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건의 유발 및 측정의 문제 1
자료
양자역학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0-02-24 14:48
조회
3536
양자역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가장 깔끔하고 간결한 대답은 양자역학의 공리를 차근차근 제시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표준적인 양자역학 공리 대신 장회익 선생님이 제안하는 새로운 공리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실 이 세 공리만으로 양자역학의 계산은 대부분 해결됩니다. 어차피 관심 있는 것은 수식을 풀어서 특정 물리량(주로 에너지와 운동량)의 값을 알아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슈뢰딩거 방정식도 따로 공리 중 하나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위의 세 공리에서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양자역학이 왜 그토록 자연철학의 역사에서 근원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공리 1에서 위치의 값이 실수값을 갖는 함수가 아니라 상태함수로부터 주어지는 확률적 서술, 즉 기대값으로 주어진다고 했지만, 확률 이론을 써야 한다는 것이 신기한 일은 아닙니다.
이 문제가 불거진 것은 소위 '측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상황에서입니다.
물리량의 값을 알려면 측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양자역학 이전까지 측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다소 과도한 믿음이 깔려 있었습니다.
포장된 선물상자 안에 있는 선물은 내가 포장을 뜯지 않아도 이미 무엇인지 확정되어 있습니다. 포장을 뜯는 동안 상자 속의 물건이 바뀌는 일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측정은 대상의 물리량의 값을 신뢰성 있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덧붙이면, 측정값의 정밀도는 얼마나 좋은 측정장치를 갖다 대는가의 문제이고, (비용과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겠지만) 원하는 정밀도만큼 측정하는 것도 문제가 없습니다. 또 일을 간편하게 하기 위해 두 물리량의 값을 동시에 측정하는 것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이 세 가지가 다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일이 복잡해질 터이므로 우선 이 세 문제 중 뒤의 두 가지는 나중으로 제껴놓겠습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31-234쪽에 있는 내용이 바로 이 문제를 직접 다룹니다. 여기에서는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염두에 두고 소위 '양자 동전'을 던지는 상황을 설정합니다.
양자 동전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붙었지만, 그냥 동전 던지기와 비슷합니다. 양자 동전을 던지면 앞면 아니면 뒷면이 나옵니다. 보통은 그 확률이 똑같을 터라 둘 다 1/2이라고 하겠지만, 편리를 위해 동전의 뒷면이 약간 무거워서 뒷면이 나올 확률이 36% (즉 0.36)이고, 앞면이 나올 확률이 64% (즉 0.64)가 되게 만들었다고 해 보죠.
[공리 1]에서 상태가 상태함수 $\psi$로 서술될 때, 위치의 기대값이
$$\langle x \rangle = \int \psi^* x \psi dx$$
로 주어진다고 했는데, 만일 나올 수 있는 $x$의 값이 둘 중 하나(앞면 아니면 뒷면)라면, 상태함수를 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습니다.
$$\psi = c_1 \phi_1 + c_2 \phi_2$$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c_1$, $c_2$를 실수로 택하기로 합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33쪽에는
$$\Psi = \sum_{i} c_i\phi_i $$
로 썼는데, 여기에서는 $\phi_1$과 $\phi_2$의 두 항만 생각하자는 겁니다.)
상태함수는 절대값 제곱하면 확률이 되는 함수이므로
$$\begin{align}\langle x \rangle =& \int \psi^* x \psi dx\\=&|c_1|^2 \int {\phi_1}^* x \phi_1 dx + |c_2|^2 \int {\phi_2}^* x \phi_2 dx \\&+ c_1 c_2 \int x \left({\phi_1}^* \phi_2 + {\phi_2}^* \phi_1 \right) dx\end{align}$$
가 됩니다.
그런데 확률이론에서 기대값은
$$\langle x \rangle = x_1 p_1 + x_2 p_2$$
으로 주어져야 합니다.
이 두 식을 비교하기 위해 위의 식을 다시 써 보겠습니다.
$$\langle x \rangle =\int {\phi_1}^* x \phi_1 dx |c_1|^2 + \int {\phi_2}^* x \phi_2 dx |c_2|^2 + A$$
이 식으로부터 계수 $c_1$, $c_2$의 제곱이 확률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세 번째 항 $A$를 신경쓰지 않기로 해야 합니다.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합니다.
따라서 앞에서 도입한 양자동전의 상태함수는
$$\psi = \frac{3}{5} \phi_1 + \frac{4}{5} \phi_2$$
라 쓸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phi_1$는 양자동전을 던질 때 앞면이 나오는 것에 해당하는 상태함수이고, 마찬가지로 $\phi_2$는 양자동전을 던질 때 뒷면이 나오는 것에 해당하는 상태함수입니다.
앞에서 36%와 64%라고 확률값의 숫자를 선택한 것은 이렇게 3/5과 4/5를 계수로 맞추려고 그런 겁니다.
$$ \left(\frac{3}{5}\right)^2 = 0.36 , \quad\left(\frac{4}{5}\right)^2 = 0.46$$
자, 이제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에서 살고 죽는 확률이 1/2이라는 것 자체는 이상하게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주사위 놀이나 고전 동전을 던질 때와 마찬가지로 확률이 등장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조금 전에 일단 신경쓰지 말자고 한 세 번째 항
$$ A = c_1 c_2 \int x \left({\phi_1}^* \phi_2 + {\phi_2}^* \phi_1 \right) dx$$
입니다. 이 귀찮은 녀석만 없다면, 양자역학에서 확률을 말하는 것이 전혀 거리낌 없는 일이 되고, 양자역학이 자연철학의 역사에서 무슨 근본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세 번째 항(흔히 '양자간섭항'이라 부릅니다)을 없애기 위해 온갖 다양한 시도가 있었고, 그에 따라 무슨무슨 해석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소위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고양이 상자의 뚜껑을 여는 행위, 양자동전을 던지는 행위, 측정을 하는 행위 자체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합니다. 측정 전에는 아무 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선물상자의 포장을 뜯기 전까지는 선물상자 안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포장을 뜯는 행위가 선물상자 안의 선물이 무엇인지 정해진다는 것이니까 무척 황당한 이야기가 됩니다.
요즘 항간에 퍼져 있는 슈뢰딩거 고양이 이야기가 바로 이 코펜하겐 해석의 당혹스런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것을 믿기로 한다고 해도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닙니다. 여러 해석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고, 가령 서울해석과 '다른' 해석일 뿐입니다. 여기에서는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고, 어떤 해석이 더 그럴듯하고 더 안 이상한가 하는 논쟁이 됩니다.
여러 세계 해석이라 부르는 접근에서는 동전을 던질 때마다 세계가 두 배 네 배 여덟 배로 계속 끊임없이 생겨난다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결풀림 해석에서는 가령 고양이 털이 너무 많아서 그걸 고려하면 아주 짧은 시간에 양자간섭항이 사라져 버리게끔 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참고로 위키피디어 Schrödinger's cat에는 적어도 일곱 가지의 해석이 나옵니다. 저는 이 일곱 가지 해석이 모두 한계가 있고, 이와는 다른 '서울 해석'이 제대로 상황을 보고 있다고 믿습니다.
서울해석의 핵심은 아래와 같은 [공리 4]에 있습니다.
먼저 양자동전을 던질 때 앞면이 되는지 뒷면이 되는지 직접 볼 수 없다고 하고, 그 대신 양자동전이 앞면으로 되면 파란색 발광다이오드가 켜지는 장치가 있다고 해 보죠. 이것을 흔히 '측정장치'라고 하는데,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34-236쪽에서는 이를 "사건유발 능력을 지닌 외부 물체"라고 길게 부릅니다. 짧은 이름은 "변별체"입니다. 영어로 discerner라 이름붙였습니다.
양자 동전 던지기를 [공리 4]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양자 동전의 상태함수는
$$\psi = \frac{3}{5} \phi_1 + \frac{4}{5} \phi_2$$
입니다.
이 양자동전에 앞에서 말한 파란색 발광다이오드가 달린 장치를 붙여 둡니다. 양자동전의 앞날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가 됩니다.
(1) 장치에 파란 불이 들어오면(확률 0.36), 양자동전의 새로운 상태는 $\psi'=\phi_1$로 전환되거나
(2) 아니면 장치에 파란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확률 0.64), 양자동전의 상태는 $\psi''=\phi_2$로 전환된다.
만일 (1)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할 때, 문득 궁금증이 생겨서 그 파란색 다이오드 장치를 다시 그 양자동전에 붙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미 양자동전은 앞면이 되었으므로, 그 장치를 다시 붙이기까지 다른 변화를 주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또 파란 불이 들어올 겁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될 확률이 1입니다. '틀림없이'라는 단어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이 상황은 [공리4]와 충돌하지 않을까요? 예, 당연히 충돌하지 않습니다. 이 새로운 상태는
$$\psi' =1\cdot \phi_1 + 0\cdot \phi_2$$
에 해당하기 때문에, 앞면이 나올 확률이 1, 뒷면이 나올 확률이 0입니다.
이 대목에서 질문이 다시 나옵니다. 양자간섭항은 어떻게 된 건가요? 서울해석의 대답은 다소 당혹스럽습니다. 그 문제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위에서 양자간섭항이 나오게 된 이유는 실상 측정 과정도 양자역학의 수학적 틀 안에서 풀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약간 왜곡해서 말하면, [공리 1], [공리 2], [공리3]만으로 측정 과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공리 4]를 새로 추가한다는 말의 의미는, 그 앞의 세 공리만으로는 측정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34쪽 맨 위에
라고 쓴 이유는 측정 과정(관측)을 앞의 세 공리만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 해석의 대답이 당혹스럽다고 쓴 이유는 네 번째 공리 없이 앞의 것만으로 어떻게든 해 보려고 여러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에게 "어차피 그렇게 해도 소용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이자면, 제가 물리학과에서 이 주제로 콜로퀴엄이나 강연이나 발표를 할 때 물리학자들이 대체로 그런 실망감을 표시합니다. "그럼 서울 해석은 양자역학의 수학적 형식체계가 이 모든 상황을 다 말해 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건가요?"라 묻곤 합니다. 제 대답은 "맞습니다. 물리학 계산이 모든 것을 해 줄 수는 없습니다. 이 네 번째 공리가 별도로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인간 인식의 한계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한계'를 맞닥뜨리는 듯이 보인다는 건 곧 이미 최대한까지 도달해 있다는 뉘앙스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이해하기에 바로 이 대목에 장회익 선생님의 새로운 자연철학이 기반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네 번째 공리가 추가로 별도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 즉 물리학의 계산만으로는 안 된다는 발견이 다른 대다수 보통의 물리학자들이 추구하지 않았던 길로 안내해 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양자동전 이야기는 너무 단순화시킨 것인데, 이제 남은 <해석과 성찰>에서는 두 틈새 실험(이중 슬릿 실험)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 마흐-첸더 간섭계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상호작용이 없는 측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해석과 성찰>에 대한 글도 곧 올리도록 해 보겠습니다.
표준적인 양자역학 공리 대신 장회익 선생님이 제안하는 새로운 공리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리1 : 상태함수와 위치의 기대값
공리2 : 푸리에 변환의 맞공간으로 정의된 운동량과 에너지
공리3 :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대응
사실 이 세 공리만으로 양자역학의 계산은 대부분 해결됩니다. 어차피 관심 있는 것은 수식을 풀어서 특정 물리량(주로 에너지와 운동량)의 값을 알아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슈뢰딩거 방정식도 따로 공리 중 하나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위의 세 공리에서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양자역학이 왜 그토록 자연철학의 역사에서 근원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공리 1에서 위치의 값이 실수값을 갖는 함수가 아니라 상태함수로부터 주어지는 확률적 서술, 즉 기대값으로 주어진다고 했지만, 확률 이론을 써야 한다는 것이 신기한 일은 아닙니다.
이 문제가 불거진 것은 소위 '측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상황에서입니다.
물리량의 값을 알려면 측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양자역학 이전까지 측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다소 과도한 믿음이 깔려 있었습니다.
포장된 선물상자 안에 있는 선물은 내가 포장을 뜯지 않아도 이미 무엇인지 확정되어 있습니다. 포장을 뜯는 동안 상자 속의 물건이 바뀌는 일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측정은 대상의 물리량의 값을 신뢰성 있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덧붙이면, 측정값의 정밀도는 얼마나 좋은 측정장치를 갖다 대는가의 문제이고, (비용과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겠지만) 원하는 정밀도만큼 측정하는 것도 문제가 없습니다. 또 일을 간편하게 하기 위해 두 물리량의 값을 동시에 측정하는 것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이 세 가지가 다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일이 복잡해질 터이므로 우선 이 세 문제 중 뒤의 두 가지는 나중으로 제껴놓겠습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31-234쪽에 있는 내용이 바로 이 문제를 직접 다룹니다. 여기에서는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염두에 두고 소위 '양자 동전'을 던지는 상황을 설정합니다.
양자 동전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붙었지만, 그냥 동전 던지기와 비슷합니다. 양자 동전을 던지면 앞면 아니면 뒷면이 나옵니다. 보통은 그 확률이 똑같을 터라 둘 다 1/2이라고 하겠지만, 편리를 위해 동전의 뒷면이 약간 무거워서 뒷면이 나올 확률이 36% (즉 0.36)이고, 앞면이 나올 확률이 64% (즉 0.64)가 되게 만들었다고 해 보죠.
[공리 1]에서 상태가 상태함수 $\psi$로 서술될 때, 위치의 기대값이
$$\langle x \rangle = \int \psi^* x \psi dx$$
로 주어진다고 했는데, 만일 나올 수 있는 $x$의 값이 둘 중 하나(앞면 아니면 뒷면)라면, 상태함수를 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습니다.
$$\psi = c_1 \phi_1 + c_2 \phi_2$$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c_1$, $c_2$를 실수로 택하기로 합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33쪽에는
$$\Psi = \sum_{i} c_i\phi_i $$
로 썼는데, 여기에서는 $\phi_1$과 $\phi_2$의 두 항만 생각하자는 겁니다.)
상태함수는 절대값 제곱하면 확률이 되는 함수이므로
$$\begin{align}\langle x \rangle =& \int \psi^* x \psi dx\\=&|c_1|^2 \int {\phi_1}^* x \phi_1 dx + |c_2|^2 \int {\phi_2}^* x \phi_2 dx \\&+ c_1 c_2 \int x \left({\phi_1}^* \phi_2 + {\phi_2}^* \phi_1 \right) dx\end{align}$$
가 됩니다.
그런데 확률이론에서 기대값은
$$\langle x \rangle = x_1 p_1 + x_2 p_2$$
으로 주어져야 합니다.
이 두 식을 비교하기 위해 위의 식을 다시 써 보겠습니다.
$$\langle x \rangle =\int {\phi_1}^* x \phi_1 dx |c_1|^2 + \int {\phi_2}^* x \phi_2 dx |c_2|^2 + A$$
이 식으로부터 계수 $c_1$, $c_2$의 제곱이 확률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세 번째 항 $A$를 신경쓰지 않기로 해야 합니다.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합니다.
따라서 앞에서 도입한 양자동전의 상태함수는
$$\psi = \frac{3}{5} \phi_1 + \frac{4}{5} \phi_2$$
라 쓸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phi_1$는 양자동전을 던질 때 앞면이 나오는 것에 해당하는 상태함수이고, 마찬가지로 $\phi_2$는 양자동전을 던질 때 뒷면이 나오는 것에 해당하는 상태함수입니다.
앞에서 36%와 64%라고 확률값의 숫자를 선택한 것은 이렇게 3/5과 4/5를 계수로 맞추려고 그런 겁니다.
$$ \left(\frac{3}{5}\right)^2 = 0.36 , \quad\left(\frac{4}{5}\right)^2 = 0.46$$
자, 이제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에서 살고 죽는 확률이 1/2이라는 것 자체는 이상하게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주사위 놀이나 고전 동전을 던질 때와 마찬가지로 확률이 등장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조금 전에 일단 신경쓰지 말자고 한 세 번째 항
$$ A = c_1 c_2 \int x \left({\phi_1}^* \phi_2 + {\phi_2}^* \phi_1 \right) dx$$
입니다. 이 귀찮은 녀석만 없다면, 양자역학에서 확률을 말하는 것이 전혀 거리낌 없는 일이 되고, 양자역학이 자연철학의 역사에서 무슨 근본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세 번째 항(흔히 '양자간섭항'이라 부릅니다)을 없애기 위해 온갖 다양한 시도가 있었고, 그에 따라 무슨무슨 해석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소위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고양이 상자의 뚜껑을 여는 행위, 양자동전을 던지는 행위, 측정을 하는 행위 자체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합니다. 측정 전에는 아무 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선물상자의 포장을 뜯기 전까지는 선물상자 안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포장을 뜯는 행위가 선물상자 안의 선물이 무엇인지 정해진다는 것이니까 무척 황당한 이야기가 됩니다.
요즘 항간에 퍼져 있는 슈뢰딩거 고양이 이야기가 바로 이 코펜하겐 해석의 당혹스런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것을 믿기로 한다고 해도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닙니다. 여러 해석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고, 가령 서울해석과 '다른' 해석일 뿐입니다. 여기에서는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고, 어떤 해석이 더 그럴듯하고 더 안 이상한가 하는 논쟁이 됩니다.
여러 세계 해석이라 부르는 접근에서는 동전을 던질 때마다 세계가 두 배 네 배 여덟 배로 계속 끊임없이 생겨난다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결풀림 해석에서는 가령 고양이 털이 너무 많아서 그걸 고려하면 아주 짧은 시간에 양자간섭항이 사라져 버리게끔 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참고로 위키피디어 Schrödinger's cat에는 적어도 일곱 가지의 해석이 나옵니다. 저는 이 일곱 가지 해석이 모두 한계가 있고, 이와는 다른 '서울 해석'이 제대로 상황을 보고 있다고 믿습니다.
서울해석의 핵심은 아래와 같은 [공리 4]에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자동전 이야기를 설명하면 이렇게 됩니다.공리4: '측정'에서 상태의 변화
대상이 상태
$$\Psi = \sum_{i} c_i \phi_i$$
에 있을 때, 지점 $j$에 해당하는 위치에 '측정장치'를 놓아 대상과 접촉시키면
(1) 확률 $|c_j |^2$으로 '측정장치'에 흔적을 남기고 대상은 $$\Psi'=\phi_j$$로 전환되거나
(2) 확률 $1-|c_j |^2$으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phi_j$가 빠진 새로운 상태 $$\Psi'' = \sum_{i} c'_i \phi_i$$로 전환된다.
먼저 양자동전을 던질 때 앞면이 되는지 뒷면이 되는지 직접 볼 수 없다고 하고, 그 대신 양자동전이 앞면으로 되면 파란색 발광다이오드가 켜지는 장치가 있다고 해 보죠. 이것을 흔히 '측정장치'라고 하는데,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34-236쪽에서는 이를 "사건유발 능력을 지닌 외부 물체"라고 길게 부릅니다. 짧은 이름은 "변별체"입니다. 영어로 discerner라 이름붙였습니다.
양자 동전 던지기를 [공리 4]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양자 동전의 상태함수는
$$\psi = \frac{3}{5} \phi_1 + \frac{4}{5} \phi_2$$
입니다.
이 양자동전에 앞에서 말한 파란색 발광다이오드가 달린 장치를 붙여 둡니다. 양자동전의 앞날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가 됩니다.
(1) 장치에 파란 불이 들어오면(확률 0.36), 양자동전의 새로운 상태는 $\psi'=\phi_1$로 전환되거나
(2) 아니면 장치에 파란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확률 0.64), 양자동전의 상태는 $\psi''=\phi_2$로 전환된다.
만일 (1)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할 때, 문득 궁금증이 생겨서 그 파란색 다이오드 장치를 다시 그 양자동전에 붙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미 양자동전은 앞면이 되었으므로, 그 장치를 다시 붙이기까지 다른 변화를 주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또 파란 불이 들어올 겁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될 확률이 1입니다. '틀림없이'라는 단어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이 상황은 [공리4]와 충돌하지 않을까요? 예, 당연히 충돌하지 않습니다. 이 새로운 상태는
$$\psi' =1\cdot \phi_1 + 0\cdot \phi_2$$
에 해당하기 때문에, 앞면이 나올 확률이 1, 뒷면이 나올 확률이 0입니다.
이 대목에서 질문이 다시 나옵니다. 양자간섭항은 어떻게 된 건가요? 서울해석의 대답은 다소 당혹스럽습니다. 그 문제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위에서 양자간섭항이 나오게 된 이유는 실상 측정 과정도 양자역학의 수학적 틀 안에서 풀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약간 왜곡해서 말하면, [공리 1], [공리 2], [공리3]만으로 측정 과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공리 4]를 새로 추가한다는 말의 의미는, 그 앞의 세 공리만으로는 측정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34쪽 맨 위에
"이처럼 알려진 상태 $\Psi$에 대한 관측과 관련해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정리해 보았지만, 이것만으로는 관측이 어떻게 가능하고 관측 이후 상태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관측,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대상과 외부 존재물 사이에 발생할 '사건'에 관련해 부가적인 공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라고 쓴 이유는 측정 과정(관측)을 앞의 세 공리만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 해석의 대답이 당혹스럽다고 쓴 이유는 네 번째 공리 없이 앞의 것만으로 어떻게든 해 보려고 여러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에게 "어차피 그렇게 해도 소용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이자면, 제가 물리학과에서 이 주제로 콜로퀴엄이나 강연이나 발표를 할 때 물리학자들이 대체로 그런 실망감을 표시합니다. "그럼 서울 해석은 양자역학의 수학적 형식체계가 이 모든 상황을 다 말해 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건가요?"라 묻곤 합니다. 제 대답은 "맞습니다. 물리학 계산이 모든 것을 해 줄 수는 없습니다. 이 네 번째 공리가 별도로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인간 인식의 한계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한계'를 맞닥뜨리는 듯이 보인다는 건 곧 이미 최대한까지 도달해 있다는 뉘앙스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이해하기에 바로 이 대목에 장회익 선생님의 새로운 자연철학이 기반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네 번째 공리가 추가로 별도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 즉 물리학의 계산만으로는 안 된다는 발견이 다른 대다수 보통의 물리학자들이 추구하지 않았던 길로 안내해 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양자동전 이야기는 너무 단순화시킨 것인데, 이제 남은 <해석과 성찰>에서는 두 틈새 실험(이중 슬릿 실험)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 마흐-첸더 간섭계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상호작용이 없는 측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해석과 성찰>에 대한 글도 곧 올리도록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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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정오표 (10)
시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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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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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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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처럼 | 2022.12.22 | 3 | 8701 |
공지사항 |
[공지] 게시판 카테고리 설정에 대해서 (4)
시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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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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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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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처럼 | 2022.03.07 | 0 | 8477 |
공지사항 |
새 자연철학 세미나 보완 계획 (3)
시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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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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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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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처럼 | 2022.01.20 | 0 | 9013 |
공지사항 |
새 자연철학 세미나 - 안내
neomay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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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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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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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may33 | 2021.10.24 | 0 | 8911 |
626 |
<자연철학 강의> 서평 올립니다. (3)
박 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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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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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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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용국 | 2024.01.29 | 1 | 256 |
625 |
과학적 객관성에는 역사가 있다
자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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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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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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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랑 | 2023.09.05 | 3 | 318 |
624 |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 일종의 믿음의 체계 (2)
자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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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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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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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랑 | 2023.09.05 | 1 | 599 |
623 |
물리학 이론의 공리적 구성
자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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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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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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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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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랑 | 2023.08.30 | 3 | 516 |
622 |
상대성이론의 형식체계와 그에 대한 해석의 문제 (6)
자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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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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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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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랑 | 2023.08.29 | 3 | 815 |
621 |
양자역학으로 웃어 보아요 (1)
시지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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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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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스 | 2023.08.28 | 0 | 664 |
620 |
[양자역학 강독 모임] 소감입니다. (1)
neomay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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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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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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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may33 | 2023.08.28 | 2 | 668 |
619 |
양자 얽힘과 태극도(음양도) 그리고 '양자 음양' (1)
자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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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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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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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랑 | 2023.08.25 | 3 | 1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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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
자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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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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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랑 | 2023.08.24 | 2 | 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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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9 강독 마무리 토론회 발표용 (2)
시지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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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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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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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스 | 2023.08.19 | 2 | 569 |
어렵고 미묘한 이 문제를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자연사랑님의 고뇌가 그간 보이지 않던 오타로 미루어 짐작 가능합니다.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대상과 외부 존재물 사이에 발생할 '사건'에 "과년"해 부가적인 공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양자간섭항을 없애기 위한 여러 해석들, 그리고 추가 공리. 왠지 수학의 평행선 공준의 증명 시도와 비유클리드 기하의 탄생이나 초기 집합론과 모순들과 집합론의 공리화가 연상됩니다. 앞으로의 발전의 단초가 이 부분에 숨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짐작도 드네요. 몇 번이고 찬찬히 잘 읽어 보아야 겠습니다.
제 부족한 글을 좋게 평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오타 지적도 무척 고맙습니다. 장회익 선생님 책을 옆에 놓고 그냥 타이핑한 거였는데, 너무 서둘렀나 봅니다 ^^
시지프스님의 통찰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공리4]의 의미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다섯 번째 공리, 즉 평행선 공리를 바꾸었던 역사적 경험이나 집합에 대한 페아노 공리가 체르멜로-프렝켈 공리로 확장되다가 '선택 공리'를 포함시킬 건가 말 건가 하고 심각하게 논쟁했던 역사적 경험에 맞닿아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약간 보충이 필요해 보입니다.
위의 글에서 양자 동전과 파란색 등이 붙어 있는 장치 이야기는 순전히 [공리 4]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든 것이었는데, 마침 상태를
$$\psi = \frac{3}{5}\phi_1 + \frac{4}{5}\phi_2$$
와 같이 양자택일로 하는 바람에 직관적인 이해가 확 오지는 않는 느낌입니다.
양자동전 대신 양자 주사위를 생각해 봐도 좋겠습니다. 그 경우 양자 주사위를 던지기 전의 상태는
$$\psi = \frac{1}{\sqrt{6}}\phi_1+\frac{1}{\sqrt{6}}\phi_2+\frac{1}{\sqrt{6}}\phi_3 + \cdots +\frac{1}{\sqrt{6}}\phi_6$$
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phi_i$ ($i=1,\cdots, 6$)는 각각 주사위의 "1", "2" 등이 나오는 것에 대응하는 상태입니다.
이번에는 파란색 등이 달린 장치를 주사위 "1"이 나올 때에만 불이 켜지도록 주사위에 붙여 놓습니다.
주사위를 던져 장치에 파란 불이 들어오면, 이제 주사위의 상태는
$$\psi' = \phi_1$$
로 전환됩니다. 만일 파란 불이 안 들어오면, 이제 주사위의 상태는
$$\psi'' = \frac{1}{\sqrt{5}}\phi_2+\frac{1}{\sqrt{5}}\phi_3 + \cdots +\frac{1}{\sqrt{5}}\phi_6$$
로 전환됩니다.
여기에서 뒤의 이야기가 좀 특이합니다. 이것을 '빈 사건 null-event'으로 규정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부과한 것은 장회익 선생님의 독보적인 기여입니다.
물리학자들 중에도 소수이긴 해도 장회익 선생님처럼 자연철학의 길을 추구하고 옹호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대표적인 사람이겠지만, 의외로 적지 않은 물리학자들이 철학적 사유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철학자 중에서 물리학에 발 하나를 담그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종종 발견됩니다.
한 예로 영국 UCL 명예교수인 니콜라스 맥스웰을 들 수 있습니다.
2017년에 나온 맥스웰의 책 제목이 In Praise of Natural Philosophy: A Revolution for Thought and Life입니다. 꽤 오래 전부터 "From Science to Natural Philosophy"를 주장했죠. 양자역학의 해석을 비롯하여, 생명의 문제, 인식론의 문제, 과학지식의 본성 문제 등에서 13권의 저서를 썼고 많은 논문을 쓴 철학자입니다.)
확 단순하게 생각하면,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주사위의 각 면이 나올 확률은, 완벽한 주사위라면 1/6 입니다. 이걸 가지고 당장 이번엔 어떤 면이 나올지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즉, 주사위에 대한 확률을 알지만 당장의 결과는, ... 던져봐야 압니다. 이런 걸, 1/6 씩 퍼져있던 확률의 그래프가 한 값으로 붕괴했다고 표현은 할 수 있겠죠. 또한 비록 이번은 2가 나왔지만, 확률은 여전히 1/6 테니까, 그러면 저기 어디에선 다른 숫자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상상할 수는 있겠죠. (큰 수의 법칙과 관련해서 그런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서울 해석은 실제 측정이란 과정이 꼭 필요하고 그걸 저렇게 표현할 수 있다. 전자가 어디 있냐구요? 재 보면 되지요. 그전엔 몰라요. 라는 아주 상식적인 얘기같고, 아주 잘 공감이 됩니다. (타율이 얼마인 타자가 다음 타석에서 안타를 칠까요? 봐야 알지요, 미리는 몰라요.)
이 글과 온라인 세미나에서 동전 던지기가 고전역학적으로 보면 확률적인 과정이 아니라 결정론적 과정이라는 언급할 적이 있습니다. 오늘 실제로 동전 던지기를 완전히 결정론적으로 분석한 논문을 만나서 여기에 링크를 올려 둡니다.
Dynamical Bias in the Coin Toss
흔히 말하는 '타짜'라면 동전 던지기이든 주사위 던지기이든 화투 놀이이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교묘하게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확률적이거나 랜덤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 오면 상황이 아주 오묘하게 달라져 버린다는 게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