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도가 말해 주는 시공간의 구조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0-02-06 16:33
조회
5180
(* 파일 폴더에서 다른 자료를 찾다 보니 아래 글이 있어서 여기에 올려 둡니다. 2011년 쯤에 과학동아에 실은 글인 것 같습니다. *)
빛의 속도가 말해 주는 시공간의 구조
아인슈타인과 시간여행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은 무엇일까. 그 자체로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질문을 조금 더 생각하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걷는 것보다 자전거가 빠르고, 자동차보다 비행기가 더 빠르니까, 결국 어떤 식으로든 기술이 발달하면 가장 빠른 것보다도 더 빠른 것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이는 마치 ‘가장 큰 소수가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와 비슷하다. 게다가 정지해 있는 곳이 아니라 아주 빠른 우주선에서 새로 또 우주선을 발사한다면 속도가 더해져 더 빨라질 것이므로, 아무리 빠른 것이 있더라도 그보다 더 빠른 게 있을 법하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이 따로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 질문을 바꿔 “지금까지 가장 빠른 것은 무엇일까?”라고 묻는 것이 더 현명한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빛보다 더 빠른 중성미자가 검출됐다는 소식은 물리학계는 물론이거니와 일상의 식탁에서까지 화제다. 그것은 단순히 100m 달리기 신기록이 깨졌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즉, “지금까지 가장 빠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훨씬 더 심오한 문제가 들어 있다. 당장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빛보다 빠른 입자의 존재가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말해준다는 말 때문이다.
물론 빛은 정말 빠르다. 지구 둘레가 4만km이므로 빛의 속도인 초속 30만km라는 속도로 간다면 1초에 세 바퀴 반을 갈 수 있으니 정말 빠르다. 그런데 덴마크의 천문학자 올레 뢰머가 목성의 위성을 이용해 처음 빛이 속도를 측정하기 전에는 빛의 속도가 무한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뢰머는 일찍이 갈릴레오가 발견한 목성의 위성 중 하나인 이오가 목성에 가려 보이지 않는 위성식의 소요시간이 합일 때와 충일 때 다른 이유가 빛의 속도가 유한하기 때문이라고 제안했다. 뢰머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네덜란드의 과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빛이 1초 동안 지구 지름의 16⅔배 거리를 진행한다는 계산을 처음 내놓았다. 그 뒤로 빛의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려는 탁월한 실험물리학자들의 노력이 계속되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앨버트 마이컬슨의 실험이다. 미국인으로서는 처음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마이컬슨의 공로는 다름 아니라 정교한 광속측정이었다.
문제는 마이컬슨의 정교한 광속 측정이 이제까지와 다른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는 것이었다. 지구의 공전속도가 초속 30킬로미터이므로 지구의 운동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발사된 빛은 정지해 있는 상태에서 발사된 빛보다 초속 30킬로미터 더 빨라야 할 것이고, 지구의 운동방향과 반대라면 더 느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정교한 간섭계를 이용한 측정결과는 그 예상에서 빗나갔다. 빛의 속도가 어느 경우든 똑같은 값으로 측정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에게 이 문제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였다. 1900년이 밝을 무렵, 켈빈 경으로 더 알려진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톰슨은 새로운 세기의 물리학을 전망하면서 “물리학자의 하늘은 아주 맑은데, 다만 두 조각의 구름이 있을 뿐”이라고 평가했는데, 그 물리학자의 시야를 가리는 구름이 바로 마이컬슨의 실험이었다.
마이컬슨의 실험이 가져온 문제를 해결한 것은 1905년 26세의 베른 특허국 3급 심사관 알버트 아인슈타인이었다. 그의 해결책은 사실상 너무나 명료하고 간단했다. 빛의 속도에 지구의 운동 속도가 가감되지 않는다면, 맨 처음부터 빛의 속도는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 무관하게 모두 똑같은 값이라고 가정한 뒤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빛의 속도가 누구에게나 일정하다고 가정하게 되면, 당장 확인해 볼 수 있는 논리적인 결론이 나온다. 움직이고 있는 관찰자(가령 기차나 우주선)가 정의하는 ‘동시’와 멈춰 있는 관찰자(가령 플랫폼이나 우주정거장)가 정의하는 ‘동시’가 달라진다. 어느 쪽이 옳은가 묻는다면, 둘 다 옳다고 해야 한다. 두 경우의 ‘1초’의 길이가 달라진다. 서로 상대방의 ‘1초’가 자신의 ‘1초’보다 느리다는 결론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시간 지연 효과’이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폴 랑주뱅은 시간 지연 효과를 바탕으로 소위 ‘쌍둥이 역설’을 제안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공격했다. 쌍둥이 중 지구 위에 남아 있는 갑돌이와 매우 빠른 우주선을 타고 떠난 을숙이의 ‘1초’가 달라진다면, 나중에 둘이 만났을 때 을숙이의 나이가 갑돌이보다 훨씬 적게 될 것이다. 랑주뱅은 운동이 상대적이므로, 지구가 운동하고 우주선이 멈춰 있는 것으로 보면 반대의 상황이 될 터이고, 따라서 시간 지연 효과는 엉터리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나기 위해서는 우주선이 되돌아와야 하고 실제로 지구와 우주선의 운동이 상대적인 것이 아님이 밝혀지면서, 랑주뱅의 역설은 오히려 현실적인 예측으로 변해 버렸다. 1971년 미국 해군연구소의 조지프 헤이펠과 리처드 키팅은 세슘 원자시계를 비행기에 실어 정말로 비행기 안에 있는 시계가 더 느려진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논리적으로 정리해 보자. 빛의 속도가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 무관하게 일정하다고 가정하면, 그 논리적 귀결로 시간 지연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시간 지연 효과가 확인됐다. 따라서 빛의 속도는 누구에게나 일정하다는 가정이 입증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입증이 이루어진다기보다는 그러한 가정이 매우 그럴 듯하다는 것이 된다. 또한 시간 지연 효과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빛 외에는 빛보다 빠른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따라 나온다. 다시 말해서 모든 속도에 언젠가 더 큰 속도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직관적인 믿음이 잘못 됐다는 것이다.
가장 빠른 것이 빛이라는 주장은 점점 더 빨라지는 속도의 현실적인 기술에 따른 것이 아니다. 빛의 속도에 대한 가정으로부터 빛의 속도는 원리적으로 속도의 상한이 된다. 속도의 정의가 일정한 시간 동안 일정한 공간적 거리를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빛의 속도에 대한 가정은 자연스럽게 시간과 공간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1909년 독일의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가 “시간이나 공간은 한낱 그림자일 뿐이며, 4차원 시공간이 참된 세상”이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
만일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의 발견이 흔들릴 수 없는 사실로 밝혀진다면, 시간과 공간 아니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심각하게 수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시간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하버드 대학의 과학사학자 피터 갤리슨은 2003년에 출판된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시간의 제국]에서 이 문제를 매우 상세하고 친절하게 다루고 있다.
1905년 5월 중순 무렵에 아인슈타인과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 미셸 베소는 전기와 자기에 관한 문제에 골몰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독일 라이프치히 대의 아우구스트 푀플의 저서 ‘맥스웰의 전기 이론 입문’을 아주 꼼꼼하게 공부했는데, 그 마지막 장 제목이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이었다.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빛이 다름 아니라 전기와 자기가 공간 속으로 퍼져 나가는 전자기파임을 밝혔다. 그 전자기파, 즉 빛의 속도가 지구의 운동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이 푀플의 책 마지막 장에서 다루는 문제였다.
아인슈타인은 베소와 진지한 토론을 나눈 다음 날 베소를 만났을 때 인사도 생략한 채 말했다. “고맙네.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어.” 결국 시간 개념의 분석이 해결책이었다. 시간은 절대적으로 정의될 수 없고, 시간과 신호전달 속도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베른 시계탑, 즉 베른의 유명한 동기화된 시계들 중 하나를 올려 가리킨 다음, 근처에 있는 단 하나뿐인 시계탑을 가리키면서, 아인슈타인은 절친한 친구에게 시계의 동기화 방법을 주워섬겼다.
우리가 시간에 대해 말하려면 시계가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시계를 똑같이 맞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계들을 어떻게 동기화시킬 것인가? 심부름꾼을 보내 시계를 모두 맞추게 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빛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해결책이었다.
흔히 생각하기에는, 아인슈타인에게 특허청 업무와 기적의 해 1905년의 논문들이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갤리슨은 아인슈타인이 주로 심사했던 특허출원이 바로 시간 동기화였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유럽 철도의 중심이었던 베른에서 모든 지역의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1905년의 논문들에서 우리는 완전히 추상적인 “철학자-과학자 아인슈타인”, 즉 특허국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생계수단으로 일하면서 이론에만 골몰해 있는 모습이 아니라, 우리는 또한 “특허심사관-과학자 아인슈타인”을 볼 수 있다.
전자기적인 신호를 이용해 각 위치에 시간을 할당하는 방식으로 열차의 도착시간을 정하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논문 이전부터 30여 년 동안 북아메리카와 유럽을 괴롭혀 온 정확히 실제적이고 기술적인 쟁점이었다. 특허들이 시스템 속에서 경쟁했고 전기 흔들이를 개선시키고 수신기를 교체하고 새로운 릴레이를 도입하고 시스템의 용량을 확장시켰다. 1905년 무렵, 유럽에서의 시간 동기화는 단순히 비밀스러운 사고실험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시계산업, 군사, 철도에 결정적으로 관련되었다.
최근에 발표된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 실험에서 큰 쟁점 중 하나가 위성 위치확인 시스템(GPS)을 이용한 시간의 결정이다. 위성 위치확인 시스템에서 시계를 동기화하기 위해서는 빛을 이용해야 하며, 이 단계에서는 본질적으로 상대성이론을 포함시키게 된다. 즉 논리적 단계를 조금 건너뛴다면, 빛보다 빠른 것이 있을 수 없다는 함축을 지닌 가정으로부터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결론이 나온 셈이다. 이 역설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것이 시간과 공간의 구조가 이제까지 생각했던 것과 다르기 때문에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로 발전될 수는 없을까?
1985년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컨택트]라는 제목으로 특이한 내용의 소설을 발표했다. 주인공은 지능 있는 외계생명체를 찾는 프로젝트에서 직녀성 근처에서 실마리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보내 온 내용을 토대로 그들과 만날 수 있는 기계장치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1997년 제메키스 감독의 손으로 아주 멋진 영화로 다시 태어난다. 세이건은 그 소설을 쓸 무렵에 외계인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그의 오랜 친구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이론물리학자 킵 쏜과 상의했다. 쏜의 제안은 다름 아니라 ‘벌레구멍’ 또는 ‘웜홀’이라고 흔히 부르는 아인슈타인-로젠 다리였다. 아인슈타인은 1916년 시공간과 중력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고, 1936년 네이썬 로젠과 아인슈타인은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시공간 풀이를 발표했다. 킵 쏜은 흥미롭게도 바로 이 웜홀에서 빛보다 빠른 속도가 가능함을 증명할 수 있었다.
실상 위성 위치확인 시스템에서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이용한 보정이 매우 중요하다.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의 문제가 단순히 실험상의 오차일지, 일반상대성이론의 보정이 불완전했던 것일지, 아니면 아인슈타인 이후로 이제까지 우리가 믿어왔던 시간과 공간의 구조가 잘못된 것일지 지금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어쩌면 입자 가속기 안에서 웜홀이나 여분의 차원이 열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멋진 실마리가 하나 더 생길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일 것이다. 1895년에 출판된 웰즈의 소설 [타임머신]이 10년 뒤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상상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다닌 특허국이 있던 베른의 크람가세 거리
(출처: http://www.akpool.co.uk/postcards/24107450-postcard-bern-kramgasse-und-zeitglockenturm-brunnen-kirche)
빛의 속도가 말해 주는 시공간의 구조
아인슈타인과 시간여행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은 무엇일까. 그 자체로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질문을 조금 더 생각하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걷는 것보다 자전거가 빠르고, 자동차보다 비행기가 더 빠르니까, 결국 어떤 식으로든 기술이 발달하면 가장 빠른 것보다도 더 빠른 것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이는 마치 ‘가장 큰 소수가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와 비슷하다. 게다가 정지해 있는 곳이 아니라 아주 빠른 우주선에서 새로 또 우주선을 발사한다면 속도가 더해져 더 빨라질 것이므로, 아무리 빠른 것이 있더라도 그보다 더 빠른 게 있을 법하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이 따로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 질문을 바꿔 “지금까지 가장 빠른 것은 무엇일까?”라고 묻는 것이 더 현명한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빛보다 더 빠른 중성미자가 검출됐다는 소식은 물리학계는 물론이거니와 일상의 식탁에서까지 화제다. 그것은 단순히 100m 달리기 신기록이 깨졌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즉, “지금까지 가장 빠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훨씬 더 심오한 문제가 들어 있다. 당장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빛보다 빠른 입자의 존재가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말해준다는 말 때문이다.
물론 빛은 정말 빠르다. 지구 둘레가 4만km이므로 빛의 속도인 초속 30만km라는 속도로 간다면 1초에 세 바퀴 반을 갈 수 있으니 정말 빠르다. 그런데 덴마크의 천문학자 올레 뢰머가 목성의 위성을 이용해 처음 빛이 속도를 측정하기 전에는 빛의 속도가 무한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뢰머는 일찍이 갈릴레오가 발견한 목성의 위성 중 하나인 이오가 목성에 가려 보이지 않는 위성식의 소요시간이 합일 때와 충일 때 다른 이유가 빛의 속도가 유한하기 때문이라고 제안했다. 뢰머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네덜란드의 과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빛이 1초 동안 지구 지름의 16⅔배 거리를 진행한다는 계산을 처음 내놓았다. 그 뒤로 빛의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려는 탁월한 실험물리학자들의 노력이 계속되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앨버트 마이컬슨의 실험이다. 미국인으로서는 처음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마이컬슨의 공로는 다름 아니라 정교한 광속측정이었다.
문제는 마이컬슨의 정교한 광속 측정이 이제까지와 다른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는 것이었다. 지구의 공전속도가 초속 30킬로미터이므로 지구의 운동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발사된 빛은 정지해 있는 상태에서 발사된 빛보다 초속 30킬로미터 더 빨라야 할 것이고, 지구의 운동방향과 반대라면 더 느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정교한 간섭계를 이용한 측정결과는 그 예상에서 빗나갔다. 빛의 속도가 어느 경우든 똑같은 값으로 측정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에게 이 문제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였다. 1900년이 밝을 무렵, 켈빈 경으로 더 알려진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톰슨은 새로운 세기의 물리학을 전망하면서 “물리학자의 하늘은 아주 맑은데, 다만 두 조각의 구름이 있을 뿐”이라고 평가했는데, 그 물리학자의 시야를 가리는 구름이 바로 마이컬슨의 실험이었다.
마이컬슨의 실험이 가져온 문제를 해결한 것은 1905년 26세의 베른 특허국 3급 심사관 알버트 아인슈타인이었다. 그의 해결책은 사실상 너무나 명료하고 간단했다. 빛의 속도에 지구의 운동 속도가 가감되지 않는다면, 맨 처음부터 빛의 속도는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 무관하게 모두 똑같은 값이라고 가정한 뒤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빛의 속도가 누구에게나 일정하다고 가정하게 되면, 당장 확인해 볼 수 있는 논리적인 결론이 나온다. 움직이고 있는 관찰자(가령 기차나 우주선)가 정의하는 ‘동시’와 멈춰 있는 관찰자(가령 플랫폼이나 우주정거장)가 정의하는 ‘동시’가 달라진다. 어느 쪽이 옳은가 묻는다면, 둘 다 옳다고 해야 한다. 두 경우의 ‘1초’의 길이가 달라진다. 서로 상대방의 ‘1초’가 자신의 ‘1초’보다 느리다는 결론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시간 지연 효과’이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폴 랑주뱅은 시간 지연 효과를 바탕으로 소위 ‘쌍둥이 역설’을 제안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공격했다. 쌍둥이 중 지구 위에 남아 있는 갑돌이와 매우 빠른 우주선을 타고 떠난 을숙이의 ‘1초’가 달라진다면, 나중에 둘이 만났을 때 을숙이의 나이가 갑돌이보다 훨씬 적게 될 것이다. 랑주뱅은 운동이 상대적이므로, 지구가 운동하고 우주선이 멈춰 있는 것으로 보면 반대의 상황이 될 터이고, 따라서 시간 지연 효과는 엉터리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나기 위해서는 우주선이 되돌아와야 하고 실제로 지구와 우주선의 운동이 상대적인 것이 아님이 밝혀지면서, 랑주뱅의 역설은 오히려 현실적인 예측으로 변해 버렸다. 1971년 미국 해군연구소의 조지프 헤이펠과 리처드 키팅은 세슘 원자시계를 비행기에 실어 정말로 비행기 안에 있는 시계가 더 느려진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논리적으로 정리해 보자. 빛의 속도가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 무관하게 일정하다고 가정하면, 그 논리적 귀결로 시간 지연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시간 지연 효과가 확인됐다. 따라서 빛의 속도는 누구에게나 일정하다는 가정이 입증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입증이 이루어진다기보다는 그러한 가정이 매우 그럴 듯하다는 것이 된다. 또한 시간 지연 효과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빛 외에는 빛보다 빠른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따라 나온다. 다시 말해서 모든 속도에 언젠가 더 큰 속도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직관적인 믿음이 잘못 됐다는 것이다.
가장 빠른 것이 빛이라는 주장은 점점 더 빨라지는 속도의 현실적인 기술에 따른 것이 아니다. 빛의 속도에 대한 가정으로부터 빛의 속도는 원리적으로 속도의 상한이 된다. 속도의 정의가 일정한 시간 동안 일정한 공간적 거리를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빛의 속도에 대한 가정은 자연스럽게 시간과 공간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1909년 독일의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가 “시간이나 공간은 한낱 그림자일 뿐이며, 4차원 시공간이 참된 세상”이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
만일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의 발견이 흔들릴 수 없는 사실로 밝혀진다면, 시간과 공간 아니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심각하게 수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시간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하버드 대학의 과학사학자 피터 갤리슨은 2003년에 출판된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시간의 제국]에서 이 문제를 매우 상세하고 친절하게 다루고 있다.
1905년 5월 중순 무렵에 아인슈타인과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 미셸 베소는 전기와 자기에 관한 문제에 골몰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독일 라이프치히 대의 아우구스트 푀플의 저서 ‘맥스웰의 전기 이론 입문’을 아주 꼼꼼하게 공부했는데, 그 마지막 장 제목이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이었다.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빛이 다름 아니라 전기와 자기가 공간 속으로 퍼져 나가는 전자기파임을 밝혔다. 그 전자기파, 즉 빛의 속도가 지구의 운동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이 푀플의 책 마지막 장에서 다루는 문제였다.
아인슈타인은 베소와 진지한 토론을 나눈 다음 날 베소를 만났을 때 인사도 생략한 채 말했다. “고맙네.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어.” 결국 시간 개념의 분석이 해결책이었다. 시간은 절대적으로 정의될 수 없고, 시간과 신호전달 속도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베른 시계탑, 즉 베른의 유명한 동기화된 시계들 중 하나를 올려 가리킨 다음, 근처에 있는 단 하나뿐인 시계탑을 가리키면서, 아인슈타인은 절친한 친구에게 시계의 동기화 방법을 주워섬겼다.
우리가 시간에 대해 말하려면 시계가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시계를 똑같이 맞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계들을 어떻게 동기화시킬 것인가? 심부름꾼을 보내 시계를 모두 맞추게 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빛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해결책이었다.
흔히 생각하기에는, 아인슈타인에게 특허청 업무와 기적의 해 1905년의 논문들이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갤리슨은 아인슈타인이 주로 심사했던 특허출원이 바로 시간 동기화였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유럽 철도의 중심이었던 베른에서 모든 지역의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1905년의 논문들에서 우리는 완전히 추상적인 “철학자-과학자 아인슈타인”, 즉 특허국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생계수단으로 일하면서 이론에만 골몰해 있는 모습이 아니라, 우리는 또한 “특허심사관-과학자 아인슈타인”을 볼 수 있다.
전자기적인 신호를 이용해 각 위치에 시간을 할당하는 방식으로 열차의 도착시간을 정하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논문 이전부터 30여 년 동안 북아메리카와 유럽을 괴롭혀 온 정확히 실제적이고 기술적인 쟁점이었다. 특허들이 시스템 속에서 경쟁했고 전기 흔들이를 개선시키고 수신기를 교체하고 새로운 릴레이를 도입하고 시스템의 용량을 확장시켰다. 1905년 무렵, 유럽에서의 시간 동기화는 단순히 비밀스러운 사고실험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시계산업, 군사, 철도에 결정적으로 관련되었다.
최근에 발표된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 실험에서 큰 쟁점 중 하나가 위성 위치확인 시스템(GPS)을 이용한 시간의 결정이다. 위성 위치확인 시스템에서 시계를 동기화하기 위해서는 빛을 이용해야 하며, 이 단계에서는 본질적으로 상대성이론을 포함시키게 된다. 즉 논리적 단계를 조금 건너뛴다면, 빛보다 빠른 것이 있을 수 없다는 함축을 지닌 가정으로부터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결론이 나온 셈이다. 이 역설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것이 시간과 공간의 구조가 이제까지 생각했던 것과 다르기 때문에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로 발전될 수는 없을까?
1985년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컨택트]라는 제목으로 특이한 내용의 소설을 발표했다. 주인공은 지능 있는 외계생명체를 찾는 프로젝트에서 직녀성 근처에서 실마리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보내 온 내용을 토대로 그들과 만날 수 있는 기계장치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1997년 제메키스 감독의 손으로 아주 멋진 영화로 다시 태어난다. 세이건은 그 소설을 쓸 무렵에 외계인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그의 오랜 친구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이론물리학자 킵 쏜과 상의했다. 쏜의 제안은 다름 아니라 ‘벌레구멍’ 또는 ‘웜홀’이라고 흔히 부르는 아인슈타인-로젠 다리였다. 아인슈타인은 1916년 시공간과 중력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고, 1936년 네이썬 로젠과 아인슈타인은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시공간 풀이를 발표했다. 킵 쏜은 흥미롭게도 바로 이 웜홀에서 빛보다 빠른 속도가 가능함을 증명할 수 있었다.
실상 위성 위치확인 시스템에서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이용한 보정이 매우 중요하다.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의 문제가 단순히 실험상의 오차일지, 일반상대성이론의 보정이 불완전했던 것일지, 아니면 아인슈타인 이후로 이제까지 우리가 믿어왔던 시간과 공간의 구조가 잘못된 것일지 지금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어쩌면 입자 가속기 안에서 웜홀이나 여분의 차원이 열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멋진 실마리가 하나 더 생길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일 것이다. 1895년에 출판된 웰즈의 소설 [타임머신]이 10년 뒤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상상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다닌 특허국이 있던 베른의 크람가세 거리
(출처: http://www.akpool.co.uk/postcards/24107450-postcard-bern-kramgasse-und-zeitglockenturm-brunnen-kir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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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유튜브 대담영상 "자연철학이야기" 녹취록 & 카툰 링크 모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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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강독모임 계획 안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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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정오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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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게시판 카테고리 설정에 대해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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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자연철학 세미나 보완 계획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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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자연철학 세미나 -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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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실재 (아인슈타인 1936) - 독일어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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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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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글 하나 링크 걸어둡니다.
Physics and Reality (Albert Einstein 1936)
이 링크에 있는 아인슈타인의 글을 읽다 보니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 나오는 말들이 떠오르면서 이해가 깊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글은 아인슈타인이 Journal of the Franklin Institute이란 학술지에 1936년에 실은 글입니다.
Physics and reality (https://doi.org/10.1016/S0016-0032(36)91047-5)
Physik und realität (https://doi.org/10.1016/S0016-0032(36)91045-1)
첨부파일 : einstein1936_physics_reality.pdf
아인슈타인의 글 "물리학과 실재"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49-250쪽에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Journal of the Franklin Institute이란 학술지는 아인슈타인과 또 다른 인연이 있습니다.
1937년에 아인슈타인이 미국물리학회지 Physical Review에 논문을 투고했습니다. 나타나엘 로젠과 공저였는데,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파는 존재할 수 없다는 놀라운 (그리고 틀린) 주장을 담은 논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럽에서와 달리 미국 학술지는 논문심사를 하고 있었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논문에 누군가 논평을 하자 화를 내면서 투고를 철회하고 Journal of the Franklin Institute에 재투고를 했습니다.
On gravitational waves (https://doi.org/10.1016/S0016-0032(37)90583-0)
이 에피소드를 다룬 Physics Today 기사를 링크해 둡니다.
Einstein Versus the Physical Review (https://doi.org/10.1063/1.2117822)
첨부파일 : einstein1937_grav_wave.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