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성 원리'를 유도한다는 말의 의미
장회익 선생님의 새 자연철학에서는 양자역학의 공리계를, 푸리에 변환을 근간으로 하여 새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양자역학의 공리적 구성이라는 문제는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특히 최근 10여년 사이에 크게 관심을 모으고 있기도 합니다.
장회익 선생님과 최무영 선생님의 공저논문에서도 이와 관련된 참고문헌들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25] Cordero A. Philosophers look at quantum mechanics. Cham: Springer; 2019.
[26] Held C. Axiomatic quantum mechanics and completeness. Found Phys 2008; 38:707–32.
[27] Fivel DI. Derivation of the rules of quantum mechanics from information theoretic axioms. Found Phys 2012; 42:291–318.
[28] Cassinelli G, Lahti P. An axiomatic basis for quantum mechanics. Found Phys 2016; 46:1341–73.
[29] Hardy L. Quantum theory from five reasonable axioms. 2001, arXiv:quantph/0101012.
[30] Chiribella G, D’Ariano GM, Perinotti P. Informational derivation of quantum theory. Phys Rev A 2011; 84:012311.
[31] Darrigol O. ‘Shut up and contemplate!’: Lucien Hardy’s reasonable axioms for quantum theory. Stud. Hist. Philos. Sci. B Stud. Hist. Philos. Modern Phys. 2015; 52:328–42.
어제 세미나에서 이재일 선생님께서 이중원 선생님이 슬라이드에 정리해 놓으신 다섯 개의 표준적인(교과서적인) 공리가 조금 다르다고 언급하셨지만, 실상 그 다섯 개의 공리는 지난 30여년 간 다양한 노력을 통해 이미 확립된 것이고 양자역학 교과서에서도 표준적으로 다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공리적 구성(axiomatic construction) 또는 공리계적 구성(construction from the axiomatic system)은 기존에 확립된 공리를 더 근본적인 것에서 만들어보거나 기존의 공리보다 더 명료하고 간단한 공리를 찾아내려는 작업입니다.
이른바 현장물리학자들, 즉 활발하게 연구의 최전선에서 물리학의 이론과 실험을 탐구하시는 분들은 대개 이러한 공리적 구성에 별로 관심을 두시지 않는 편이지만, 자연철학의 맥락에서는 이 문제가 매우 긴요하고 핵심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최근 공저논문은 존재론적 재구성을 통해 기존의 양자역학 관련 자연철학의 담론에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양자 조건', '불확정성 원리', '입자-파동 이중성', '측정문제의 상태벡터 붕괴' 등의 쟁점을 제거하거나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에 촛점을 두고 있습니다.
"Through the reconstruction of the ontology underlying classical mechanics, we make it clear that there are points of weakness in this ontology, liable to revision. The revisions addressed above enable us to remove or explain such controversial issues usually associated with the ‘‘quantum condition’’, ‘‘uncertainty principle’’, ‘‘particle–wave duality’’, and ‘‘state vector collapse’’ (in the measurement problem)." (Hwe Ik Zhang, M.Y. Choi (2022). Ontological Revision and Quantum Mechanics. Results in Physics 33 (2022) 105159 https://doi.org/10.1016/j.rinp.2021.105159 p. 2)
서둘러 결론을 적는다면, 이 새로운 존재론적 재구성을 통해, 기존의 '입자-파동 이중성' 개념은 잘못된 것이며, '측정 문제의 상태벡터 붕괴'도 상태함수의 역할과 의미를 잘못 이해해서 빚어진 사이비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하이젠베르크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른바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역학의 형식체계(힐버트 공간 형식화뿐 아니라 푸리에 변환에 기반을 둔 형식화)로부터 유도되는 부등식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여기에서 '유도'라는 말은 말 그대로 수학적 유도입니다. 이재일 선생님께서는 그 유도과정에서 결국 힐버트 공간의 연산자 개념이 스며들어가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유도가 아니라고 비판하셨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 비판은 옳지 않습니다.
어제 세미나에서 잠시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1927년 불확정성 원리를 처음 제안하기에 앞서서 1925년 노버트 위너가 괴팅겐 대학의 초청강연에서 일반조화해석를 다루면서 이 부등식을 처음 이야기했습니다. 1933년 영국의 수학자 고드프리 하디가 푸리에 변환에서 이와 관련된 부등식을 엄밀하게 증명하여 발표했습니다. (Hardy, G. H. (1933). A theorem concerning Fourier transforms, J. London Math. Soc. 8, 227-231. https://doi.org/10.1112/jlms/s1-8.3.227) 당연하게도 하디의 증명에는 양자역학에 대한 언급도 힐버트 공간의 연산자 이야기도 없습니다.
제가 작년 초에 쓴 글 "푸리에 변환과 하이젠베르크-파울리-바일 부등식"과 "(**) 불확정성 '원리'를 증명/유도하기"를 참조할 수 있습니다. 특히 후자의 글은 장회익 선생님의 부록과 비슷하지만, 글 안에서 자기완결적으로 그 부등식을 증명하고 있고, 이재일 선생님의 우려처럼 '연산자'가 스며들어갈 길을 전혀 허용하지 않고 있어서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이젠베르크가 $\Delta x \Delta p \ge \hbar/2$라는 부등식을 하나의 원리로까지 끌어올려 주장한 것은 양자역학이 등장하기 전 기존의 상태 서술이 모두 $(x, p)$ 즉 특정 시각의 위치와 운동량으로 주어진다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위의 부등식이 성립한다면, 특정 시각의 상태 규정 자체가 확정되지 않기 때문에 고전역학의 서술은 근본적인 한계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상태서술은 위치와 운동량 대신 그냥 추상적인 수학적 함수로서 상태함수 $\Psi$로 하기로 새롭게 정하면, 하이젠베르크 부등식 또는 소위 '불확정성 원리'는 실질적 의미를 갖지 않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하이젠베르크 부등식의 가장 큰 역할은 고전역학에서처럼 상태를 위치와 운동량, 즉 $(x(t), p(t))$로 서술할 수 없음을 밝힌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이론이 막 시작할 무렵에 기존 이론이 적절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역할이어서, 일단 '과학혁명'이 더 진행되어 새로운 체제가 확립되고 나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는 역할입니다.
물론 입자물리학이나 이론물리학의 몇몇 접근에서 이 부등식과 유사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발견법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초끈이론이나 초대칭이 포함되는 입자물리학 이론에서 이런 것이 꽤 있고, 연구자들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때 아주 유용합니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 부등식은 양자역학의 공리적 구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1930년 시카고 대학 강연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처럼, 불확정성에 대한 이야기는 측정상의 교란 문제가 아닌데도, 항간에 퍼져 있는 "불확정성 원리" 이야기는 대개 그 측정교란이라는 옳지 않은 설명을 주축으로 합니다. 게다가 영어로 uncertainty(불확실성)로 잘못 번역되는 바람에 이 문제가 물리량의 존재적(ontic) 관계가 아니라 사람(인식주체)의 지식에 대한 인식적(epistemic) 관계인 것으로 크게 오해되어 널리 퍼졌습니다.
양자역학의 기초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불확실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이란 잘못된 용어 대신 '미결정성 관계식(indeterminacy relation)'이란 용어를 쓰는 것이 정착한 이유도 이와 관련됩니다.
공리계의 재구성에서 무엇을 더 근본적인 것으로 삼고 무엇을 유도된 것으로 볼 것인가, 또는 '유도'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 등은 새 자연철학에서 더 곱씹어볼만한 문제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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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양자역학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주제로 책 써 주세요. 게시판에 이미 써주신 글을 잘 엮고 정리만 해도 될 것 같기는 하지만요... ^^;)
고맙습니다. 급히 쓴 글이라 두서가 없는데 잘 읽었다고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런 책을 쓰긴 해야 할텐데(심지어는 출판사와 계약도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만), 저의 능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또 양자역학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고 말하려면, 결국 A라는 주장은 옳고 B라는 주장은 틀렸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리학이라면 옳고 그른 것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자연철학에서는 오로지 같고 다른 것만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실상 양자역학의 해석을 비롯하여 여러 자연철학적 사유에서 가령 코펜하겐 해석을 비판하긴 하지만 솔직히 그런 접근이 틀렸다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와 다른 새로운 견해를 제시할 따름입니다.
물론 그 새로운 견해, 특히 장회익 선생님의 새 자연철학의 전반적인 기조에 크게 공감하기 때문에 거기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자연철학을 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만, 그런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장회익 선생님이 제안하시는 새로운 자연철학의 내용을 더 곱씹고 더 보충하고 더 비판하고 더 다듬는 것이 제 깜냥에서 할 수 있는 제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확정성 원리가 공리라면? (라면 종류가 하나 늘었겠지요 ^^)
수학에선 정리와 정의가 왔다 갔다 하곤 합니다. 이 책에선 간단한 A 라는 정의 definition 에서 출발해서 복잡한 B 라는 정리 Theorem 를 얻습니다. 다른 책에선 복잡한 B 를 정의 definition 삼아 출발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간단한 A 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따름정리 corollary 정도로 취급하지요.
양자역학의 공리화에도 여러 방향이 있었을텐데, 그중에는 불확정성 원리를 공리에 넣고 만든 공리체계는 없었을까요? 지금의 공리체계에선 불확정성 원리가 미결정성 관계식이 된다면, 불확정성 원리가 공리에 들어간 공리체계에선 다른 중요한 뭔가가 정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혹시 보른의 규칙일까요? Born's rule 이것도 뜬금없이 등장하고, 불확정성 원리처럼 충격적이지요.)
또는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론에서 광속일정을 출발점으로 삼았듯이, 플랑크 상수를 출발점으로 삼는 그런 공리체계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 양자역학의 역사에서 플랑크 상수는 정말 중요한데, 자연철학 책의 공리에선 전면에 드러나지 않네요. k,w 에 플랑크 상수를 곱하면 p, E 를 얻는다고, 공리 2 끝에 괄호 안에 겨우 이름이 나올 뿐이지요.)
만약에 불확정성 원리가 공리에 들어갈 수도 있고, 그리고 플랑크 상수부터 출발하는 또 다른 공리체계도 가능하다면, (저는 저런 두 공리체계 모두 가능할 거라고 짐작만 할 뿐입니다) 보통 양자역학 교과서의 공리체계와는 무슨 장단점이 있는지, 그리고 자연철학 책의 공리 1~4 와는 어떤지, 이렇게 공리체계끼리의 비교를 얘기할 수 있겠지요.
(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과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이 모두 상태함수로 같은 의미를 지니지만, 계산의 편의성 때문에 한쪽만 쓰듯이, 가능한 공리체계지만, 이런 저런 장단점 때문에 하나로 귀결되었다 라고 짐작만 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