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문명 이야기 – 이스터섬 1776년

녹색아카데미 웹진 – 환경칼럼에서 ‘그림으로 읽는 문명 이야기’ 시작합니다. 과거 & 미래 문명의 흥망성쇠와 녹색문명 등을 그림을 통해 소개합니다. 첫출발의 뼈대는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입니다.

녹색의 관점에서 세계사, 문명사를 보는 중요하고 유명한 책이라 이미 읽으신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내용들을 짚어보면서 읽었던 내용도 떠올려보고, 현재의 환경문제와 기후위기 상황 그리고 석유에 기반한 현대도시문명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그림으로 읽는 문명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 업로드됩니다.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2019년 11월 20일.


[그림] 윌리엄 호지(William Hodges). 1776. ‘이스터섬의 조각상이 보이는 풍경’ (A View of the Monuments of Easter Island(Rapanui)) : oil on panel. 775*1219 mm. National Maritime Museum Greenwich, London. (그림 출처 : Royal Museums Greenwich)

남아메리카 서쪽 해안에서 바다로 3,200 킬로미터쯤 가면 작은 섬이 하나 있다. 이름은 이스터섬, 면적은 약 400 평방킬로미터로 하루 안에 섬 전체를 돌아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 섬에서 가장 가까운 유인도인 피트케언섬도 2,000 킬로미터 떨어져 있을만큼 이스터섬은 고립된 곳이다. 고립은 이 섬의 문명 붕괴에 한 가지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스터섬은 유럽인들이 이곳에 처음으로 도착했던 날이 부활절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1722년 부활절 일요일, 네덜란드 사람인 로흐헤펜 제독이 아레나 호를 이끌고 처음 방문했을 때 3천 명 정도 되는 섬 사람들의 생활상태는 원시 그 자체였다. 섬 사람들은 동굴이나 약한 갈대로 만든 오두막에서 살고 있었고 땅은 황폐해 농사짓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이들의 일상은 먹을 것과 자원을 위한 끊임없는 전쟁과 약탈이었다.

위 그림을 그린 윌리엄 호지는 로흐페펜 제독 이후 두 번째로 이스터섬을 찾은 제임스 쿡 선장의 배를 타고 이 섬에 도착했다. 호지는 해군의 지명을 받아 이 탐험 과정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고, 1772~1775년 동안 쿡 선장과 함께 태평양 섬들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다.

이스터섬을 찾은 유럽인들에게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 바로 그림에 나오는 ‘모아이’(moai) 조각상이었다. 거대한 석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이 당시 섬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그들의 문명 상태가 너무나 원시적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모아이에 대해 물었을 때 섬 사람들은 이 거대한 조각상들이 섬을 가로질러 “걸어왔다”고 답했다고 한다. 윌리엄 호지와 함께 배를 탔던 식물학자 J. R. 포레스터는 모아이를 두고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조각상은 사람 모양을 하고 있으며 허리 위까지 조각돼있다. 귀는 크고, 조각상의 높이는 약 5.5미터, 너비는 1.5미터 정도 된다. 이들 조각상들은 망가져 있으며 머리 위에는 커다란 돌 모자가 씌워져 있다.’

– J. R. Forester. 식물학자.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사람의 두개골이 보이고 탐험대가 사용하는 측량 도구도 그려져있다. 그림 중앙에는 다른 모아이들과 섬 사람들의 윤곽이 보이기도 한다. 하늘의 구름과 음산한 날씨, 묘한 적막감과 석양처럼 보이는 햇빛은 스러져가는 로마제국의 유적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윌리엄 호지도 현장에서 느낀 그러한 감정을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이스터섬 사람들의 조상은 폴리네시아인으로 전해진다. 폴리네시아인은 원래 동남아시아에서 살다가 건너간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원전 1000년에 통가와 사모아 군도로 이주했고, 기원후 300년경이 되면 마키저스 군도에까지 이르게 되며, 500년경에는 북쪽으로 하와이까지 남동쪽으로는 이스터섬까지 진출한다. 그 후로도 이동이 이어져 600년경에는 소시에테 군도로, 800년경에는 뉴질랜드에 이르게 되며 이것으로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이동은 일단락된다.

이스터섬에 도착한 폴리네이사인들은 고구마와 닭을 주식으로 삼았다. 이주할 때 데려온 돼지와 개는 기르기 힘들었고 얌, 타로(토란과), 빵나무, 바나나같은 작물은 이스터섬에서 잘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도착한 사람들의 수는 대략 30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인구가 늘면서 씨족을 이루게 되었고, 식량 생산에 시간이 들지 않아 여가시간이 많아지면서 이들의 정치, 사회, 종교 조직은 점점 복잡해져 갔다. 그 결과물이 바로 모아이다.

이들은 해안 지역에 제사 장소를 마련하고 모아이를 조각해 세웠다. 더 크고 더 많은 모아이는 곧 부족의 힘, 권력과 동일시 되었기때문에 섬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석상을 세우는 데 몰두했다. 문제는 모아이를 만들 거대한 돌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에 위치한 채석장에서 가져와야했다는 사실이다.

수레를 끌 수 있는 가축이 이스터섬에는 없었기 때문에 돌은 나무를 이용해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풍부했던 나무들이 모두 잘려나갔고 이것이 이스터섬의 문명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나았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이들은 지리적으로 너무나 고립되어 있었고, 위기를 인식했을 때에는 배를 만들 나무조차 남아있지 않아 탈출할 수조차 없었다.

이 작은 섬이 가장 번성했던 때는 1550년쯤이었고 당시 최대였던 인구는 7천 명 정도였다. 한 문명이 자신의 위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완전히 붕괴되는 단계까지 갈 수 있으며, 다시 원시적인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실제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스터섬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