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님의 질문 1에 대한 하나의 대답
시지프스님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셨는데 답이 늦었습니다. 중요한 문제이지만, 의외로 자주 혼동되고 있기 때문에 될수록 상세하게 설명하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 질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클라우지우스에 따른 엔트로피 정의는 $\Delta S = \frac{\Delta Q}{T}$입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61쪽 참조) 즉 계가 주변으로부터 $\Delta Q$에 해당하는 열을 받으면 엔트로피가 $\frac{\Delta Q}{T}$만큼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역학 둘째 법칙에 따르면 고립계(외떨어진 계)에서는 엔트로피가 언제나 증가하거나 그대로이고 감소하는 일은 없습니다.
더운 물이 담겨 있는 그릇에서 물이라는 계 A가 주변에 열을 내놓으면서 식을 때를 생각해 봅니다. 물이 식는 것이니까 계 A의 열은 가령 $Q_0$ 만큼 줄어듭니다. 계 A의 관점에서 받는 열은 $-Q_0$로서 음의 값입니다. 클라우지우스의 엔트로피 정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계 A의 엔트로피는 $\frac{Q_0}{T}$ 만큼 줄어듭니다. 이제 여기에다 열역학 둘째 법칙을 곧이곧대로 적용시켜 봅니다. 그러면 엔트로피는 감소할 수 없다고 했으니까, 조금 전의 상황 즉 물이 식으면서 주변에 열을 내놓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주변에서 열을 흡수하여 물이 더 뜨거워져야만 합니다.
상식에서 벗어나는 황당한 상황입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시지프스님의 질문은 매우 자연스럽고 또 적절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열역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되새겨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1) 먼저 열역학 둘째 법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 증가는 언제나 고립계(isolated system) 즉 외떨어진 계에 대한 주장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묘하지만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닫힌 계(closed system)이 있습니다. 닫힌 계는 그 테두리 안이나 밖으로 물질이 이동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닫힌 계라고 해도 그 경계면을 통해 에너지의 출입은 허용됩니다. 그것이 바로 '열'입니다.
그런데 고립계(외떨어진 계)는 그 테두리의 안이나 밖으로 물질뿐 아니라 에너지도 이동할 수 없는 경우로 정의됩니다.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열 출입도 없고 물질의 이동도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고립계는 완전히 단열되고 테두리가 튼튼한 공간상의 구역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규정한 계에 대해 열을 주고 받는다는 이야기는 애초에 성립하지 않으므로 엔트로피를 말하는 것이 이상해 보입니다.
실상은 그 고립계를 부분계들로 나눕니다. 위의 예를 들면 뜨거운 물이 담긴 그릇이 부분계 A입니다. 전체에서 뜨거운 물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주변' 또는 '주변계'라고 부르고 B라 지칭하겠습니다. 주변은 가령 뜨거운 물 주위의 공기들입니다. 여하간 전체계의 부분을 구성하는 것이 부분계입니다. 주변은 쉽게 말해서 특정 부분계의 여집합입니다. 부분계 A는 닫힌 계일 수 있고, 주변 B에 열을 내보낼 수도 있고 주변 B로부터 열을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엔트로피 자체는 닫힌 계에서 잘 정의됩니다.
이제 열역학 둘째 법칙을 정확하게 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2)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61쪽에 소개된 클라우지우스의 엔트로피 정의를 단순하게 생각하여 출입한 열을 온도로 나눈 값 ($Q/T$)이라고 하면 약간 문제가 생깁니다.
루돌프 클라우지우스가 $dS = \frac{\delta Q}{T}$라는 식을 제안한 것에 대해 수학을 이용하여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이미 영국의 제임스 줄이나 독일의 헤르만 헬름홀츠 등이 열과 관련된 현상에서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실제 역사적 전개는 의외로 복잡하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유한한 계에 대하여 언제나 내부에너지라는 추상적인 양을 대응시킬 수 있습니다. 이를 $U$라 하면, 그 계에 출입하는 열을 $Q$라 하고, 그 계가 외부에 하는 일을 $W$라 할 때, $$\Delta U = Q - W$$임을 주장하는 것이 열역학 첫째 법칙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많은 열현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지프스님이 설명하신 아주 단순한 상황, 즉 더운 물이 식어서 주변에 골고루 그 따뜻함(열)을 나눠주고 식어 버리는 상황은 열역학 첫째 법칙으로 잘 설명됩니다. 그런데 왜 그 반대의 현상은 실제 세계에서 없는지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열이라는 것이 가지는 이상한 성격 때문입니다. 열의 정체를 알 수 없지만 특정 상태 1에서 다른 상태 2로 변화할 때, 그 중간과정이 어떻게 되는가에 따라 변화의 전체값이 달라집니다.
(3) 수학의 언어로 말하면 열의 변화량 $\delta Q$는 완전미분(exact differential)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함수 $f(x)$의 부정적분 $F(x)$가 존재하면
$$ \int_{x_1} ^ {x_2} f(x) dx = F(x_2)-F(x_1)$$
이 됩니다. 소위 미적분학의 기본정리가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 f(x) = \frac{dF}{dx}$$
라 하면, 위의 식은
$$ \int_{x_1} ^ {x_2} f(x) dx = \int_{x_1}^{x_2} \frac{dF}{dx} = \int_1 ^2 dF = F(x_2)-F(x_1)$$
이라고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 \int_1 ^2 dF = F(2) - F(1)$$
과 같이 쓸 수 있는 경우에 $dF$를 완전미분(exact differential)이라고 부릅니다. 이 개념을 더 확장하면 미분기하학에서 '미분 형식'(differentiable form)을 정의하고 그 중에서 완전미분형식(exact differential form)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열의 변화는 처음과 나중을 안다고 해서 그 차이만으로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 \Delta Q \not= \int_1 ^2 dQ$$
그래서 $dQ$라고 쓰지 않고 $\delta Q$나 $d'Q$라고 쓰거나 $d$에 살짝 줄을 그어서 표시합니다.
(4) 클라우지우스는 카르노 기관을 수학적으로 분석하여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냈습니다.
열의 변화 $\delta Q$는 완전미분이 아니지만, $\delta Q / T$는 완전미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 \frac{dU + p dV}{T}$$가 완전미분이 된다는 것인데, 열역학 첫째법칙을 $$ dU = \delta Q - \delta W = \delta Q - p dV$$
로 쓰면, 다름 아니라 $\delta Q / T$는 완전미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새로운 양 $S$로 정의하고 거기에 '엔트로피'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 \Delta S = \int_1 ^2 \frac{\delta Q}{T}$$
이 적분 자체는 언제나 정의되는 것은 아니고, 변화에서 거의 미묘한 변화만 가능한 경로만을 택합니다. 이것을 준정과정(quasistatic process)라고 부릅니다.
준정과정은 실상 변화를 뒤로 돌릴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그런 점에서 가역과정(reversible process)과 거의 같은 의미입니다.
(5) 클라우지우스가 전개한 열역학의 법칙들은 수학적 체계로 볼 때 '공리'에 해당합니다. 지금은 영째 법칙(zeroth law)과 셋째 법칙까지 추가되어 모두 네 개의 열역학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증명하거나 유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열역학이라는 체계를 논리적으로 그리고 연역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출발점으로서 제시되는 것입니다. 이 열역학 법칙들을 유클리드 기하학의 다섯 공리처럼 그냥 받아들이고 그 뒤에 논리적 및 연역적 귀결을 찾는 것이 열역학의 형식체계입니다.
(6) 열역학 둘째 법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국소적인 엔트로피 감소가 언제나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대신 주변에서 그 엔트로피 감소를 상쇄할 만큼 엔트로피 증가가 보충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현상 자체가 그 존속을 위해 반드시 음의 엔트로피를 필요로 합니다. 그 음의 엔트로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외부에서 엔트로피의 증가가 생겨납니다.
태초의 우주를 보면 사실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 없어야 합니다. 이미 아무 것도 없고 평온한 엔트로피 극대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하간 국소적으로는 엔트로피 감소가 일어날 수 있고 그 주변의 엔트로피가 증가합니다. 이런 식으로 평온한 세상에 국소질서가 생겨납니다. 그것이 물질이고 은하이고 별입니다. 그리고 그 별 속에서 국소질서로서 지구 같은 행성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 행성에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생명체가 국소질서로 생겨납니다.
국소질서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신기한 일이지만, 이렇게 국소질서라는 관념을 얘기하는 것을 증명하거나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열역학의 기본 법칙들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국소질서가 생겨날 가능성들에 대해 아주 많은 다양한 방식들이 열역학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전에는 그런 것을 '흩어짐 구조(소산 구조 dissipative structure)'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지금은 소위 카오스 이론 또는 비선형 동역학을 통해 그와 관련된 것이 매우 폭넓게 탐구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예 '복잡계 과학'이란 종합적이고 융합적인 복합분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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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답보다 더 명료하고 명쾌한 대답이 장회익 선생님의 대담 6-2에 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면 이해에 더 유익하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수학적인 측면을 보충했고, 외떨어진 계(고립계)와 닫힌 계의 개념 차이를 부각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