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문명이야기 (7) 자연을 보는 인간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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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환경을 변화시켜왔고, 그러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일정한 사고방식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인간을 중심에 두는 관점은 현대 사회를 일구어낸 주요한 세계관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들과 기독교 사상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들 사상에서 인간의 위치는 자연을 지배하는 자리이다.

크세노폰의 <명상록>에서 소크라테스는 제자와 토론하면서, 저급한 동물들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고 키워진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정치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자연이 뭔가 쓸모 있는 것을 만든다고 한다면, 자연은 모든 동물을 인간을 위해 만들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과학이 발달해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어도 인간의 우위를 증명하고 인간의 자연에 대한 권리를 강화하는 데 이용될 뿐이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19세기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오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유대 사상과 기독교 사상은 “하나님은 만물을 인간을 위해 창조하셨다”라고 본다. 일부 예외적인 소수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유대계 사상가인 마이모니데스는 인간을 신이 창조한 세계의 관리인으로 보고, 신의 피조물을 보살필 의무가 인간에게 있다고 보았다.

“만물이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다른 모든 사물들도 무언가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마이모니데스 (1135~1204)
[그림 1] 새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 13세기 작품.(출처: wikipedia)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사상도 마이모니데스와 비슷하다. 그의 사상도 주류 기독교 사상과 공통되는 면(세상은 자비로운 창조주의 작업)이 많지만 인간을 최고 목적으로 두지는 않는다. 성 프란치스코는 모든 피조물이 동등한 창조물이고 신의 계획에 따른 것이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성 프란치스코의 사상이 최근 몇 십 년 동안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16세기 유럽에서 퍼진 세속주의는 정치, 경제활동과 종교를 분리할 것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전사상과 기독교 사상에 포함된 인간 중심주의는 거의 그대로 이어간다. 17세기 말 영국의 존 레이(John Ray)는 <창조의 작업에 발현된 신의 지혜>(1691)에서 인간은 특별하며, 인간이 자연에 간섭하고 바꿀 수 있으며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말한다. 유럽인들의 17세기 저술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인간의 자연 지배와 신의 작업을 완수한다는 인간의 역할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창조한 목적이다. 즉 하위의 존재, 특히 동물과 식물군에 대해서, 전능하신 주의 대리자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매튜 해일 (1609~1676). 당시 영국의 법률가. <인간의 근원적 기원>의 저자.
[그림 2] “눈속의 사냥꾼”. 대 피터 브뤼헐. 1565년. 당시 칼뱅주의와 가톨릭의 종교적인 분쟁 속에서 공격을 피하기 위해 브뤼헐은 세속적인 그림을 시도하는데, 이 그림과 “추수”가 대표적이다. (출처: wikipedia)


특히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환원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은 이후 과학 연구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수학을 통해 계측하고 정량화하는 방법,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환원적인 과학적 방법을 강조하였다.

데카르트의 연구 방법은 전체나 유기적인 관계가 아니라 조각조각 나누어진 개별적인 부분에 초점을 두었고, 단편적이고 기계적인 세계관을 낳는 결과를 초래했다. 17세기 후반 뉴턴의 물리학적 법칙이 등장하면서 데카르트의 기계적인 세계관은 더욱 강화되었고, 설계자로의 신은 200년 이상 더 유지되었다.

베이컨도 세계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며, 자연 세계를 연구하는 목적은 인간의 생활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자연을 이해함으로써 자연을 정복하고 경영하고 이용하여, 결국은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이자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세계의 중심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인간을 우주로부터 떼어 놓는다면 나머지 세계는 목표를 잃은 채 헤매게 될 것이다.”

프란시스 베이컨 (1561~1626)

그러나 18세기 전반이 되면서 이러한 인간중심적인 세계관은 비판을 받기 시작한다.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비판과 새로운 사상의 출현, 다른 전통들을 살펴본다.


참고자료
<녹색세계사>, 클라이브 폰팅 지음. 1991; 이진아/김정민 옮김. 2007. 그물코. (7장)


“그림으로 읽는 문명이야기”에서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와 녹색문명을 고민해봅니다.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를 읽어가면서, 현재의 환경문제와 기후위기 상황 그리고 석유에 기반한 현대도시문명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림으로 읽는 문명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 업로드됩니다.


발췌, 요약: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2020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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