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사회의 종말 – (4)누구의 책임인가: 기후위기의 식민 지배적 기원과 국익 경쟁


녹색아카데미 웹진의 기사를 녹색문명공부모임(매월 두 번째 토요일)에 맞추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다룰 책이나 주제에 관한 내용을 미리 소개하고 고민해볼 지점을 제기하여 모임을 좀 더 알차고 풍성하게 운영해보려는 취지입니다.

조효제선생님의 <탄소 사회의 종말>은 지난 5월에 시작했고 7월까지 읽을 예정입니다. 앞서 세 차례의 글을 통해 (1)기후위기는 어떤 위기인지, (2)기후과학은 어떻게 “탈인간화” 되었는지, (3)기후위기를 왜 & 어떻게 사회학적으로 볼 것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탄소 사회의 종말> 2부, 기후위기가 누구의 책임이며 왜 풀기 어려운지 중에서 식민 지배와 국익 경쟁 관련 내용(8, 9장)을 정리하였습니다.

2021년 5월 녹색문명공부모임 자료 <탄소 사회의 종말> 1~8장.
<탄소 사회의 종말> 시리즈 모두 보기 링크


기후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그것이 자연 현상인지 인간의 활동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기후부정론자들 사이에 남아 있습니다. 나사(NASA) 고더드우주연구소의 소장 개빈 슈미트는 2018년 “과학자들이 기후변화 사건의 진범을 어떻게 찾았나”라는 글에서 기후변화의 범인은 ‘호모사피엔스’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태양흑점 주기 변동, 화산 폭발, 지구 자전축 변화, 대륙 이동, 지표면 변화, 대기권 성분 변화, 해류 순환 이상, 소행성 충돌 등도 ‘용의자’로 지목되었지만 범인은 우리 인류였습니다.

정확한 결론이지만,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더 구체적으로 책임을 묻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탄소 사회의 종말>에서는 기후위기의 주요한 원인이자 책임으로 식민 제국주의 역사, 국가간 경쟁과 기업활동, 신자유주의, 정치, 개인적 사회적 심리, 기후행동의 사회문화적 장벽 등을 들고 하나하나 설명합니다. 아래 글은 이 중 식민 지배적 기원과 국익 경쟁 관련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1) 기후위기의 식민 지배적 기원

현재 기후위기 이전에도 인간의 활동이 기후변화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소위 ‘소빙하기'(Little Ice Age. 1300~1850)의 원인은 유럽의 흑사병, 태양의 활동, 해류 순환 등 여러가지로 제시되고 있지만, 서구인들이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일도 한 원인으로 꼽힙니다. 서구인들의 침입으로 토착민들이 절멸되고, 이들이 경작하던 땅에 자연 산림이 들어서면서 이산화탄소가 대량으로 흡수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기후위기의 구조적인 틀은 서구의 식민 제국주의와 함께 형성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에너지혁명과 기술혁명이 현재의 기후변화에 주요한 책임이 있지만, 산업혁명은 이렇게 앞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비서구권에 대한 서구의 지배, 정복, 식민화와 병행하여 이루어졌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17세기 말에 등장한 존 로크의 자유주의 소유권 개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자연에 노동을 섞으면 소유권이 생긴다는 개념으로, 비서구권의 자연환경을 착취하여 이루어지는 상업 활동에 이념적인 바탕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추구하고 있는 경제개발 논리와 기반은 식민 지배와 제국주의에 의해 구축되었습니다. 서구식 개발 모델은 비서구 국가들이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후에도 계속 모방되고 추구되었으며, 그럼으로써 더욱 서구에 종속되는 경제적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국주의 유산의 그림자가 현재까지 드리워져 있는 것입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탄소 상쇄와 같은 제도(선진국에서 탄소를 배출하고 개도국에서 탄소를 흡수하는 메커니즘을 지원해주는 제도) 등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소위 ‘녹색 강탈'(green grabbing)이 일어납니다. 탄소 경제활동에서 기인한 위기를 탄소 경제 논리로 대응하면서, 개도국은 선진국이 내뿜는 탄소를 흡수하느라 식목 사업을 하고, 생존에 필수적인 작물 농업은 부족하게 되고 결국 기후위기에 더 취약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됩니다.

지금 전 세계는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 시기 대비 2도, 가능한 한 1.5도 이하로 억제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여기에 맞춰 온실가스를 줄여나갈 계획을 만들고 있습니다. 국제적 목표를 합의해내는 과정 자체도 쉽지 않았겠지만, 이런 단일 목표는 매우 기술관료적 보편주의 논리에 의거하고 있습니다. 서구식 기후변화 조치를 비서구권에 동일하게 적용하려 한다, ‘생태 제국주의‘다라는 비판을 하며 개도국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식민 지배와 제국주의 시대부터 내려오는 역사적 배경과 경제적 불평등이 고려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 1] 작은 섬나라동맹(AOSIS) 국가들(초록색). 카리브해 연안 16개국, 태평양 15개국, 대서양과 인도양 그리고 남중국해 8개국. (그림 출처: wikipedia)

카리브해 연안에 절반 이상 모여 있는 ‘작은 섬나라동맹’ 국가들은 15세기 서구의 침략 이후 본국과 불평등한 경제적 관계를 가져왔습니다. 게다가 20세기 후반 채무 위기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이들 국가들은 경제 구조조정을 강요받았고 관광, 환금작물 재배, 양식업 등 신자유주의적인 산업 형태로 전환해야 했습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져가면서 이들 국가들의 농업 형태와 경제구조는 더욱 취약해지게 되었고, 기후위기 대응에 동참할 여력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편 현재 단일국가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는 중국입니다. 중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을 추월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역설적인 상황은 있습니다. 미국내 흑인들은 대부분 제국주의 국가들이 비서구권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미국으로 끌고간 노예들의 후손입니다. 이들은 백인에 비해 경제 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고, 기후재난 피해에 취약하거나 환경오염이 더 심한 지역에 많이 살고, 실외에서 작업하는 육체 노동자가 더 많고, 각종 질환을 가진 사람들도 더 많습니다.

또 한 가지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문제는 ‘제국적 생활양식‘의 확장입니다. 남반구를 생태적 비용으로 외부화하면서 북반구의 1세계가 지금껏 풍요를 누려왔는데, 이러한 ‘제국적 생활양식’이 이제는 북반구의 중산층과 남반구까지 확대되어가고 있고, 이제는 더 이상 외부화할 수 있는 생태적 비용이 남아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기후변화는 외부화할 수 있는 ‘외부’가 사라졌음을, 생태위기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증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림 2] 국가별 온실가스(CO2, CH4, F-gas) 배출량. 1850~2018. (출처: World resources institute)

(2) 국민국가, 국익 경쟁, 지정학적 갈등

현재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적인 대응은 주로 국가를 기본단위로 온난화 기여 정도에 대한 책임을 묻고 행동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각 나라별로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 밝히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온실가스는 대기 중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지속적으로 지구 대기 기온을 높이기 때문에 각국의 역사적 기여도가 중요합니다.

[그림 3]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태워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바다와 지각에 의해 흡수되는 과정. 향후 4만 년 동안에 대한 모델링. (출처: M. Inman. 2008. Nature)

이산화탄소는 20~200년에 걸쳐 바다에 서서이 녹아들어가고, 메탄이나 질소산화물 등 다른 온실가스는 훨씬 더 긴 기간 동안 대기 중을 떠돌며 이산화탄소보다 더 강력한 온실효과를 일으킵니다. 역사적인 책임을 온실가스 누적치로 순위를 매겨보면 미국이 25%로 1위, 유럽연합 국가들이 22%로 2위, 중국이 약 13%로 3위이고, 러시아가 6%, 일본이 4%, 인도가 3%, 한국도 1%나 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현재의 선진국들에 절반 이상 있음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그림 4).

[그림 4] 국가별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 1751~2017. (출처 : Our World in Data)

그런데 현재 시점으로 따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2017년 한 해 동안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 전체 중에서 중국이 27%(1위), 미국이 15%, 유럽연합 국가들이 9%, 인도 7%, 러시아 5%, 일본 3%, 우리나라는 1.7%를 배출하였습니다(그림 5).

한국의 1인당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간 12.4톤으로 세계 평균 4.8톤의 두 배가 넘습니다. 이것은 주로 에너지 소비가 많고 온실가스 배출이 큰 업종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 때문이며, 산업부문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에 낮은 값을 책정하고 있어 에너지 소비를 더 많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에너지산업의 소유, 운영 구조와 국가 에너지정책의 방향을 수정해야 합니다.

[그림 5] 국가별 이산화탄소 연간 배출량. 2017년. (출처 : Our World in Data)

한 나라의 산업과 에너지의 물적 구조는 한번 결정되고 나면 최소 몇 십 년 동안 지속되고 바꾸려고 할 경우 큰 비용이 듭니다. 게다가 국력이 곧 경제력이고, 경제력은 다시 화석연료라는 강력한 에너지원에 직접적으로 의존하여 성장해왔기 때문에 변화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기후변화 문제가 주요한 국제 정치, 경제 이슈가 되었고, 환경이 곧 무역 갈등의 주제로 등장했습니다. 또한 기후변화 문제는 군사 안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80% 이상의 인구가 수입 원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해 살고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 문제는 곧 국제정치의 변수이고 에너지 확보를 위해 각국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심지어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해의 화석연료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북극에 새로운 항로가 생기자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연합 국가들은 새로운 자원을 자국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입니다. 장기적으로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 전환을 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대부분 나라들의 정부에서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단기적인 목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를 안보 위기로 인식하는 현재 각 나라들이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고 국제정치학자인 사이먼 돌비는 지적합니다(Simon Dalby, 2015). 국가 보위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 경쟁때문에 ‘석탄기 자본주의’의 기반 자체가 허물어졌다, 근대성은 화석연료로 지탱되어 왔고 이제는 그러한 근대적인 물질적 기반을 벗어나 새로운 체제를 구성해내야 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시스템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2009)는 기후변화 문제가 에너지 부족 문제와 겹쳐져 지정학적 문제가 되면, 이는 곧 국가 안보 문제가 될 수 있고 군사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온실가스 감축 같은 과제는 그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뒷전이 될 것입니다.

[그림 6] 미국 “국가안보전략 2017” 발표 기사 화면 갈무리. (출처: the White House)

기든스의 경고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후위기 정책이 180도 바뀌었지만, 트럼프 정부는 ‘파리협정’ 탈퇴를 실제로 실행했고 기후변화 문제를 국가안보 전략과 직접 연결했습니다. 다음 인용문은 트럼프 정부가 2017년에 펴낸 <국가 안보 전략>의 내용 중 일부로, 기후변화 문제를 에너지 확보의 문제로 보고 있음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기후정책이 전 지구적 에너지 시스템의 향후 진로를 결정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 경제와 에너지 안보에 해로운 ‘반성장적 에너지 의제’를 격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강력한 지도력이 필수 불가결하다.”(Climate policies will continue to shape the global energy system. U.S. leadership is indispensable to countering an anti-growth energy agenda that is detrimental to U.S. economic and energy security interests.)

NSS, 2017: 22.

트럼프 정부는 중국과 경쟁 구도를 만들면서 기후위기 해결에 있어 서구와 중국의 협력관계도 훼손하였습니다. 문제는 중국을 경쟁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트럼프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의 안보 엘리트, 민주당 내에도 상당히 퍼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장 구명보트의 정치’, 미국 등 서구 선진국이 기후위기 시대의 전 지구적 갈등을 통제하는 데 사용하는 전략을 일컫는 말입니다(크리스천 퍼렌티. 2012). 자신들은 구명 보트에 안전하게 있으면서 다른 나라의 갈등과 분쟁은 자신들이 막고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스스로의 무장을 합리화하고, 갈등과 분쟁은 오히려 더 조장하는 정치를 말합니다.

[그림 7] 국가별 군사비 지출 규모. 1988-2020. (출처: SIPRI)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지출된 군사비는 거의 2천 조 달러에 달합니다(SIPRI. 2021). 기후위기가 악화되면 분쟁과 갈등, 불안정, 안보 불안은 더 커지고, 군비 지출은 따라서 증가하게 되고, 군비에 사용되느라 기후위기에 대응할 자원은 또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지속됩니다.

2016년 당시 전 세계의 기후재정은 군사비의 12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나라의 2019년 국방예산은 46.7조 원, 환경부의 기후변화 대응 예산은 792억 원이었습니다. 여기에 국토부의 128억 원, 농림축산식품부의 242억 원까지 합쳐도 국방 예산의 400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책. p.110).

미군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도 엄청나게 큽니다. 미군은 단일 조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조직이며(Crawford. 2019), 한 나라로 가정했을 경우 미군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나라는 140개 국이나 됩니다(책. 110). 미국은 「교토의정서」에서 군사 목적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자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집계에서 제외되도록 한 바 있기도 합니다.

미군과 기후변화가 악순환 고리를 만들게 되면, 기후변화로 인해 미군의 역할이 더 확장될 위험도 있습니다. 산업화된 미군의 군사 활동은 이미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기후변화의 속도를 높이고 있고, 기후위기로 인해 분쟁과 갈등이 증가하면서 안보 리스크가 커지고, 다시 이에 대한 군사개입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정당화되는 식으로 악순환 구조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설적인 고리를 깨기 위해서는 미군이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하며, 미군을 포함한 전 세계의 군사활동 자체가 축소되어야 합니다(기울임체는 편집자의 의견입니다).

위 글은 <탄소 사회의 종말>(조효제, 2020)의 2부 중 8, 9장을 요약한 것입니다.
정리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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