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꼽문] 책새벽-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29장. (p.628-675)
녹색아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월' 시즌3에서는 현재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읽고 있습니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2010. 문학과지성사.
제29장
p.634.
. . .사람들이 더할 수 없이 조밀하게 모여 사는 곳에서, 동부 해안과 서부 해안의 대도시에서, 외로움이 그처럼 어느 곳에서보다 더 대단한다는 것은 역설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뒤로하고 지나온 서부 오리건주 지역, 아이다호 주, 몬태나 주, 사우스다코타 주와 노스다코다 주와 같이 사람들이 그처럼 뿔뿔이 흩어져 사는 곳에서의 외로움이 한결 더 클 것이라고 당신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별로 심각한 외로움을 확인할 수 없었다.
p.635 하지만, 우리가 통과해 온 이차적 차원의 미국-그러니까 샛길, 중국인이 만든 도랑들, 애퍼루사 종의 말들, 넓게 펼쳐져 있는 산맥들, 명상적인 생각들, 그리고 솔방울을 들고 있는 아이들, 호박벌들, 몇 마일이고 계속하여 우리 위로 펼쳐져 있는 탁 트인 하늘이 있는 바로 그 이차적 차원의 미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만한 외로움의 느낌을 감지할 수 없었다.
p.635-636.
이 같은 외로움의 상당 부분에 대한 원인으로 기술 공학이 지목되고 있다. 왜냐하면 ... 하지만 진정한 악은 기술 공학이 생산해낸 물체들이 아니라 ... 기술 공학의 어떤 특정한 경향, 그러니까 사람들을 주변과 분리한 다음 주체와 객체 사이의 이분화가 유도하는 고립된 자세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경향, 바로 그것이다.
악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이분화, 기술 공학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이원론적 대상 이해 방식이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악을 파괴하는 데 다름 아닌 기술 공학 그 자체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자 그처럼 애를 써왔던 것이다.
p.636.
만일 누군가가 그것이 어떤 일이든 간에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지루한 일을 계속 해나가되, 어차피 하는 일이니 즐겁게 하자는 생각에서 질이라는 것을 선택 항목으로 삼아 이 질을 찾기 시작했다고 하자.(따지고 보면, 모든 일은 조만간 지루한 것이 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은밀하게, 다른 목적이 없이 단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질을 추구하는 일을 계속하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하자.
그렇게 하는 경우, 그는 자신이 전보다 한결 더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흥미로운 존재로 바뀌어 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 없이 존재하는 단순한 대상이 더 이상 아님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질에 대한 그의 결정이 그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과 그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이 과정에 바뀌게 되는데 질이란 주변으로 퍼지는 물결과도 같은 파급 효과는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p.637.
내 개인적 느낌을 말하자면, 세계를 좀더 나은 것으로 개선하는 일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개개인이 질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세상, 그것이 내가 바라는 바의 전부다. 결단코 말하건대, 개개인의 질을 도외시한 채 거대한 집단의 사람들을 위해 입안된 사회적 개발 계획들, 바로 그런 계획들로 가득 찬 거대한 프로그램들에 대해 나는 더 이상 열광하고 싶지 않다.
...
과거에 우리는 개개인마다 질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의식하지 않은 채 자연 자원을 이용하듯 이를 이용해왔다. 하지만 이제 질은 고갈의 시점에 이르러있다.
p.651.
변증법적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대화의 성격을 지닌"이라는 뜻을 지니는데, 이때 대화란 두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말 주고받기를 말한다. 오늘날 이 말은 논리적 논증을 뜻한다. 이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의 역할을 하는 반대 심문의 기법을 필요로 한다. 이는 바로 플라톤의 『대화』에서 소크라테스가 동원했던 담론 유형이기도 하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따르면, 변증법 이외에 과학적 방법 또는 “물리학적” 방법도 있는데, 이는 물리적 사실을 관찰하는 데, 또한 변화하는 물질적 실체에 관한 진리에 도달하는 데 적절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형상과 실체를 나누는 이 같은 이원론, 물리적 실체에 관한 사실적 정보에 도달하기 위한 과학적 방법, 이 두 개념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핵심적 요소였다.
(여기서부터 2024. 3. 3. 추가한 부분입니다.)
p.657.
소크라테스는 수사학을 이해하기 위해 변증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변증법을 파괴하기 위해 변증법을 사용하고 있다.
p.663-664.
탈레스는 이 불멸의 원리를 최초로 거론한 사람 … 헤파클레이토스에 의하면, 세계는 대립되는 두 힘 사이의 갈등과 긴장의 현장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 유일자란 모든 사물에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적 법칙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 유일자를 “정신”을 의미하는 누스로 규정한 최초의 사람은 아낙사고라스다.
불멸의 원리, 유일자, 진리, 신은 외양이나 의견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최초로 명백히 피력한 사람은 파르메니데스로, 이 같은 구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와 이어지는 역사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서 말하더라도 결코 과장된 것일 수 없다.
고전적 정신이 최초로 낭만적 근원을 향해 작별을 고하고 “선과 진은 반드시 동일한 것일 수는 없다”라는 말과 함께 제 갈 길을 따로 가게 된 지점은 바로 이곳이다. 아낙사고라스와 파르메니데스의 말에 귀를 기울인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로, 그는 그들의 생각을 발전시켜 결실이 맺어지게 한 장본인이다.
p.672.
갑작스러운 섬광에 모든 것이 환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질! 덕! 다르마! 소피스트들이 가르치던 것은 바로 그것이다! 윤리적 상대주의도 아니고, 소박한 형태의 "덕"도 아니다.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그들이 가르치던 것은 다름 아닌 아레테, 탁월성, 다르마다! 이성의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실체가 논의되기 전에. 형식이 논의되기 전에. 정신과 물질이 논의되기 전에. 변증법 자체가 대두되기 전에.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질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서양 세계의 최초 교육자들은 질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며, 그들이 교육 매체로 선택했던 것은 다름 아닌 수사학이었다. 그는 내내 제대로 길을 걸어온 셈이었다.
p.674.
"당신이 무언가를 얻게 되면 반드시 무언가를 잃게 된다."
인간이 변증법적 진리의 측면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지배할 힘을 얻게 되는 순간 그가 상실한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라는 점을 이제 그는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자연 현상을 조작하며 힘과 부에 대한 자신의 꿈을 장대한 규모로 실현하는 것을 가능케 한 과학적 능력의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인간은 마찬가지로 장대한 규모의 제국인 이해의 제국을 희생하게 되었다. 세계의 적이 아니라 그 일부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해력을 상실케 된 것이다.
p675.
파이드로스가 강의실에서 도달한 질의 개념이 플라톤의 선의 개념과 너무도 가까운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플라톤의 선은 수사학자들한테서 취해 온 것이었다. 파이드로스가 아무리 뒤져보아도, 이전의 자연철학자들 가운데 선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소피스트들한테서 나온 것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플라톤의 선은 고정되어 있고 영원한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 이데아였지만, 수사학자들에게 이는 결코 이데아가 아니었다. 선은 현실 세계의 한 형식이 아니라, 현실 세계 그 자체였으며, 항상 변화하는 것, 어떤 종류의 방식이든 고정되고 경직된 방식으로는 궁극적으로 파악이 불가능한 그 무엇이었다.
(제29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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