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생명 – (3) 야콥 폰 윅스퀼의 둘레세계


“인공생명”

1. 글머리: 생명과 기계의 경계, 몸-마음 문제. 2020. 1. 21.
2. 인공생명과 생명의 철학. 2020. 1. 28.
3. 야콥 폰 윅스퀼의 둘레세계. 2020. 2. 4.
4. 인지과학의 기연적 접근. 2020. 2.11.
5. 생명을 물리학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2020. 2. 18.
6. 온생명과 인간의 관계 & 결론 2020. 2. 25.

글: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에스토니아 출신의 동물학자 야콥 폰 윅스퀼(Jakob von Uexküll, 1864-1944)은 인과율을 토대로 유기적인 계에 관한 지식을 조직하려는 생리학과 구분되는 생물학을 추구했으며 그 핵심을 목적성(Zweckmässigkeit) 또는 계획성(Planmässigkeit)으로 보았다. 그의 연구는 유기체가 어떻게 주변의 환경을 인식하며 그 인식이 유기체의 행동을 결정하는가 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림 1] 야콥 폰 윅스킬. 1903년. (출처: wikipedia)


윅스퀼은 생명체의 기능성과 설계를 기계적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순수한 인과율 옹호자(다윈주의)나 유기체의 고유법칙성(Eigengesetzlichkeit)으로 설명하려는 순수한 설계 옹호자(생기론자) 양자에 반대하면서, 설계는 유기체의 특정 법칙을 통해 설명하고 기능은 기계적 법칙을 토대로 설명하는 기계주의(machinalist) 또는 상호작용주의(interactionist)의 입장을 전개했다. 

윅스퀼이 ‘둘레세계’(Umwelt)라는 용어를 제안한 것은 저서 『동물의 둘레세계와 내부세계』(Uexküll 1909)에서였으며, 『이론생물학』의 2판(Uexküll 1928)에서 더 명료해졌고, 『동물과 인간의 둘레세계 산책』(Uexküll & Kriszat 1934)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둘레세계’는 유기체가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의미적 세계를 가리킨다. 하나의 동물 또는 생명체에게 둘레세계는 감각세계와 작용세계의 만남이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감각행위(Merken)에, 우리의 운동기관이 작용행위(Wirken)에 기여한다면, 동물에서 단순히 기계적 배치만이 아니라 기계공도 볼 수 있게 되며, 동물은 단순한 객체가 아니라 지각행위와 작용행위를 그 본질적 활동으로 지니는 주체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로써 둘레세계(Umwelt)로 가는 문이 열린 셈이다. 왜냐하면 주체가 지각하는 모든 것은 그의 감각세계(Merkwelt)가 되고, 주체가 작용하는 모든 것은 그의 작용세계(Wirkungswelt)가 되기 때문이다. 감각세계와 작용세계는 함께 하나의 닫힌 단위, 즉 둘레세계를 형성한다.”

Uexküll. 1934
[그림 2] 순환적인 되먹임 고리의 초기 모형. Uexküll, 1920. 『이론생물학』(Theoretische Biologie). (출처: wikipedia)


내부세계(Innenwelt)에서 감각기관(Merkorgan)이 수용기(Rezeptor)를 통해 감각세계와 만나며 운동기관(Handlugsorgan)이 작용기(Effektor)를 통해 작용세계와 만나면 내부세계에서 새로운 고리가 만들어진다. 이 때 감각세계와 작용세계가 함께 둘레세계를 이룬다. 윅스퀼이 즐겨 인용하는 진드기(Ixodes rhitinis)의 예를 통해 이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진드기는 시각도 청각도 없으며, 진드기를 둘러싼 거대한 외부세계(Welt)와 일반적 환경(Umgebung)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진드기는 포유류의 땀 냄새에 있는 부티르산(酪酸)만 감각할 수 있다. 번데기에서 부화한 진드기는 나무 같은 데 매달려 있다가 부티르산을 지각하면 나무에서 스스로 떨어짐으로써 포유류의 몸에 달라붙게 되며, 이를 통해 포유류의 피를 얻는다. 다른 감각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부티르산을 통해 그릴 수 있는 그 세계가 더 강렬하게 존재하게 된다. 진드기가 작용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계는 부티르산에 대한 감각을 매개로 진드기 안에 만들어진 둘레세계이다.

생명체는 수동적으로 주어진 자극에 반응하는 무심한 기계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감각할지를 결정하고 만드는 시스템이다. 그런 점에서 해석주체와 의미와 기호 사이의 3자 관계를 주된 관심으로 삼는 기호학의 접근이 생명체에 대한 이해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된다.경험의 대상과 감각의 요소 사이의 차이는 물리적 환경 자체에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제로 주변에 물리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것과 지금 여기에서 그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생물학적 유기체의 인지적 구성 사이에서 얻을 수 있는 관계 또는 관계들의 망으로부터 결정된다(Deely 2001, Chebanov 2001).

둘레세계는 물질과 생명과 의식이라는 세 층위가 만나 감각과 작용을 통해 독자성을 얻게 되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둘레세계는 의식과 무관하게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체생성성에 토대를 둔 생물학적 인지이론과 인지과학의 기연적 접근을 둘레세계의 이론은 자연스럽게 만난다. 둘레세계에 대한 논의가 생명체가 인지하는 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자체생성성 이론과 기연적 접근은 그러한 둘레세계에 대한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며 발전하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3)편 “인지과학의 기연적 접근” (2020. 2. 11)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 김재영 (2017). “사이버네틱스에서 바라본 생명: 비인간전환의 관점”. <정보혁명 – 정보혁명 시대, 문화와 생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다>. 한울아카데미.
  • Chebanov, S.V. (2001). “Umwelt as life world of living being”, Semiotica 134―1/4, 169-184.
  • Deely, J. (2001). “Umwelt”, Semiotica 134―1/4: 125-135.

과학칼럼 연재 “인공생명” 시리즈는 김재영(2017)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과학칼럼은 매주 화요일에 업로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