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사회의 종말 – (3)기후위기를 왜 & 어떻게 사회학적으로 볼 것인가


녹색아카데미 웹진의 기사를 녹색문명공부모임(매월 두 번째 토요일)의 주제에 맞추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모임부터 7월까지 조효제선생님의 <탄소 사회의 종말>을 읽을 동안, 이 책을 요약 정리한 내용이나 관련 기사, 연구 등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앞서 두 차례의 글을 통해 (1)기후위기는 어떤 위기인지, (2)기후과학은 어떻게 “탈인간화” 되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은 세 번째 글로, <탄소 사회의 종말> 1부의 내용 중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기후과학을 ‘실제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는 인간화가 필요하다는 부분, 사회학적 접근에 대한 부분을 정리하였습니다.

2021년 5월 녹색문명공부모임 자료 <탄소 사회의 종말> 1~8장.
<탄소 사회의 종말> 시리즈 모두 보기 링크


1. 기후과학은 ‘상상의 대중’이 아니라 ‘실제의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

기후변화가 팩트임을 밝히기 위해 자연과학적 설명은 필수적이었고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과학적 접근만으로는 대중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데는 부족함이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민주사회에서는 대중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야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집합적 힘이 생기는데, 기후과학이 발전해가면서 ‘탈인간화’되었고 결국 ‘실제의 대중’과 괴리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이러한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기후변화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기후변화 문제를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 제시하고 설명하는 것을 말하며 기후변화의 ‘인간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 문제를 인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기후과학적인 팩트를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안내해야 합니다. 이것을 ‘수직적 번역’이라고 하는데, 사실 기후변화의 인간화 작업은 이처럼 과학지식을 평이하게 설명하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며, 나중에 4부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한편 ‘수평적 번안’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처럼 어떤 집단이 자기 집단 내에서 의사소통하기 위해 자기들의 언어로 전형화, 규범화하고 그러한 전문지식이 사회의 일반지식으로 바뀌는 현상을 말합니다. 실제로 각 사회집단은 동일한 사안에 대해 사용하는 단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조사한 연구(Moloney et al. 2014)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극한 기상이변, 기상 변화, 불확실, 불가피 등 기후현상의 ‘특성’에 관한 어휘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정부 문서에는 도전, 재난, 환경, 식량안보, 미래, 해수면 등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과 피해에 대한 ‘대처’ 관련 용어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반면 일반인들은 공해, 가뭄, 물, 해빙 등 기후변화로 인해 일어나는 ‘결과’와 관련된 단어를 더 많이 떠올렸습니다.

[그림 1] 과학자, 정부, 대중 등 3개의 사회집단에 대해 기후변화 관련 용어 30개의 사용 경향을 조사한 결과 그림과 같은 차이가 나타났다. (출처: Moloney et al. 2004)

기후변화라는 단일한 현상에 대해 집단에 따라 다른 어휘를 사용하고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에 따른 행동도 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메세지들은 그 수신 대상을 ‘상상의 대중'(imagined public, Fox & Rau. 2017, Walker et al. 2010), 즉 정확한 정보를 알기만 하면 바로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동질적인 집단으로 설정하고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의 대중'(actual public)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각자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수용합니다. 농민은 농사와 관련된 날씨와 작황과 관련한 정보를, 기업인은 생산과 세금, 조업과 시설 관리와 관련된 위험 요인들과 관련된 정보를 중심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물론 그외 개인들의 인식틀, 사회관계, 사회적 정체성 등도 작동을 할 것입니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은 각자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입니다. 이상 냉해로 피해를 입은 과수 농사, 이상 고온으로 물고기들이 폐사한 양식사업자, 열대야와 혹한에 열악한 주거 형태에 살고 있는 사람, 도시 에어컨의 환풍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미세먼지, 옷장에 가득 옷을 두고 혹은 버리고 새 옷을 구입하는 것, 집중호우에 잠못 이루는 저지대 주민들…

코로나19 팬데믹 위기처럼 기후변화를 다룬다면 우리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실제로 기후위기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후변화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반복해 언급한 바와 같이 기후위기가 우리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는 너무나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온 상승을 설명하는 방식과 탄소 순배출 제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 등에서 훨씬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고, 인간의 시간 지각 규모에 맞춰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로, 1.5도 이내로 지구 평균 기온을 억제하려면 이산화탄소를 얼마만큼 줄여야 하고, 몇 년까지 탄소 순배출 제로를 달성해야한다 식의 설명은 과학적 연구 결과이고 정책적 목표이지, 일반 대중이 자신의 일상에서 어떻게 해야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설명이라는 것입니다.

2. 사회학적 상상력은 기후위기를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기후변화를 인간화한다는 것은 인간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기후변화를 이해하고, ‘인간적 차원’에서 해석하고, 기후변화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으로서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과)학적 접근이 필수적입니다.

1959년에 출간되어 지금까지도 중요하게 인용되고 있는 찰스 라이트 밀스(Charles Wright Mills)의 <사회학적 상상력>에서는 역사, 개인과 사회 세 가지 관점에서 ‘사회학적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 역사의 누적된 결과와, 그 결과 안에서 역사가 계속 만들어지는 과정
  • 인간 본성과 개인의 역정과 그 사회 속 인간들의 특징
  • 사회를 특정한 방향으로 조직하는 제도들과,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일정한 경로들로 이루어진 사회구조
[그림 2] 찰스 라이트 밀스. <The Sociological Imagination> (출처 : wikipedia)

밀스는 일상의 차원과 세계적 차원에서 위의 세 가지 요소를 함께 파악할 수 있어야 사회학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기후위기도 밀스가 말한 사회학적 인식이 꼭 필요한 문제입니다. 기후변화 문제에 사회학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접근할 경우 어떤 장점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의 대응 방식이 결정되는 데에는 사회구조, 제도, 사회의 조직 방식, 문화적 가치와 규범, 이념, 사회적 관행, 조직화된 부인 기제 등 수많은 요소들이 작동합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각 개인들이 자신의 선택과 자유의지로 화석연료를 쓰고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여 ‘계몽’하면 친환경적인 행동으로 이끌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내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에게는 선택권 자체가 처음부터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가정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저탄소 생활양식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사회시스템부터 화석연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물론 개인과 시민공동체와 사회시스템이 선순환하는 노력이 있어야 탄소사회 이후 사회로 전환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시스템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현재의 시스템에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리는 기업, 산업계, 기득권 세력, 이해집단이 화석연료에 기반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후문제의 본질은 화석연료 등의 자연환경을 일부 집단이 불평등하게 이용함으로써 나타나는 사회적・정치적 갈등이며, 단순히 온실가스 농도 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3. 온실가스가 아니라 탄소 사회가 기후위기를 만든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메커니즘을 사회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은 ‘경성 인프라’와 ‘연성 인프라’ 두 가지 차원의 사회적 인프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경성 인프라는 도로, 빌딩, 항만, 발전소와 같이 자본 투입이 크고 매몰비용이 높습니다. 따라서 한번 자원이 투입되면 회수가 어렵고, 발전 경로를 다른 방향으로 바꾸기 어렵게 만들고, 기술에 크게 의존합니다.

연성 인프라는 우리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데,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행위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지식과 태도, 문화와 제도, 세계관, 거버넌스 구조 등이 연성 인프라에 속하는데, 이것이 경성 인프라와 순환고리를 만들면서 사회시스템이 만들어집니다.

예로, 대단위 화력발전소는 국가 차원에서 큰 예산과 기술을 들여 지어야 하고, 한번 세워지면 수십 년 동안 화석연료를 투입해 에너지를 만들어내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됩니다. 즉 화력발전소가 운영되는 동안에는 한 나라의 에너지정책이 이 발전소에 맞추어 운영되는 강한 ‘경로의존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림 3] 탄소 사회를 구성하는 두 가지 사회적 인프라인 경성 인프라와 연성 인프라. (그림 출처: 책 <탄소 사회의 종말>의 내용을 기반으로 편집자가 구성하였습니다.)

연성 인프라는 우리가 사회적 인프라를 사용하는 사고방식과 패턴을 결정합니다. 전기와 기타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뿌리 깊은 사회에서라면 에너지를 적게 쓰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려는 행동 규범은 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기업이 상품을 생산하고 유통, 마케팅 하는 과정에서 소비지상주의를 부추기고, 개인들은 그러한 취향과 선전을 당연한 문화로 받아들이고 숭배하고 있습니다. 탄소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탄소 인간'(Homo carbonicus. Crokett & Robbins, 2012)들은 이것을 ‘발전’이라 부르며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지 않은 지금도 ‘back to normal’을 외치며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사회학적 노력은 책의 후반부에 더 자세히 다루어지겠지만, 여기에 그 기본적인 구도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 세 가지가 이루어져야 사회변혁이 시작되고 기후위기에 근본적인 대처가 가능한 계기가 마련될 수 있습니다.

  1. 경성 인프라를 화석에너지 기반에서 재생가능에너지 기반으로 전환하고,
  2. 소비지상주의적 연성 인프라를 불평등 감소와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인프라로 대체하고,
  3. 새로운 경성 인프라와 연성 인프라가 합쳐져 ‘상호 억제 순환고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4. 사회적 배태성과 ‘기후위기들’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개개인은 각자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기후변화의 피해도 다르고 영향도 다르게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계급, 젠더, 인종, 직업, 학력, 지역, 남반구와 북반구 거주 여부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도 행사할 수 있는 권력도 크게 달라집니다.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구조에 ‘깊이 뿌리 박혀 있’어서 동일한 현상을 차별적으로 경험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사회적 내재성‘ 또는 ‘사회적 배태성‘(embeddedness)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동일한 기후 재난 상황에서도 이에 무관심한 사람, 기후행동에 열성적인 사람, 사회적인 행동에 뛰어들지는 않지만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사람 등 다양한 반응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림 4]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구조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사회적 현상을 각자 다르게 경험하는데, 이를 ‘사회적 내재성’ 또는 ‘사회적 배태성’이라고 한다. (그림 출처: 책 <탄소 사회의 종말>의 내용을 기반으로 편집자가 구성하였습니다. 녹색아카데미 웹진 2021. 1. 11 기사를 참조해주세요.)

또한 사회적 지위나 부와 권력의 정도에 따라 악영향을 받는 정도와 취약성도 달라집니다. 1991년 4월 방글라데시에 초대형 사아클론과 해일이 일어났었습니다. 사이클론이 지나간 시간은 겨우 3~4시간에 불과했는데 사망자 수가 약 13만 명(정부 집계)에 이르렀고, 엄청난 재난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성 사망자가 남성 사망자보다 42%나 더 많았습니다.

이후 이루어진 연구에서 제시된 이유는, 여성들이 살림과 양육으로 집 안에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온몸을 감싸는 전통 복장인 ‘사리’를 입고 있어서 폭우 속에 움직이기가 불리했고, 평소에 남성들 보다 식단이 부실하여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비상 상황 대처에도 힘들었고 이후 회복도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결국 남존여비 문화, 가부장제, 불평등한 경제사회적 조건, 전통 복장이라는 문화 여건 등이 기후재난에서 특정 젠더의 피해를 높였다는 결론입니다.

[그림 5] 1991년 방글라데시 사이클론과 해일, 2005년 미국 허리케인은 더 빈곤하고 약자인 사람들이 재난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사진 출처 : wikipedia)

2005년 미국의 남부, 특히 뉴올리언스를 덮쳤던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례에서도 이러한 사회적 배태성에 따른 피해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당시 공식적인 사망자만 1,500명에 달했고 경제 손실도 천문학적이었습니다. 사고 후 조사에 따르면, 뉴올리언스에서 태풍 피해를 본 빈곤층 중 70%가 흑인이었고, 침수 지역 주민 중 80%가 유색 인종이었으며, 자동차가 없는 사람 중 3분의 2 이상이 흑인이었습니다.

카트리나 사건 이후 ‘환경 인종주의’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인종에 따른 피해의 차이가 컸습니다. 기후변화라는 자연적 현상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후변화는 자연과학적으로 정의되고 보편적으로 설명되는 하나의 기후변화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수많은 ‘기후변화들’이며, 따라서 기후위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학적인 접근과 해법이 필요합니다.

요약, 정리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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