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문명이야기: 에너지원 – 나무와 화석연료



“예전에는 영국에 목재가 부족하리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상을 뒤엎을 정도로 집을 짓고, 가구와 통, 마차를 만들고 타일과 벽돌을 굽고 쇠를 만드는 데 목재를 낭비한데다, 나무를 제대로 심지도 않아서 지금은 전 왕국에 목재가 엄청나게 모자란다.”

에드먼드 하우즈. 평론가. 17세기 초. <녹색세계사> p.346.

19세기까지는 주로 장작을 연료로 썼다. 장작은 구하기 쉽고 잘 타고 거의 공짜였기 때문이다. 나무는 건설 분야에서도 중요한 자재로 사용되었다. 포도주를 저장하는 통과 각종 용기, 기계와 배와 수레, 마차, 바퀴 등도 나무로 만들었다. 숯으로 만들어 철광석을 녹이거나 유리와 벽돌 제조에 필요한 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림 1] 숯을 만드는 모습. 18세기. <백과전서>. 디드로 & 달랑베르. 1751-1772. (출처: Environmental History Resources)

숯을 만드는 데에는 나무도 인력도 많이 필요했다. 1475년 독일 오버팔츠 지역의 경우 소규모 제철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가 750명이었는데, 제철소로 장작과 철을 나르는 인부는 3000명이 필요했다. 나무꾼과 숯쟁이는 5000명이 넘었으며 이들이 생산해내는 숯의 양은 한 해에 1만 톤에 달했다.

나무는 재생가능한 자원이 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수요가 너무 많았고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17세기 후반 무렵 러시아에서는 칼륨을 생산하기 위해 한 해 동안 장작 300만 톤을 썼다. 러시아 카마 지역에는 18세기 경 소금공장이 1200개 있었는데, 인근 숲에서는 나무를 구할 수 없어 3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장작을 실어와야 했다.

몇 세기 동안 나무를 베어 사용하기만 하고 심지는 않았기 때문에 인도, 중국, 아라비아와 동남아시아와 서유럽에서 숲이 사라져갔다. 중국에서는 11~12세기에 이미 장작과 숲이 부족했다. 서유럽은 인구가 비교적 적고 산업 발달도 늦어 15세기까지는 목재가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선업에서 나무가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그림 2] 스페인 무적함대와 영국 해군함대. 네덜란드 독립전쟁(80년 전쟁) 중 스페인-영국의 아르마다 해전. 1588년. (출처: wikipedia)

포르투갈은 대서양을 건너는 탐험을 시작하던 15세기부터 이미 목재가 부족했고, 16세기부터는 모두 식민지에서 배를 만들어야 했다. 스페인도 마찬가지여서 1588년에 이미 폴란드의 목재를 이용해 네덜란드와 영국에 맞설 무적함대를 만들어야 했다. 영국도 1620년대 프랑스와 전쟁을 하면서 함대를 만들 목재가 부족했다. 17세기 말이 되면 영국 해군성이 목재 조달을 위해 숲을 조성할 계획을 세우지만 100년은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스칸디나비아와 러시아에서 나무를 수입해왔다.

영국 해군의 함대를 만들 나무는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도 조달되었다. 1652년 처음으로 뉴잉글랜드의 소나무를 베어와 함대의 돛대를 만들었고, 1696년에는 아예 전투함을 북아메리카에서 만들었다. 18세기가 되면 영국 전함의 3분의 1을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만들게 된다. 결국 미국에서도 숲이 파괴되기 시작해, 1700년이 되자 뉴햄프셔 강줄기를 따라 30킬로미터 내의 숲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유럽의 목재 부족현상은 점점 심각해졌고, 유럽 전체가 에너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 공업 대부분이 나무와 숲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슬로바키아에서는 1560년 숯이 부족해져 철광 생산량을 줄여야 했고, 10년 뒤 폴란드의 비엘리츠카에서는 나무가 없어서 소금 공장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림 3] 슬로바키아 철광산. 1726년. 루이지 페르디난도 마실리. 이탈리아 자연과학자. (출처: wikipedia)

영국은 목재와 숯이 부족한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에너지원을 바꿀 수 밖에 없었던 첫 번째 국가였다. 16세기 후반 연료, 즉 목재와 숯이 부족해져 영국은 소금의 3분의 2를 프랑스에서 수입했다. 프랑스에서는 태양을 이용해 소금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큰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는 법령을 제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18세기가 되면 사정은 더욱 나빠져, 1717년 웨일스에 새로 지은 용광로는 4년이 지나도록 뗄 숯이 없어서 가동하지 못하다가 36주 동안 잠시 가동했지만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전국의 다른 용광도들도 몇 년에 한 번씩만 가동해야 했다. 이런 심각한 상황이 되자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질 낮은 에너지원, 즉 석탄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부터 석탄을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모두가 사용하게 되었다.

[그림 4] 석탄기의 주요한 식물상. The American Cyclopædia. 1879. (출처: wikipedia)

석탄은 고생대 석탄기(5억 4200만 년~기원전 2억 5100만 년) 무렵의 열대삼림이 6천 만 년 이상 동안 퇴적되어 땅 속에서 압력과 열을 받아 만들어졌다. 주성분은 탄소, 산소, 질소, 수소와 약간의 황 등이다.

1550년 21만 톤이던 영국의 석탄 생산량은 1630년이 되면 150만 톤으로 늘어난다. 사람들은 난방과 조리용으로는 장작을 쓰기를 더 좋아했지만 화로와 난로에는 석탄을 썼다. 금속 세공이나 양조, 비누 제조 등 산업에서도 석탄을 이용했다. 그러나 석탄에 포함된 불순물때문에 생산품의 질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었다. 

17세기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석탄을 사용하게 된 것은 한 에너지원에서 다른 에너지원으로 바뀐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전까지 사용한 에너지는 태양, 바람과 물, 사람과 동물, 나무 등 재생이 가능한 것이었지만, 석탄이나 이후에 쓰게 되는 석유는 특정 지질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림 5] 뉴커먼 스팀 엔진(Newcomen steam engine). 1725년 발행된 기사. 깊은 갱도의 지하수를 퍼올리기 위해 1712년 토마스 뉴커먼이 개발. 최초의 스팀엔진이다. (출처: British Library)

13-14세기 유럽의 주요한 석탄광들은 노천광이거나 깊이 15미터 이하의 얕은 소규모 광산이었다. 18세기가 되면서 숯 값이 올라가면서 채굴 비용이 큰 깊은 탄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고성능 펌프가 개발되어 지하수를 퍼올릴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하게 된 일이다.

뉴커먼 스팀 엔진은 석탄에서 얻은 증기력을 최초로 이용한 기계였다. 이후 더 작고 효율이 좋은 와트의 스팀 엔진이 개발되면서 18세기 후반이 되면 영국의 공장에서도 석탄을 이용한 스팀엔진을 사용하게 된다.

석탄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기계와 관련한 기술도 개발되어야 했고 채굴과 수송도 필요했기 때문에 석탄을 사용하는 산업은 천천히 개발되어갔지만, 19세기가 되면서 석탄 생산량이 빠르게 증가했다. 세계의 석탄 생산량은 1800년 1000만 톤에서 50년 만에 7600만 톤이 되고, 다시 50년 후인 19000년이 되면 76배가 늘어나 9억 6000만 톤이 된다. 1900년 한 해 동안 세계에서 사용된 석탄 양은 영국 면적의 3배에 달하는 숲의 나무의 양과 같았다. 

[그림 6] 뉴커먼 스팀 엔진 작동 원리. 파랑색-물, 분홍색-증기(출처: wikipedia)

미국의 경우는 유럽과는 조금 달랐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쓸 수 있는 목재가 많았기 때문에 1850년까지도 연료의 90%가 나무였다. 철 생산량 중 절반은 숯을 태워 만들어지고 있었고, 난로와 보일러도 장작을 썼다. 영국에서는 목재가 부족해 처음부터 석탄으로 증기기관차를 운영했으나, 미국에서는 기관차도 미시시피강의 증기선도 장작으로 움직였다.

도시와 공장에서 가까이 위치한 숲의 나무를 다 쓰고 난 것은 1880년 대 중반이 지나서였다. 미국에서도 일단 석탄을 쓰기 시작하자 급속하게 수요가 늘어 1850년-1900년 사이에 소비량이 30배나 늘었다.

화석연료는 조선업의 구조도 바꾸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전 세계의 배는 모두 재생가능한 에너지, 즉 바람이나 사람의 힘으로 움직였다. 증기선은 1810년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1821년에는 영국 해협을, 1839년에는 대서양을 건넜다. 초기에는 값비싼 증기선보다 잘 만든 범선이 더 경쟁력 있었지만, 더 강력한 증기압을 내는 강철제 보일러가 만들어지면서 증기선이 범선을 대체해나갔다.

전 세계의 석탄 소비량이 최고치를 기록한 때는 20세기 초이다. 에너지원 중 석탄이 차지하는 비율은 1900년 90%였고 1960년대 초가 되면 50%이하가 되고, 21세기에는 25%가 된다. 그러나 비율이 줄었을 뿐 생산량 자체는 계속 증가해왔다. 1900년 석탄 생산량은 7억 6000만 톤, 2000년에는 50억 톤이었고 2018년 생산량은 약 70억 톤을 기록했다.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원은 석유이다. 석유는 몇 백 년 동안 지표면에서 새어나오는 것을 수집해 방수를 위한 충전재나 약품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던 석유를 상업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이다. 최초의 상업적인 유전은 1859년 미국 펜실베니아의 드레이크 유정(Drake well)이었고, 깊이는 약 21미터였다.

[그림 7] 드레이크 유정. 미국 펜실베니아. 오른쪽이 유정을 개발한 Edwin L. Drake. (출처: wikipedia

석유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땅을 깊이 파서 채취하고, 정제, 저장, 수송도 해야하는 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당시 광범위하게 사용하던 고래 기름이나 식물성 기름은 새로운 기계의 윤활유로 사용하기 적절치 않았고, 고래 기름 공급량이 줄어 값이 계속 올라갔기 때문에 석유를 사용하기 위한 기술들이 개발되어갔다.

19세기 말이 되면 원유의 85%가 조명용으로 쓸 수 있게 정제되었고, 나머지는 윤활유로 사용되었다. 20세기 초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용광로가 개발되면서 상황이 바뀌어, 1909년이 되면 석유의 절반 이상이 연료로 사용된다. 이때 영국 해군 전함도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었다. 19세기 말 들어 내연기관이 발달하고 자동차 수가 증가하면서 석유 사용량은 빠르게 늘어났다. 1930년이 되면 가솔린이 주요한 석유 제품이 되고, 그로부터 2~30년 후가 되면 항공 연료로도 중요하게 사용된다.

[그림 8] 지구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줄여야할 화석연료와 이산화탄소 양. (출처: CarbonBrief)

19세기에는 석탄이 공업을 발달시키는 주요한 에너지원으로 작동했고, 20세기에는 석유가 값싸게 공급되면서 에너지 소비량이 빠르게 증가했다.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제 화석연료는 급격하게 줄여야할 대상이 되었다.

[그림 8]은 지구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이하로 낮추기 위해 줄여야 할 석탄, 석유 사용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보여준다. 2015년 체결된 파리협정에 따라 당사국들은 매년 당사국회의를 개최하고 있으며, 올해까지 ‘장기 온실기체 저배출 발전전략’을 제출해야 한다.


참고자료

  • <녹색세계사>, 클라이브 폰팅 지음. 1991; 이진아/김정민 옮김. 2007. 그물코. (12장)

“그림으로 읽는 문명이야기”에서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와 녹색문명을 고민해봅니다.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를 읽어가면서, 현재의 환경문제와 기후위기 상황 그리고 석유에 기반한 현대도시문명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림으로 읽는 문명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 업로드됩니다.

발췌, 요약: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2020년 3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