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생명은 자체생성계인가?
온생명론은 매우 특별하고 이론적인 접근인 동시에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사고틀입니다. 몇 주 전부터 함께 읽고 있는 [삶과 온생명] 중 특히 2부에서 다루어지는 주제와 내용이 마침 제가 지난 12월 2일에 어느 학회에서 발표한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여기에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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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생명론에서 보생명과 둘레세계의 관계
온생명론에서 생명은 “우주 내에 형성되는 지속적 자유에너지의 흐름을 바탕으로, 기존 질서의 일부 국소질서가 이와 흡사한 새로운 국소질서 형성의 계기를 이루어, 그 복제 생성률이 1을 넘어서면서 일련의 연계적 국소질서가 형성 및 지속되어 나가게 되는 하나의 유기적 체계”로 정의된다(장회익 2014b, 191).
생명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찾아내고 이를 통해 물질과 생명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는 데 주안점을 둔 온생명론은 인간 또는 의식이라는 층위에서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자체생성 이론과 기연적 접근과 둘레세계 이론이 어떻게 온생명론의 난점을 해결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이를 위해서는 보생명의 개념을 꼼꼼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보생명(co-life)은 특정의 개체생명에 대해 “온생명에서 그 개체생명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으로 정의된다(장회익 2014a; 2014b).
여기에서 개체생명은 유전자나 세포나 기관이나 종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하나의 연속체를 이룬다고 여겨지는 개체 또는 유기체들의 생명이다. 개체(個體 individuum)는 어원 그대로 더 나눌 수 없는 하나의 단위로서의 존재를 가리킨다. 개체는 피부 또는 껍질로 둘러싸인 공간적 부분으로서 에너지 교환과 호흡(즉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의 경계가 된다는 점에서 유기체(有機體 organism)이기도 하다.
온생명 및 보생명의 개념은 열역학적 고찰을 근거로 삼지만, 자유에너지만이 아니라 구성입자들의 교환까지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서 통계역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일반체계이론의 논의와 직접 연결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생명은 단순히 온생명을 기준으로 한 개체생명의 여집합이 아니다.
만일 개체생명을 개체나 유기체와 동등한 것으로 보면, 보생명은 사실상 개체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적 환경 또는 다른 개체나 다른 종들의 군집과 같은 것이 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요소들을 모두 고려할 수 없으므로 가장 가까이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만을 그 개체에 대한 보생명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 점에서 보생명의 규정은 개체-특정적인 동시에 근사적이다. 그러나 그 경우 보생명은 기존의 환경 개념이나 니치 개념과 실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같은 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개체생명을 개체나 유기체가 지닌다고 흔히 여겨지는 생명이라고 보면, 보생명의 개념은 단순히 환경을 다르게 부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온생명(즉 진정한 의미의 생명)에 대한 정의를 다시 보면, 생명은 곧 유기적 체계의 연계적 국소질서에 해당한다. 임의의 계가 연계적 국소질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국소질서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외부적 요소가 반드시 작용해야 한다. 그 외부적 요소는 비단 생존을 위한 환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체의 피부를 경계로 출입하는 에너지와 공기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보생명은 단순히 환경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보생명의 정의가 개체-특정적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환경은 특정한 개체에 대한 환경이라기보다는 개체들이 퍼져서 서식하는 공간으로서 개체들과 직접 연관을 맺지 않은 채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된다. 개체생명을 “개체들의 살아 있음”으로 이해하면, 보생명은 철저하게 어느 개체생명의 보생명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령 심해어에게 뭍에 있는 관목은 그 살아 있음에 아무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목은 심해어의 보생명이 아니다. 곤충을 먹이로 삼는 개구리에게 날아가는 곤충 뒤의 배경이 되는 수풀은 직접적으로는 보생명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보생명은 각 개체마다 다르게 주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개체생명을 생명체로 볼 때 보생명은 그 생명체의 존속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다른 생명체나 무생물을 포함하는 보생명‘들’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보생명을 일반적인 의미의 ‘환경’과 같은 것으로 보는 관점은 환경을 애초에 주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각 개체의 생명 또는 개체생명을 고려하지 않고 환경을 그 자체로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도한 상정이다.
실질적으로 보생명은 윅스퀼의 둘레세계와 직접 이어지는 개념이다. 둘레세계는 개별적인 유기체들 또는 종들이 각각 고유하게 인지하거나 감각하는 세계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오컴의 면도날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뉴턴의 실체적 공간 개념보다 라이프니츠의 관계적 공간 개념이 더 우월한 것처럼, 생명체들과 무관하게 주어진 것으로 간주되는 환경 개념이 아니라 각 개체생명들에 특정적인 보생명으로서의 둘레세계의 개념이 더 우월한 개념이 된다(김남수 2014).
그런데 인식 또는 의식을 바렐라-톰슨-로슈의 기연적 관점으로 이해하면, 인식 또는 의식은 각 개체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과 만나는 것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것은 인식 또는 의식이 피부와 두개골 안에 갇혀 있는 어떤 신비한 물질적 조합이 외부에 대해 선형적인 인과에 의하여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둘레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감각-운동을 통해 직접 만들어나가는 순환적 인과라는 의미이다. 생명이 피부 내지 껍질로 외부와 구획된 가시적 존재로 한정되지 않는 것처럼 인식 또는 의식도 개체생명의 신체 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보생명이라는 개념은 둘레세계의 개념이 정확히 생명에 대한 정의 속에 포함될 뿐 아니라 개체생명과 보생명의 상호작용을 통한 의식의 형성을 잘 드러내준다. 그런 점에서 보생명의 개념은 둘레세계 이론과 기연적 접근을 연결해 주는 핵심적인 고리이다.
온생명은 자체생성적인가?
기연주의자(enactionist) 일부는 인공생명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서 생명을 자체생성성으로 정의하려면, 개체생명을 둘러싼 환경을 생명의 정의 안에 포함시켜야 하며, 그를 통해 생명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Di Paolo 2009; Virgo et al. 2011; Di Paolo & Thomson 2014; Colombetti 2015). 라세토-배리 등은 이를 반박하며 이는 자체생성이론을 오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Razeto-Barry 2012; Villalobos & Razeto-Barry 2020). 라세토-배리는 마투라나와 바렐라가 처음 자체생성성이란 용어를 만들고 이를 생명의 본질로 제시할 때의 의도는 기연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환경을 포함시켜서는 안 되지만, 그 개념과 정의를 더 다듬어서 환경을 포함할 수 있게 확장하는 것이 금지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체생성성에 대한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Maturana & Varela 1980, p. 78-79).
“자체생성적 기계는 성분을 생산하는 성분의 생산(변환과 파괴) 과정의 네트워크로서 조직된 (하나의 단위로 정의된) 기계로서, 다음의 요건을 충족시킨다.
(i) 그 상호작용과 변환을 통해 그것들을 생산하는 과정들(관계들)의 네트워크를 연속적으로 재생하고 실현하며,
(ii) 그러한 네트워크로 구현된 위상학적 영역을 특정함으로써 그것들(성분들)이 존재하는 공간 안의 구체적 통일체로서 그것(기계)을 구성한다.”
이 정의에서 줄곧 논란이 된 것은 성분들이 존재하는 공간(space)이 추상적인가 여부였다.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물질적 구조(structure)와 기능적 조직(organization)의 개념을 명료하게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체생성적 기계의 핵심은 물질적 구조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는가 말해주는 조직에 있다. 하나의 조직에 대해 여러 구조가 대응할 수 있다.
자체생성이론의 기본 바탕은 사이버네틱스, 특히 이차 사이버네틱스이며, 여기에서는 여러 물질적 구현방식에 공통된 되먹임계가 중심적 역할을 한다. 관심을 조직 대신 구조에 두면, 자체생성계는 열린 계로서 물질의 교환이 허용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생명을 자체생성계로 정의하면 개체가 상호작용하는 주변의 무생물적 환경도 생명의 정의 안에 들어와야 한다. 특히 ‘함으로서의 앎’을 강조하는 기연주의의 접근에서는 환경으로까지 확장된 생명 개념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확장된 자체생성계의 주장이다.
라세토-배리는 이를 비판하면서 자체생성 기계(autopoietic machine)와 자체생성 몸(autopoietic body)을 구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체생성 기계는 추상적 관계로서 조직의 문제이지만, 자체생성 몸은 물질적 구성으로서의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두 개념이 혼동되곤 하는 것은 이차 사이버네틱스에서 자체생성 개념과 항상성 개념에 대한 논의가 대체로 병행되기 때문이라고 라세토-배리는 지적한다.
그러나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둘레세계론과 온생명론에서 개체생명에 대한 보생명을 둘레세계로 이해하면, 이러한 논쟁을 피할 수 있다. 자체생성계의 자족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환경을 개체생명과 독립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개별 유기체와 종에 따라 상대적으로 둘레세계가 정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생명이 개체생명에 따라 상대적으로 규정된다는 점에 주목하면, 개체생명을 온생명으로 확장하고 보생명과 둘레세계의 의미를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움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체생성 기계와 자체생성 몸을 구별하자는 라세토-배리의 주장의 유용성이 있긴 하지만, 확장된 인지와 확장된 생명체 개념에 대한 기연주의자들의 논의가 더 적절한 면이 있다.
참고문헌
- 김남수 (2013). “보생명과 움벨트 개념 탐색: 환경 교육의 관점에서” [환경철학] 16권. pp.1-34.
- 김재영 (2017). “사이버네틱스에서 바라본 생명”, 최무영 외 [정보혁명], 휴머니스트.
- 장회익 (2014a).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한울아카데미.
- 장회익 (2014b). [삶과 온생명], 현암사.
- Colombetti, G. (2015). “Enactive affectivity, extended”. Topoi, 36, 445–455. (*)
- Di Paolo, E.A. (2009) “Extended life”. Topoi 28(1):9–21 (*)
- Di Paolo, E.A., Thompson, E. (2014) “The enactive approach”. In: Shapiro, L.A. (ed) The Routledge Handbook of Embodied Cognition. Routledge. pp. 69–77.
- Maturana, H.R. & Varela, F.J. (1980). Autopoiesis and Cognition: The Realization of the Living, Kluwer; 정현주 옮김 (2023). [자기생성과 인지: 살아있음의 실현]. 갈무리.
- Maturana, H.R. & Varela, F.J. (1987). Der Baum der Erkenntnis. Die biologischen Wurzeln menschlichen Erkennens; The Tree of Knowledge: The Biological Roots of Human Understanding, Shambhala; 최호영 옮김 (2007). [앎의 나무: 인간 인지능력의 생물학적 뿌리], 갈무리.
- Razeto-Barry, P. (2012). “Autopoiesis 40 years Later. A Review and a Reformulation”. Orig Life Evol Biosph 42, 543–567.
- Villalobos M, Razeto-Barry P. (2020). “Are living beings extended autopoietic systems? An embodied reply”. Adaptive Behavior. 28(1): 3-13. (*)
- Virgo, N., Egbert, M. D., & Froese, T. (2011). “The role of the spatial boundary in autopoiesis”. In G. Kampis, I. Karsai, & E. Szathmáry (eds.), Advances in artificial life: Darwin meets von Neumann (ECAL 2009. Lecture notes in computer science; Vol. 5777, pp. 240–247). Springer.
[참고문헌 중 (*)로 표시한 세 편의 논문을 첨부파일에 넣었습니다. 각각 2009년, 2015년, 2020년에 나온 논문인데, 이 문제가 학계에서 여전히 중요한 화두이자 연구주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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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보생명, 환경, 둘레세계는 늘 명확하게 구분해서 이해하기 힘든 개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보생명이 한 낱생명의 여집합이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낱생명(A ; 세포핵 또는 세포 혹은 토끼 ...)을 기준으로 할 때 그 외의 나머지 부분, 그러니까 "(지구 - A) + 태양"이 되는 거지요.
그리고 예로 드신 '심해어에게 관목', '개구리에게 수풀'도 이들의 보생명에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개구리에게 수풀'은 '심해어에게 관목' 보다는 더 가까운 보생명이 될겁니다. 들불이 일어나거나 들판이 농경지로 바뀌어버리면 바로 영향을 받으니까요.
관목에도 어떤 일이 발생한다면 시간이 좀 걸릴지는 모르나 심해어에게 영향이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해어쯤 되면 그것이 수십 년이 될 수도 있고 수백 년이 될 수도 있지만, 심해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는 걸 보면 영향을 미치는 데 100년 이하가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 기후위기를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관목이나 수풀보다 더 먼 예를 들어보자면, 지구가열화 때문에 북반구의 제트기류에 교란이 생기면 그 구역 안에 있는 모든 물리화학적 환경과 낱생명들이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이 지구 전체로 퍼져 나가서, 지구 안에 그 제트기류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부분이나 존재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먼 보생명의 예로 태양을 보자면, 태양의 흑점 활동이나 태양이 나이가 많아져도 지구가 영향을 받으니까, 보생명은 확실히 어떤 낱생명의 여집합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행성 건강'(planetary health)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며칠 전에 시작된 기후정상회의 COP28과 관련해서도 여러 기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던데요. 그 중에 2024년 초에 생물다양성 회의도 열린다고 하는데, climate-crisis와 natue-crisis 둘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둘을 같이 다루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더라고요.
게다가 기후위기 때문에(혹은 덕분에) 낱생명과 보생명 사이의 관계가 점점 더 정량적으로 분석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전에 김남수박사님이 보생명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면 온생명론이 더 탄탄한(과 비슷한 단어를 쓰신 것 같습니다) 이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요. 하여튼 보생명 개념이 기후위기와 관련된 과학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어떤 기상 현상, 기후 변화가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분야(원인 규명 과학; attribution science)가 최근 발달하면서 낱생명과 보생명 사이의 관계 연구도 함께 발달하지 않을까 기대가 되거든요.
공감합니다. 실상 이미 매우 광대하게 연구되어 온 다양한 환경과학이 곧 보생명에 대한 탐구이므로 실상 따로 보생명을 연구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다만 기존의 발산적인 연구에서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환경이란 관념을 넘어서야 할 것입니다.
환경에 대한 기존 관념은 생명체가 있든 없든 원래 있는 무생물에 가깝지만, 둘레세계와 보생명이란 개념에서는 관계와 상호작용이 두드러질 뿐 아니라 원래부터 주어져 있다는 환경 개념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