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플랑크와 양자불연속 논쟁 – (3) 과학혁명의 구조와 양자혁명

막스 플랑크와 양자불연속 논쟁

(1) 1900년 12월 14일과 10월 19일 (2020.8.26.)
(2) 플랑크 작용 양자의 의미 (2020.9.2.)
(3) 과학혁명의 구조와 양자혁명 (2020.9.9.)
(4) 양자이론과 실험 / 플랑크의 먹구름 (2020.9.16.)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1962년에 출판된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들의 구조』는 단순히 ‘패러다임’이란 용어만으로도 대단히 영향력 있는 저술이었음에 틀림없으며, 많은 과학철학자들과 과학사학자들은 이 책의 주장들이 자신의 연구에 중요한 배경이 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데 1978년에 출판된 『흑체이론과 양자불연속,  1894-1912』에서는 『과학혁명들의 구조』에서 상세하게 논의되었던 ‘정상과학’, ‘패러다임’, ‘이상 현상’, ‘위기’, ‘혁명’, ‘세계관’ 등의 용어나 개념들이 실제적으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피상적으로 보자면, 양자이론의 역사적 전개를 통해 알 수 있는 소위 ‘양자혁명’이야말로 가장 전형적인 ‘과학혁명’의 사례가 아닐까? 과학철학의 한 연구로 분류될 수 있는 『과학혁명들의 구조』가 일반론을 전개했다면, 그로부터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발표된 『흑체이론과 양자불연속』은 그러한 일반론의 훌륭한 사례연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림 1] 토마스 쿤. 『과학혁명들의 구조』(출처: medium.com)

그러나 이상하게도 1978년에 출판된 『흑체이론과 양자불연속』은 『과학혁명들의 구조』에서 제시된 과학적 지식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일반이론에 따라 평가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하는 것이 독일의 과학사학자, 요흔 뷔트너, 위르겐 렌, 마티아스 셰멜의 연구이다.

쿤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정상과학 시기에는 ‘수수께끼 풀이’처럼 패러다임 내에서 문제를 던지고 이 문제를 더 넒은 영역에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패러다임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 가는 일에 몰두한다.

그러나 점점 이론의 예측과 실험결과 사이의 불일치가 쌓여감에 따라 기존의 패러다임은‘위기’를 맞게 되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론들이 시도되며, 그 중 가장 적응력 있는 이론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아가는 것이 과학적 지식의 일반적인 전개과정이다.

그렇다면 쿤의 주장대로 아인슈타인의 빛알 가설과 에렌페스트의 통계역학적 접근을 통해 일어난 1906년의 ‘초기 양자혁명’은 이러한 과학혁명의 일반 이론에 따라 서술될 수 있는가? 즉,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 과학지식의 발전에서 나타나는 단절(과학혁명)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 이러한 단절에도 불구하고 지식의 연속적 성장이 가능한가?
  • 과학혁명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이러한 쿤의 질문들을 통해 양자혁명을 정교하게 철저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이는 양자혁명의 특수한 성격과 상세한 모습을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과학혁명의 구조에 관한 이론에서도 훌륭한 기여가 될 것이다.

[그림 2]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논문집 12권(총 15권) (출처: Princeton University Press)

상대성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젊은 천재 아인슈타인을 처음 사로잡았던 문제는 플랑크의 흑체복사법칙과 고전물리학의 관계였다. 쿤이 자신의 책을 펴 낼 당시까지의 출판물에서는 이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최근에 일군의 과학사학자들이 편집한 『알버트 아인슈타인 논문집』을 통해 새로운 사료들이 나타났다.

1900년 무렵에 아인슈타인과 그의 약혼자 밀레바 마리치 사이에 오고 간 편지들을 보면,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의 흑체 복사 공식이 과연 고전물리학의 테두리 내에서 도출될 수 있는 것인지의 문제를 가지고 골몰하고 있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1899년 3월부터 1901년 7월 사이에 씌어진 10편의 연애편지는 아인슈타인이 플랑크의 논문을 매우 상세하고 꼼꼼하게 읽었으며, 1907년에 출판된 비열의 양자이론에서 표현되는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이미 이 시기에 매우 잘 정립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은 왜 1900년 무렵에 자신의 생각을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뷔트너 등의 대답은 열통계물리학이 당시에 존재했던 고전물리학 이론들의 망 속에서 제 위치를 찾을 수 없음을 아인슈타인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플랑크의 원래의 모형이 모형들의 망에서 인식적 고립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쿤의 의미에서 양자혁명이 일어난 것은 1900년의 플랑크의 논문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1907년의 비열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논문, 1908년 헨드릭 안톤 로렌츠의 로마 강연, 1910년의 플랑크의 논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림 3] 쿤 사이클. (출처: ScienceWoke)

뷔트너 등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모형, 물리적 성질, 지식영역의 세 범주를 구성하고, 아인슈타인과 플랑크의 사유 속에서 명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나타나는 세 가지 범주유형을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아인슈타인의 사유와 플랑크의 사유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양자혁명의 문제를 일반적인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함으로써,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지식의 단절과 전이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뷔트너 등은 아인슈타인과 플랑크의 접근을 모형/물성/지식영역이라는 세 범주를 통해 명확하게 검토함으로써, 지식의 해체와 재구성의 모습을 선명하게 밝혀냈다.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이라는 문제가 고전역학과 전기역학 사이의 경계선 긋기 문제였고, 그렇게 명확하게 경계선을 그으려는 노력 속에서 상대성이론이라는 새로운 과학이론이 탄생한 것처럼, 열복사의 문제는 열역학과 전기역학 사이의 경계선 긋기 문제였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와 같이 기존의 지식들을 통합하려 하고 그 속에서 기존의 지식들 사이의 개념적 상호충돌을 지식구조의 차원에서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다면, 쿤의 표현처럼 기존의 패러다임과 불가공약인 새로운 패러다임의 탄생은 신비의 베일 속에 감춰져 있을 것이다. 이 연구는 이와 같은 패러다임 이동의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정신적 모형에 따른 지식 구조”라는 측면에서 성공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4) 양자이론과 실험 / 플랑크의 먹구름”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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