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 개념어 사전] 3.제국적 생활양식(생활방식)


우석영의 지속가능성 개념어 사전


독일어 ‘임페리알레 레벤스바이저(Imperiale lebensweise)’의 번역어. 영어로 번역하면, Imperial mode(way) of living, 한국어로 옮기면 ‘제국적 삶의(생활) 방식’이 된다. 

에콰도르는 2008년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를 중심 원리로 하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했는데, Sumak은 ‘좋은, 충만한’을, Kawsay는 ‘삶, 삶의 방식’을 뜻한다. 

레벤스바이저(Lebensweise). 카우사이(Kawsay). 삶의 방식. 이 단어들은 동일한 계열에 속하며,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뜻한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이런 것이 중요한 개념일 수 있을까? 누구나 살아가는 방식, 살아가는 스타일이 있지 않던가? 

레벤스바이저는 라이프스타일 같은 것이 아니다. 임페리알레 레벤스바이저라는 개념을 제시한 이들에 따르면, 라이프스타일 개념은 오직 피에르 부르디외 전통에서 사용할 때만 레벤스바이저와 비슷해진다. 무슨 말일까?


‘제국적 생활양식’은 독일 프리드리히 실러 예나 대학 내 연구단인 ‘성장 이후 사회에 관한 연구집단’의 두 일꾼 학자 울리히 브란트(Ulrieh Brand)와 마르쿠스 비센(Markus Wissen)이 2017년에 출간한 『Imperiale lebensweise』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이 책은 영어로는 2018년 『The Limits to Capitalist Nature: Theorizing and Overcoming the Imperial Mode of Living』 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는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2020년 번역되었다. (한국어 번역본에서 레벤스바이저(Lebensweise)는 생활양식으로 번역되었다.) 

저자들에 따르면,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일상생활은 그(녀)가 자본주의 주변부의 노동, 자연의 자원에 무제한으로 접근할 수 있기에 비로소 가능하다. 즉, “남반구로부터의 노동과 자연의 이전”이 북반구 주민들의 삶의 방식의 근본 조건이다. 

[그림 2] 『Imperiale lebensweise』공동 저자 울리히 브란트(오른쪽)과 마르쿠스 비센. (출처: businessart.at)

“남반구의 노동과 자연”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고자 저자들은 식품을 예로 든다. “겨울에 독일의 학교 급식실에서 제공하는 중국산 딸기, 불법 이주자들이 안달루시아에서 북유럽 시장을 위해 생산하는 토마토, 그리고 북반구 소비자를 위해 태국이나 에콰도르의 맹그로브 숲을 파괴해가며 양식하는 새우” 같은 것들. 즉, 중국이나 태국, 에콰도르, 안달루시아 같은 주변부에서의 노동, 그리고 그 노동 과정에서의 자연 약탈이 아니면, 중심부 거주자들의 행복한 삶은 지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국적 생활양식 개념은 신자유주의라는 조건에서 중심부 거주자들의 일상이 “어떻게 사회적·생태학적으로 파괴적인 결과를 외부화함으로써 성공적”인지를 드러내는 ‘폭로’의 효용이 큰 개념이다. 

울리히 브란트와 마르쿠스 비센은 ‘제국적 생활양식’의 개념을 이렇게 정의한다.  

“북반구 주민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일상 구조와 실천에 깊이 자리하고 있으며 점차적으로는 또한 남반구의 신흥 경제국에도 유입되고 있는 생산과 분배와 소비의 규범.”

울리히 브란트와 마르쿠스 비센 (강조는 인용자)

자본주의 생산, 분배, 소비의 규범인 이것은 매일 매일 삶의 주체들(북반구 주민들)의 상식과 에토스(선호감각)를 빚어낸다. 이것은 “담론과 세계관에 근거해 세워지고, 실천과 제도 안에서 공고화”한다. 아울러 이 제국적 생활양식은 자본주의 질서의 “불평등과 권력 및 지배에, 때로는 폭력에” 기반하며 “동시에 이런 것을 산출한다.”

이러한 이유로 저자들은 제국적 생활양식이 자본주의 사회 재생산의 본질적 계기라고 말한다. 즉, 자본주의는 이 제국적 생활양식을 중요한 매질로 삼아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그림 3] “남반구의 노동과 자연”에 의해 생산된 칠레산 포도는 국내 마트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이와 같은 수입산 제품은 ‘제국적 생활양식’의 대표적인 예이다. (사진 출처: 한국농정)

요컨대, 이 제국적 생활양식은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이데올로기 (또는 담론, 세계관, 이상, 에토스 등)도 아니며, 자본주의의 경제적 실천 과정 (또는 이 과정에서 작동하는 제국주의적 지배행위나 폭력 그 자체)도 아니다. 즉, 이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상부구조도, 하부구조도 아니다. 이것은 그 둘 사이를 매개하며, 현 방식의 삶을 좋은 삶이라고 여기는 태도와 정서를 빚어내고, 그럼으로써 제국적 지배가 본질인 자본주의라는 기계를 ‘돌린다’.      

■ 그래서 어쩌라고? 

저자들은 생활양식의 인식이 생활양식의 혁명에, 그리하여 사회혁명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생활양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생산, 분배, 소비 과정의 뒷면에 있으며, (북반구의) 개인이 “이것은 좋은 삶”이라고 여기는 일상의 아래층을 이루는 사회적·생태학적 지배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배관계를 이해한 개인은 스스로에게 다른 좋은 삶, 이것에서 자유로운 삶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저자들은 이렇게 쓰고 있다. “생활양식에는 언제나 대안적이고 전복적인 해석과 실천이 유입되며, 요구와 대안적 원망이 통합된다.”   

■ 생활하기,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생활양식(생활방식/삶의 방식) 

저자들은 생활양식(레벤스바이저 Lebensweise) 개념을 생활하기(레벤스푸롱 Lebensführung), 라이프스타일(레벤스틸 Lebensstil) 개념과 구분한다. 

생활하기(레벤스푸롱 Lebensführung)는 개인이 사회의 요구에 응하며(대처하며) 자신의 삶을 일관된 계획으로 구성함을 뜻한다. 생활하기의 주체는 자신의 모든 삶의 실천들을 특정하게 배열한다. 저자들은 이 개념이 북반구 개인의 일상이 곧 파괴 행위의 외주화(외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북반구 개인의 일상의 제국적 전제를 폭로하는 데 무관심하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또한 생활양식 개념이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라이프스타일(레벤스틸 Lebensstil) 개념과 거리가 크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신형 SUV ‘울리히’를 구매하는 개인의 경우. 이 사람의 이름을 ‘브란트’라고 해보자. 브란트 씨는 ‘울리히’의 유연한 곡선미, 무소음에 가까운 고요한 분위기 창출에 이끌려 이 차를 구매한다. 평소 쇼팽과 바흐를 즐겨 듣고 요가도 즐기는 중년 신사 브란트가 아니던가. 그의 가계 경제를 볼 때, ‘울리히’의 구매는 불합리한 충동구매가 전혀 아니다. 브란트 씨의 라이프스타일에는 ‘울리히’가 딱이며, 이 신형 SUV가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성한다. 통상적인 라이프스타일 개념은 이렇듯 개인의 취향과 그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에만 관심을 둘 때 의미 있는 개념이다. 즉,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브란트 씨가 어떻게 이 SUV(또는 SUV)에 관한 사회적 이상을 내면화했고, 제국적 생활양식을 자기 신체와 취향의 영역에 구축했는지, 이 SUV 구매와 운행이 어떤 지배관계(파괴행위)로써 가능한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즉, 이 개념은 현실을 가리는 효과가 있다.

*이 항목에서 인용된 부분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울리히 브란트, 마르쿠스 비센 지음, 이신철 옮김,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 에코리브르, 2020.

글: 우석영 (녹색아카데미). 2020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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