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 물리학의 동아시아 전파

뉴턴역학은 사실상 모든 종류의 운동을 F=ma라는 단순한 방정식으로 모두 설명하며, 뉴턴은 천상의 운동과 지상의 운동을 모두 포괄하는 보편적인 통합 이론을 만든 선구자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매혹적인 물리학 또는 자연철학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뉴턴의 물리학은 어떻게 동아시아에 전해졌으며, 사람들은 이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을까?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뉴턴의 널리 알려진 저서 “프린키피아” 즉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그림 1 참조)가 유럽에서 어떻게 대중화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다. 뉴턴은 17세기의 표준적인 저술 방식에 맞추어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 원론의 체계와 비슷하게 공리적 체계로 책을 썼다. 이 책은 정의, 공리, 명제, 정리, 예비정리, 따름정리 등을 제시하고 이를 유클리드 기하학을 이용하여 증명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사용하는 것도 그러하지만 실상 증명과 주장 속에서 암묵적으로 미분과 적분의 개념이 스며들어 있는 이 책을 손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 17세기 유럽에서도 드물었다. 케임브리지의 수학자 조지 클라크는 “이 책의 세 절을 읽었는데, 거의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뉴턴은 독자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고, 이 책이 도서관 책장에 그냥 모셔져 있기만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뉴턴은 독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례한 저자였다. 

그림 1. 뉴턴의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사람들이 뉴턴의 물리학을 이해하기 시작한 첫걸음은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 에밀리 뒤 샤틀레(Émilie du Châtelet, 1706-1749)를 통해서였다. 그는 라틴어로 쓰인 뉴턴의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면서 전체적으로 불분명한 부분을 다듬고 더 이해하기 쉽도록 주석을 달았다. 영국에서도, 뉴턴의 뒤를 이어 케임브리지 대학 루카스 석좌교수가 된 윌리엄 위스턴(William Whiston, 1667-1752)이 “더 쉽게 예시된 아이작 뉴턴 경의 수학철학(Sir Isaac Newton’s mathematick philosophy more easily demonstrated)”을 1716년에 냈고, 프랑스 출신의 데사귈리에(John Theophilus Desaguliers, 1683-1629)는 “뉴턴의 세계체계(The Newtonian system of the world, the best model of government)”[1728]와 “실험철학 강의(A course of experimental philosophy)”[1734-44]를 통해 뉴턴의 철학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벤저민 마틴(Benjamin Martin)은 1743년에 “뉴턴철학의 원리에 따른 자연철학 및 실험철학 강의(A course of lectures in natural and experimental philosophy,… explain’d on the principles of the Newtonian philosophy)”를 출판했고, 1756년에 나온 제임스 퍼거슨(James Ferguson)의 “수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사람을 위한, 아이작 뉴턴 경의 원리에 따른 천문학(Astronomy explained upon Sir Isaac Newton’s Principles, and made easy to those who have not studied Mathematics)”는 19세기까지 16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1761년에 나온 “젊은 신사와 숙녀의 능력에 맞춘 뉴턴의 철학체계(The Newtonian system of philosophy adapted to the capabilities of young gentlemen and ladies)”는 이와 같은 뉴턴 물리학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뉴턴 물리학이 더 많은 유럽의 독자를 만나게 된 것은 네덜란드에서였다. 빌렘 스흐라브상드(Willem’s Gravesande, 1688-1741)는 1720년에 “실험으로 입증된 수학적 기초물리: 뉴턴 철학 입문(Physices elementa mathematica, experimentis confirmata: sive introductio ad philosophiam Newtonianam)”을 통해 뉴턴의 철학을 대중에게 소개했다. 1723년에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위해 “교육기관에서 쓸 수 있는 뉴턴의 철학(Philosophiae Newtonianae institutiones in usus academicos)”을 출판했다. 네덜란드에서 전개된 뉴턴 물리학의 대중화가 동아시아에서의 뉴턴 물리학 도입의 씨앗이 되었다. 

17세기 초 명말청초의 예수회사들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을 중국에 광범위하게 소개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가령 예수회사인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와 중국의 성리학자 쉬광치(徐光啓, 1562-1633)가 함께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의 일부(1권부터 6권까지)를 “幾何原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1607년에 출간했다.  

북경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가 1645년에 귀국하면서 자연철학과 관련된 방대한 서적들을 함께 가지고 왔다. 이를 통해 조선에도 아리스토텔레스, 에우클레이데스, 프톨레마이오스 등의 다양한 자연철학이 전해졌다. 그러나 중국에 들어간 예수회사들은 뉴턴 이전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에 머물러 있었고 이른바 과학혁명기에 새로 등장한 과학에는 대개 무지한 상태였다. 따라서 뉴턴 역학이 이 경로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일본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1640년경부터 일본 나가사키의 데지마 지역에서 신기한 물건들을 중심으로 제한된 무역활동을 하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점차 망원경, 시계, 유화, 현미경, 지도, 지구의 등으로 품목을 확장했다. 서적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었는데,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 吉宗, 1684-1751)가 1720년에 이 금지령을 완화하면서 네덜란드의 학술 서적들이 일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림 2. 란가쿠(蘭学)

몇십 년 동안의 무역을 통해 네덜란드어를 말하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던 덕분에 이 학술 서적들이 체계적으로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란가쿠(蘭学)이다.(그림 2 참조) 네덜란드, 더 정확히 홀란드를 阿蘭陀(오란다)로 불렀기 때문에, 그중에서  ‘蘭’자를 딴 것이다.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란가쿠샤(蘭学者)라 불렀는데, 무역에 필요한 물건의 이름이 아니라 네덜란드어로 되어 있는 학술용어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것이 란가쿠샤들의 가장 심각한 과제였다. 이들의 저술은 원서의 충실한 번역보다는 여러 책들을 저본으로 삼아 이를 발췌하거나 편역하고 필요할 때마다 란가쿠샤 자신의 주석과 해설을 포함시키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란가쿠샤들 중 주목할 사람이 마에노 료타쿠(前野 良沢 1723-1803)이다. 마에노가 1777년에 낸 두 권의 저술이 바로 뉴턴의 물리학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논의된 기록이다. “혼야쿠운도호(翻訳運動法)”와 “소쿠요키주세츠(測曜圖説)”라는 제목으로 된 두 저술은 책이 아니라 노트의 형태였고, 원저작이 무엇인지도 밝혀놓고 있지 않았다. 앞의 노트는 ‘이사카’(Isaac Newton)의 법칙을 이용하여 힘의 합성을 통해 운동을 설명하는 것이며, 뒤의 것은 달과 행성들과 혜성의 타원 궤적을 역시 ‘이사카’의 법칙으로부터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노트의 원문은 1751년에 출판된 데사귈리에(John Theophilus Desaguliers, 1683-1629)의 “경험으로부터의 자연학(De natuurkunde uit ondervindingen)”임이 나중에 밝혀졌다.
란가쿠샤는 대개 성리학적 자연철학에 능숙했는데, 미우라 바이엔(三浦梅園 1723-1789)은 영어로 quality라 하는 것을 性(せい, 세이)로, quantity를 量(りょ, 료)로, substance를 質(しつ, 시츠)로 옮겼다. 나아가 이 글자들을 결합하여 다른 용어를 번역했다. 가령 matter는 두 개의 한자를 사용하여 物質(ぶっしつ, 붓시츠)로, mass는 質量(しつりょ, 시츠료)로, body는 物体(ぶったい, 붓타이)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그림 3. 시즈키 타다오의 “暦象新書(れきしょうしんしょ, 레키쇼신쇼)”

시즈키 타다오(志筑 忠雄, 1760–1806)는 동아시아에서 뉴턴 역학을 비롯한 서양의 근대적 물리학을 처음 소개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시즈키 타다오는 1798년부터 1802년 사이에 세 권으로 된 “暦象新書 (れきしょうしんしょ, 레키쇼신쇼)”를 냈다.(그림 3 참조) 23살이던 1782년에 처음 “참된 자연철학과 천문학 입문(Inleidinge tot de waare Natuuren Sterrekunde)”을 만난 뒤 20여 년이 지난 뒤였다. 
이 책은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수학자이자 자연철학 존 케일(John Keill, 1671-1721)이 1739년에 “참된 물리학과 천문학 입문(Introductiones ad veram Physicam et veram Astronomiam)”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한 것을 2년 뒤에 네덜란드 사람 요한 륄로프스(Johan Lulofs, 1711-1768)가 네덜란드어로 다시 번역한 것이다. 케일의 그 책은 영어로 쓴 자신의 저서 “참된 물리학 입문(Introduction to True Physics)”과 “참된 천문학 입문(Introduction to Ture Astronomy)”을 묶어서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다. 케일은 옥스퍼드 대학의 석좌교수로서 뉴턴의 자연철학을 더 알기 쉬운 언어로 재서술하고 퍼뜨리기 위해 애썼다. 

륄로프스는 1731년에 위트레흐트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다시 2년 뒤에 레이든 대학에서 두 번째 학위를 받은 뒤 1742년에 수학과 천문학의 석좌교수로 임명되었다. 륄로프스는 빌렘 스흐라브상드와 피터 판 뮈센브루크(Pieter van Musschenbroek, 1692-1761)에게서 뉴턴의 자연철학을 배웠다. 륄로프스는 케일의 책을 발견하고 네덜란드의 지식인들의 최신 천문학과 물리학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이를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번역이라는 것이 원래의 책을 그대로 기계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영어본과 라틴어본과 네덜란드어본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특히 륄로프스는 네덜란드어로 번역하면서 주석도 달고 원문에서 불분명한 부분을 적절하게 고치는 등 개작을 했다.

시즈키 타다오의 “暦象新書”도 번역서라기보다는 륄로프스의 책을 크게 참조하고 다른 책들까지 참조하여 만든 일종의 편역서에 가깝다. 시즈키 타다오의 가장 탁월한 점은 네덜란드어로 된 여러 물리학 용어들을 고심 끝에 한자로 번역한 것에 있다. 가령 이미 성리학에 기반을 둔 자연철학에서 기존의 개념을 조합하여 天文學(텐몬가쿠)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냈다.
특히 力(료쿠)이라는 글자를 여러 가지로 조합하여, 가령 gravity라는 개념에 대해 重力(주료쿠)을, attraction이라는 개념에 대해 引力(인료쿠)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따라서 어떤 개념이 성격상 일종의 힘이라면 모두 “-力”가 되게끔 일종의 표준을 세웠다. 뉴턴의 역학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centripetal force와 centrifugal force를 각각 求心力(큐신료쿠)와 遠心力(엔신료쿠)라는 말로 번역했다.
또 뉴턴의 자연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corpuscle을 分子(분시)라고 번역했다. 비슷하게 여러 종류의 알갱이들을 모두 ‘-子(し)’로 끝나도록 이름붙이는 표준을 세웠다.

그림 4. 求力法論(규료쿠호론)

나카 텐유(中 天游, 1783-1835)는 1824년에 “引律(인리츠)”를 출판했는데, 이것은 륄로프스가 케일의 1708년에 Philosophical Transaction에 낸 논문을 시즈키 타다오가 “求力法論(규료쿠호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할 두 텍스트를 다시 번역하여 정리한 것으로서, “暦象新書”의 새로운 번역이라 볼 수 있다.(그림 4 참조)
나고야의 요시오 난코(吉雄 南皐, 1787-1843)는 “理學入式・遠西觀象圖說(리가쿠뉴시키 엔세이칸쇼주세츠)”를 1823년(1판), 1826년(2판), 1828년(3판)에 냈는데, 두 개의 네덜란드어 원본과 타다오의 저작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 중 3부에서 행성, 항성, 별자리, 혜성 등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地動或問(치도와쿠몬)”이라는 제목의 부록에서는 시즈키 타다오의 “暦象新書”에 있는 여러 관념들을 많이 가져와 서술했다. 

조선에서 서양의 근대적 물리학을 처음 만난 사람은 최한기(1803-1877)이다. 최한기는 1859년에 출판된 “談天(Tantian)”을 통해 뉴턴의 물리학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존 허셜(John Herschel, 1792-1871)의 책 “천문학 개요(Outlines of Astronomy)”를 알렉산더 와일리(Alexander Wylie, 1815-1887)와 리션란(李善蘭, 1811-1882)이 함께 번역한 것이다.(그림 5 참조)

그림 5. 최한기 초상화(왼쪽)와 1859년에 출판된 “담천(談天)”(오른쪽)

존 허셜은 천왕성과 적외선을 발견한 그 유명한 윌리엄 허셜의 아들이자, 과학을 통한 사회개혁을 퍼뜨리던 사람이었다. “천문학 개요”는 1833년에 출판한 “천문학론(A Treatise on Astronomy)”의 개정증보판으로서, 뉴턴의 태양중심우주를 고급 수학을 사용하지 않고 설명하기 위한 책이었다.
리션란은 대수(代數), 상수(常數), 변수(變數), 함수(函數), 계수(係數), 지수(指數), 급수(級數), 단항식(單項式), 다항식(多項式), 미분(微分), 횡축(橫軸), 좌표계(坐標係), 절선(切線), 법선(法線), 곡선(曲線), 점근선(漸近線), 상사(相似) 등의 한자로 된 수학 용어를 처음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리션란은 10살에 “구장산술”을 통달하고 15살에 “기하원본” 6권을 모두 이해한 천재였다. 그는 “기하원본”의 남은 7권부터 15권까지를 1855년에 와일리와 공동작업으로 완역했다. 그는 1858년부터 와일리 및 존 프라이어(John Fryer)와 함께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의 일부를 번역하여 “奈端數理”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 1897년 무렵에 전체를 다 번역하긴 했지만, 뉴턴의 책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어 번역서는 결국 출간되지 않았다.
네덜란드어로부터 모든 개념과 용어를 일일이 일본어와 한자로 번역해야 했지만 비교적 풍부한 책들을 갖고 있는 란가쿠샤들의 일본과 달리 19세기 중국에서 뉴턴 물리학을 만나는 길은 매우 제한되어 있던 셈이다. 

우리나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중국 학자들과 협업으로 새로운 번역어를 만들고 주요 문헌들을 번역한 덕분에, 조선의 지식인들 중에는 이미 17세기말부터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의 주요한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과학혁명 이후의 유럽의 물리학을 제대로 받아들일 통로는 없었다.  
최한기가 “談天”을 읽은 것은 책이 출간된 지 2년쯤 뒤인 1861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1867년에 출판된 “星氣運化”는 “談天”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서 이에 대한 논평을 통해 저자 자신의 생각을 논의한다. 최한기는 이미 1857년에 출판된 “氣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氣에 기반을 둔 존재론적 사유를 전개하고 있었다. 이는 1860년에 출판된 “運化測驗”이나 1866년에 출판된 “身機踐驗”에서 체계적으로 논의된다. 최한기는 氣가 形質과 活動의 두 측면을 지니며, 만물이 곧 氣라는 존재론적 믿음을 바탕으로 뉴턴의 자연철학을 재구성하고 비평하고 있다. 최한기는 ‘氣輪’과 ‘攝動’의 이론을 바탕으로 독특한 자연철학적 존재론을 제시했다.

뉴턴의 물리학이 처음부터 그 자체로 사람들 속으로 파고든 것은 아니다. 처음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이해하는 사람은 극소수였지만, 이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소개하려는 노력이 쉼 없이 계속되었고, 이를 통해 뉴턴의 자연철학 또는 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 동아시아에서는 네덜란드를 통해 뉴턴 물리학이 들어왔으며, 새로운 관점과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번역하여 새로운 용어와 개념으로 확장하는 문제가 심각했지만, 여러 선구자들의 노력으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이어지는 기반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2019년 6월 27일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원문 출처 : 한국물리학회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339203&memberNo=38442864&searchKeyword=김재영&searchRank=4

김재영 박사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물리학기초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막스플랑크 과학사연구소 초빙교수 등을 거쳐 현재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물리철학 및 물리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공저로 『정보혁명』, 『양자, 정보, 생명』, 『뉴턴과 아인슈타인』 등이 있고, 공역으로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에너지, 힘, 물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