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와 생명
장회익 선생님의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에서 생명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디딤돌은 생명체(개체)는 네트워크 안에 있어야 한다는 점과 물리학의 열역학에서 가져온 온도 및 자유에너지 개념입니다.
“개체로서의 생명뿐 아니라 네트워크로서의 생명도 그 자체로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바탕 체계와 함께 해야 한다.”(108쪽)
1886년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은 놀라운 통찰로 생명체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엔트로피를 얻는 것이며, 또 이것이 다름 아니라 태양으로부터 지구로 가는 자유에너지 흐름에서 가능함을 제시했습니다.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원소들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유기체를 구성하는 원소들은 공기와 물과 흙 속에 얼마든지 있다. 에너지를 위해서도 아니다. 이것도 열의 형태로 물체들 속에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엔트로피(음의 엔트로피)를 위해서이다. 이것은 뜨거운 태양에서 차가운 지구로의 에너지 흐름을 통해 얻을 수 있다.” (109쪽)
“Der allgemeine Daseinskampf der Lebenswesen ist daher nicht ein Kampf um die Grundstoffe - die Grundstoffe aller Organismen sind in Luft, Wasser und Erdboden im Überflusse vorhanden - auch nicht um Energie, welche in form von Wärme leider unverwandelbar in jedem Körper reichlich enthalten ist, sondern ein Kampf um die Entropie, welche durch den Übergang der Energie von der heißen Sonne zur kalten Erde disponibel wird.”
Ludwig Boltzmann (1886) Der zweite Hauptsatz der mechanischen Wärmetheorie
그것이 $$\Delta F_B \le \Delta E \left(1 - \frac{T}{T_A}\right)$$라는 수식의 의미입니다. 자유에너지를 보충함으로써 높은 질서를 유지할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려다 보면 직관적으로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한 겨울 동면 상태로 생명을 유지하는 변온동물의 체온에 대해 이런 매우 추상적이고 일반적/보편적인 이야기를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논의는 낮은 수준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과학이론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생명에 대한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논의가 구체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문제일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말씀드리자면, 오래 전 제가 장회익 선생님의 강의조교를 할 때 시험 문제 중에서 항온동물과 변온동물의 차이를 열역학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변온동물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하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다시 찬찬히 생각해 볼 좋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대화방에서 관련된 질문이 나온 것도 그런 맥락인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질문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대략 $$\frac{1}{T} = \frac{\Delta S}{\Delta E}$$라는 수식을 통해 온도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물(수증기와 얼음 포함), 금속, 생명체의 몸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작동하는가 하는 문제로 보았습니다.
먼저 엔트로피가 온도의 함수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표준적인 열역학에서 엔트로피는 내부에너지 $E$, 부피 $V$, 분자수 $N$의 함수로 상정됩니다. 즉 $S=S(E, V, N)$입니다. 독립변수가 셋입니다. 대략 말해서 그 독립변수가 거시상태를 이룹니다. 온도가 높을수록 내부에너지가 크고, 그만큼 넉넉하게 여유가 있으면 거시상태에 대응하는 미시상태의 수가 많을 터이므로 엔트로피도 클 것입니다. 그러나 온도가 높다고 반드시 엔트로피가 크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리학자는 근본적인 개념 이해를 추구하지만, 물리학 내에서도 실험물리학이나 물성물리학에서는 이런 문제를 아주 세밀하게 탐구하고 정량화하고 실험합니다. 화학에서는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이론과 실험을 전개합니다. 이를 응용하는 화학공학 쪽으로 가면 열역학을 사용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아주 체계적이고 정교합니다.
그러면 열역학에서 이해하는 온도 개념을 가지고 물과 금속과 생명체의 몸에 모두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이 생물학적 열역학입니다.
대표적인 교과서로 아래의 책이 있습니다.
- Donald T. Haynie (2008) Biological thermodynamics, 2nd edi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목차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생물학을 전공하는 학생을 위해 만들어진 열역학 교과서입니다.
먼저 1장 에너지 변환에서 에너지의 분포, 계와 주변, 동물의 에너지 소비, 탄소와 에너지와 생명 등을 다룹니다. 2장의 열역학 첫째 법칙과 3장의 열역학 둘째 법칙에 이어 4장에서 기브스 자유에너지의 이론을, 5장에서 기브스 자유에너지의 적용을 다룹니다. 6장에서 통계열역학을, 7장에서 평형간 결합을, 8장에서 반응동역학을 다룬 뒤 9장에서 생물학적 열역학의 최신 문제를 간단하게 다룹니다.
9장에 등장하는 문제들은 "에너지란 도대체 무엇인가?" "열역학 법칙과 우리 우주", "아주 작은 계의 열역학", "최초의 생물학적 거대분자의 형성", "박테리아", "에너지, 정보, 생명", "생물학과 복잡성", "열역학 둘째 법칙과 진화" 등입니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도 이 9장에 등장하는 문제들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생물학을 전공하는 학부 고학년을 위해 쓰인 책인데, 관심 있는 누구나 볼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 Herbert Precht, Jes Christophersen, Herbert Hensel, Walter Larcher (1973) Temperature and Life. Springer.
변온동물과 항온동물의 문제는 생물학 안에서도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흔히 변온동물(poikilotherms)을 '냉혈동물(cold-blooded)'이라 하고 항온동물(homeotherms)을 '온형동물(warm-blooded)'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부적절한 용어입니다. 변온동물의 피도 결코 차지 않고, 변온동물도 주변의 온도에 따라 체온을 적절하게 조절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또 흔히 포유류와 조류를 항온동물로 보고 다른 강은 변온동물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박쥐 중에는 주변 온도에 따라 체온을 급격하게 바꾸는 종류도 있고, 파충류 중에서도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변온동물/항온동물 개념쌍보다는 외온동물(ectothermic)/내온동물( endothermic)의 개념쌍을 더 선호합니다.
이에 대해 나중에 더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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