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사고실험은 역설일까?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0-03-20 18:34
조회
4789
쌍둥이 역설은 여러 모로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그림 출처: physics.aps.org)
어제 온라인 세미나에서 쌍둥이 역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지금은 '역설'이 아닐 뿐더러 사고실험을 넘어서 실제로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으로 정립되어 있습니다.
" rel="noopener" target="_blank">Twin paradox: the real explanation
1911년 폴 랑주벵(Paul Langevin 1872-1946)은 "공간과 시간의 진화"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그 유명한 쌍둥이 사고실험을 처음 이야기했습니다.
Langevin, P. (1911), "L'évolution de l'espace et du temps", Scientia, X: 31–54.
(영어 번역: "The evolution of space and time")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구 위에 있는 실험실에서 똑같이 준비된 라듐 샘플 두 개가 있고, 그 중 하나를 아주 빠른 속도로 멀리까지 보냈다가 다시 가져오는 상황을 생각합니다. 라듐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방사성을 일으키며 그 양이 줄어들며, 그 반감기는 유일하므로 정확한 시계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지구에 남아 있는 라듐 A의 고유시간은 우주선을 타고 멀리까지 갔다 온 라듐 B의 고유시간보다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고실험을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온라인 세미나에서 언급한 것은 바로 이러한 논변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이 잘못된 것이 있었습니다. 랑주벵이 "쌍둥이 사고실험"을 제시한 것은 상대성이론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성이론을 통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념을 바꾸어야 한다는 자연철학적 동기였습니다.
당시에 다른 사람들이 랑주벵의 사고실험으로부터 위에서 항목화해서 요약한 논변으로 상대성이론을 반박하려 했습니다.
그러면 이 그럴듯한 논변에서 어느 단계가 잘못된 것일까요? 맞습니다. 3.의 단계입니다. 랑주벵은 우주선의 경우는 등속이 아니라 가속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두 관성계를 비교하여 고유시간이 서로 다르다고 말할 때, 관성계는 멈춰 있거나 일정한 속도로 반듯하게 나아가는 좌표계를 가리킵니다.
우주선이 먼 곳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느 시점, 어느 위치에서 운동을 멈추고 역추진 로켓 같은 것을 써서 반대방향으로 되돌아와야 합니다. 바로 이 시점과 이 위치에서 가속운동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위의 논변의 3.의 단계에서처럼 지구와 우주선을 관점을 반대로 생각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막스 폰라우에는 "상대성이론에 대한 두 가지 반대와 그에 대한 반박"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랑주벵이 제안한 사고실험을 더 면밀하게 살핍니다.
Max von Laue (1911). "Zwei Einwände gegen die Relativitätstheorie und ihre Widerlegung". Physikalische Zeitschrift. 13: 118–120.
라우에는 이 쌍둥이 사고실험이 두 개의 관성계 사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 개의 관성계 사이의 이야기임을 강조합니다. 즉 지구 관성계 $S_1$, 지구에서 먼 곳까지 멀어져 가는 관성계 $S_2$, 먼 곳에서 지구로 되돌아오는 관성계 $S_3$입니다.
우주선의 고유시간을 $S_2$와 $S_3$에 동승하여 각각 계산하여 더하면, 이 값은 $S_1$에 동승하여 계산한 고유시간보다 언제나 작습니다. 따라서 우주선을 타고 멀리까지 다녀온 쪽이 항상 더 나이를 적게 먹습니다.
제가 온라인 세미나에서 화이트보드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려 했던 것이 바로 라우에의 논변이었습니다.
관성계의 상대속도에 따라 고유시간이 달라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주장은 실험실에서 여러 번 정교하게 확인되었습니다.
비교적 최근 보고로 아래 네이처에 실린 뉴스를 참조할 수 있습니다.
Special relativity aces time trial: 'Time dilation' predicted by Einstein confirmed by lithium ion experiment.
미국물리학회 소식지(Physical Review Letter)에 실린 이 논문에 대한 해설 기사는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Synopsis: Relativity is Right on Tim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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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주벵의 "쌍둥이 사고실험"을 다룬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림 출처: physics.aps.org)
어제 온라인 세미나에서 쌍둥이 역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지금은 '역설'이 아닐 뿐더러 사고실험을 넘어서 실제로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으로 정립되어 있습니다.
" rel="noopener" target="_blank">Twin paradox: the real explanation
1911년 폴 랑주벵(Paul Langevin 1872-1946)은 "공간과 시간의 진화"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그 유명한 쌍둥이 사고실험을 처음 이야기했습니다.
Langevin, P. (1911), "L'évolution de l'espace et du temps", Scientia, X: 31–54.
(영어 번역: "The evolution of space and time")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구 위에 있는 실험실에서 똑같이 준비된 라듐 샘플 두 개가 있고, 그 중 하나를 아주 빠른 속도로 멀리까지 보냈다가 다시 가져오는 상황을 생각합니다. 라듐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방사성을 일으키며 그 양이 줄어들며, 그 반감기는 유일하므로 정확한 시계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지구에 남아 있는 라듐 A의 고유시간은 우주선을 타고 멀리까지 갔다 온 라듐 B의 고유시간보다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고실험을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1.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고유시간은 운동속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데, 일단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2. 그러면 지구에서 잰 A의 고유시간보다 우주선에 있는 라듐으로 잰 잰 B의 고유시간이 짧다.
3.그런데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운동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지구에 있는 관찰자가 아니라 우주선에 있는 관찰자의 관점에서 보면, 멀리까지 갔다 온 것이 우주선이 아니라 지구라 할 수 있다.
4. 그러면 2.에서와 같은 논리로 이번에는 지구에서 잰 A의 고유시간이 우주선에서 잰 B의 고유시간보다 짧다는 결론을 얻는다.
5. 따라서 2.와 4.에서 서로 모순된 결론을 얻게 된다.
6. 그러므로 애초에 1.을 전제로 받아들인 것이 잘못이다.
제가 온라인 세미나에서 언급한 것은 바로 이러한 논변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이 잘못된 것이 있었습니다. 랑주벵이 "쌍둥이 사고실험"을 제시한 것은 상대성이론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성이론을 통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념을 바꾸어야 한다는 자연철학적 동기였습니다.
당시에 다른 사람들이 랑주벵의 사고실험으로부터 위에서 항목화해서 요약한 논변으로 상대성이론을 반박하려 했습니다.
그러면 이 그럴듯한 논변에서 어느 단계가 잘못된 것일까요? 맞습니다. 3.의 단계입니다. 랑주벵은 우주선의 경우는 등속이 아니라 가속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두 관성계를 비교하여 고유시간이 서로 다르다고 말할 때, 관성계는 멈춰 있거나 일정한 속도로 반듯하게 나아가는 좌표계를 가리킵니다.
우주선이 먼 곳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느 시점, 어느 위치에서 운동을 멈추고 역추진 로켓 같은 것을 써서 반대방향으로 되돌아와야 합니다. 바로 이 시점과 이 위치에서 가속운동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위의 논변의 3.의 단계에서처럼 지구와 우주선을 관점을 반대로 생각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막스 폰라우에는 "상대성이론에 대한 두 가지 반대와 그에 대한 반박"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랑주벵이 제안한 사고실험을 더 면밀하게 살핍니다.
Max von Laue (1911). "Zwei Einwände gegen die Relativitätstheorie und ihre Widerlegung". Physikalische Zeitschrift. 13: 118–120.
라우에는 이 쌍둥이 사고실험이 두 개의 관성계 사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 개의 관성계 사이의 이야기임을 강조합니다. 즉 지구 관성계 $S_1$, 지구에서 먼 곳까지 멀어져 가는 관성계 $S_2$, 먼 곳에서 지구로 되돌아오는 관성계 $S_3$입니다.
우주선의 고유시간을 $S_2$와 $S_3$에 동승하여 각각 계산하여 더하면, 이 값은 $S_1$에 동승하여 계산한 고유시간보다 언제나 작습니다. 따라서 우주선을 타고 멀리까지 다녀온 쪽이 항상 더 나이를 적게 먹습니다.
제가 온라인 세미나에서 화이트보드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려 했던 것이 바로 라우에의 논변이었습니다.
관성계의 상대속도에 따라 고유시간이 달라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주장은 실험실에서 여러 번 정교하게 확인되었습니다.
비교적 최근 보고로 아래 네이처에 실린 뉴스를 참조할 수 있습니다.
Special relativity aces time trial: 'Time dilation' predicted by Einstein confirmed by lithium ion experiment.
미국물리학회 소식지(Physical Review Letter)에 실린 이 논문에 대한 해설 기사는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Synopsis: Relativity is Right on Tim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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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주벵의 "쌍둥이 사고실험"을 다룬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Donnons des exemples concrets : imaginons un laboratoire lié à la Terre, dont le mouvement peut être considéré comme une translation uniforme, et dans ce laboratoire deux échantillons de radium parfaitement identiques. Ce que nous savons sur l’évolution spontanée des matières radio-actives nous permet d’affirmer que si ces échantillons restent au laboratoire, ils perdront tous deux leur activité de la même manière au cours du temps et garderont constamment des activités égales. Mais envoyons promener l’un de ces échantillons avec une vitesse suffisamment grande et ramenons-le ensuite au laboratoire ; ceci exige qu’au moins à certains moments cet échantillon ait subi des accélérations. Nous pouvons affirmer qu’au retour, son temps propre entre le départ et le retour étant moindre que l’intervalle de temps mesuré entre ces mêmes événements par des observateurs liés au laboratoire, il aura moins évolué que l’autre échantillon et par conséquent qu’il se trouvera plus actif que celui-ci ; il aura moins vieilli, s’étant agité davantage. Le calcul montre que pour obtenir une différence d’un dix-millième entre les variations d’activité des deux échantillons, il aura fallu maintenir pendant la séparation l’échantillon vagabond à une vitesse d’environ quatre mille kilomètres par seconde.(p.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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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랑주벵은 제4장 양자역학 이야기에도 등장합니다. 바로 루이 드브로이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였기 때문입니다. (랑주벵은 피에르 퀴리의 제자였습니다.)
랑주벵은 1934년에 창립된 "반 파시즘 지식인 감시위원회 (Comité de vigilance des intellectuels antifascistes)의 창립회원이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나치 극우주의에 저항했던 훌륭한 지식인이었습니다. 1940년에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체포되어 가택구금을 받기도 했고, 그의 딸 엘레느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서 많이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미망인이 된 마리 퀴리가 노벨상을 두 개나 받고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르본느 대학에 교편을 잡고 프랑스 학술원의 정회원이 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눈사람님이 정리해 주신 전반적인 이야기는 제가 보기에 상당히 정확합니다.
디테일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도 하지만, 전체 숲을 보는 통찰이 필요한데, 저는 심학 제2도와 심학 제3도를 직접 비교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시간' 개념이 '고유시간' 개념으로 바뀐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시간과 3차원 공간이 별개로 독립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심학 제2도에서 시간과 공간을 별개로 보았던 관점이 제3도에서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여러 접근들 중에서 복소수 평면(가우스 평면)이 유용하지만, 여하간 4차원 시공간을 도입해야만 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고유시간 다음의 이야기는 심학 제1도에 있는 "형 없는 형"(특성)과 "상 없는 상"(상태)를, 이제 달라져 버린 4차원 시공간과 연결시키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4-벡터라는 개념이 중요해집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이 덧붙여진 것에 대해서는 더 깊은 이야기가 필요하겠습니다.
프랑스 인명의 한글 음차표기는 늘 혼동되는데, 2년 쯤 전 이 글을 쓸 때에는 Langevin을 ‘랑주벵’이라고 썼었네요. 표준 표기는 ‘랑주뱅’입니다. 추운 겨울에 즐기는 따뜻한 포도주 vin chaud는 ‘벵쇼’인가요, 아니면 ‘뱅쇼’인가요?
지난 온라인 세미나에서 눈사람님이 흥미로운 질문들을 해 주셨는데, 온라인 연결이 좀 매끄럽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 하지 못해서 질문을 놓친 것 같습니다. 그 질문들을 여기에 다시 해 주시면 어떨까요?
무슨 질문을 했었는지 잘 기억이... ^^;;;
그냥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번에 3장을 다시 보니(그 뒷 장들도 마찬가지구요), 선생님의 책은 논리가 아주 꼼꼼하게 짜여있어서 정신줄 잘 붙들고 읽어야겠더라는 것입니다.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집중하지 않으면 내가 지금 왜, 무엇을 읽고 있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뭐, 수식도 마찬가지구요. ^^;;;
3장의 '내용정리' 첫 페이지(161쪽) 첫 줄을 보면, "특수상대성이론의 핵심은 시간과 공간이 합쳐서 4차원을 형성한다는 데 있다. ... 여기에는 큰 장벽이 있다. ... 실제 3차원 공간은 눈에 보이고 ... 시간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경험과 관계되며, ... 그 어떤 단서도 잡을 수 없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에 i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침 우리한테는 i가 있다. i를 이용해서 4차원 시공간을 표현해보기 전에, 먼저 3차원 시공간이 무엇인지 알아보자~하면서 '두 사다리의 상대적 기울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봤지?! 3차원 시공간이란 기준(평면)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야! 이렇게 설명이 됩니다. 그러니까 '두 사다리의 상대적 기울기'는 3차원이 2차원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던 것이죠?! 저는 이번에 다시 읽고 알았습니다. -,-;
그 다음에 다루는 내용이 '시공간의 차원'이 그렇다면 왜 중요한지 봅니다. 그래서 t를 넣고, t에 상수 k를 곱해서 공간변수로 만들어서 상대속도를 구하는 과정이 죽 나옵니다. 여기서 보편상수 c가 난데없이 나오면서, 잘 맞네!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ㅎㅎ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처음부터 기본명제 두 개를 가정하고 했지만, 우리는 그냥 4차원 시공간을 바탕관념으로 설정하고 가면 돼라고 책에 쓰여있었던 거 같은데, 제가 잘못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네요. ^^;
그 다음에는, 그렇다면 이제 모든 자연법칙들을 4차원의 성격에 맞는 형태로 재설정해보자!하면서 본격적으로 들어갑니다.
그 전에 시간변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선결과제가 있다고 책에 나옵니다. 즉, 4차원 좌표변환에 따라 시간의 간격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
이런 식으로 3장 끝까지, 논리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전개가 되는데, 반도 못따라가겠더라는 것이죠. ㅠ.ㅠ
정리하자면, 저는 3장 전체의 그런 논리의 짜임이랄까 구성이랄까 구조같은 걸 이해하고 싶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
왠지 게시판에 이미 설명 해놓으셨는데 제가 못알아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글을 다 쓰고나니 드네요.. ㅠ.ㅠ
맞습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는 친절한 책은 아니지만, 논리가 아주 촘촘하게 짜여 있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또 다른 특징은 말 그대로 "장회익의 자연철학"을 이해하려는 것에 집중하는 게 현명하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서 상대성이론에 대해 물리학적인 입문을 배우고 싶다거나 그 철학적 해석을 살펴보고 싶다면, 어쩌면 다른 책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습니다. 실상 초급 물리학으로 대중과학의 맥락에서 쓰인 책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고전역학은 오히려 드물지만,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은 이상하게도 그런 책들이 수두룩합니다.
장회익 선생님께 오랫동안 배우고 제 나름대로 물리철학자로서 공부해온 맥락에서 보면, 저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 다루어진 내용들에서 부적절하거나 불필요한 부분도 눈에 띕니다. 오히려 꼭 있어야 하리라 여겨지는 내용이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명확하게 이 책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이고, 제가 장회익 선생님과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제까지 제가 헛공부를 한 건 아니라는 의미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몇 주 사이에 녹색아카데미 홈페이지의 자연철학 세미나 게시판에 글을 도배하다시피 하면서 이런저런 보충적 내용을 올렸고, 그 과정에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를 여러 차례 다시 읽었습니다. 행여라도 제가 선생님의 견해와 관점을 왜곡하면 안 되니까요. 작년 봄에 이미 책의 초고 전체를 읽었지만, 이번에 책을 다시 읽고 또 읽으면서 점점 더 텍스트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행간의 의미가 더 분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 책은 마치 저를 위해 쓰신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이 책에 담긴 탁월한 통찰을 각자 자신이 이해한 방식을 덧붙여 함께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가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