한 질서 이후에 월등하게 정교한 질서가 출현하여
상당히 오랜 기간 존속하거나 점점 더 정교해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러한 일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랬을 때에 생명이라는 말을 아예 싹 빼버리고 ‘정교한 질서’ 이것으로 우리가 얘기를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슬라이드 7은 선생님 책에서 가져와서 제가 정리해 본 것이다. 동역학과 통계역학 법칙에 따라서 앞에서 우리가 설명한 것처럼 우주와 물질이 생겨났는데, 그런데 우주의 일각에서 물질이 형성된 이후에 월등하게 정교한 질서가 출현해서 상당히 오랜 기간 존속하거나 점점 더 정교해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리고 우리가 이 일을 알고 있고, 혹은 그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일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4. 질서, 정연성, 정교성

제가 발제를 하면서 정리를 해보려다가 잘 안 돼서 되다 말았는데, ‘질서’라고 하는 차원에서 접근을 해보고 싶었다. 제가 지난번에 선생님과 대담을 할 때에도 질서에 대해서 여러 차례 여쭤봤는데, 질서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더 혼란스럽게 만들지 모르겠지만,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나온 얘기들을 주로 해서 ‘질서’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았다. 이 책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에서는 ‘질서’를 슬라이드 7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 슬라이드 8. 질서 order ]

“아주 단순하게 말한다면 질서는 ‘혼돈 chaos’의 반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혼돈’이란 아무 것도 구분할 수 없음을 말하는데, 그러니까 그 무엇인가를 구분할 수 있다면
이는 이미 질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회익(2014).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한울. p.123

카오스의 반대이다, ‘혼돈’이란 아무것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면, 뭔가가 구분이 되는 것은 질서가 있다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기본 원리 차원에서 얼마나 분명한 얘기인지 감은 잘 안 온다. 구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통계역학에서 배운 거시상태 중에서 경우의 수가 아주 적은 거시상태를 얘기하는 것이다.

가령 흔히 예를 드는 게, 쌀알과 콩알을 섞어놨을 때, 콩알을 쌀알 더미에 박아서 ‘사랑해’같은 글씨나 하트 모양 이런 것을 만들어놨을 때, 이것은 특정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콩알 무리와 쌀알 무리가 구분이 된다. 이것을 흐트러뜨리면 콩알이 사방에 섞이면서 특정한 형상이 구분되지 않게 된다. 그런 걸 얘기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냥 질서 내지는 무질서라고 하면 얘기의 진척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정교성 혹은 정연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선생님의 2014년 책에는 ‘정연성’이라고 표현하셨고, 2019년 책에서는 ‘정교성’이라고 하셨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같은 말 같다.

[ 슬라이드 9. 정연성 또는 정교성 orderliness ]

“… 부-엔트로피는 엔트로피의 값에 마이너스(-) 부호를 붙인 값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바로 질서의 ‘정도’를 나타내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 한 거시 상태에 속하는 미시 상태의 수가 많을수록, 즉 W가 클수록 이것이 정연하지 못하고 무질서한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서의 ‘정도’를 이 W 값과 연관 지어, 이것이 작을수록 질서가 더 정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 질서의 정도, 즉 정연성 O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장회익(2014).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한울. p.123-124
  • 같은 건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정교성’이란 말이 더 적절한 것 같아서 바꿨다.

orderliness도 같은 말인가?

  • 영어로는 좀 달리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있는 말 중에서 가장 적절할 말을 골라야 되는데 그걸 찾기가 쉽지 않다. 이리저리 찾다가 ‘정교성’이 그나마 의미를 적절히 부여하는 것 같아서 지금은 ‘정교성’으로 통일해서 쓰고 있다.

그러면 저희도 ‘정교성’이라고 해보겠다. 정교성이라는 개념을 들여오면 질서냐 무질서냐 이렇게 안 하고, 숫자를 넣어서 높은 정교성 낮은 정교성으로 해서 질서를 쭉 줄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이다.

슬라이드 9를 보자. 마이너스-엔트로피가 부-엔트로피인데, 이것이 질서의 정도를 나타내기에 적절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구분가능한 것이 질서이고 구분가능하지 않은 것이 카오스라고 한다면, 질서의 정도는 우리가 거시상태를 구분해볼 때 아주 경우의 수가 작은 것들이 구분가능한 질서로 딱 그렇게 연결이 되는지는 확신은 잘 안 드는데, 선생님 책에서는 그렇게 보는 것 같다.

경우의 수가 작은 것들의 거시상태가 구분가능한 질서일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은 것이 질서가 낮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보는 입장에서, 엔트로피에 마이너스를 붙인 것을 질서의 정도라고 본다. 그래서 미시상태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확률이 높은 거시상태이고, 이런 것일수록 정교하지 못하고 무질서한 게 된다. 그래서 질서의 정도를 미시상태의 숫자 W 값과 연관을 지어서, 이것에 역수를 취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수가 워낙 크니까 로그를 써서 어떤 거시상태가 가지고 있는 미시상태의 역수의 지수만 취하는 것이 정교성이다.

이때 엔트로피의 정의에 마이너스(-)를 붙인 것과 똑같다. 이 개념이 왜 필요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보통 말버릇이 크다는 좋은 것, 작다라는 것은 나쁜 것 혹은 부정적인 것 이런 식인데. 엔트로피는 그 반대라서, 엔트로피가 커지면 무질서도가 커지고 엔트로피가 작아지면 질서도가 높아지고. 이런 식으로 말버릇과 안 맞는 경향이 있어서, 엔트로피에 마이너스를 붙여서 정교성이라고 하고. 그렇게 하면 정교성이 높아지는 것과 흔히 쓰는 질서라는 개념 둘을 같이 쓰기 편해서 이 용어를 도입하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앞에서 본 자유에너지 개념이 이렇게 조금 바뀐다. 

[ 슬라이드 10. 자유에너지 ]

$$F=E-TS$$

$$F=E+TO$$


– 자유에너지는 에너지(E) 항과 질서(TO) 항으로 구성
– 에너지가 커지면 질서는 줄어들고 에너지가 작아지면 질서는 커지는 경향
– 온도가 높을수록 질서 항의 영향이 커지고 온도가 낮을수록 에너지 항의 영향이 커진다.
– 높은 온도에서는 상대적으로 보아 에너지가 크고 질서가 작은 (거시) 상태가 선호되고, 반대로 온도가 낮아지면 에너지가 작고 질서가 큰 (거시) 상태가 선호된다.

장회익(2014).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한울. p.125

$F=E-TS$이다. 어떤 대상계의 자유에너지 F는, 그 대상계가 가진 에너지(E)에서 주변 계의 온도(T)와 대상계의 엔트로피(S)의 곱을 뺀 것이다. F, E, S는 대상계의 것, T는 주변계의 것, 저는 이걸 잊어버릴까봐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전체계의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전체계 안의 부분계를 놓고 볼 때 부분계의 자유에너지는 감소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난다’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은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이다.

이때 -S를 +O와 같은 것이라고 보면, $F=E+TO$ 이렇게 쓸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보면 자유에너지는 에너지 항 E와 질서항 TO로 구성된다. 만약에 자유에너지가 고정되어 있다고 하면, 에너지 항과 질서항 TO가, 하나가 올라가면 다른 항이 내려가는 관계가 된다. 즉 자유에너지 값이 고정되어 있는 경우, 에너지가 커지면 질서는 줄어들고 에너지가 줄어들면 질서는 커지는 경향을 가진다.

그런데 전체 계의 온도가 높아지면 T가 0에서부터 무한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온도가 무한히 커지면 T가 곱해진 질서항의 영향이 아주 커지고, 만약 온도가 낮아지면 에너지 항의 영향이 커진다. 그리고 높은 온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크고 질서가 작은 거시상태가 선호되고, 반대로 온도가 낮아지면 에너지가 작고 질서가 큰 상태가 선호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우주는 한참 팽창이 돼서, 우주의 온도가 낮아진 상태이다. 이때는 부분 계들로 볼 때 부분 계의 자유에너지가 낮은 상태, 즉 부분 계의 에너지가 작고 질서가 큰 상태가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주는 현재, 고도의 질서가 있는 상태인 것 같은데. 물질들이 우주 안에 골고루 흩어져있는 게 아니라 항성, 행성 이런 것들로 뭉쳐져 있는 것이, 온도가 낮은 상태의 우주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5. 부-엔트로피와 자유에너지

<질문> 부-엔트로피가 영어로 뭔가?

마이너스 엔트로피이다. 네거티브 엔트로피.

<질문> 사실 엔트로피에 관심이 많다. 문학과 연결시킬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어떤 현상이나 사건은 항상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방향으로만 일어날 수 있지 거꾸로 갈 수는 없다고 어느 책에 써있더라. 그래서 그 책을 보면서, 사람도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으로만 가는구나, 결국 망쳐지는 쪽으로만 가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걸로 돼있었는데, 선생님 책 읽으면서 ‘엔트로피’라는 말이 있어서 조금 놀랐다. 그런데 엔트로피는 들어봤는데 ‘부-엔트로피’는 몰랐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에서 ‘부-엔트로피’를 얻는다는 것이 에너지를 얻는다는 뜻인가?

그게 약간 다른데, 뒤에 조금 더 설명을 하겠지만, 엔트로피 논의 중에서 제일 맹점은 이것이 전체에 대한 얘기인지 우주 안에 있는 한 사람, 우주 안에 있는 한 냄비에 대한 얘기인지 구분이 안 돼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분이 없이 모든 데에서 엔트로피는 다 증가한다라는 식으로 얘기가 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장회익선생님께서 자유에너지 개념으로 설명하는 엔트로피는 조금 다르다. 우주를 하나의 큰 전체로 본다고 보면, 우리 각각도 부분 계를 이루고 있고 지구도 부분 계를 이루고 있다. 여러가지 부분 계들을 놓고 볼 수 있다. 그럴 때 우주 전체에서는 엔트로피가 더 높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게, 즉 정교성이 더 낮은 쪽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확률도 높다.

그런데 부분 부분들은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 즉 정교성이 높은 상태를 유지하거나 더 높은 정교성을 얻을 수도 있다. 전체 엔트로피는 높아진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다.

  • 여기서 엔트로피가 높아진다는 데에는 단서가 하나 있다. 이것이 고립계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 거기에 에너지나 물질이 더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는 고립계 전체의 엔트로피는 항상 커지는 쪽으로 간다.
  • 방 안에 사람과 공기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공기의 엔트로피와 사람의 엔트로피를 합친 엔트로피는 항상 커지는 쪽으로만 변한다. 그렇지만 사람 하나만 보면 사람은 에너지를 공기로부터 받을 수도 있고 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이 주느냐 받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엔트로피는 낮아질 수도 있다. 대신 공기의 엔트로피는 더 높아지겠지. 사람과 공기의 엔트로피를 합친 엔트로피는 커지는 쪽으로 가지만, 한쪽의 엔트로피가 커지면 다른 쪽의 엔트로피는 더 작아질 수 있다. 이게 중요한 거다.
  • 그럴 때에 공기 전체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너무 문제가 복잡해진다. 간단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공기의 영향은 온도로 알 수 있다. 공기의 온도만 알면 사람의 엔트로피가 아니라 사람의 자유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다. 사람의 자유에너지 F는 $F=E-TS$ (슬라이드 10)이다. 이 식에서 엔트로피가 둘째 항에(S) 들어있다. 이 F라는 값은 항상 작아지는 쪽으로 간다, 공기가 있는 경우에도. 에너지가 공기로 나가든 들어오든 관계없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유에너지는 항상 줄어드는 방향으로만 간다. 이게 더 현실적인 것이다.
  • 그래서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직접 말하기 전에 자유에너지라는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다. 배경 계에 대해서는 온도만 하나 알면 그 온도를 이 식에 넣어서 자유에너지를 정의할 수 있고, 자유에너지는 항상 줄어드는 쪽으로만 간다. 이렇게 정리해야 이해하기가 쉽다.

<질문> 부-엔트로피가 자유에너지라는 말씀인가?

  • 자유에너지 F에 부-엔트로피(-S)가 기여한다. $F=E+TO$ 이 식에서 O가 크면 자유에너지가 커진다. 클수록 좋은 거다. 자유에너지가 크면 자유에너지를 줄여가면서 활동을 할 수가 있다. 자유에너지가 작으면 활동을 할 수가 없다. 낮아지는 쪽으로밖에 없으니까, 낮아질 방법이 없으면 변화를 가져올 방법이 없다. 자유에너지는 클 수록 좋다, 우리 자산이다. 그걸 써서 뭔가를 할 수가 있다. 그런데 거기에 부-엔트로피(-S, 즉 O)가 관여하고 있다.
  • 물론 온도에도 관계가 있지만. 온도와 부-엔트로피의 곱이 자유에너지를 증가시키는 데에 관여한다. 실제로는 자유에너지가 중요한데, 그 자유에너지에 기여하는 것이 부-엔트로피이다. 마이너스가 붙어있는 게 중요하다.
  • 물리학, 화학하는 사람들이 자유에너지라는 말을 많이 쓰기는 하는데, 이런 우주론적인 논의에는 별로 안 쓴다. 내가 제일 많이 쓰고 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데 참고로 내가 책에도 썼지만, 슈뢰딩거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부-엔트로피가 중요하다고 써놨다. 생명은 부-엔트로피를 먹고 산다고 볼츠만의 얘기도 그렇고, 그걸 또 슈뢰딩거가 얘기했다.
  • 그런데 그 책 주석에 보면 슈뢰딩거가 이렇게 써놨다. 이 내용에 대해서 물리학자들한테서 공격을 받았다는 거다. 실제로는 자유에너지가 중요한데, 부-엔트로피만 말하면 그 식에 있는 에너지항을 무시하는 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적절하다는 공격을 받고는 슈뢰딩거가, 내가 물리학자들을 대상으로 얘기했다면 부-엔트로피 대신에 자유에너지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라고 재미난 주석을 달아놨다. 첫 번째 판본에는 그 주석이 없다. 
  • 그래서 사실은 학자들 사이에도 부-엔트로피를 강조할 거냐, 자유에너지를 강조할 거냐하는 문제에 대해서 견해가 엇갈리는데, 자유에너지를 생각하는 게 훨씬 더 편리하고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질문> 카오스, 혼란스러운 상태와 반대되는 어떤 이항대립으로 질서, 정연성, 정교성, orderliness 말씀하셨는데, 그런데 저는 그 두 단어를 보면 질서라는 단어와 카오스라는 단어가 동일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 저는 혼란 속에 질서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최근에는 카오스이론이라고 아예 따로 논의를 하고 있다. 책도 많고, 일각에서는 상당히 관심이 많다. 그 카오스 속에는 일부 질서가 있다고 얘기도 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카오스는 그렇게까지 정교한 카오스를 말하는 게 아니고, 그냥 그저 가장 일장적인 의미로 가장 혼란스럽다는 의미로 쓴 것이다. 요즘 학술적으로 카오스이론을 만들면서 그 안에 일종의 또 질서를 찾아내는 그런 논의도 있다. 그건 좀 다른 방향이다.

끝.


(2020년 9월 24일 세미나 녹음파일 중에서 12:50 ~ 56:20까지 녹취)
녹취록 ‘[자연철학세미나 녹취] 생명이란 무엇인가? (1)-2’도 곧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녹취: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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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생명은 부-엔트로피를 먹고 산다.” – 슈뢰딩거. (출처: azqu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