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밤] 스피노자와 수학(기하학)
오늘 책밤 모임에서 스피노자가 점, 선, 면과 같은 추상적인 수학적 대상을 사용하여 실체와 사물(things)의 관계를 다룬 것인가, 그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저는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실제 내용으로서의 기하학이나 수학을 사용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근거로 스티븐 네들러의 [에티카를 읽는다] 154-155쪽에 인용된 부분을 들 수 있겠습니다.
"... 스피노자는 원인이 결과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고 할 때의 필연성이, 타당한 논증에서 전제가 결론을 논리적으로 함축한다고 할 때의 필연성이나, 어떤 수학적 진리가 다른 수학적 진리에서 따라 나온다고 할 때의 필연성과 동일한 종류의 필연성이라고 믿는다."
[에티카] 1부 정리17의 주석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삼각형의 본성으로부터 그것의 세 각은 두 직각과 같다는 것이 영원에서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따라 나오는 것과 동일한 필연성에 의해 그리고 동일한 방식으로, 신의 최고의 역량, 즉 그의 무한한 본성으로부터 무한하게 많은 것들이 무한하게 많은 방식으로, 곧 만물이 필연적으로 흘러나왔고 또는 항상 따라 나온다는 것을 충분히 명확하게 보여 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I have shown clearly enough (see IP16) that from God’s supreme power, or infinite nature, infinitely many things in infinitely many modes, i.e., all things, have necessarily flowed, or always follow, by the same necessity and in the same way as from the nature of a triangle it follows, from eternity and to eternity, that its three angles are equal to two right angles." (IP17s)
"Verum ego me satis clare ostendisse puto (vide Prop. 16), a summa Dei potentia, sive infinita natura infinita infinitis modis, hoc est, omnia necessario effluxisse, vel semper eadem necessitate sequi, eodem modo, ac ex natura trianguli ab aeterno, & in aeternum sequitur, ejus tres angulos aequari duobus rectis." (IP1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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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지난 번 세미나가 끝난 직후 급하게 찾아서 이 글을 올렸습니다. 아직 읽지 않은 부분을 인용했는데, 실상 이 내용은 81-82쪽에 먼저 나옵니다. 또 이전에는 네들러 책의 영어판 p. 86만 보고 에티카 I부 정리17의 주석2라고 적었는데, 라틴어 원문을 찾아보니 주석(Scholium)이 하나입니다. 영어판이 오기였습니다. 한국어판에는 오기를 수정하여 그냥 "I부 정리17의 주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래 전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양주동 선생의 수필 "몇 어찌"의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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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논점이 구체/추상의 문제가 아니라 논리적 필연성에 관한 문제라는 말씀이군요. 제가 궁금했던 점이 해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며칠 전에 '실재(things)'에 대해 더 이야기해달라고 질문을 올리셨었는데, 지금 보니 그 댓글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제가 언급한 것은 things를 '실재(實在)'라고 해도 좋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내들러의 <스피노자의 에티카 읽기> 한국어판 133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실재'(things)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태(modes)나 변용(modification)이 실체(subtance) <안에> 있는 것처럼 신 또는 자연 <안에> 있다고 가정되는 실재는, 단지 우리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그리고 스피노자 이전 사유방식과 비철학적 사고방식에서 우리가 의당 실체적이라고 받아들였던 모든 친숙한 항목들로, 예를 들자면 물리적 대상들(나무, 의자, 인간 신체)과 인간 정신이나 영혼들이다."
사실 132-143쪽의 소제목이 [신과 실재들(God and Things)]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things를 '사물들'이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철학을 제대로 깊이 공부하지 않았고 과학철학 특히 물리철학을 소심하게 공부해온 입장이다 보니 철학자들의 용어법이 충분히 익숙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과학철학을 염두에 두면 실재(實在)는 reality이고, 이것은 칸트 이래 인식의 대상으로서 참되게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되는 무엇인가를 가리킵니다. 한국어로 쓰인 책들 중 다수가 reality를 '현실'이라고 잘못 번역함으로써 저자의 주장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reality 즉 실재는 친숙한 항목 즉 물체나 정신이나 영혼 같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드러난 현상적 존재 이면에 있는 근원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things를 '실재'라고 말하면 안 되고 '사물'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칸트는 실재를 물자체(物自體, Ding-an-sich, thing-in-itself)라 부르고 현상에 드러나지 않은 인식 저 편의 것으로 둡니다.
그런데 진태원의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을 보니, 거기에서도 things를 모두 '실재'라고 말하고 있어서, 제가 뭔가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스피노자는 칸트 이전 철학자이고, 내들러가 분석하고 있는 things는 다름 아니라 '신'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논의가 나오는 1부의 문제입니다. 제가 잘 이해하고 있는 과학철학에서의 '실재' 개념 또는 '실재론 논쟁'에서는 reality가 친숙한 물체나 사물이나 정신 같은 것이 아니지만, 100년쯤 거슬러 올라가면, 그 개념이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특히 스피노자의 저서에서 things로 영역된 라틴어 용어는 res(레스)입니다. 이는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연장적 실체(res extensa 레스 엑스텐사)'와 '사유하는 실체(res cogitans 레스 코기탄스)'의 이분법에서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레스'입니다. 이를 한국어에서는 '실체(實體)'라고 옮기는 것이 표준적입니다.
그런데 스피노자 철학에서는 '실체'가 substance의 번역어로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things나 res를 '실체'라고 옮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하간 스피노자를 전공하는 철학자들은 things를 '실재'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립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대도 고려해서 개념의 의미를 생각해야하는 거군요!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것까지 질문드려서 불편드리는 것 아닌가 싶어서 질문을 지웠는데 이렇게 답변을 자세히 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저도 reality와 things를 구분해 생각해 보지 못해서 질문드렸는데 명확히 다른 단어이므로 선생님 말씀처럼 구별해 보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에티카'의 제1장 "신에 관하여" 를 다시 뒤적이며 reality라는 용어가 쓰인 곳을 찾아보았는데 거의 사용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제가 찾은 곳은 정리9인데
"The more reality or being a thing possesses, the more attributes to it.
(어떠한 사물이 더 많은 실재성 또는 존재성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 사물에는 더 많은 속성들이 있다)"
이 문장을 보면, reality와 thing이 명확히 구분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thing(사물)은 그 시대에 쓰이는 일반적 표현이지 싶고 reality(실재성)는 스피노자의 사상체계 내에서 그 근원인 '실체'(Substance)로부터 비로소 양태로서 '존재성'(being)을 표현하는 것이 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reality(실재성)은 스피노자 철학 체계의 맥락 안에서 새롭게 정립되는 고유한 개념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리9로 미루어 짐작컨데, 보다 많은 실재성(reality)은 사물(thing)에 더 많은 속성들(attributes)을 부여하며 존재(being)의 성격이 "두렸해지는 사물"이 되게 합니다. 스피노자사상은 '실체(신,자연) 일원론'으로 주체-객체의 이분법을 전체적으로 피한 것으로 보이는데, 해석을 위해서 방법적으로 사물(thing)을 '주어'로 놓고 보면 실재성(reality)는 '형용사'적으로 쓰이는 듯 합니다. 어쩌면 실체-속성 개념에서 유래된 것이니 당연할 것 같기도 합니다.
정리9의 reality(실재성)와 being(존재성)은 신의 사유(necessity)와 연장(extension) 개념과 대응하는 듯 보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둘은 신의 속성들(attributes)입니다. 따라서 정리9는 당연히 실체(Substance)와 사물(things)의 관계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겠지요.
"무엇이 진짜(real) 있는(being) 것인가?" 하는 물음에 스피노자는 그 원인인 실체(신,자연)때문이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만 어쩌면 이 물음은 본래부터 각 시대의 사상체계들 사이의 논쟁적인 개념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스피노자 뿐만 아니라 맑스나 베르그송에게서도 엿보이는 바이지만 '실재(reality)' 개념은 각 시대마다 다르고 각 사상마다 서로 조정하거나 투쟁하는 개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과학철학에서의 실재 개념은 어떻게 변화해 왔고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하기도 합니다만 여기 게시판에 선생님께서 쓰신 자료가 이미 있을테지요. 나중에 시간내서 한번 검색하여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