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일리야 프리고진과 열역학 둘째법칙
보통의 열역학 교과서에서는 가역과정과 비가역과정을 한꺼번에 쓰기 때문에 비가역과정을 다룰 때 혼동이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벨기에의 화학자 일리야 프리고진은 1947년에 매우 특별한 저서를 발표했습니다. 제목은 [비가역 현상의 열역학적 탐구]였는데, 영어 번역본은 [비가역과정의 열역학 입문]이라는 제목이 달렸습니다.
Prigogine, I. (1947). Étude thermodynamique des phénomènes irréversibles. Desoer; (1955/1960/1967). Introduction to Thermodynamics of Irreversible Processes. Wiley.
이 책은 여러 탁월한 통찰이 돋보이는 저서이지만, 전제하고 있는 배경지식이 많은 편입니다. 이 저서에 기반을 두어 교과서로 쓴 아래 책은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후 서술은 아래 책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프리고진은 $$\boxed{dS=d_e S + d_i S}$$와 같이 엔트로피의 변화를 두 가지로 나누자고 제안했습니다.
여기에서 $d_e S$는 에너지나 물질의 교환(exchange)을 통해 외부적으로 엔트로피가 변화하는 것을 가리키며, $d_i S$는 비가역과정(irreversible processes)을 통해 내부적으로 엔트로피가 변화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위의 책 표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열역학 둘째 법칙으로부터 $$d_i S \ge 0$$인데, 가역과정에 대해서는 $$d_i S (\mbox{rev})=0$$이고, 비가역과정에 대해서는 $$d_i S (\mbox{irrev})>0$$입니다.
고립계(isolated system)의 경우에는 에너지나 물질의 교환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으므로, 교환에 의한 엔트로피의 변화는 없고 $$ \boxed{dS_e = 0 , \quad d_i S \ge 0}$$입니다.
닫힌 계(closed system)에서는 에너지 교환이 가능하므로 $$ \boxed{dS_e = \frac{dQ}{T} , \quad d_i S \ge 0}$$이며, 열린 계(open system)에서는 물질 교환도 추가로 가능하므로 $$ \boxed{dS_e = \frac{dQ}{T} + dS_e (\mbox{matter}), \quad d_i S \ge 0}$$가 됩니다.
열린 계는 일단 차치하고 닫힌 계만 살펴보기로 합니다. 열역학 첫째 법칙은 $$\boxed{dQ= dU + pdV}$$라 쓸 수 있습니다. 즉 열의 출입은 곧 내부에너지의 변화와 일을 합한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d_e S = \frac{dQ}{T}=\frac{dU+pdV}{T}$$ 또는
\begin{align}dU &= T d_e S - p dV \\ &= T (dS - d_i S) - pdV \\ & = T dS - T d_i S - pdV\end{align}입니다.
(I) 먼저 엔트로피와 부피가 일정한 경우를 생각하면, $dS=dV=0$이므로 $$dU = - T d_i S \le 0$$ 다시 말해 열역학 둘째 법칙은 곧 엔트로피와 부피가 일정할 때 내부에너지가 결코 증가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게 됩니다. 즉 $$\boxed{d U \le 0 \quad (dS=dV=0)}$$
(II) 다음으로 온도와 부피가 일정한 경우($d T = dV =0$)를 생각합니다. 엔트로피 대신 온도가 일정한 것으로 보는 것이라서 소위 르장드르 변환을 통해 내부에너지에서 엔트로피와 온도의 곱을 뺀 상태함수가 중요해집니다. 즉 $$F = U - TS$$라 정의하면
\begin{align} dF & = dU - T dS \\ &=dU - T d_e S - T d_i S \\ & = (dQ - p dV) - T d_e S - T d_i S \\ & = (dQ - T d_e S) - \cancel{p dV} - T d_i S \\&= - T d_i S \end{align}를 얻습니다. 마지막 등호에서는 $$d_e S =\frac{dQ}{T}$$임을 이용했습니다.
열역학 둘째 법칙에 따르면 $$ d_i S \ge 0$$이므로, 온도와 부피가 일정한 경우의 열역학 둘째 법칙은 $$\boxed{dF \le 0 \quad (d T = dV =0)}$$과 동등합니다. 이 $F$를 헬름홀츠 자유에너지라 부르면, 엔트로피 최대화를 주장하는 열역학 둘째 법칙은 헬름홀츠 자유에너지 최소화와 같습니다. 다만 이 때 조건은 온도와 부피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III) 또 압력과 온도가 일정한 경우($dp = dT =0$)에는 헬름홀츠 자유에너지에서 압력과 부피의 곱을 더해 준 새로운 상태함수를 생각하면 됩니다. 즉 $$G= F + pV$$라 하면 (이를 기브즈 자유에너지라 부릅니다)
\begin{align} dG & = dF + p dV + \cancel{Vdp}\\ & = dU - TdS + pdV\\ &=dQ - \cancel{pdV} - T dS + \cancel{p dV} \\ & = dQ - T (d_e S + d_i S) \\ &= (dQ - T d_e S) - T d_i S \\ &= - T d_i S \le 0 \end{align}을 얻습니다. 따라서 압력과 온도가 일정할 때 열역학 둘째 법칙은 $$\boxed{dG \le 0 \quad (dp = dT =0)}$$과 동등합니다.
위의 유도과정에서는 작은 미소변화라는 의미에서 작은 $d$를 사용하여 $dS$, $dU$, $dF$, $dG$ 등으로 표현했지만, 유한한 크기의 변화에도 위의 식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왜냐하면 이 네 함수는 모두 상태함수이고 그 미소변화량은 모두 전미분량(exact differential)이라서 그대로 적분하면 유한한 크기의 변화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delta Q$는 전미분량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과 끝만 알아서는 변화량을 구할 수 없고 변화과정의 경로를 모두 알아야만 합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begin{align} \Delta S & \ge 0 \quad (U, V \mbox{const.}) \\ \Delta U & \le 0 \quad (S, V \mbox{const.}) \\ \Delta F & \le 0 \quad (T, V \mbox{const.}) \\ \Delta G & \le 0 \quad (p, V \mbox{const.}) \end{align} 이 유도과정의 장점은 가역과정과 비가역과정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에서 등호는 가역과정이고 부등호는 비가역과정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열역학 둘째 법칙에 대한 위의 네 가지 표현은 모두 이러저러한 조건이 붙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boxed{d_i S \ge 0}$$은 아무런 제약 조건 없이 일반적으로 성립하는 부등식이기 때문에 적용성이 매우 높습니다.
미묘한 문제를 하나 더 언급하자면, 열역학의 상태함수 $S, U, F, G$ 등은 원론적으로 평형상태에 대해서만 제대로 정의됩니다. 하지만 평형상태1로부터 비평형의 우여곡절을 거쳐 다시 평형상태2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처음과 나중이 평형이면 열역학의 상태함수를 정의할 수 있으므로 비평형 과정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논의가 문제 없이 잘 작동합니다. 그러나 $d_i S \ge 0$은 평형이든 비평형이든, 또 가역과정이든 비가역과정이든 항상 성립하기 때문에 더 일반적입니다. 하나 더 중요한 것은 내부적 비가역과정에 의한 엔트로피 변화는 부분계로 나누더라도 결코 감소하는 일이 없다는 점입니다. 부분계에 대해서도 $d_i S \ge 0$는 언제나 성립합니다.
일리야 프리고진이 엔트로피의 변화를 외부적인 부분 $d_e S$와 내부적인 부분 $d_i S$로 구별하고, 전체 엔트로피는 그 두 엔트로피의 합이라고 제안한 가장 중요한 동기는 이후의 논의에서 비평형 과정의 열역학을 정교하게 다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프리고진의 제안은 열역학 둘째 법칙과 자유에너지 최소화 원리의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이를 장회익 선생님의 자연철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좋을까요? 특히 심학제5도와 연결시킬 때 프리고진의 접근과 제안이 유용하지 않을까요? 프리고진의 제안을 순전히 자유에너지 최소화를 얻어내는 형식적인 도구로 여기지 않고, 엔트로피의 변화에 에너지 및 물질의 교환에 따른 외부적인 부분와 그렇지 않고 비가역과정과 연관된 내부적인 부분이 있다는 가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렇게 하는 이점은 무엇일까요? 프리고진의 제안은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는데 표준적인 교과서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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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의 계는 고립계, 닫힌계, 열린계로 구별하여 사용합니다. 첨부하는 그림이 이 세 개념의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림 출처: https://www.quora.com/What-does-a-closed-system-exchange-with-its-surroundings)
현대의 우주론자들은 우주 전체가 고립계일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에 대한 실증적 증거는 없습니다. 우주론 교과서나 논문들을 여기저기 찾아보았는데, 우주 전체가 고립계라는 증거를 제시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실상 우주 전체는 정의상 전체이기 때문에 그 바깥에 무엇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주로 에너지가 유입되는 것도 아니라고 보아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현대우주론에서도 우주의 경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우주의 사건지평면도 선명하게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바깥 쪽에서 물질이 유입될 수도 있고 에너지도 출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고립계가 아니라 닫힌계나 열린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하간 현대우주론의 표준모형에서는 우주 전체를 고립계라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고립계와 닫힌계의 정의 상의 차이를 처음으로 제대로 배웁니다. 그동안 저는 두 용어를 구별하지 않고 혼용해서 썼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우주는 하나의 전체로서는 고립계(아직 확실치 않겠지만!)이자 내부적으로는 열린계 인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