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 4에 대하여
공리 4에 대하여
1. 공리 4의 출발점
상태함수를 공간의 각 점마다의 함수값으로 분해합니다. 마치 격자를 놓고 각 칸 별로 따로 이름을 짓고 그 칸의 값만을 갖게 합니다. 나머지 칸에서는 죄다 0으로 하는 것이지요. 각 칸의 함수를 모두 합치면, 원래 함수가 나오게 됩니다. 말은 길고, 뭔가 복잡해 보이지만, 각 점 별로 값이 있는지 관측해야 하기에, 나머지를 죄다 0으로 놓고 싶기에, 이런 과정을 거쳐서 논의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칸의 값이 얼마라고 해도, 그 값이 늘 관측되지는 않기에 (양자역학 이니까요), 관측될 확률이 따라 붙습니다. 확률이니까 전체는 1 이어야 하지요. 이걸 표시한 것이 (4-40) 과 (4-39) 가 됩니다.
2. 공리 4의 말 이해.
공리이니까, 정교하고, 엄밀해야 하니까, 표현이 어렵습니다.
그냥 대략 표현해 본다면,
상태함수를 각 점 별로, 함수값과 관측될 확률을 묶어서, 낱낱히 분해한 것을 모두 모은 것으로 생각해 봅시다. (앞에서 한 것입니다)
과연 저 상태함수가 우리가 관심이 있는 곳(점)에서 관측 (검출, 측정, 확인, 어떤 표현이라도 좋습니다) 이 될까요?
2가지 경우가 있을 겁니다. 관측이 되던지, 안되던지. 너무너무 당연하지요 !
좀 더 살펴보면, 관측이 된다면, 그건 관측될 확률에 들어간 것이고, 관측이 안된다면, 그건 관측 안될 확률 (즉, 1- 관측될 확률 이지요) 에 해당하게 됩니다.
(1) 관측될 때 - 관측될 확률에 해당한 것이고, 관측됐다는 의미는 그 점에서만 값을 가진다는 것이니, 그 점의 함수값만 남게 됩니다.
(2) 관측이 안된다면 - 관측 안될 확률에 해당한 것이고, 그 점의 함수값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니, 다른 점만 모아서 상태함수를 만들면 됩니다. 이미 관측이 안되었으니, 그 점의 관측확률은 0 이 되었고, 다른 점의 확률값은 그 만큼 (물론 다들 쪼개서 나누어 갖겠지요) 올라가게 됩니다.
이런 긴 얘기가 공리 4 입니다 !
관측이란 무엇인가? 상태함수가 변별체와 만나서 '사건' 이 일어나는 것이다. 상태함수를 통한 대상 존재자의 서술이란 그 대상이 지닌 '사건야기 성향' 만을 말해준다. 변별체란 '사건유발 능력'을 가진 외부 존재자이다. ... 등등 어려운 용어와 그 못지 않게 어려운 설명이 이어집니다.
(어렵긴 하지만 몇 번 듣고, 읽으면, 그러려니, 그런가 보다, 이름과 표현이 그렇다고 하던데, ... 하게 됩니다. 음, 이게 이해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
3. 의문점.
다른 공리 체계에선 4-1 까지만 있다고 하네요. (세미나에서 들은 풍월입니다) 4-2 가 관측 안될 때, 빈-사건과 그로 인한 상태함수의 변화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확률의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처음 생긴 의문은, 빈-사건과 아예 사건 없음이 구별 안되는 것은 아닌가 였습니다.
관측을 시도했다가 관측이 안되면 그 점을 뺀 걸로 상태함수가 변합니다. 그런데 아예 관측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관측하지 않으면, 관측 이전의 상태, 즉 그 점에서의 확률과 함수값이 그대로 살아 있게 됩니다. 관측을 시도 해야만, 그 결과 관측되던 안되던, 상태함수가 변하지, 관측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변하지 않아야 할 것 같네요.
공리 4의 전제, 출발점을 잘 이해 못해서 이런 혼동을 저는 했었습니다. 이번이 3번째 세미나 인데도, 읽을 때마다 새롭네요 ㅠㅠ
다음 생긴 의문은, 빈-사건으로 없애버린 확률 만큼 다른 곳에 나누어 준다는 것입니다.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더 생각해 보면, 묘한 부분이 있습니다. 동전을 던지거나, 주사위를 던지면, 그 결과가 다음의 실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안 나왔다고, 다음에 뒷면이 나올 확률이 늘어난다고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빈-사건으로 변화된 상태함수는, 다른 확률이 늘어납니다 !!
빈-사건이라도, 그래서 변화된 상태함수라도, 확률은 그대로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되면 변화된 상태함수의 총 확률값은 1보다 작게 됩니다 ! ) 아니면, 빈-사건이라도, 상태함수가 변하지 않고, 관측 안될 확률에 들었네 라고 말로 설명하던가요.
이렇게 빈-사건의 다른 쪽의 확률이 올라간다는 점이 '이중 슬릿 실험에서 한쪽에 변별체를 붙인 경우'를 '해석'할 때와 '상호작용-결여' 실험을 '해석' 할 때 이용됩니다.
이중 슬릿의 경우, 변별체에 검출되지 않으면, 이쪽 슬릿에선 빈-사건이고, 그래서 다른쪽 슬릿으로 통과한 것이며, 그래서 저쪽으로 한 줄이 생긴 것이다...
'상호작용-결여' 실험의 경우, 폭탄이 안 터졌다면, 여기서는 빈-사건이고, 저쪽 경로로만 빛이 갔다는 것이며, 그래서 검출기 모두에서 빛이 검출되게 된다.
과연 확률을 더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그냥 두는 것이 맞을까요?
위의 실험들은 같은 실험을 두고 해석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상황의 실험이라고 생각듭니다. 그러니까 실험으로서 어떤 상황이 맞는지 판별할 수 있습니다. !!
(바로 밑의 3/3 (4장범위) Q, !, ?? 에 상세한 내용이 있습니다)
상호작용-결여는, 논문 필자의 주장과 이 책의 풀이를 비교해 보면, 검출기에 도달하는 빛의 세기가 2:1 이 됩니다.
이중 슬릿의 경우도, 보통의 설명에서는 두 슬릿을 다 통과한다고 가정하는 듯 하니까, 슬릿 하나씩만 통과해서 두 줄을 만들었다는 이 책의 설명과는 역시 빛의 세기, 통과량이 2:1 이 될 것입니다. 스크린에 생기는 점의 갯수도 2:1 이 되겠지요. 원래 이중 슬릿의 경우와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만약 공리 4-2 에서 확률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건 보통의 공리로 되돌아 가는 것일 듯 합니다. 굳이 4-2가 필요없는 경우라는 것이겠지요. )
그리고, 변별체를 책에서는 0,1 / on,off 만 있는 것으로 가정했지만, 변별체에도 0~1까지 확률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사건의 발생은 상태함수의 확률과 변별체의 검출 확률이 겹칠 때만 가능하게 되고, 빈-사건의 경우의 수가 많아지겠지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뭔가 더 많이 복잡해 질 것 같네요...
어쨋든 공리 4는 어렵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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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에 중요한 쟁점들을 잘 정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틈 나는 대로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는데, 당장 꺼야 할 발등의 불이 많아서 쉽지가 않습니다. 하여튼 시간을 찾아보겠습니다.
우선 급한 대로 두 번째 의문에 대해 간단하게 제 의견을 달아보겠습니다.
확률은 대략 말해서 "가능한 사건의 수"와 "관심을 두는 사건의 수"의 비로 정의됩니다. 이 정의는 엄밀하지 못해서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가장 직관적인 것은 동전 던지기와 같은 시행을 반복하여 수를 세는 것입니다. 독일의 수학자 리하르트 폰미제스가 이런 개념을 정리했는데, 흔히 ‘빈도주의’라 부릅니다. 여하간 확률을 계산할 때에는 똑같은 시행을 여러 번 반복하거나 똑같이 준비된 대상을 여러 개 써서 한꺼번에 시행을 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지금의 시행과 나중의 시행이 독립적이라고 놓아야 계산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속된 여러 시행들이 모두 별개라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은 확률 계산의 상황과 많이 다릅니다. 이것은 확률이론에서 조건부 확률이라 부르는 것과 연관됩니다.
쉬운 예로 범죄현장에서 범인을 추리하는 셜록 홈즈의 사고과정을 생각해 봅니다. 우선 선택지 $A_1$, $A_2$, $\cdots$, $A_n$이 있다고 해 보죠. 선택지라고 하면 아무래도 추상적이니까, 이 목록을 용의자들의 알리바이 같은 것이라고 해도 됩니다. 이 선택지가 모두 같지는 않을 터이므로 $$A_1, A_2, \cdots, A_n$$ $$p_1, p_2, \cdots, p_n$$과 같이 각 선택지(용의자의 알리바이)에 확률을 대응시킬 수 있습니다.
그 중 $A_k$가 맞는지 확인해 봅니다. 만일 $A_k$가 맞다면 상황은 끝나버리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단 그 선택지(용의자)는 제외하고 나머지로 새로 확률을 배당합니다. $$A_1, A_2, \cdots, A_n$$ $$p'_1, p'_2, \cdots, p'_n$$ 이 목록에서 $A_k$는 빠져 있습니다. 이 새로운 상황에서 확률들의 분포는 당연히 달라집니다.
조건부 확률은 $P(B|A_k)$라는 기호로 나타내는데, 사건 $A_k$가 일어났다고 할 때 그 다음으로 사건 $B$가 일어날 확률이라는 의미입니다. 또 사건 $A_k$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할 때 사건 $B$가 일어날 확률을 $P(B|\neg A_k)$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neg$는 논리적 부정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P(B)\not = P(B|A_k)$이며 또 $P(B) \not = P(B|\neg A_k)$입니다. 즉 조건부 확률의 이전 단계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 아닌가에 따라 나중 단계에서의 확률 분포는 달라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첫 번째 의문에 대해 짧게 언급하자면, 장회익 선생님은 '측정'이나 '관측'이란 용어를 굳이 피하고 대신 대상과 변별자가 '만난다' 즉 '조우한다'는 개념을 쓰고 있습니다. 여하간 그런 조우가 없다면 (또는 코펜하겐 해석 등에서 말하는 것처럼 측정이나 관측이 없다면) 당연히 확률분포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확률분포가 달라지는 것은 대상과 변별체가 만날 때입니다. '빈-사건'이란 개념은 대상과 변별체가 만나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아예 애초에 만남이 없다면 '빈-사건'도 없습니다. 만남이 있은 뒤에 '사건'이나 '빈-사건'이 있는 것입니다.
위의 탐정 추리에서 용의자 한 명을 제외하는 것이 곧 '빈-사건'입니다. 겹실틈 실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목하는 것이 겹실틈 즉 실틈이 두 개 있는 상황이다 보니, 애초에 출발점 상에서 하나의 실틈이 있다는 것을 놓치게 됩니다. 전자 총이 있더라도 정확하게 그 실틈 하나를 통과시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전자 총에서 전자가 하나씩 발사될 때 그 살짝 열린 실틈으로 지나가는 것도 있지만 꽤 많은 수는 실틈 옆에 있는 가림막으로 가게 될 겁니다. 그렇게 가림막에 부딪치는 전자가 바로 '빈-사건'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 두 개의 실틈, 즉 겹실틈이 있을 때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세 가지입니다. (1) 1번 실틈을 지나는 것 (2) 2번 실틈을 지나는 것 (3) 두 실틈 모두 지나지 않는 것. 이 중 (3)이 바로 '빈-사건'입니다.
이 겹실틈에 도달하기 전에는 전자 총에서 나온 전자가 모든 위치에 다 갈 수 있지만, 겹실틈 이후에는 '빈-사건'에 해당하는 것 즉 (3)은 제외하고, (1)과 (2)만 고려하자는 것이 바로 "공리 4"의 핵심입니다.
첨부한 그림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림 출처: Feynman Lectures on Physics)
"겹실틈이 있을 때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세 가지입니다. (1) 1번 실틈을 지나는 것 (2) 2번 실틈을 지나는 것 (3) 두 실틈 모두 지나지 않는 것. 이 중 (3)이 바로 '빈-사건'입니다.... 겹실틈 이후에는 '빈-사건'에 해당하는 것 즉 (3)은 제외하고, (1)과 (2)만 고려하자는 것이 바로 "공리 4"의 핵심입니다."
히타치의 실험에서도 잘 보이듯이, 전자의 궤적이 하나씩, 한 점씩 찍히니까, 전자는 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만, 화학에서의 전자구름 모델에서는 그냥 확률적 분포가 마치 실제인양 설명하기도 하더라구요.
양자역학은 선형 대수를 기반으로 하기에, 상황별로 나누고, 그걸 합치고, 이런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다만, 위에 인용한 자연사랑님의 덧글처럼 나누어 다룬다면, 변별체가 없는, 그냥 겹실틈 실험에서 왜 간섭무늬가 나타나는지의 설명이 곤란해 지는 것 같습니다. (한쪽씩의 틈만 지난 경우 2개를 합치면 그냥 두 줄이 되겠지요.)
자연철학 책에서도 왜 겹실틈 실험에서 간섭무늬가 나타나는지는 설명하지 않지요. 한쪽 틈에 변별체를 달면 간섭무늬 대신에 두 줄이 나타나는지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리 4-2가 조건부 확률이라는 것은 이해됩니다만, 실제 겹실틈의 상황이나 양자역학의 관측시의 상황이 조건부 확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은 실험을 해 봐야지 확실히 결정이 되지 않을까요?
화학 분야에서 '전자구름'이라고 부르는 것은 양자물리학의 핵심을 흐려버리는 전형적인 오개념입니다. 과학교육에서도 문제가 되지만, 전문적인 연구자들에게도 이 '전자구름'이라는 표현과 개념이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겹실틈 실험에서 간섭무늬가 나타나는 이유는 너무나 분명해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 굳이 덧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위에 인용한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에 나오는 그림 1-3의 맨 끝에 있는 (c)에 $P_{12}=|\phi_1 + \phi_2 |^2$이라 쓰여 있는데, 그것이 정확히 스크린의 알록달록한 무늬를 말해 줍니다. (이를 흔히 '간섭무늬'라고 부르지만, 간섭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므로 그 이름은 정확하지 않고 오해를 일으키기 때문에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그림은 제가 지난 번 세미나에서 여는 발제에 사용한 슬라이드의 일부입니다. 수식이 복잡해 보입니다만, 핵심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먼저 $\psi(x, 0)$은 첫 실틈을 지날 때의 상태함수입니다. 다른 변별체를 만나지 않은 채 오른쪽으로 이동한다면 시간이 흐르므로 넷째 줄에 있는 $\psi(x, t)$와 같이 됩니다. 오른쪽으로 $y$만큼 움직인 뒤를 생각하면, 위의 시간 $t$ 대신 $y/v$를 대입하면 됩니다. 다섯째 줄은 두 실틈을 지난 뒤의 상태함수를 더한 것입니다.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의 표현을 빌면 $\phi_1 + \phi_2 $입니다.
즉 이 슬라이드의 다섯 번째 줄에 있는 식이 $\phi_1 + \phi_2$를 계산한 것입니다. 곧이곧대로 두 함수를 더한 것에 불과합니다. 선형대수나 힐버트 공간이나 그런 고급수학의 개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상태함수를 계산하여 두 개를 더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제 이 상태함수의 절대값 제곱을 한 것이 확률인데, 이를 Mathmatica처럼 그래프를 그려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그린 것이 아래 그림 왼쪽에 있는 파란색 그림입니다. 그 오른쪽에는 1989년의 유명한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전자구름이니 입자-파동 이중성이니 하는 오도하는 개념을 끌어들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단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212쪽에 있는 것처럼, 상태함수를 계산하고 그 절대값 제곱이 확률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첨부한 그림 두 개에서 양자역학의 표준적인 방법으로 계산한 상태함수 $\psi(x, y)$는 장회익 선생님의 표현을 빌면 사건을 일으킬 성향입니다. 이 성향이 들쭉날쭉한 모습으로 계산됩니다. 이제 이 상태함수로부터 확률을 계산해서 그려 보면 바로 위의 파란색 그림처럼 됩니다. 여기에서 노란색으로 된 부분이 '사건'을 일으킬 성향이 높은 지역이고 파란색으로 된 부분이 그런 성향이 낮은 지역입니다.
이제 이렇게 계산으로 알아낸 '사건 야기 성향'이 정말 맞는지 실험으로 직접 확인해 봅니다. 1989년에 발표된 히다치 그룹의 토노무라 등의 논문이 바로 그 실험의 결과입니다. 전자를 하나씩 쏘았기 때문에 명백하게 '간섭'은 없습니다. '간섭'은 물결처럼 한꺼번에 두 실틈을 지날 때에만 생기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간섭'은 없어도 양자역학의 표준적인 계산방법으로 계산한 '사건야기성향'은 들쭉날쭉 알록다록입니다. 그리고 실험은 그 둘쭉날쭉 알록달록을 명료하게 확인해 줍니다.
여기에는 관찰자가 파속을 붕괴시킨다느니, 세계가 무한히 갈라져서 무수히 많다느니, 불확정성 원리니. 상보성원리니 하는 것이 들어올 여지가 없습니다. 단지 확률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것이 필요할 따름입니다.
겹실틈 실험에서 지난 2013년에 발표된 실험을 비롯하여 실제의 실험에서는 온도를 아주 낮게 한다거나 전압을 줄이는 방식으로 해서 전자 총에서 전자가 한번에 하나씩만 나가도록 조정합니다. 코펜하겐 해석이나 항간의 신비주의 해석에서는 전자가 두 실틈을 모두 지나간다고 잘못 말하지만, 실제 실험은 명확하게 전자가 한번에 하나씩 갑니다.
1989년에 발표된 실험의 동영상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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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Double-slit experiment (Hitachi)
변별체에도 확률을 도입한다는 개념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여하간 대상과 변별체가 만나서 흔적을 남기는가 아니면 남기지 않는가 하는 소위 Yes-No 실험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스무 고개 놀이처럼 복잡한 것도 결국 줄이고 줄이다 보면 최종단계에서는 Yes-No 질문에 대한 대답들로 축소됩니다.
확률 계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특별한 숫자가 세상에 있는 게 아니라, 최소단위로 쪼갠 근원사건이 일어나는가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가의 양자택일을 모아 놓은 것이 확률입니다. 양자물리학에 기반을 둔 자연철학에서는 될수록 복잡함을 줄이고 어떻게든 가장 간단한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애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첨부한 그림은 다른 맥락에서 그려진 그림이긴 하지만, 이러한 변별체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어떤 창문 E를 붙일 때 그 창문에 보이는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 Yes/No로 답하는 것이 이 '조우'의 핵심입니다. (그림 출처: Beltrametti-Cassinelli p. 147)
공리 4의 설명은 너무 고전역학 같습니다. 이렇게 딱딱 잘라지는 것이 양자역학일까 싶네요. 흔히 듣던 것과 너무 차이가 많아서요. // 어쨋든, 상세한 자연사랑님의 덧글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요즘 계시판에 글을 적어보니, 대충한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이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든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다만, 올려주신 설명을 다 못 따라가기에, 그 덧글에 또 덧글을 달기 힘들어서, 그냥 넘어가 버리게 된 걸 안타깝게 여깁니다 ㅠㅠ
제가 이해하기에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의 핵심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고전역학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 양자역학을 자연철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항간의 양자역학 이야기는 지나치게 신비주의화되어 있습니다. 가령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희화화하여 무지와 권위에 대한 복종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아닌가 염려되기도 합니다. 원래 양자역학은 어려운 것이고 유명한 물리학자들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으니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물리학자들은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 택하는 접근은 최소한의 형식이론을 직접 접하고 그것을 가지고 양자역학이 말해 주는 세계상을 직접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항간의 이야기를 직접 평가하고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학기초라 바쁘신대도, 이렇게 정리되는 덧글을 달아주셔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책의 입장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양자역학은 안 이상하다 ! 이해할 수 있다 !!
감사합니다. 정말 할 일이 태산인데도 자꾸 이 게시판에 기웃거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하고 의견 달고 하는 대화의 과정에서 이런저런 새로운 생각이 더 피어나서 좋습니다. 3월 10일 보조 세미나에서 이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서 설명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