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내공생과 자유에너지로 본 생명 – (1)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과학칼럼 새 연재 시작합니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장회익, 2014)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생명의 정의, 자유에너지, 내부공생, 온생명론 등을 다룹니다. 특히 물리학으로 생명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문제를 제기하신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에 대한 상보적인 관점으로 생물학자(린 마굴리스의 세포내공생)와 생화학자(닉 레인의 세포막과 자유에너지 접근)의 이론을 함께 소개합니다.

(1)편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2)편 “생명을 정의하는 문제와 철학적 문제” 보러가기
(3)편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의 출현” 보러가기
(4)편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자유에너지” 보러가기
(5)편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염기성 열수 분출구” 보러가기
(6)편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내부공생” – 1 보러가기
(7)편 “생화학의 눈으로 본 생명: 내부공생” – 2 보러가기
(8)편 “바탕체계와 온생명” 보러가기

2019년 11월 19일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2014년에 발표된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장회익)는 생명에 대한 철학적 및 과학적 사유의 역사에서 독보적인 저서이다. 이 책은 “물리학의 눈으로 바라본 생명의 바른 모습”을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그림 1]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장회익(2014). “물리학의 눈으로 바라본 생명의 바른 모습”을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물리학자가 생명의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물리학은 자연세계 전체에 보편적으로 내재한 법칙과 원리를 밝히는 것을 목 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생명현상이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1943년 에르빈 슈뢰딩거의 강연이다. 그러나 물리학적 관점에 서 바라본 생명의 정의를 제기한 것이 슈뢰딩거가 처음인 것은 아니다.

[그림 2] 에르빈 슈뢰딩거는 1943년 더블린에서 “What is Life”란 제목으로 대중강연을 했고 그후 동일한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사진 : Nature)

두드러진 예로서 모페르튀(Pierre-Louis Moreau de Maupertuis, 1698-1759)의 논의를 살펴보는 것이 의미 있다(Bowler 2009). 모페르튀는 1745년에 출판된 <물리적 금성 Vénus physique (The Earthly Venus)에서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독보적인 논의를 보여준다.

이 책의 1부는 동물의 기원(Sur l’origine des animaux)을 다루고 있고, 2부는 인간 종의 다양성(Variétés dans l’espèce humaine)을 다루고 있다. 모페르튀는 맨 처음에 신이 생명을 만들었다거나 생명체의 실체가 모두 조상에 이미 확립되어 있다는 전성설을 비판하면서 생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중시 여기는 후성설(epigenesis)을 강조한다.

[그림 3] <물리적 금성>. 모페르튀(1745). 모페르튀는 이 책에서 전성설을 비판하면서 생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중시하는 후성설을 주장한다. (사진 : wikisourcewikepedia)

모페르튀는 생명체의 탄성에 대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남성의 정수(male semen)와 여성의 정수(female semen)의 입자들이 혼합된다는 오래된 주장을 받아들인다. 입자들의 혼합에 변이 또는 다양성이 있으며 그 중에 적절한 것이 남게 된다. 환경에 적합한 것이 새로 얻은 속성을 유지하면서 후손에 그 속성을 전달해 준다.

배아의 구조를 이루는 패턴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면, 어떻게 남성 정수와 여성 정수의 입자들이 올바른 질서로 모일 수 있을까? 자연발생의 과정에서 물질적 입자들이 어떻게 맨 처음에 살아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림 4] 루크레티우스(99 BC ~ 55 BC)의 <사물본성론>(The Nature of Things; De nature serum. 1483년 판. (사진 : wikipedia)

뉴턴역학적 힘은 필연적이어서 그러한 구조를 만드는 데 적합하지 않다. 모페르튀는 물질이 자연발생적으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는 고유한 경향을 지닌다고 가정한다. 이는 루크레티우스가 에피쿠로스를 인용하며 논의한 클리나멘과 연관된다. 루크레티우스에 따르면,

“원자는 그 자신의 무게 때문에 허공 속에서 연직 아래로 떨어지면서, 거의 정해져 있지 않은 때 그리고 거의 정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살짝 엇나간다네. 그것은 이른바 경향(운동)을 조금 바꿀 따름이라네. 그것이 없어서 살짝 엇나가지 않았다면 모든 원자가 빗방울이 그러듯이 밑이 없는 허공 속으로 한없이 떨어졌을 거라네. 기본 원소들 속에서 충돌도 일어나지 않아서 자연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네.”

– 루크레티우스 (Lucretius 2.216–93)

새로운 것이 창조되기 위해서는 필연성에서 벗어나는 복잡성이 있어야 하며, 바로 그것이 자유의지의 가능성으로 연결되는 원자의 중요한 속성이 된다. 모페르튀의 논의는 라메트리(Julien Offray de La Mettrie)의 <기계인간 LHomme machine (Man a Machine, 1748)>을 통해 계승된다.

라메트리는 인간을 순전히 물질적인 것으로 보아야 하며 마음이나 영혼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몸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이라고 보았다. 즉 마음은 뇌와 신경의 활동에 따라 생겨 난다는 것이다.

라메트리는 대개 기계론자 내지 유물론자인 것으로 서술되지만, 생명의 문제를 단순하게 기계나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Bowler 2009).

(2)편 “생명을 정의하는 문제와 생명에 관한 철학적 문제”에 계속 됩니다.


참고문헌

Bowler, P. (2009) Evolution: The History of an Ide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 이번 과학칼럼 새 연재는 ‘온생명론 작은 토론회'(2016년 아산)에서 소개된 글(김재영, 녹색아카데미)입니다. 장회익선생님의 온생명론과 공생이론, 자유에너지를 비롯한 생화학적 생명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