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평 보충 2 (보른과 확률)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0-03-10 13:31
조회
3387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제4장 역사 지평의 세 번째 절은
(3) 파동함수가 의미하는 것은?
입니다.
이에 대한 보충자료로 제가 다른 곳에 썼던 글을 그대로 가져옵니다.
---------------------------------------
잘 알려져 있듯이, ‘양자역학’(Quantenmechanik)이란 용어를 처음 만들어내고 사용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막스 보른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 ‘양자가설’이란 말이 사용되기도 했고, 보어-조머펠트 이론을 ‘양자이론’(Quantentheorie)으로 지칭하기도 했지만, 이를 ‘역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사실상 새로운 이론체계로 제시한 것은 보른의 공로이다.
즉 보어-조머펠트의 고전양자이론이 전자가 여러 개인 원자에 대해 거의 설명력을 갖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드러남에 따라, 이러한 양자규칙들을 명실 공히 역학의 수준으로 확장하고 체계화하여 새로운 역학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후 양자역학의 실제적인 모습으로 제안된 행렬역학은 보른의 연구계획 속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Heisenberg (1925); Born & Jordan (1925); Born, Heisenberg & Jordan (1925); Pauli (1926)]
왜냐하면 하이젠베르크, 요르단, 파울리는 모두 보른의 지도를 받고 있었고, 구체적인 계산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기도 했지만, 이를 정리하고 종합한 것은 언제나 보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역학으로는 입자의 산란(충돌)과 같은 현상을 서술하기가 매우 불편했다.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이 발표되었을 때 이를 가장 열렬하게 환영한 것은 막스 보른이었다. 슈뢰딩거의 “고유값 문제로서의 양자화”의 연속논문 중 네 번째 논문과 거의 동시에 보른은 슈뢰딩거의 파동함수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제시하는 논문을 제출했다.
[Schrödinger (1926)이 투고된 것은 1926년 6월 21일이었고, Born (1926a)이 투고된 것은 6월 25일이었다. 더 명료한 보른의 확률적 해석규칙은 Born (1926b) (7월 21일 투고) 참조.]
슈뢰딩거 자신은 파동 방정식에서 유도되는 연속방정식을 바탕으로 “어떤 의미에서 원자의 정전기 및 정자기 모형을 말할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즉, $\rho = e \psi^* \psi$는 전자의 전하밀도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파동함수가 실재적인 파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환원주의적 해석은 심각한 개념적 문제를 만난다. 파동함수가 전자와 같은 입자를 나타내려면 파동다발(波速, wave packet)이 되어야 하는데, 특별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 한 대부분의 파동다발은 짧은 시간 안에 흩어져 평면파가 되어 버린다.
게다가 이 파동함수가 정의되는 공간의 차원이 문제가 된다. 자유도가 1이라면 $\psi (x, y, z, t)$와 같이 실재적인 파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가령 자유도가 2라면 $\psi (x_1 , y_1 , z_1 , x_2, y_2, z_2, t)$와 같이 7차원 시공간에서 정의된 파동이 되므로 실재적인 파동으로 보는 것이 힘들어진다. 뿐만 아니라 이 파동함수는 복소수 값을 취하는데, 복소수가 왜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측정의 과정에서 파동함수의 오그라듦이 있다는 것을 파동이 오그라드는 것으로 해석할 경우 비인과성과 불연속성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특히 이 파동함수는 측정과 관련된 물리량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지는데, 측정과정에서 어떤 물리량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파동이 달라진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Jammer (1974), esp. pp. 21-38.]
보른이 슈뢰딩거의 환원주의적 해석이 당면한 난점들을 해결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을 이용하여 입자 산란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파동함수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보른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연설에서 처음부터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이 ‘파동’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자기장의 세기와 빛 양자의 밀도 사이의 관계로부터 “거의 자명하게” $|\psi|^2 dx dy dz$가 확률임을 알아챘다는 것이다.
[더 상세한 것은 Mehra & Rechenberg (1987) 참조. 1920년대 중반의 보른의 상황에 대한 상세한 서술로 Greenspan (2005) (특히 pp. 129-149); Bernstein (2005) 참조.]
그러나 이러한 보른의 사후진술과 달리 파동함수를 확률밀도함수와 연결시키는 과정은 상당한 개념적 변천을 겪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벨러는 이에 대하여 다음 여섯 가지를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Beller (1990); Beller (1999)]
첫째, 보른의 확률적 해석은 상당한 기간 동안 점점 모습이 갖추어진 개념적 기여이다. 이 기간 동안 보른의 아이디어는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등과의 대화를 통해 심각한 변화를 겪었다. 형성단계에서 보른의 주장들은 유연하고 모호하며 어느 한 가지에 매어있지 않았다.
둘째, 보른의 첫 번째 충돌 논문[6월 25일 투고]은 보른의 사후진술과 달리 슈뢰딩거의 파동에 반대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었다. 보른은 처음에 슈뢰딩거와의 논쟁에 전혀 연루되지 않았다. 사실상 보른은 슈뢰딩거의 논문에 매우 열광적이었으며, 이는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보른은 입자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보른은 입자-파동 이중성 문제에 확실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셋째, 보른의 첫 번째 충돌 논문은 해석의 쟁점을 명료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물리학 문제를 풀기 위한 것이었다. 즉 새로 제안된 파동역학 이론을 써서 충돌 문제를 풀어내려는 것이었다.
넷째, 보른의 충돌에 관한 두 논문의 목표는 입자가 실재한다거나 비결정론이 필수불가결함을 밝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보어의 ‘양자 도약’(즉 충돌 과정에서 원자에 나타나는 띄엄띄엄 떨어진 에너지 변화)이라는 개념을 이론적으로 내용 있게 하고 제대로 서술하려는 것이었다. 보른과 슈뢰딩거 사이의 불일치 대부분의 핵심은 입자-파동 이중성 딜레마나 비결정론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러한 양자 도약의 존재에 놓여 있었다.
다섯째, 슈뢰딩거의 파동함수에 대한 확률적 해석, 즉 가 위치의 확률이 된다는 해석은 가 자유로운 입자의 운동을 서술한다는 비교적 명확한 암시에서 발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동함수가 속박계에서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 원자의 정상상태에 대한 확률을 준다는 보른의 해석은 결정적인 기여였으며, 이를 중심으로 비결정론과 입자 존재론의 쟁점들이 정립된 것이다.
여섯째, 보른의 독창적인 확률해석이 새로운 물리철학의 등장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까닭은 그것이 ‘명백하게’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낳은 모호함, 난점, 역설들 때문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이전의 개념들이 점점 수정되었고 새로운 이론적 및 철학적 개념들을 다듬어나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3) 파동함수가 의미하는 것은?
입니다.
이에 대한 보충자료로 제가 다른 곳에 썼던 글을 그대로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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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듯이, ‘양자역학’(Quantenmechanik)이란 용어를 처음 만들어내고 사용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막스 보른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 ‘양자가설’이란 말이 사용되기도 했고, 보어-조머펠트 이론을 ‘양자이론’(Quantentheorie)으로 지칭하기도 했지만, 이를 ‘역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사실상 새로운 이론체계로 제시한 것은 보른의 공로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내부결합이나 외부의 장이 일으키는 역학계의 섭동에 관한 고전적인 법칙들을 단일한 형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고전역학으로부터 ‘양자역학’으로의 형식적인 변화를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양자규칙들 자체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작용양자 $h$의 배수는 (중략) 비섭동계의 작용적분에 그대로 나타날 것이다. 한편 역학 자체는 변화를 겪을 것이다. 즉 미분방정식이 차분방정식으로 전이한다는 뜻이다. [Born (1924)]
즉 보어-조머펠트의 고전양자이론이 전자가 여러 개인 원자에 대해 거의 설명력을 갖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드러남에 따라, 이러한 양자규칙들을 명실 공히 역학의 수준으로 확장하고 체계화하여 새로운 역학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후 양자역학의 실제적인 모습으로 제안된 행렬역학은 보른의 연구계획 속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Heisenberg (1925); Born & Jordan (1925); Born, Heisenberg & Jordan (1925); Pauli (1926)]
왜냐하면 하이젠베르크, 요르단, 파울리는 모두 보른의 지도를 받고 있었고, 구체적인 계산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기도 했지만, 이를 정리하고 종합한 것은 언제나 보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역학으로는 입자의 산란(충돌)과 같은 현상을 서술하기가 매우 불편했다.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이 발표되었을 때 이를 가장 열렬하게 환영한 것은 막스 보른이었다. 슈뢰딩거의 “고유값 문제로서의 양자화”의 연속논문 중 네 번째 논문과 거의 동시에 보른은 슈뢰딩거의 파동함수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제시하는 논문을 제출했다.
[Schrödinger (1926)이 투고된 것은 1926년 6월 21일이었고, Born (1926a)이 투고된 것은 6월 25일이었다. 더 명료한 보른의 확률적 해석규칙은 Born (1926b) (7월 21일 투고) 참조.]
슈뢰딩거 자신은 파동 방정식에서 유도되는 연속방정식을 바탕으로 “어떤 의미에서 원자의 정전기 및 정자기 모형을 말할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즉, $\rho = e \psi^* \psi$는 전자의 전하밀도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파동함수가 실재적인 파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환원주의적 해석은 심각한 개념적 문제를 만난다. 파동함수가 전자와 같은 입자를 나타내려면 파동다발(波速, wave packet)이 되어야 하는데, 특별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 한 대부분의 파동다발은 짧은 시간 안에 흩어져 평면파가 되어 버린다.
게다가 이 파동함수가 정의되는 공간의 차원이 문제가 된다. 자유도가 1이라면 $\psi (x, y, z, t)$와 같이 실재적인 파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가령 자유도가 2라면 $\psi (x_1 , y_1 , z_1 , x_2, y_2, z_2, t)$와 같이 7차원 시공간에서 정의된 파동이 되므로 실재적인 파동으로 보는 것이 힘들어진다. 뿐만 아니라 이 파동함수는 복소수 값을 취하는데, 복소수가 왜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측정의 과정에서 파동함수의 오그라듦이 있다는 것을 파동이 오그라드는 것으로 해석할 경우 비인과성과 불연속성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특히 이 파동함수는 측정과 관련된 물리량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지는데, 측정과정에서 어떤 물리량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파동이 달라진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Jammer (1974), esp. pp. 21-38.]
보른이 슈뢰딩거의 환원주의적 해석이 당면한 난점들을 해결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을 이용하여 입자 산란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파동함수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보른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연설에서 처음부터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이 ‘파동’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자기장의 세기와 빛 양자의 밀도 사이의 관계로부터 “거의 자명하게” $|\psi|^2 dx dy dz$가 확률임을 알아챘다는 것이다.
[더 상세한 것은 Mehra & Rechenberg (1987) 참조. 1920년대 중반의 보른의 상황에 대한 상세한 서술로 Greenspan (2005) (특히 pp. 129-149); Bernstein (2005) 참조.]
그러나 이러한 보른의 사후진술과 달리 파동함수를 확률밀도함수와 연결시키는 과정은 상당한 개념적 변천을 겪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벨러는 이에 대하여 다음 여섯 가지를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Beller (1990); Beller (1999)]
첫째, 보른의 확률적 해석은 상당한 기간 동안 점점 모습이 갖추어진 개념적 기여이다. 이 기간 동안 보른의 아이디어는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등과의 대화를 통해 심각한 변화를 겪었다. 형성단계에서 보른의 주장들은 유연하고 모호하며 어느 한 가지에 매어있지 않았다.
둘째, 보른의 첫 번째 충돌 논문[6월 25일 투고]은 보른의 사후진술과 달리 슈뢰딩거의 파동에 반대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었다. 보른은 처음에 슈뢰딩거와의 논쟁에 전혀 연루되지 않았다. 사실상 보른은 슈뢰딩거의 논문에 매우 열광적이었으며, 이는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보른은 입자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보른은 입자-파동 이중성 문제에 확실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셋째, 보른의 첫 번째 충돌 논문은 해석의 쟁점을 명료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물리학 문제를 풀기 위한 것이었다. 즉 새로 제안된 파동역학 이론을 써서 충돌 문제를 풀어내려는 것이었다.
넷째, 보른의 충돌에 관한 두 논문의 목표는 입자가 실재한다거나 비결정론이 필수불가결함을 밝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보어의 ‘양자 도약’(즉 충돌 과정에서 원자에 나타나는 띄엄띄엄 떨어진 에너지 변화)이라는 개념을 이론적으로 내용 있게 하고 제대로 서술하려는 것이었다. 보른과 슈뢰딩거 사이의 불일치 대부분의 핵심은 입자-파동 이중성 딜레마나 비결정론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러한 양자 도약의 존재에 놓여 있었다.
다섯째, 슈뢰딩거의 파동함수에 대한 확률적 해석, 즉 가 위치의 확률이 된다는 해석은 가 자유로운 입자의 운동을 서술한다는 비교적 명확한 암시에서 발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동함수가 속박계에서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 원자의 정상상태에 대한 확률을 준다는 보른의 해석은 결정적인 기여였으며, 이를 중심으로 비결정론과 입자 존재론의 쟁점들이 정립된 것이다.
여섯째, 보른의 독창적인 확률해석이 새로운 물리철학의 등장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까닭은 그것이 ‘명백하게’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낳은 모호함, 난점, 역설들 때문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이전의 개념들이 점점 수정되었고 새로운 이론적 및 철학적 개념들을 다듬어나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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