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 개념어 사전] 호모 도미나투스/거대한 가속화


우석영의 지속가능성 개념어 사전


사이먼 루이스(Simon L. Lewis)와 마크 매슬린(Mark A. Maslin)은 공저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The Human Planet)》에서 호모 도미나투스(Homo Dominatus)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책에서 저자들은 이 개념을 정의하지는 않지만, 막상 책을 읽는 독자는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대번에 간파할 수 있다. 그것은 저자들이 책의 상당한 지면을 들여 ‘인류세(Anthropocene)’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저자들은 호모 도미나투스를 인류세를 만들어낸 인간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그림 1] <The Human Planet: How we created the Anthropocene>. Lewis & Maslin. (출처: amazon.com)

지구 생태계 또는 생물권(biosphere)을 대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며 인류세라 불릴 만한 새로운 지질 시대를 만들어낸 인간, 호모 도미나투스.

저자들이 제시하는 호모 도미나투스의 ‘지배자적 특성’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고삐 풀린 자기 재생산(번식) 속도라는 특성이다. 생물의 역사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았던 이것을 고상하게 말하면 ‘인구증가’가 된다.

저자들은 이것의 계기가 식량 문제 해결과 산업혁명이라고 본다. 저자들의 역사관은 단선적 진보관은 아니다. 즉, 농업이 시작된 후 식량 생산, 건강, 위생, 평균수명 같은 것이 줄곧 개선되며 인류의 고통이 감소했다는 주장은 허구라는 것이다.

[그림 2] 세계 인구 증가 추이. BC 10,000 – 2,000년까지. (출처: wikipedia)

인류 역사의 길은 구불구불했고. 기복이 심했다. 하지만 이들이 보기에 16세기 서유럽에서 자본주의적 농업이 세계 최초로 시작되고, 식민지 개척을 통해 농업이 세계화되면서 식량생산량이 증대하자, 세계 인구는 완연 상승곡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18세기가 저물 무렵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이 상승세에 가속력이 붙는다.

통계수치는 변화의 뚜렷함을 보여준다. 1500년 500만에 불과하던 세계 인구는 300년 후인 1800년엔 10억으로, 1950년엔 25억으로, 2017년엔 75억으로 치솟는다. 이런 상승세의 최고 정점은 1960년대였다. 그 결과, 인류의 몸무게 총량은 지구 야생 포유동물의 몸무게 총량의 15배를 상회할 정도로 늘어난다.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 김아림 옮김, 세종서적, 2020, 235)

인구, 인류 몸무게 총량이라는 지표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인류가 집어삼키는 자연물의 총량을 시사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지배자적 특성의 두 번째 요소는 엄청난 에너지 사용량이다.

[그림 3] 인간 0.06 Gt C. / 연체동물 0.2 Gt C, 환형동물 0.2 Gt C, 가축 0.1 Gt C, 선충류 0.02 Gt C, 야생 포유동물 0.007 Gt C, 야생 조류 0.002 Gt C. (마지막 주황색 큐브에서 가장 작은 큐브 하나의 무게는 1000 톤으로, 소 약 2천 마리의 무게에 해당한다.) (출처: Vox, 2018.)

저자들에 따르면, 1500년 기준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2,200W였지만, 1800년엔 4,000W로, 1950년엔 8,000W로 증가한다. 더 흥미로운 데이터는 1830년부터 2010년까지의 세계 에너지(바이오매스, 석탄, 석유, 천연가스, 원자력, 수력) 소비 증가량인데, 저자들은 이를 엑서줄(exajoule) 단위로 보여준다.

책에 나오는 도표에 따르면, 1910년 인류의 에너지 소비총량은 50엑서줄에 불과하지만 2010년엔 550엑서줄로 급증한다. (앞의 책, 237) 이 자료는 19세기에 일어난 세계 에너지 사용량 증대가 20세기의 그것에 비하면 실로 미미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1줄joule은 약 100g의 물체를 지표면에서 1m 위로 수직 방향으로 들어 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이며, 엑서exa는 뒤에 0이 18개 붙음을 뜻한다. 즉 1엑서줄은 1×1018줄을 의미한다.)

지배의 특성 못지않게 중요한 이슈는 ‘어떻게’ 일개 포유동물종이 지구를 호령하는 지위를 확보했는가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들은 체제 전환을 야기하는 일반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사실 이들은 ‘체제’ 대신 ‘생활양식’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그다지 적절하지 않아 보여 이 글에서는 ‘체제’라고 바꿔 부르겠다.

저자들에 의하면, 한 체제가 다른 체제로 바뀌려면 일련의 자기증폭적 반환력(※positive feedbacks, 스스로를 증폭시키며 되돌아오는 힘을 일컫는다, 언급한 책의 국역본에서는 ‘양의 되먹임들’로 번역되어 있다.)이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낼 정도로 충분히 성숙하고 새로워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결정적인 자기증폭적 반환력이 주된 힘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새로운 정보전달수단, 에너지원, 인간 집단과 단체가 자기증폭적 반환력들로서 힘을 보탤 때, 기존 체제는 새 체제로 전환된다. 결국 저자들은 정보를 축적하고, 정보를 타인과 미래세대에 전달하며, 에너지를 사용하고, 협동체계를 조직하는 인간의 능력이 호모 도미나투스를 만든 힘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16세기에 이르러 이윤 재투자와 과학지식이라는 두 가지 결정적 자기증폭적 반환력들이 출현하면서 농경 체제는 상업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기 시작한다. 여기에 인쇄기라는 새 정보전달수단, 농업 세계화(식민지 개척의 결실)에 따른 새로운 작물 같은 새 에너지원이 자기증폭적 반환력들로서 체제 전환을 추진하는 힘에 가담했다.

1800년경 산업 자본주의 체제를 탄생시킨 결정적 반환력들은 여전히 이윤 재투자와 과학지식이었지만, 전신·라디오 같은 새 정보전달수단, 화석연료라는 새 에너지원, 임금노동자집단 같은 새 인간 집단이 다른 반환력들로 작용했다.

1950년경 출현한 소비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동일하게 작동하는 결정적 반환력들, 그리고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새 정보전달수단, 화석연료와 잡종 작물, 질소 비료라는 새 에너지원 같은 반환력들로 인해 탄생했다. 그리고 중요하게는 저자들은 지금(책이 출간된 2018년) 새로운 체제가 탄생할 기미가 보인다고 쓰고 있다. 

[그림 4] 인류세의 ‘거대한 가속화’를 나타내는 카테고리. 1750-2010년. (출처: wikipedia)

마지막으로 중요한 이슈는 ‘언제’라는 이슈다. 인간은 언제 호모 도미나투스의 위치에 올라섰을까? 사실 이것은 ‘인류세’의 시기를 확정하는 사안으로서 현재로서는 논란이 크다. 그런 만큼,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들만 정리해보기로 하자.

우선, 인류가 에너지 소비를 크게 늘리며 ‘지구 시스템’을 ‘심각한’ 수준으로 교란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이 시기 인류는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3대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대량 배출했고, 이로써 질소, 탄소 사이클과 같은 지구의 기체 사이클을 크게 교란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연구자들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약 70년에 이르는 최근 시대를 ‘거대한 가속화(Great Acceleration)’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거대한 가속화라는 표현은 지나친 표현은 아닐까? 《거대한 가속화(The Great Acceleration)》의 저자들인 J. R 맥닐(McNeill)과 피터 엥겔크(Peter Engelke)는 왜 ‘거대한 가속화’라고 불러야 하는지 설명하며 다음과 같은 지표를 제시한다.

  • 70년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인류 역사상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4
  • 이 시기, 지구상의 자동차 수가 4,000만대에서 8억 5,000만대로 급증
  • 지구상의 도시 인구는 7억 명에서 37억 명으로 급증
  • 2015년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의 생산량에 비해 300배
  • 이 시기, 합성질소(주로 비료용) 생산량이 400만 톤에서 8,500만 톤으로 증가 (J. R. McNeill and Peter Engelke, 《The Great Acceleration》, 2014, Kindle 98)

거대한 가속화 시대의 특징은 ‘급속도’만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 시대가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서도, 환경의 역사에서도, 지구의 역사에서도 전례 없었고 앞으로도 출현하지 않을, 예외적이고 일시적인 시대였다고 말한다. 즉, “20만 년 이어진 우리 인간종과 생물권 간 관계사에서 가장 이례적이고 가장 평범하지 않은 시대”였다는 것이다. (앞의 책, Kindle 103) 한마디로, 이들이 보기에 이 시대는 아노말(anormal)의 시대였다.

시점과 관련해 또 하나 확실한 점은, 지구의 에너지원을 집어삼키는 활동의 규모 면에서 인류가 지배자적 면모를 드러낸 시점은 20세기라는 점이다. ‘인류세’라는 단어를 인기용어로 만들었던 폴 크루첸(Paul Crutzen)은 인류세의 시작을 인간이 석탄을 산업 용도로 쓰기 시작하는 18세기 말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대대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석유산업의 세기인 20세기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성찰 대상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지금 우리의 삶인 셈이다. (끝)

■ 코르누코피안(Cornucopian)

COVID-19로 세계 경제가 잠시 휘청하며 멈춰선 2020년은 아마도 성찰과 전환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망은 결코 확실한 것은 아니다. 만일 거대한 가속화 시대를 살아왔고, 살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에 우리가 열려 있다면, 전환은 시작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호모 도미나투스, 인류세, 거대한 가속화 같은 개념을 의미 있는 것으로 수용하기를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흐름은 여전히 강력하다.

이런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 즉 이윤의 재투자, 과학지식의 진보 같은 종래의 자기증폭적인 힘들과 GDP 증가로 표상되는 경제성장을 영원한 선(good)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우리 가운데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모르되, 굉장히 많을 것이다.

코르누코피안(Cornucopian)은 이런 유형 중에서도 특히 신념이 확고한 층을 지칭하는 용어다. 코르누코피안들은 지구의 자원이 미래 인구의 수요를 충족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넉넉히 매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구 밖에 있는 풍요로운 물질과 에너지를 사용할 기술이 머지않은 시점에 개발될 것이므로, 인류의 경제성장에는 사실상 제약이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기술진보를 해내는 한, 20세기 후반기 식의 경제 성장은 지속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인 셈이다.

이런 믿음은 COVID-19 이후 산산 조각났을까? 오직 소수자만 받아들일 극단적 믿음일까? 성장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회라면, 사회의 다수가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수용하기 어려운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온 20세기 후반기가 잠깐 ‘반짝’하고 나타난 예외적 역사 시대였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17세기가 시작될 무렵, 어느 섬나라에서 쓰인 어느 희곡의 주인공은 괴로움을 토로하며 이렇게 자문했다.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거대한 가속화의 시대라는 역사의 ‘막’의 마지막 ‘장’ 속에 들어와 있는 우리가 수재를 당한 이재민 이웃들을 눈 앞에 두고 던져야 할 질문도 실은 비슷한 것이다. “살아온 대로 살 것인가,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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