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소수에서 사원수로, 그리고 벡터로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0-03-26 17:00
조회
5684
눈사람님(neomay3님)이 3장(심학 제3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각각 한 차원씩을 차지한다면, 복소수 개념을 이용하여 시간과 공간을 나타내는 것이 성공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공간은 어쩌다 보니 세 차원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어쩌면 인류가 하필 세 차원을 보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시간 한 차원, 공간 세 차원이니 복소수를 가지고는 아무래도 어렵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사원수입니다.
이전에 이 내용을 쓰려고 "복소수에서 사원수로 (그리고 벡터로)"(이 게시판 #75번 글)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제대로 맺지 못했습니다.
눈사람님의 글을 계기로 조금 더 가 볼까 합니다.
수학자들은 참 놀랍습니다. 공간의 3차원을 기존의 복소수 이론으로 다루기 어렵다면, 새로 이론을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시간 하나, 공간 하나가 아니라 시간 하나 공간 셋이라면, 복소수 단위 $i$ 대신 그런 비슷한 성격의 단위를 셋 도입하면 어떨까요? 이런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여하간 비슷한 동기로 나온 것이 바로 '사원수'입니다.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해결책을 찾아낸 사람은 아일랜드의 수학자 윌리엄 로원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입니다.
해밀턴은 사원수(quaternion)이란 개념을 통해 복소수의 2차원을 4차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사원수는 $a+bi+cj+dk$와 같이 표현됩니다. 여기에서
$$i^2 = -1, \quad j^2=-1, \quad k^2 =-1$$
이고,
$$ij=-ji=k, \quad jk=-kj=i, \quad ki=-ik=j$$
로 정의됩니다.
해밀턴은 광학과 역학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뉴턴 역학과 라그랑주 역학을 수학적으로 재구성하여 사실상 새로운 이론체계로 발전시킨 해밀턴 역학만으로도 물리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해밀턴은 언제나 자신을 수학자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생애의 마지막 20여년은 사원수(quaternion)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사원수’라는 낯선 수학적 개념이 처음 발표된 것은 1843년 11월 13일 왕립 아일랜드 학술원(Royal Irish Academy)에서였습니다. 해밀턴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매우 분명하게 1843년 10월 16일에 이 개념을 생각해 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날 바로 왕립 학술원에 연락해서 다음 모임에서 발표를 하겠다고 말했는데, 이 내용은 “사원수 이론과 연결된 새로운 종류의 허수 양”이란 제목으로 발표되었고, 이듬해에 학술지에 지면으로 실렸습니다.
아일랜드 더블린이 좀 우울한 도시라고들 하는데, 여하간 바로 이 사원수 개념을 처음 떠 올렸다고 해밀턴이 말한 그 다리(Broom Bridge)에 이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사원수는 복소수 개념을 확장한 것으로서, 복소수 $a+bi+cj+dk$는 $q \leftrightarrow (a, b, c, d)$와 같이 네 개의 실수로 이루어진 새로운 수입니다. 이것은 마치 복소수 $z=x+iy$가 두 개의 실수 $(x, y)$에 대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복소평면(가우스 평면)의 경우에는 실수 부분이 공간을 나타내고 허수 부분이 시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사원수에서는 실수 부분이 시간을 나타내고 나머지 세 차원의 '허수' 부분이 공간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해밀턴은 1844년 11월 11일에 왕립 아일랜드 학술원에서 발표한 논문 “사원수론”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벡터’라는 용어를 제안했습니다. 사원수를 $q=a+v$라 쓸 때 $v= bi+cj+dk$와 같이 복소수의 허수 부분에 대응하는 부분을 한꺼번에 ‘벡터 부분 vector part’ 또는 ‘벡터 vector’라 부르고, 나머지를 ‘실수 부분 real part’이라 부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이 지면에 실린 것은 1847년이었습니다. 1846년 Philosophical Magazine에 실린 논문에서는 ‘실수 부분’이란 용어 대신 ‘스칼라 부분 scalar part’이라는 용어를 제안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상 처음으로 ‘벡터’와 ‘스칼라’라는 용어가 도입된 시점입니다.
해밀턴은 이승을 떠날 때까지 자신이 만들어낸 사원수의 성질을 탐구하고 이를 이용하여 기존의 이론과 논의를 다시 쓸 수 있는 언어로 발전시키려 애썼지만, 이를 순수수학의 영역에 국한시켰고 물리학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해밀턴의 사원수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더 확장하면서 미적분학과 함수 이론으로 넓힌 사람 중 하나는 피터 거쓰리 타이트(Peter Guthrie Tait 1831-1901)입니다. 타이트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과 동갑내기이고, 동향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같은 학교를 다녔습니다. 타이트는 학문연구 초기부터 해밀턴의 사원수에 깊이 빠져들었고, 사원수와 관련된 8권의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타이트는 22권의 책을 쓰고 365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논문의 7할 이상이 사원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타이트는 해밀턴과 달리 사원수를 동역학 이론에 적용하기 위해 애썼고 사원수를 사용한 미적분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만들어갔습니다.
3장의 '내용정리' 첫 페이지(161쪽) 첫 줄을 보면, "특수상대성이론의 핵심은 시간과 공간이 합쳐서 4차원을 형성한다는 데 있다. ... 여기에는 큰 장벽이 있다. ... 실제 3차원 공간은 눈에 보이고 ... 시간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경험과 관계되며, ... 그 어떤 단서도 잡을 수 없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에 i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침 우리한테는 i가 있다. i를 이용해서 4차원 시공간을 표현해 보자.
시간과 공간이 각각 한 차원씩을 차지한다면, 복소수 개념을 이용하여 시간과 공간을 나타내는 것이 성공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공간은 어쩌다 보니 세 차원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어쩌면 인류가 하필 세 차원을 보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시간 한 차원, 공간 세 차원이니 복소수를 가지고는 아무래도 어렵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사원수입니다.
이전에 이 내용을 쓰려고 "복소수에서 사원수로 (그리고 벡터로)"(이 게시판 #75번 글)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제대로 맺지 못했습니다.
눈사람님의 글을 계기로 조금 더 가 볼까 합니다.
수학자들은 참 놀랍습니다. 공간의 3차원을 기존의 복소수 이론으로 다루기 어렵다면, 새로 이론을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시간 하나, 공간 하나가 아니라 시간 하나 공간 셋이라면, 복소수 단위 $i$ 대신 그런 비슷한 성격의 단위를 셋 도입하면 어떨까요? 이런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여하간 비슷한 동기로 나온 것이 바로 '사원수'입니다.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해결책을 찾아낸 사람은 아일랜드의 수학자 윌리엄 로원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입니다.
해밀턴은 사원수(quaternion)이란 개념을 통해 복소수의 2차원을 4차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사원수는 $a+bi+cj+dk$와 같이 표현됩니다. 여기에서
$$i^2 = -1, \quad j^2=-1, \quad k^2 =-1$$
이고,
$$ij=-ji=k, \quad jk=-kj=i, \quad ki=-ik=j$$
로 정의됩니다.
해밀턴은 광학과 역학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뉴턴 역학과 라그랑주 역학을 수학적으로 재구성하여 사실상 새로운 이론체계로 발전시킨 해밀턴 역학만으로도 물리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해밀턴은 언제나 자신을 수학자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생애의 마지막 20여년은 사원수(quaternion)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사원수’라는 낯선 수학적 개념이 처음 발표된 것은 1843년 11월 13일 왕립 아일랜드 학술원(Royal Irish Academy)에서였습니다. 해밀턴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매우 분명하게 1843년 10월 16일에 이 개념을 생각해 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날 바로 왕립 학술원에 연락해서 다음 모임에서 발표를 하겠다고 말했는데, 이 내용은 “사원수 이론과 연결된 새로운 종류의 허수 양”이란 제목으로 발표되었고, 이듬해에 학술지에 지면으로 실렸습니다.
아일랜드 더블린이 좀 우울한 도시라고들 하는데, 여하간 바로 이 사원수 개념을 처음 떠 올렸다고 해밀턴이 말한 그 다리(Broom Bridge)에 이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사원수는 복소수 개념을 확장한 것으로서, 복소수 $a+bi+cj+dk$는 $q \leftrightarrow (a, b, c, d)$와 같이 네 개의 실수로 이루어진 새로운 수입니다. 이것은 마치 복소수 $z=x+iy$가 두 개의 실수 $(x, y)$에 대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복소평면(가우스 평면)의 경우에는 실수 부분이 공간을 나타내고 허수 부분이 시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사원수에서는 실수 부분이 시간을 나타내고 나머지 세 차원의 '허수' 부분이 공간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해밀턴은 1844년 11월 11일에 왕립 아일랜드 학술원에서 발표한 논문 “사원수론”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벡터’라는 용어를 제안했습니다. 사원수를 $q=a+v$라 쓸 때 $v= bi+cj+dk$와 같이 복소수의 허수 부분에 대응하는 부분을 한꺼번에 ‘벡터 부분 vector part’ 또는 ‘벡터 vector’라 부르고, 나머지를 ‘실수 부분 real part’이라 부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이 지면에 실린 것은 1847년이었습니다. 1846년 Philosophical Magazine에 실린 논문에서는 ‘실수 부분’이란 용어 대신 ‘스칼라 부분 scalar part’이라는 용어를 제안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상 처음으로 ‘벡터’와 ‘스칼라’라는 용어가 도입된 시점입니다.
해밀턴은 이승을 떠날 때까지 자신이 만들어낸 사원수의 성질을 탐구하고 이를 이용하여 기존의 이론과 논의를 다시 쓸 수 있는 언어로 발전시키려 애썼지만, 이를 순수수학의 영역에 국한시켰고 물리학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해밀턴의 사원수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더 확장하면서 미적분학과 함수 이론으로 넓힌 사람 중 하나는 피터 거쓰리 타이트(Peter Guthrie Tait 1831-1901)입니다. 타이트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과 동갑내기이고, 동향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같은 학교를 다녔습니다. 타이트는 학문연구 초기부터 해밀턴의 사원수에 깊이 빠져들었고, 사원수와 관련된 8권의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타이트는 22권의 책을 쓰고 365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논문의 7할 이상이 사원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타이트는 해밀턴과 달리 사원수를 동역학 이론에 적용하기 위해 애썼고 사원수를 사용한 미적분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만들어갔습니다.
전체 641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공지사항 |
[자료] 유튜브 대담영상 "자연철학이야기" 녹취록 & 카툰 링크 모음 (2)
neomay33
|
2023.04.20
|
추천 2
|
조회 6494
|
neomay33 | 2023.04.20 | 2 | 6494 |
공지사항 |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강독모임 계획 안내 (1)
시인처럼
|
2023.01.30
|
추천 0
|
조회 6585
|
시인처럼 | 2023.01.30 | 0 | 6585 |
공지사항 |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정오표 (10)
시인처럼
|
2022.12.22
|
추천 3
|
조회 8715
|
시인처럼 | 2022.12.22 | 3 | 8715 |
공지사항 |
[공지] 게시판 카테고리 설정에 대해서 (4)
시인처럼
|
2022.03.07
|
추천 0
|
조회 8486
|
시인처럼 | 2022.03.07 | 0 | 8486 |
공지사항 |
새 자연철학 세미나 보완 계획 (3)
시인처럼
|
2022.01.20
|
추천 0
|
조회 9029
|
시인처럼 | 2022.01.20 | 0 | 9029 |
공지사항 |
새 자연철학 세미나 - 안내
neomay33
|
2021.10.24
|
추천 0
|
조회 8927
|
neomay33 | 2021.10.24 | 0 | 8927 |
626 |
<자연철학 강의> 서평 올립니다. (3)
박 용국
|
2024.01.29
|
추천 1
|
조회 256
|
박 용국 | 2024.01.29 | 1 | 256 |
625 |
과학적 객관성에는 역사가 있다
자연사랑
|
2023.09.05
|
추천 3
|
조회 318
|
자연사랑 | 2023.09.05 | 3 | 318 |
624 |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 일종의 믿음의 체계 (2)
자연사랑
|
2023.09.05
|
추천 1
|
조회 602
|
자연사랑 | 2023.09.05 | 1 | 602 |
623 |
물리학 이론의 공리적 구성
자연사랑
|
2023.08.30
|
추천 3
|
조회 517
|
자연사랑 | 2023.08.30 | 3 | 517 |
622 |
상대성이론의 형식체계와 그에 대한 해석의 문제 (6)
자연사랑
|
2023.08.29
|
추천 3
|
조회 816
|
자연사랑 | 2023.08.29 | 3 | 816 |
621 |
양자역학으로 웃어 보아요 (1)
시지프스
|
2023.08.28
|
추천 0
|
조회 666
|
시지프스 | 2023.08.28 | 0 | 666 |
620 |
[양자역학 강독 모임] 소감입니다. (1)
neomay33
|
2023.08.28
|
추천 2
|
조회 669
|
neomay33 | 2023.08.28 | 2 | 669 |
619 |
양자 얽힘과 태극도(음양도) 그리고 '양자 음양' (1)
자연사랑
|
2023.08.25
|
추천 3
|
조회 1441
|
자연사랑 | 2023.08.25 | 3 | 1441 |
618 |
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
자연사랑
|
2023.08.24
|
추천 2
|
조회 735
|
자연사랑 | 2023.08.24 | 2 | 735 |
617 |
0819 강독 마무리 토론회 발표용 (2)
시지프스
|
2023.08.19
|
추천 2
|
조회 569
|
시지프스 | 2023.08.19 | 2 | 569 |
" target="_blank" rel="noopener">사원수의 시각화 Visualizing quaternions (4d numbers) with stereographic proj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