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문명 이야기 – 이집트와 수메르의 토양 염화


[그림 1] 샤더프(Shaduf). 고대 이집트 경작지에 물을 댈 때 지렛대 원리를 이용하였다. 이푸이(Ipuy)왕의 무덤 출토. 기원전 1295~1213. (출처, 고해상도 이미지 보기: wikemedia commons)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 농업은 기원전 5,500년 전부터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약 7천 년 동안 이어져왔다.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강으로부터 영양 물질이 풍부한 흙과 물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 4천 년 동안은 양동이로 사람이 밭으로 물을 날랐다. 기원전 1340년이 되면 샤더프(그림 1)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 도구로 10% 정도 효율이 높아졌다.

나일강 삼각주(Nile Delta)로 떠내려오는 토사와 물은 에티오피아와 우간다 두 곳에서 시작된다. 상류에 위치한 고원지대의 우기인 6월에 내린 비는 3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집트까지 3달 후인 9월에 도착한다. 비와 흙은 계곡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운하를 따라 나일강 유역 전체로 골고루 퍼지는데, 이 일은 11월 쯤 마무리되며 이때가 바로 가을 농사를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농사 방식에는 대단한 기술이 필요치 않았다. 물이 흘러넘칠 때 적당히 물웅덩이를 만들거나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둑을 허물어 더 넓은 지역으로 물이 흘러가게 도와주는 것 정도였다. 기원전 300년경부터는 가축이 끄는 물수레를 사용하면서 효율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었을 뿐이다.

자연적인 지리와 비를 이용한 나일강 유역과는 달리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위치한 고대 수메르는 인공적으로 관개를 해야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이 지역을 흐르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의 수위는 봄에 눈이 녹으면서 가장 높아지는데 수메르의 농사 시기인 비가 아주 적거나 오지 않는 가을, 겨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림 2] 강물에서 수영하는 사람들과 농사짓는 사람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농사에서는 물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앗시리아 문명의 니네베(Nineveh) 궁전에서 출토된 돋을새김 조각. 기원전 645년 경.(출처 : history.comGetty Images)


수메르에서는 비가 오는 봄에 물을 저장했다가 농사를 지을 때 인공적으로 관개를 했다. 그런데 자연적으로 내리는 풍부한 비를 이용하는 경우와는 달리 인공적인 관개는 토양 염분화를 동반하게 된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지역처럼 여름 기온이 40도가 넘는 곳에서는 물이 빠르게 증발하면서 땅 속의 염분이 늘어난다. 또한 저수와 관개는 지하수 수위를 높여 농사를 짓기 어려운 여건을 만든다.

수메르 왕국이 위치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물을 잘 빨아들이지 못하는 토질인데다 땅이 평평해서 물이 천천히 빠져나갔기 때문에 결국 땅이 물에 잠기고 농사에 점점 불리한 곳이 되어간 것이다. 상류지역에서 일어나는 침식으로 토사가 떠내려오면서 강바닥은 1000년 마다 1.5미터씩 높아졌고 삼각주는 1000년마다 24킬로미터씩 늘어났다.

관개는 계속 되었고, 지하수면도 계속 높아졌고 토양의 염화도 심해져갔다. 농지의 염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농사를 쉬고 인공적으로 물을 대지 않음으로써 지하수위가 내려가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수메르는 늘어나는 인구와 군사, 관리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더 집약농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수메르의 작물생산량은 기원전 2400~2100년이 되면 40퍼센트로 줄어든다. 또한 이 지역의 주요 작물은 밀과 보리가 절반씩이었는데 토양이 염화되면서 염분에 약한 밀을 키우기 어려워져 이 시기가 되면 보리 비율이 85%까지 증가하게 된다. 기원전 2000년 경에 이르면 “땅이 하애졌다”는 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결국 부양가능한 군사와 관리가 줄면서 수메르와 주변 도시국가들은 외부침략에 취약해져갔고 농경의 쇠퇴와 운명을 같이 했다. 수메르 왕국은 짧게 부활하기도 했지만, 기원전 1800년경 최종적으로 바빌로니아 왕국에게 정복당할 때까지 아카드의 사르곤(Akkadia), 자그로스 산맥의 구티(Guti) 유목민 등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림 3]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콰이트베이 요새. 해수면이 상승하고 침식이 심해지면서 요새 주변에 방파제를 둘렀다. (사진: The Arab Weekly)

다시 나일강 유역으로 돌아가보자. 영원할 것 같았던 나일 삼각주도 해마다 강수량이 달라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많았다. 왕조의 흥망이 나일강 유역의 범람과 무관치 않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준다. 기원전 2250~1950년에는 수위가 낮아지는 해가 이어지면서 작물 수확량이 줄어들었고 결국 이집트 구왕조 말에 크게 사회 분열이 있었다. 기원전 1840~1770년에는 반대로 수위가 높아져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나일강 유역의 농사는 비교적 안정되게 19세기까지 이어져왔으나 1840년대가 되면서 유럽으로 수출할 면화를 재배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경지를 새로 만들어 넓히고 인공적으로 물을 대면서 수메르에서 일어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토양에 염분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1900년대 초반이 되면서 염분화와 침수가 새로 조성한 경작지에서 일어났고, “새하얀 질소질의 염분이 땅을 뒤덮어 햇볕을 받을 때는 마치 아직 손을 대지 않은 눈처럼 빛”나게 되었다(당시 영국 농업 전문가 매켄지 월러스).

게다가 1970년대에 하이 댐(High dam; 아스완댐)을 지으면서 매년 나일강 삼각주로 내려오던 흙과 물이 멈추게 되었다. 범람은 멈췄지만 운하를 이용한 관개 네트워크를 통해 풍부한 물을 농지에 공급했기 때문에 염분을 씻어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인구가 늘면서 하류의 경작지까지 공급할 물이 감소했고, 오염물질들이 하수에 섞여 내려오면서 농사에 사용할 수 있는 깨끗한 물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향후 50년간 나일강 삼각주에 도달하는 물은 증발과 상류 물 수요 증가로 인해 70% 더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나일강 삼각주 지역의 염화 문제를 악화시키는 또 하나의 문제는 해수명 상승이다. 이집트가 바다와 면한 길이는 3천 킬로미터에 달하는데,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가뭄 등이 토양의 염화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농지에 인공적으로 관개한 물의 증발량도 늘어나 다중으로 염화되고 있다. 나일강 삼각주는 이집트 식량 생산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기때문에 토양 염화와 해수면 상승은 현재 이집트가 풀어야할 심각한 문제이다.

농지의 토양 염화 문제는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전세계 경작지 중 36%가 관개를 통해 물을 공급하고 있으며, 전체 경작지 4분의 1에서 토양 염화가 문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시설재배 토양 중 상당수에 염류가 집적되어 있어 이를 경감하기 위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자료



“그림으로 읽는 문명이야기”에서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와 녹색문명을 고민해봅니다.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를 읽어가면서, 현재의 환경문제와 기후위기 상황 그리고 석유에 기반한 현대도시문명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림으로 읽는 문명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 업로드됩니다.


글: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2019년 12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