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에너지 노예-그 반란의 시작]


[에너지 노예-그 반란의 시작]
앤드류 니키포룩, 김지현 옮김, 2013, 황소자리.

영국의 한 방송에서 이런 실험을 했다. 침실 4개, 가족 구성원이 4명인 영국의 한 가정에서 일요일 한 나절 동안 평소와 동일하게 에너지를 쓰고 그 에너지를 사람의 힘으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이 ‘인간발전소’는 자전거 100대의 페달을 밟는 100명의 자원자들로 구성된다. 단, 이 가정의 네 사람은 인간발전소에 대해 전혀 모르게 한 상태에서 실험을 진행한다.

그 결과 오븐에 열을 공급하는 데에는 24명, 토스트 두 장을 굽는 데는 11명이 페달을 밟아야 했고 아무도 전기를 쓰지 않을 때도 대기전력때문에 누군가 페달을 밟아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에너지는 그들이 먹은 음식물이 만들어낸 에너지보다 적었다. 실험이 끝나자마자 자전거 페달을 밟았던 자원자들 상당수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고 몇 사람은 며칠 동안 걷지도 못했다. 이 가정의 ‘현대판 노에 소유주들’이 실험 후 인간 에너지 노예를 소개받고서 보인 반응은 아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PxuuB_ZBuk (실험에 대한 방송)
(이 방송은 2009년에 제작되었다. 실험에 참여한 사이클리스트 인원수가 책에는 100명, 기사에는 80명으로 나온다.)

<실험 중인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는 사람들>
https://road.cc/content/news/11779-cyclists-power-family-home-bbc-show-highlight-energy-wastage

앤드류 니키포룩은 그의 책 [에너지 노예]에서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우리가 에너지 소비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우리의 일상적인 안락함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 노예가 필요한지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실험 자체가 가능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매일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면서도 전기 콘센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조금도 알 필요가 없다. 그 뒤에 석탄이나 석유가 있어도 원자력발전소가 있어도, 비록 한 나절의 실험이지만 인간이 직접 자전거로 전기를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모른 채 에너지를 쓸 수 있다.

저자는 인간 노예제도부터 시작해서 원자력발전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의 에너지 노예제도가 만들어져온 과정을 산업, 석유, 농업, 인구, 과학, 경제학, 도시 등의 각 분야에 걸친 방대한 문헌과 이론, 연구를 통해 소개한다. 기존 상식에 반하는 한 가지 이야기는, 화석연료 특히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의 산업화와 에너지 노예제도가 바로 인간 노예제도에 의해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화석연료가 인간 노예를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것이다. 인간 노예들이 수 천 년 동안 구축 해둔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산업혁명이 가능했고 화석연료라는 에너지 노예가 산업, 과학기술 등을 더욱 고도화시켰다는 설명이다.

또한 반대로 에너지 노예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언제든 다시 인간 노예제도가 부활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현대 사회에 인간 노예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제도상으로는 없어졌을지 모르겠으나 노예의 처지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그 나라의 개발 수준과 상관없이 다수로 존재한다. 오히려 화석연료라는 고도의 에너지가 인간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이동시키고 값싸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든 측면이 있다. 이제는 쇠사슬 없이 자발적으로 나라를 이동해가며 자신을 노예의 상태에 빠뜨리는 저개발국가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도시화 과정에서 탄광 인부 17만 명이 사망했고(p.165) 충칭의 산악지역에 사는 부자들에게 에너지를 날라다주는 값싼 짐꾼들의 수는 10만 명에 달한다(p.166). 석유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시아에서 1,000만 명이 넘는 뜨내기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해서 온갖 힘든 일과 허드렛일을 시키며 가혹한 형벌까지 가한다고 한다(p.243).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과 마찬가지로 주변국에서 싼값에 노동력을 들여와 농촌과 도시와 공장에서 ‘사용’하면서 마치 그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긴다. 콘센트 뒤에서 페달을 밟은 사람들과 이들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에너지 노예’에는 우리가 에너지를 노예처럼 부린다는 뜻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에너지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화석연료가 만든 고도의 에너지 시스템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는 이제 인간 노예, 핵분열, 핵융합, 태양광발전 우주 플랫폼 등 무엇이든 에너지만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면 가리지않고 끌어오려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 걸까. 더 적은 에너지로는 살 수 없을까. 

화석연료 고갈, 전쟁, 기후변화, 자연환경 파괴, 인간성 상실, 삶의 질 하락, 빈부 격차 등 에너지를 많이 씀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는 수도 없이 많다. 바츨라프 스밀의 연구에 따르면 1인당 연간 에너지 소비량이 7배럴 정도가 되면 그 이상의 수준에서는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행복감이 같이 늘어나지 않으며, 정치적 자유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량 1.5배럴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오히려 에너지 소비가 비교적 높거나 아주 높은 나라들이 세계적으로 가장 억압이 심한 편에 속한다. 석유를 팔아 국가의 재원으로 삼는 석유국가들 대부분에서 독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10장)은 에너지의 밀도가 높을 경우 부와 권력이 소수의 손에 들어가기 쉽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에너지는 재생가능해야할 뿐만 아니라 분산적으로 생산, 사용되는 민주주의적인 시스템에 기반해야 한다. 저자가 사례로 드는 베네딕트 수도회가 그러했다. 저자는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져야하며 그것은 정의와 존중에 바탕을 두어야한다고 프롤로그에서 밝히고는, 이 수도회의 시스템을 에필로그에서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난 후 6세기 경 로마의 변방에서는 훗날 베네딕트 수도회가 된 베네틱트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평등, 금욕, 봉사와 나눔을 가장 중시하고 노동은 곧 기도라는 모토 하에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끌어갔다. 11세기 경에는 독일, 영국, 북유럽 등지에서 자급자족하는 베네딕트회 촌락이 1만 5천 개 이상이 될 정도로 번성했지만, 수도원이 물방아를 개발해 잉여에너지를 만들어내면서부터 권위와 탐욕이 쌓여 부패하기 시작했고 결국 베네딕트 수도회는 쇠락해갔다.

현대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는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현재 지구 곳곳에서 다양한 실험과 실천들이 증가하고 있으니 잘 해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 실험과 실천들은 기존 사회의 시스템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은 상태에서 에너지의 양만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에너지의 생산과 사용 방식 모두 생태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질적으로 다른 시스템이 될 것이다. 

에너지 전환은 쉽지 않을 것이다. 화석연료라는 에너지 노예제도가 세워지기까지의 길고도 험난한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정치인, 사업가, 역사학자, 수학자, 철학자, 지리학자, 지질학자, 화학자와 물리학자 등 전 분야의 길고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과 인류 지성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역사는 수많은 전쟁도 포함한다.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충실한 보고서 [에너지 노예]는 ‘인간 노예제도’에서 ‘에너지 노예제도’로의 전환에 대한 일종의 역사책이다. “현실에 맞는 삶의 기술을 다시 학습”하고 “천천히 먹고, 근거리 여행을 즐기며, 텃밭을 가꾸고, 윤리적으로 일하며, 공동체를 구축하고, 도구를 함께 쓰고,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비대해지는 것을 피하”는 에너지 노예해방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에너지 노예해방 운동이 하나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사례로 사라지지 않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가 주류 에너지 시스템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에너지 전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 노예제도를 지나, 화석연료와 이것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기계 노예제도를 수립하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우리도 그와 유사한 과정을 밟아야 할지 모른다.

내용은 전혀 다르겠지만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을 이룰 새로운 논리를 만들고 철학과 정치, 도구, 기술, 사회 구조 등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 우리에게 필수적이고 필연적인 일이 되어야 에너지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무엇이 새로운 에너지 체제에 대한 절실함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쿠바에 대한 미국의 금수조치나 일본 후꾸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례보다는 좀 덜 비극적인 동기로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 녹색문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

2019. 6. 28.
황승미(녹색아카데미)
*예전에 썼던 글입니다. 조금 고치고 줄여서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