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visible light" : 빛은 에너지와 운동량의 형태로 침입한다?!
작성자
neomay3
작성일
2020-02-25 23:44
조회
3026
『브라운 신부의 순진』. 체스터턴, 1911. 이상원 옮김, 2019. 열린책들.
세미나가 연기돼서 약간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단편이라 체스터턴의 소설 「보이지 않는 사람」을 읽어봤습니다(우리 책 220쪽 참조). 애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 냄새가 좀 난다 했는데, 이 책 에피소드 1 「푸른 십자가」에서 포 얘기가 바로 나와서 반가웠어요.
"에드거 앨런 포의 역설이 잘 드러내듯, 지혜는 뜻밖의 것을 예상해야 하는 법이다." (『브라운 신부의 순진』. 12쪽)
이 소설의 추리 주인공은 키가 작고 통통하고 순박한 시골 신부님으로 나옵니다. Innocence가 그런 의미로 쓰인 것 같은데, '순결'도 '순진'도 다 이상한 번역같아요. 마땅한 단어를 찾기 힘들어보이긴 하지만.
알고보니 2013년부터 BBC에서 드라마도 하고 있네요. 신부역을 맡은 사람은 영화 『해리 포터』에서 론의 아버지 역을 맡은 마크 윌리엄스입니다. 키는 소설에서 표현된 것보다 크지만 유쾌하고 천진한 표정은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
Father Brown (명탐정 브라운 신부). 영국 BBC 드라마. 2013년~.
영국드라마 『셜록』 시즌 1의 첫 번째 에피소드 「주홍색연구」는 코난 도일의 「주홍색연구」와 체스터턴의 「보이지 않는 사람」 두 가지를 엮은 것 같아요, 재밌게도.
「보이지 않는 사람」에서, 살인자를 막기 위해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겹겹이 조치를 했는데 결국 살인자는 침입을 했고 시체까지 챙겨간 걸로 나옵니다(커다란 우편배달 가방에 담아서. -,-;).
살인자냐 아니냐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의심을 받지 않는 존재로 체스터턴은 우체부를, 영드 <셜록>에서는 택시운전사를 사용한 거죠.
"... 그 집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은 실제로 있었습니다. 다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죠."
"보이지 않는 사람 말씀인가요?" 앵거스가 붉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심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겁니다." 브라운 신부가 대답했다.
...
"대체 그 사람은 누구인가요? 어떤 모습일까요? 심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하고 다닌 겁니까?"
"빨강, 파랑, 금색으로 잘 차려입고 있다네. 이렇게 눈에 확 띄는 복장으로 여덟 개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히말라야 맨션에 들어간 걸세. 그리고 냉혹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다시금 시체를 아래로 내려서......"
(『브라운 신부의 순진』. 134-135쪽)
찾아보니 아서 코난 도일의 홈즈가 연역적으로 추론해가는 스타일이라면 체스터턴의 브라운신부는 직관적으로 추리를 하는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체스터턴의 이야기는 추리를 위한 추리라기보다는 우리의 인식이나 상식에서 헛점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추리를 이용하고 있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포의 "도둑맞은 편지"처럼 말이죠.
"양자이론은 플랑크가 아인슈타인, 드브로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우편배달원' 복장($\hbar \omega$와 $\hbar k$)으로 나타났고, 그들은 이것이 이론의 핵심이었음을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책 221쪽)
선생님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추리소설 이야기를 가져오신 게 신기하고 재밌어서 한번 찾아봤습니다. 게다가 체스터턴의 이야기는 코난 도일보다는 재밌고 애드거 앨런 포처럼 무섭지 않아서 읽기에 부담이 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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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습니다. ^^ 추리소설은 언제나 재미있는데, 그러고 보니 수학이나 자연과학(물리과학과 생명과학 모두)도 그런 것 같습니다. 뭔가 단서(실마리)가 몇 개 있는 것을 가지고 스토리를 만들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추리소설 속의 명탐정의 일과 비슷해 보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까 과학철학에서 이 문제를 다룬 논문들이 좀 있습니다. 자연과학의 방법이 셜록 홈즈의 방법과 비슷하다면서 이것을 '최선의 설명을 위한 추론"(IBE, Inference to Best Explanation)이라고 이름도 붙여서 열심히 이야기합니다. 귀추법(abduction)이라고도 합니다.
우편배달원 이야기가 들어와서 책 읽는 맛을 더 높여준 것 같습니다.
<브라운 신부의 순진>의 번역자가 꽤 오랫동안 연구실을 공유했던 분이라 반가웠습니다. 눈사람님도 기억하실 듯.
아하!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장회익 선생님은 책 제목을 <브라운 신부의 순결>이라고 적으셨네요. 흔히 사람이 innocent하다고 평가하면 '순진하다'라는 뜻일 텐데, 책 내용을 잘 모르지만, 그냥 "순진한 브라운 신부"라고 하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나 저나 앵거스라는 사람 무례한 사람인 것 같아요. 카페에서 커피와 번을 주문하면서 직원에게 다짜고짜 결혼해 달라고 하다니. 뒤의 얘기가 궁금해집니다. 조금 읽다 말았어요.
벌써 보셨어요? @.@ 앞쪽은 전개가 좀 정신없기도 하고 마음이 바빠서 그냥 쭉쭉 넘어갔습니다. ^^;
innocence 번역은 예전에 나온 번역본에서는 <... 순결>로 했었나봐요. 이번에도 저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걸 절반은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이후에 나오는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 제목이 <브라운 신부의 지혜>, <... 의심>, <... 비밀>, <... 추문> 이런 식이거든요. 열린책들에서 계속 낼 계획이라면 고민이 많았을 것도 같아요.
저는 처음에 '무죄'를 설마 저렇게 하지는 않았겠지 하고 생각했더랬습니다. ^^;
생각해보니 앵거스라는 사람이 무례했던 건 그런 설정이 필요해서인 것 같아요. 좀 손쉬운 설정이기도 하고 마음에도 안들지만요.
뒤에 죽고 죽이는 두 남자도 사실은 몇 년 전에 그 아가씨에게 청혼했던 사람들이거든요. 목숨을 걸고 살인을 할만큼 아가씨가 예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앵거스라는 남자를 사용한 게 아닐까 싶어요. ^^
앗, 댓글을 읽어버렸네요. ㅠㅠ 추리소설을 읽을 때에는 뒤를 절대 보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는지라, 끝까지 읽을 수 없을 것 같아요. ^^ 하긴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해서 이 소설을 읽고 있을 시간이 별로 없긴 하지만 말입니다.
뭐.. 스포일은 샘께서 책에 이미 해버리셔서. 우편배달부가 범인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